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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42화 (42/171)

42화 여기가 공동파인가?

‘내 돼지고기!’

타는 냄새를 맡은 순간 나는 내상의 아픔도 딛고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서하린.

그녀는 객잔주의 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요리에는 전혀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재능이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전생에 황궁에서 입수한 첩보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냉혼검희 서하린은 천하제일검 유진휘 정도는 아니지만, 강호 유력 인사 중 하나였으니까.

서하린뿐만이 아니다.

내 머릿속에는 현재의 우내삼존과 경천십칠주, 그리고 미래의 유력 고수들의 신상 정보가 전부 들어 있었다.

아무튼 서하린의 아버지인 서 대인 역시 서하린이 요리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하린이 객잔 일을 도운 부분도 요리가 아닌 서빙 같은 홀 업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서하린에게 요리를 맡기다니!

그것도 귀중한 정력제인 돼지고기를!

“사, 사제?!”

내가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는 기적을 보여주자 사형의 눈동자가 커졌다.

빌어먹게도 사형의 추궁과혈이 쓸데없이 효과가 좋아서 그런지, 약간의 어지러움과 메슥거림, 휘청거림을 제외하면 몸이 그리 아프지는 않았다.

“사제! 무, 무슨 일이야?”

“주방에서 고기가 타는 냄새가······. 납니다······. 지금 당장 주방으로······.”

가야 했다.

돼지고기가 아무리 가장 흔한 고기라지만, 근본적으로 전근대 시대였기에 상당히 귀한 식재료.

그 귀한 식재료를 이렇게 날릴 수는 없었다.

“······정말이야, 타는 냄새가······. 사제, 내가 부축해줄게. 업혀.”

이제야 사형도 타는 냄새를 맡았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내게 말하며 등을 들이댔다.

업히라니.

남자의 등에······. 업히는 건 죽어도 싫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사형에게 업히기 싫기는 하지만, 돼지고기가 타버리는 미래가 더 끔찍했다.

“알겠습니다.”

나는 사형에게 업히는 굴욕을 감수하면서 방을 벗어났다.

사형의 등에서는 더 진해진 들꽃 향기가 났다.

슈우우욱.

방을 벗어난 사형이 행운유수의 보신경을 전개하며 순식간에 청운각을 벗어났다.

“도착했어.”

눈 깜짝할 사이 주방에 도착한 나와 사형.

나는 비틀거리면서 사형의 등에서 내렸다.

어쩔 수 없이 남자의 등에 업히기는 했지만, 더 길게 있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주방의 문을 열었다.

“콜록, 콜록!”

문을 열자 자욱한 연기 속에서 기침하는 서하린이 보였다.

그리고 물이 끓어넘치는 솥과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안의 고기 상태는 안 봐도 뻔했다.

일단 불부터 꺼야 했다.

가스레인지 스위치와 가스 밸브만 잘 내리면 되는 현대와는 달리 중세 무림의 주방은 불을 직접 다루기 때문에 위험했다.

자칫하면 주방은 물론 식당 전체를 홀랑 태워먹을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형, 물 좀 양동이로 퍼와 주십시오.”“알겠어!”

사형이 다시 몸을 날렸다.

나는 일단 연기가 자욱한 주방에서 콜록대며 눈물을 흘리는 서하린의 손목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과연 미래의 절세미녀답게 서하린의 손목은 가늘면서도 부드러웠다.

“서 소저, 일단 실례하겠소.”“······.”

서하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연기를 오래 들이마시면 호흡기에 좋지 않다.

미래의 정파제일미녀를 여기에 방치할 수는 없지.

나는 그녀를 데리고 재빨리 주방을 빠져나왔다.

그때.

“사제, 물 가져왔······.”

나는 사형과 마주쳤다.

털썩.

유진휘가 양 손에 들고 있던 양동이를 바닥으로 떨궜다.

“사, 사제······. 왜 외간 여자의 손을 함부로······.”

사형의 눈동자가 떨렸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가 아파왔다.

여기는 남녀유별이 당연시되는 중세 무림 랜드.

외간 여자의 손을 함부로 잡는 건 지금으로 치자면 번화가 길거리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공개 딥키스를 하는 행위와도 같았다.

빌어먹을 유교 탈레반 월드 같으니. 손잡는 게 뭐가 문제라고.

“······.”

서하린은 무표정한 얼굴에 홍조만 잠깐 띄웠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황급히 서하린의 손목에서 손을 놓으며 말했다.

“주방 내부의 연기에서 서 소저를 구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실례를 무릅쓴 것일 뿐입니다. 사형께서 심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 그렇구나.”

내 말에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사형.

아니 합당한 이유를 댔는데도 왜 저래.

그가 나와 서하린을 번갈아 바라보며 입술을 삐죽 내민다.

설마······.

‘전생의 그 소문이 사실이었단 말인가?!’

내 머릿속에 전생에 입수한 루머가 떠올랐다.

천하제일검 검성 유진휘.

그가 여인을 사귀지 않는 이유가 다름 아닌 사매인 냉혼검희 서하린과 이미 정을 통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라는 소문이었다.

냉혼검희 서하린은 천하제일미 적사월에 버금가는 미모를 지닌 절색의 미녀.

색목인의 피가 섞여 이국적인 외모를 지닌 서하린이 적사월보다 더 아름답다고 평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니, 그녀의 미모에 대해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런 미녀가 상대라서 유진휘가 다른 여인에게 눈길을 안 주는 거라는 꽤 논리적인 소문이었다.

실제로 내가 죽기 전까지 둘 다 독신이기에 퍼진 소문이었는데, 황궁의 정보망으로도 소문의 진위를 알아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 소문이 정말 사실이었다면?

둘이 비밀 연애를 하고 있었다면?

‘설마 사형이 서 소저를······?!’

머릿속에서 장성해서 경국지색이 된 서하린과 절세미남인 사형이 서로 사랑을 속삭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호호, 사형, 역시 제 인생의 남자는 오직 사형뿐이에요!’

‘사매, 나도 마찬가지야. 내 눈에는 오직 사매만 보여.’

달을 보면서 하하호호하는 두 선남선녀!

얼굴을 붉히는 서하린과 그런 그녀를 쓰다듬는 유진휘.

이어지는 애정행각과 뒤에서 홀로 눈물을 삼키는 나까지.

‘그래서는 안 돼!’

머릿속 상상에 나는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소리를 내질렀다.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서하린도 언젠가는 공동파에 입문할테고, 내 사매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와 연애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군가가 사형이 될 필요는 없다.

감히 서 소저를 노리다니!

역시 안 되겠다. 여기서는 사형과 서 소저를 떨어뜨리는 것이 우선이다.

“그나저나 사형, 이제 수행할 시간이 아닙니까? 사부님께서 찾으실 것 같습니다.”

나는 성실한 사형의 최대 약점인 수련과 사부님을 모두 꺼내 들었다.

내 말에 사형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의 안색이 살짝 어두워졌다.

“으, 으응······. 그렇지······. 그래도 사제가 아직 거동이 불편하니까······.”

사형이 나와 서하린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말끝을 흐렸다.

내 핑계로 서 소저 옆에 붙어있으려는 모양.

하지만 내게는 안 통한다.

“사형. 우제를 걱정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제 몸은 이제 거동이 괜찮을 정도로 나아졌습니다. 전부 아까 사형께서 제게 정성들여 해주신 추궁과혈 덕분입니다.”

빌어먹을 추궁과혈이 이럴 때 도움이 될 줄이야.

내 말을 들은 사형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래, 사형도 여기서 추궁과혈이 나올 줄 몰랐겠지.

내 핑계는 완벽했다.

하긴, 지금의 사형이 내 정치질을 당해내는 건 무리다.

“추궁과혈······. 그래. 알았어. 사제. 그럼 나, 사제와 사문을 위해서 열심히 수행할 테니까······. 사제도 몸조리 힘내.”

사형이 살짝 상기된 얼굴로 이런 말을 남긴 뒤에 몸을 날려 사라졌다.

그가 대연무장 쪽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서 소저.”

“······네, 이 공자님.”

내 말에 살짝 움찔하는 서하린.

돼지고기를 태워 먹은 것 때문에 혼날까 봐 살짝 무서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진정한 알파 메일이라면 여인의 작은 허물쯤은 덮어주는 스윗함을 겸비해야 하는 법.

나는 서하린을 보면서 말했다.

“서 대인이 정돈한 객잔의 주방에 비해 본 파의 주방이 어지러워서 서 소저가 실수한 모양이구려. 본 파의 주방을 미리 정리해뒀어야 했는데······. 그 점에 대해서는 이 이 모가 사과하겠소.”

내 말을 들은 서하린의 텅 빈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네. 하지만 요리는······.”

“아직 재료가 남아 있으니, 요리는 이 이 모가 직접 하도록 하겠소.”

“공자님은 환자지 않습니까? 요리는 간병인인 제 몫입니다.”“그럼 이 이 모가 서 소저의 요리를 돕는 걸로 하겠소.”

나는 멋진 미소를 연습하면서 서하린을 응시했다.

내 시선을 받은 서하린이 침묵하다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갑시다.”

나는 서하린과 함께 주방으로 들어가며 생각했다.

이제 요리하는 섹시한 남자, 요섹남 이철수로 변신할 때였다.

*

슈우우우!

극성에 이른 행운유수의 신법을 펼치는 유진휘의 예민한 기감에 이철수와 서하린이 나누는 대화가 들어왔다.

뒤이어 주방에 들어가 화기애애하게 요리하는 소리도.

“······으읏······.”

유진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유진휘의 마음속에서 시커먼 질투의 감정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녀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나도······. 요리 잘하는데······.’

서하린.

그녀가 온 뒤부터 유진휘의 번뇌는 깊어져 갔다.

‘사제를 돌보는 건······. 내 일인데······.’

사제는 스스로를 위하지 않는다.

그러니 사제를 위하고 돌볼 수 있는 건 천하에 오직 사형인 그녀뿐이다.

그러니 사제를 돌보겠다. 그렇게 맹세했던 그녀였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그녀가 아닌 서 소저가 사제를 간병하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같이 요리까지······.

‘그것도 내 일인데······.’

공동파의 삼시세끼를 마련하는 것 역시 원래는 사제와 자신이 함께했던 일이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 사제와 함께 부엌에 물을 길어오고, 밥을 하고, 반찬을 만들던 추억이 유진휘의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사제와의 추억의 공간을 누군가에게 침범당하다니.

유진휘의 감정이 요동쳤다.

‘······그래도 사제가 추궁과혈이 좋았다고 해줬어.’

추궁과혈 덕분에 거동이 편해졌다는 사제의 말을 떠올린 유진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다른 여인에게 추궁과혈을 함부로 하지 말라고도 했었지.’

그녀는 아직도 사제의 말을 기억했다.

사제는 타인, 특히 여인에게 함부로 추궁과혈을 하지 말라 했었다.

그 말을 뒤집어보자면, 오직 그만이 자신의 추궁과혈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과도 같았다.

유진휘는 그렇게 생각했다.

‘바보 사제, 처음부터 사제 말고 다른 사람한테 추궁과혈을 해줄 생각 같은 건 없었는데······.’

유진휘의 표정이 살짝 펴졌다.

기분이 살짝 좋아진 그녀가 주먹을 쥐었다.

그래, 지금은 이런 쓸데없는 일에 마음을 쓸 때가 아니다.

흑룡방.

소중한 사제를 감히 상처입힌 그놈들에게 대가를 치르게 하려면 사제 말대로 수행을 해야 했다.

유진휘는 흑룡방과 사제를 생각하면서, 복잡한 마음을 애써 꾸욱 눌러 넣으며 대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그날부터 이철수의 정양이 시작되고 정확히 보름이 지난 아침.

공동파 산문.

흑룡방주가 직접 작성한 답신을 들고 온 전령이 마침내 공동산에 도착했다.

“여기가 공동파인가? 초라하기 짝이 없군.”

다 쓰러져 가는 공동파의 산문을 보고 차갑게 웃는, 흑룡방에서 온 흑의무복의 소녀, 흑사룡(黑邪龍) 위소련과 스쿼트로 하체 트레이닝 중인 이철수의 눈이 마주친 순간.

휘이잉.

차가운 산바람이 두 사람을 휘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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