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54화 (54/171)

54화 서문세가 막내 아가씨

난주(蘭州).

감숙성의 성도이자 황하가 도심을 관통하는 감숙성 제1의 대도시.

실크로드를 통한 국제 교역이 경제 대부분을 떠받치는 감숙성에서 난주는 중원과 서역을 잇는 교통 요충지이자 감숙성의 상업, 경제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따라서 난주를 지배하는 자가 곧 감숙성의 패권을 쥘 수밖에 없었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공동파의 속가 문파인 태정검문(泰正劍門)이 난주제일문파였다. 그래서 난주 역시 당연히 공동파 구역이었다. 50년 전의 서문세가는 본가가 있는 난주에서도 2인자에 불과한 중견 무림세가였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정마대전에서 태정검문이 멸문한 이후 지금의 난주를 지배하는 세력은 감숙제일문파인 서문세가였다.

난주 서문세가 본가.

감숙제일문파이자 천하에 손꼽히는 육대세가의 일좌를 차지한 거대 무림세가라는 점을 방증하듯 높고 크게 솟은 대문 너머에는 고루거각(高樓巨閣)들이 끝없이 늘어서 있었다.

저 멀리 굽이치는 황하 강변에 치수(治水) 용도로 설치된 수많은 수차(水車, 물레방아)가 내려다보였다. 서문세가 본가 주변 풍경을 보던 사형의 눈빛이 반짝였다.

“와아······.”

그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시골 촌뜨기가 서울에 상경해서 63빌딩을 보는 꼴이다.

하늘을 찌를 듯한 마천루가 즐비한 현대의 메트로폴리스에서도 살았고, 구중궁궐 자금성을 제집처럼 썼던 내게는 그냥 돈 좀 많이 쓴 지방 졸부로밖에 안 보였다.

실제로 기존 오대세가에게 서문세가는 벼락출세한 근본 없는 졸부 취급 받기도 했고.

“본가에 방문하러 오셨소? 약조는 되어있소?”

서문세가 본가에 다가가자마자 담벼락을 순찰하던 위사가 나와 사형에게 다가가 물었다.

내 시야 한쪽 구석에 서문세가 본가 옆에 세워진, 외객당(外客堂)이라는 현판이 걸린 전각과 그 앞으로 끝없이 늘어진 줄이 보였다.

외객당은 약속 없이 갑작스럽게 방문한 불청객 또는 꽌시가 딸리는 어정쩡한 손님을 수용하는 일종의 임시 대기소였다.

서문세가는 대기업 문파였기에, 하루에도 본가를 찾는 방문객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래서 평범한 객이라면 외객당에서 대기만 하다가 본가 문턱도 못 넘거나, 본가에 들어가더라도 정문이 아닌 쪽문을 통해 들어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만약 내가 오지 않았더라면, 사형 혼자 외객당에서 며칠 동안 기다렸을 것이다.

서문세가의 기선 제압에 말려들어서 말이다.

그리고 쪽문을 통해 굴욕적으로 들어갔겠지.

하지만 내가 있는 이상 그런 일이 벌어지게 둘 수는 없다.

“공동파 장문인의 친필 서신을 받아왔소. 이번 흑룡방과의 비무 건에 대한 서문세가의 공증인 입회 요청 관련 서찰 전달이오. 자세한 내용은 가주님을 뵙고 말씀드리겠소.”

나는 품에서 사부가 쓴 서찰을 꺼내 들면서 말했다.

“공동파? 흐음. 사전 약조는 안 되어있다는 말씀이구려. 그렇다면 저쪽 줄로 가서 대기를······.”

예상대로 기선 제압을 시작하려는 위사.

하여간 어떻게 예상을 한 치도 빗나가지 않는다.

여기서 물러서면 진천검왕 이 인간이 나를 호구로 볼 거다.

그럼 안 되지.

명색이 구천구백구십구세의 권신인 나였다. 고작 지방 호족 우두머리 따위에게 퍼스트 블러드를 내줄 이유도 필요도 없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면서, 차분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위사를 향해 클레임을 넣었다.

이제부터 나는 진상 고객, 블랙 컨슈머가 되어야 했다.

“감숙에서 제일 가는 전통을 지닌 대공동파의 장문인께서 직접 보내시는 서한이오. 말귀를 못 알아듣는 건 아니실 테고.”

비아냥을 섞어 한 마디 던져주니, 서문세가 위사의 얼굴이 독침이라도 맞은 양 구겨진다.

공동파, 옛 감숙제일문파.

몰락하고 퇴락했다 하나 그 이름은 감숙성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미친다.

진정으로 공동파의 장문인이 보낸 서찰이라면 일개 위사 따위가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아무리 서문세가가 당대의 감숙제일문파라 한들, 본파를 이리 홀대하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소. 서문세가의 얼굴에 위사 나리가 똥칠을 할 줄이야.”

그 이상의 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당황스럽겠지.

애송이가 하는 말이 사리에 맞으니.

공동파는 가장 오래된 전통과 높은 명망을 지녔던 몰락한 명문이다.

몰락한 지 5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감숙성 사람들이라면 그 이름을 기억한다.

서문세가가 아무리 당대의 감숙제일문파라도 공동파를 무시할 수는 없다.

‘아무리 다 망했어도 한때의 구파일방이니까.’

게다가 평소라면 모를까, 지금 공동파는 흑룡방과의 대결로 인해 화제의 중심에 서 있다.

함부로 내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그럴싸한 변명을 준비해두기야 했겠지.

“허나, 그래도 가주님과 사전에 약조가 되어 있어야···.”

그게 사전에 약조가 된 사람만 가주를 접견할 수 있다는 규정이겠지.

하지만 그것도 이미 예상했던 바다.

그리고 나는 위사가 생각할 틈을 줄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본 파와 흑룡방의 비무는 두 방파의 일이 아닌, 감숙 무림과 사천 무림 전체의 일. 당연히 감숙 무림의 대형(大兄)인 서문세가가 이 일에서 빠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런데 지금 일개 위사 따위의 판단으로 대공동파의 서신을 무시해서 가주이신 진천검왕 서문 대협의 눈을 흐릴 생각이시오? 지금 당신의 판단이 서문세가의 체면은 물론이요, 향후 감숙 무림과 사천 무림과 그 동도들의 향방을 결정짓는 판단으로 무림사에 기록될 것이오. 그 판단에 대한 책임, 당신이 질 수 있겠소?”

내 말에 위사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직책은 고작해봤자 말단 경비무사.

그래도 대감집 개라고 서문세가의 말단 경비무사라면 어디 가서 콧대 좀 높일 수 있는 자리는 맞지만, 무언가를 책임질 자리는 아니었다.

중세 무림이건 현대건 말단 공무원이 가장 싫어하는 건 책임이었다.

내 예상대로 책임을 언급하자 위사의 표정이 굳었다.

“책임을 못 지겠다면, 당신 말고 책임자를 불러오시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협.”

내가 책임자 나와! 라고 말하자 식은땀을 흘리던 위사가 부리나케 달려가 쪽문을 열고 사라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비조장 쯤으로 보이는, 기도가 날카로운 무인이 다른 위사들과 함께 등장했다.

“금일 정문 경비를 맡은 일 조장 초운협이라 하오. 가주님을 뵙길 원하신다고?”

“그렇소. 서문 대협을 만나 뵙고 직접 서찰을 전달하라는 것이 본 파 장문인의 뜻이오.”

나는 개인과 개인의 일이 아닌 공동파와 서문세가의 일이라는 뜻이며 내가 아닌 공동파 장문인의 뜻임을 돌려서 잘 말했다.

공동파의 장문인을 홀대할 수는 없는 법, 강호의 도리에 따라 일단 거부하더라도 그들은 진천검왕에게 우리의 의사를 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과정이야 어쨌건, 공증인 입회를 무조건 받아야 하는 진천검왕도 우리를 만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알겠소. 일단 귀 파 장문인의 뜻을 상부에 전달하도록 하겠소.”

내 말에 조장이 다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끼익.

굳건히 닫혀 있던 서문세가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

“어서 오십시오, 서문세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부족하나 서문세가의 총관을 맡은 서문풍이라 합니다.”

백의를 입은, 전형적인 문사 차림을 한 미중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서문세가의 무인들과 함께 나타났다.

군자검 서문풍.

서문세가주 진천검왕의 동생이자 서문세가의 2인자.

총관답게 서문세가의 세세한 대전략과 재정을 담당하는 그가 나왔다는 뜻은, 이제 세가 밖에서의 신경전은 그만두겠다는 의미와도 같았다.

즉, 이 전초전은 내 완승으로 끝난 것이다.

저 총관 놈도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나를 향해 이를 뿌득뿌득 갈고 있겠지.

실제로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는 모습이 보였다.

속이 제법 쓰린 모양.

“서문세가에 두 자루 검이 있어 한 자루는 하늘을 떨어 울리며 그 위명을 사해만방에 펼치고, 다른 한 자루는 군자와도 같은 성품과 의협심으로 뭇 강호인들의 존경을 받는다 들었습니다. 소문의 군자검 서문 대협을 만나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공동파의 이철수라 합니다.”

나는 그의 앞에서 정중하게 포권하면서 서문풍에게 인사했다.

“공동파의 유진휘입니다. 협객으로 이름 높은 군자검 서문 대협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형이 함께 포권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본 군자검 서문풍이 웃으면서 인사를 받았다.

“하하, 허명일 뿐입니다. 과분한 별호지요. 이 소협의 말대로 내가 군자검이란 허명으로 불리는 서문 모외다.”

겸양의 내용과 달리 자부심이 묻어나는 말투.

하지만 눈동자가 쉴 새 없이 이쪽을 관찰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러 공동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 쪼잔함까지.

한 마디로 ‘게임 X같이 하네’ 급의 극찬이 서문풍의 입과 온몸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두 분 소협께선 위사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서문풍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문세가 무인들이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귀빈을 맞이할 때만 열린다던 서문세가 정문이 열리다니.”

“공동파의 제자들이라고? 설마 흑룡방과의 비무 때문에 서문세가에 도움을 청하러 온 건가?”

“저 잘생긴 공자가 유진휘인가? 듣기로 그 미모가 관옥과도 같다더니, 소문이 실제를 전부 담아내지 못했구만. 저렇게 잘생긴 공자는 처음 봐.”

“그 옆의 소년은 누구지?”

“글쎄, 이번에 공동파에 새로 입문했다는 제자인가?”

서문세가 대문이 열리자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형 미모 이야기는 빠지질 않는구만.

게다가 나는 듣보잡 취급이라니.

말은 내가 다 했는데, 서러워서 못 살겠다.

하지만 그것도 비무만 하면 끝이다.

흑룡방과의 대결에서 선전만 한다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눈을 반짝이면서도 낯선 장소에서 날 지키기 위해 옆에 바짝 붙은 사형과 함께 서문세가 내부로 들어갔다.

탁.

대문이 육중한 소리와 함께 닫혔다.

비싼 청금석으로 도배된 바닥 위에 세워진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보였다.

다 쓰러져 가는 폐가만 모인 공동파 본산과는 대조적인 모습.

그렇게 서문풍이 우리를 안내한 곳은 서문세가의 접객당인 호빈관(豪賓館)이었다.

서문세가에서 인정한 귀빈들만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

흉가나 다름없는 공동파의 접객당은 물론이요, 본가 밖에 있는 구색만 갖춘 전각인 외객당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호화로운 전각이었다.

“호빈관(豪賓館)에서 기다리고 계시면, 적절한 시일에 가주님께서 두 분 제자분들을 부르실 것입니다.”

“언제쯤 서문 대협을 뵐 수 있을지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가주님께서는 업무와 개인 수행 때문에 바쁘십니다. 따라서 두 분 제자분들께 섣불리 시일을 확답드릴 수 없는 점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서문풍이 유려한 말솜씨로 말하면서 웃었다.

시일을 확답할 수 없다.

저 말의 속뜻은 밖에서 사람들 다 보는데 진상을 부리니 세가의 체면을 생각해서 본가 안까지는 들여놓겠지만, 여기서부터 다시 기선제압과 기강잡이를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일단 형식적으로 손님맞이는 하였으니, 서문세가에서도 체면치레는 한 셈이기 때문에 여기서부터는 명분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만남을 미루며 기선제압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뭐 놀랍지도 않다.

그 콧대 뻣뻣한 육대세가의 가주이자 화경의 고수인 진천검왕이 갑질을 안 하면 그게 이상한 일이고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그렇군요. 그럼 이 말을 반드시 진천검왕 서문 대협께 전해주십시오. 지금 저를 바로 만나지 않는다면,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놓치는 꼴이라고요.”

내 말을 들은 서문풍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린 공동파 제자의 치기 정도로만 생각하는 모양.

하지만 사흘만 지난다면 내 말이 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적사월이 일을 제대로 했다면, 지금쯤 사부님의 친필 서신이 구파일방과 다른 무림세가에 도착한 건 물론, 언론 플레이도 시작되었을 테니까.

진천검왕은 그때 똥줄이 타서 우리를 황급히 부르겠지.

물론 그때면 늦어도 한참은 늦었다.

서문세가 놈들은 이미 내가 설계한 함정에 걸려들었고, 나는 그걸 낚으면 되는 입장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으니 푹 쉬시길. 이건 본 가의 손님임을 증명하는 목패입니다.”

우리를 호빈관으로 안내하고 패를 나눠준 서문풍이 무사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졸지에 나와 사형 둘만 남은 판국.

“사제, 우리 이제 뭐 하면 될까?”

홀로 놀이공원에 남겨진 미아처럼 사형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사형은 이미 나에게 모든 판단을 일임하고 있었다.

나는 호빈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말했다.

“일단 기다리면서 밥부터 먹죠.”

어차피 더 할 일은 없다.

이왕 부잣집에 정식 손님으로 방문했으니, 곳간이나 축내야겠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서 아침도 먹지 않고 쫄쫄 굶었다.

정력제인 돼지고기를 마구마구 먹어치워주지.

“응!”

내 말에 사형이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별채로 입성한 나는 아침 점심 저녁을 전부 장어와 돼지고기, 부추로 때웠다. 후식은 호두였다.

전부 정력에 좋다는 음식들로 도배한 비장의 정력 식단을 남의 돈으로 마음껏 먹으니 극락이 따로 없었다.

그렇게 배부르게 밥을 먹은 나는 색도 수행을 위해 호빈관 후원에 있는 손님 전용 연무장으로 향했다.

*

같은 시각.

서문세가 별채.

수없이 늘어선 거대 전각 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별채인 채운각(彩雲閣)의 주인은 서문청하.

정파 무림의 사룡오봉 중 검봉으로 꼽히는 서문세가의 금지옥엽이자 사랑받는 막내딸이었다.

세상 물정 모르고 서문세가 안에서 귀하게만 자랐고, 대외 교류도 같은 명문 정파끼리만 해왔던 말 그대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자란 아가씨인 서문청하에게는 비밀이 한 가지 있었다.

“공동파 제자분들이 오셨다고요?!”

“네, 아가씨.”

시녀의 말에 서문청하의 가슴이 두근대기 시작했다.

그렇다.

서문청하의 비밀은 바로 그녀가 마음 깊이 공동파를 동경한다는 사실이었다.

강호의 협객을 동경하는 순진무구한 서문청하에게 있어 50년 전 정파의 선봉에서 마교를 막다 장렬히 산화한 공동파의 이야기는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300년 전 태조 황제와 함께 대명제국을 건국한 개국공신이자 천하제일인 혼원검제의 출신 문파이지 않은가?

몰락한 지금도 오로지 협의를 위해 거대 사파 문파인 흑룡방에게 맞섰다는 소식은 세상 물정 모르고 협객을 동경하는 정파 아가씨의 마음에 불을 지르기에 충분했다.

실제로 이철수의 의도대로 비무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공동파가 협의를 위해 사파와 맞선다는 사실만으로 감숙성 내부에서 공동파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늘고 있었다.

서문청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렇군요. 알았어요. 물러가 보세요.”

시녀를 물린 서문청하는 동경을 꺼내 옷차림과 얼굴을 점검했다.

동경 안에 감숙제일미녀라는 호칭에 걸맞게 빼어난 미모를 지닌 미소녀가 비쳤다. 서문청하 본인의 얼굴이었다.

어려서부터 공동파 이야기를 남몰래 듣고 자랐던 서문청하였다.

그런데 그 공동파 제자가 직접 가문에 방문한 상태라니.

이건 기회였다.

그녀가 소문으로만 들었던 공동파의 협객들을 만날 수 있는.

물론 가문 어르신들이 알면 경을 칠 일이었다. 몰락했기는 했지만, 공동파는 한때의 감숙제일문파. 서문세가가 오랫 동안 날개를 펴지 못하고 중견 무림세가로 공동파와 그 속가 문파들에 눌려 지냈던 시절 때문에 서문세가 내부에서 공동파는 사실상 잠재적 적성세력이라 언급이 금기시되어 있었다.

물론 그런 금기가 서문청하의 마음에 더 불을 지른 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특히 어린 시절에는 더더욱.

‘몰래 나가야겠어요.’

서문세가의 사랑받는 막내 아가씨가 지금 몰래 처소를 벗어나 호빈관으로 향했다.

그렇게 호빈관 후원 연무장에 기척을 죽이고 위풍당당한 공동파의 협객을 상상하며 도착한 그녀가 만난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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