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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49화 (49/171)

49화 하오문 출장소

공동산을 내려온 나와 사형은 화정현 저잣거리에서 본격적으로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이것저것 구매했다.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육포와 건량 같은 물건들 말이다.

“사제! 저기 봐! 당과야! 당과!”

사형이 내 소맷자락을 잡아당기면서 신난 목소리로 말했다.

당과라니.

무슨 애도 아니고.

아니 아직 나이만 따지면 애인가?

중세 무림은 전근대 시대답게 단 음식이 귀했다. 그래서 사형이 당과를 먹고 싶어하는 것도 이해할 만했다.

“당과 먹어도 괜찮을까?”

좌판에 늘어놓은 당과를 보면서 고민에 빠진 사형.

뭐, 당과 정도야.

“괜찮습니다.”

나는 동전으로 값을 치르고 당과 두 개를 사서 사형에게 하나를 건넸다.

“자, 드십시오.”

내가 건네는 당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형.

그가 배시시 웃었다.

“응. 고마워, 사제.”

오물오물 당과를 먹는 사형.

마치 한 편의 CF를 보는 듯한 모습이다. 새삼스럽지만 사형이 뭘 하건 전부 영화나 CF가 된다. 치트키 수준의 잘생김 때문이었다.

심지어 웃고 있으니 주변 아녀자들의 시선이 사형을 향해 흘끔흘끔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더 있다간 아녀자들이 구애의 의미로 던지는 과일을 모아 수레를 채웠다는 전설적인 미남자 반안의 고사를 재현할 판국이다.

불공평한 세상 같으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당과를 한 입 깨물었다.

고도로 발달한 현대의 과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조악한 단맛이었지만, 그럭저럭 먹을 만은 했다.

나는 당과를 쪽쪽 빨면서 자연스러운 척 시선을 가장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내가 굳이 당과를 산 이유. 그건 사형 좋으라고 한 일은 아니었다.

‘역시 꼬리가 있었군.’

아까부터 눈치 안 나게 나를 따라오던, 낡은 복장의 소년 하나가 보였다.

딱 봐도 배수(掱手, 소매치기)였다.

기감과 눈치로 이미 미행이 따라붙은 걸 알아차렸기에, 자연스럽게 주변을 둘러볼 기회를 만들기 위해 당과를 샀는데 과연, 당과 값이 아깝지 않았다.

‘배수라면 무조건 하오문과 끈이 닿아 있겠군.’

하오문의 구성원은 도둑, 마부, 점소이, 기생 등등 하오(下汚)라는 말 그대로 밑바닥 인생의 집합소다. 당연히 배수 역시 하오문의 구성원 중 하나다.

하지만 무공을 배운 적 없어 보이는 몸 상태로 보아하니, 개방의 무결개처럼 정식 하오문도는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마 이 화정현 일대의 배수 조직에 상납하는 수많은 배수 중 하나겠지. 그 조직의 수장이 하오문도일 테고.

행보를 보아하니 우리의 전낭을 노리는 게 아닌, 멀리서 티 안 나게 따라오며 감시와 미행에 집중하고 있다.

일반적인 무림인이라면 알아차리지 못할 수준으로 조심스러운 움직임. 더군다나 무공도 안 익힌 민간인이니 역으로 필요 이상으로 경계받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동창 첩보요원 출신.

007 뺨치는 스파이 훈련을 받은 나를 미행하는 건 공자 앞에서 문자 쓰는 멍청한 행동이다.

‘하오문도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는 뜻은······.’

적사월이 본격적으로 우리를, 정확히는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녀의 집착 기질로 볼 때 별로 좋은 신호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일.

여기서는 오히려 적사월과 하오문을 이용해야 했다.

“사형.”

나는 배수에게 들키지 않게 자연스럽게 사형의 귓가에 밀담을 속삭였다.

남자에게 밀담을 하다니.

속으로 피눈물이 흘렀다. 내게 밀담은 오직 미녀에게 속삭이는 달콤한 사랑의 밀어뿐이라 정해놨겄만.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일류의 경지만 되었어도 이런 쓸데없는 밀담 대신 전음을 사용했을 텐데.

빌어먹을.

“미행이 붙었습니다. 하오문인 듯합니다. 소제가 제압하여 미행을 이용, 하오문의 의중을 알아낼 테니 놀라지 마십시오.”

끄덕.

내 말을 들은 사형이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사형의 재가를 받은 나는 자연스럽게, 하지만 보신경을 운용해서 미묘하게 빠른 속도로 배수 소년 근처로 향했다.

정보원 훈련을 잘 받은 모양인지 내가 근접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표정을 짓는 소년.

나는 몸으로 시장 사람들의 시야를 모두 가리는 교묘한 사각지대를 만든 뒤에 금나수의 묘리를 사용해서 번개처럼 배수의 손목을 잡았다.

“감히 전낭을 훔치려고 하다니. 네 손놀림을 내가 모를 줄 알았느냐? 누가 이런 짓을 시켰더냐?”

“네, 네?!”

내 말에 당황하는 배수.

나는 그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은 채로 계속 몰아붙였다.

“하지만 나는 관대하니, 아직 어린 네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 필시 너를 사주한 자가 있을 터. 그자한테 나를 안내하거라. 대공동파의 제자로서 어린 소년을 착취하고 행인의 전낭을 갈취하여 배를 불리는 몹쓸 놈을 반드시 이 검으로 징치하리라.”

스르릉.

허리춤의 철검이 뽑혀 나와 빛을 뿌렸다.

“에구머니나! 대체 무슨 일이람!”

“배수? 설마 내 전낭을 훔쳐 간 놈들이······.”

“공동파의 제자라고? 대체 왜 지금······.”

행인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 선동과 날조가 그대로 먹혀 들어간 모양.

하긴 화정현은 현대로 따지자면 공동산 앞 관광지.

관광지에서 소매치기 여론이 좋을 리가 없다.

“······어서 그 간악한 놈의 소굴로 나를 안내해라. 안내하지 않으면 네가 경을 칠 것이야.”

나는 무서운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기도를 해방했다.

물론 적당히 말을 들을 정도로만.

무림인의 기도를 정면으로 받아낸 소년의 얼굴이 하얘졌다.

“······네······. 네······.”

아무리 정보원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아직은 정식 하오문도조차 못 된 배수 소년이다.

생각할 새 없이 몰아치는 내 말과 기세에 대응할 수 있을 리 없다.

“사형, 따라오시지요.”

순식간에 상황 정리를 끝낸 내가 사형에게 말하자, 사형이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따라갈게.”

“안내해.”

“네, 넵!”

나는 배수 소년을 앞세우고 사형과 함께 길을 걸었다.

저잣거리를 벗어난 배수 소년이 도착한 곳은 화정현의 암흑가.

슬럼가 특유의 무질서한 판잣집이 지어진 거리와 생기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와 사형은 소년을 따라 암흑가를 한참 걸었다. 칼을 차고 무복을 입은, 전형적인 무림인의 차림이기 때문인지 쓸데없이 시비를 거는 왈패들은 없었다.나는 계속해서 걷고 있는 배수 소년의 등을 칼집으로 쿡 찔렀다.

“어이.”

“왜, 왜 부르십니까? 대협?”

“자꾸 쓸데없이 암흑가 빙글빙글 돌지 말고 똑바로 안내해. 네가 상부 지시받고 우리 미행하고 있던 거 다 알고 있으니까. 여기 지리도 내가 다 알고 있고.”

지형 숙지와 지도 구축은 첩보 활동의 기본 중의 기본.

나는 배수 소년의 뒤를 따라갔을 때부터 주변 지리를 모조리 외워 머릿속에 화정현 암흑가 전체 지도의 절반 이상을 이미 완성한 상태였다.

남은 절반도 지금까지 외운 지리와 건물 배치를 통해 거의 90%에 가깝게 추측하고 있는 수준.

전생에 했던 동창 첩보 현장 업무에서 구르던 것에 비하면 코딱지만 한 암흑가 지리 숙지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히, 히익?!”

“거짓말 같나? 내가 널 여기서 놓아주는 대신 우리 누가 하오문 화정현 지부에 먼저 도착하는지 내기해볼까?”

“아, 아닙니다! 제대로 안내하겠습니다! 따라오십쇼!”

내 말에 기겁하며 답하는 소년.

그제야 제대로 된 길 안내를 하는 소년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기루가 잔뜩 늘어선 유흥가.

매춘을 뜻하는 홍등(紅燈)을 내건 홍루와 술과 음악, 춤만 제공하고 매춘을 금지하는 청등(靑燈)을 내건 청루가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물론 유흥가라고는 해도 난주 같은 대도시의 유흥가보다는 규모가 작았다.

아무래도 하오문 지부가 기루에 있는 모양.

“어머, 거기 잘생긴 소협! 우리 기루에서 놀다 가지 않을래?”

“얘는 무슨, 우리 주루로 와! 잘 해 줄게!”

사형을 발견하자마자 구름처럼 모이는 호객꾼들.

여인의 분 냄새,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개중에는 대놓고 몸매가 비치는 나삼(羅衫)을 입고 유혹하는 기생도 있었다.

뭐 별로 끌리지는 않았다.

그야말로 노류장화(路柳墻花)의 파티나 다름없는 길거리.

“사, 사제······.”

익숙하지 않은 탓일까? 산에서만 자란 사형은 갑작스러운 자극적인 풍경에 얼굴을 붉히며 내게 달라붙었다.

이래서 주변 사람이 잘생기면 피곤하다.

나는 사형의 초월적인 미모를 보고 달려드는 호객꾼들과 기생들을 손을 저어 물렸다.

“우리 일행은 이미 예약한 주루가 있소. 여기 안내원 안 보이시오?”

힐끗.

내가 턱 끝으로 소년을 가리키자, 배수 소년이 어색하게 웃었다.

“쳇.”

“우리가 더 잘해줄 수 있는데.”

그제야 흩어지는 호객꾼들.

개중에는 아쉬운 얼굴로 사형의 얼굴을 힐끔힐끔 보는 기녀들도 있었다.

기녀나 홍루(紅樓) 따위에는 관심을 끊은 지 오래지만, 불공평한 세상이긴 하다.

아무리 여기가 유흥가기는 하지만, 이렇게 놀랄 정도로 여인들에게 인기가 없다니.

솔직히 충격이다.

빌어먹을, 역시 협행으로 스토리를 쌓아 내 명성으로 강호를 뒤덮어야 한다.

그렇다면 내가 홍등가를 걸을 때 사형처럼 수많은 여인들이 구름처럼 추파를 던지리라.

“······고마워, 사제.”

“방해가 되어 쳐냈을 뿐입니다. 예약한 기루로 안내해.”

“넵!”

그렇게 기녀들의 시선을 계속 받으면서 도착한 곳은 청등(靑燈)을 내건 기루.

곤화루(崑華樓)라고 쓰인 간판이 시야에 보였다.여기로군.

화정현을 관장하는 하오문 지부가.

사실 진짜 하오문 지부, 그러니까 분타는 난주에 있고 여기는 현대식으로 치자면 출장소 느낌이겠지만 어쨌건 저 이름 모를 배수 소년이 아닌 진짜 하오문도가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품 안에 품은 서찰을 내 돈 안 쓰고 신속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하오문이 가진 전서구 연락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소년이 떨리는 손으로 기루 문고리를 잡고 연다.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문 앞에 내건 청등이 꺼진 상태인 기루 내부는 살풍경했다.

그리고 거기에 비단옷을 입은 중년인이 한 명 있었다.

기루의 총관쯤 되어 보이는 인물.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을 가장하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일 테지만 내 눈에는 아니었다.

개방과 하오문을 능가하는 중원 최대의 첩보기관 동창의 수장까지 해봤던 나다.

저 정도 위장으로 나를 속일 수는 없다.

확실하다. 놈이 이곳 화정현 출장소를 담당하는 하오문도다.

“아직 영업 시작 안 했······.”

“본산을 하산하자마자 꼬리가 달라붙었길래, 놈을 붙잡아서 기어 올라오니 여기 몸통이 있군.”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르겠······.”

여전히 순진한 일반인을 연기하는 총관.

나는 아무 말 없이 전낭에서 동전 한 문을 꺼내 그대로 내력을 담아 던졌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액!

내력이 담긴 동전이 총관의 이마를 향해 날아갔다.

일반인이라면 결코 피하지 못하고 이마에 중상을 입을 만한 공격을 본 총관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더니, 놈의 몸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이동했다.

콰직.

내가 던진 동전이 나무 벽에 박혔다.

“가, 갑자기 이게 무슨 행패······.”

동전을 피한 총관이 당황한 표정을 연기하면서 떨리는 손을 품에 집어넣었다.

저 안에 뭐가 있을지는 뻔하다.

사파 놈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궁지에 몰리면 일단 발사하고 보는 우모침 발사기겠지.

여기서부터는 내가 나설 필요가 없다.

“사형. 몸놀림을 보셨습니까? 무공을 익혔습니다. 저 자입니다. 우리의 미행을 지시한 작자가. 어쩌면 하오문이 흑룡방의 의뢰를 받아 우리를 해하려 했을지도 모릅니다. 제압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공동파의 비대칭 전력, 전략 핵무기인 사형을 동원할 차례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형이 그 자리에서 몸을 날렸다.

사형의 신형이 흐릿해진 순간.

우지끈! 콰광!

폭음과 함께 총관의 몸이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데구르르.

총관이 미처 발사하지 못한 우모침통이 바닥에 떨어져 굴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강할 거라고는 예상했는데, 지나치게 강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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