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가장 중요한 2cm
나는 재빨리 불기둥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애국가로는 안 된다.
그것보다 더한 충격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지, 더 충격적인 상상을 하는 수밖에······!’
나는 머릿속에서 금지된 상상을 떠올렸다.
홀로 누워 있는 나.
드르륵, 문이 열린다.
그리고 들어오는 사형. 그가 내 뒤에서 나를 껴안으면서 속삭인다.
‘사제, 나는 사내라도 사제가 좋아. 자고로 북경의 사대부들이 이르기를 진정한 사랑은 여인과의 사랑이 아닌 사내와 사내가 하는 사랑이라 들었어. 내 마음을 받아주겠어?’
그렇게 웃으면서 나를 덮치는 사형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남색(男色) 고백이라니!
너무나 끔찍한 상상을 떠올린 탓일까?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역시 걸어 다니는 심마인 사형은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
“괜찮으십니까? 안색이 좋지 않아 보입니다. 공자님.”
스윽.
내게 다가온 서하린이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하며 손을 이마에 얹었다.
그녀의 차가운 손길이 이마에 닿자 조금은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남자밖에 없던 군대 같던 공동파에 여자라니.
비록 아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녀가 있으니 분위기가 화사해지는 기분이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염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서 소저.”
“······알겠습니다. 그럼 몸을 닦을테니······.”
내 말에 서하린이 손을 떼어내며 내게 말했다.
아니 왜 자꾸 몸을 닦으려는 거야.
내 신체는 한창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제 진입하려는 14세의 몸.
그녀의 접촉에 내 불기둥이 원치 않게 생리 현상으로 곧추설 위험이 있었다.
그럴 수는 없다.
미소녀기는 하지만 애 앞에서 그게 무슨 망신이냐고.
“괜찮습니다. 서 소저. 몸 닦는 것 정도는 저 혼자서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공맹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녀가 유별한 법. 그러니 여인인 서 소저에게 사내인 제 몸을 닦게 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나는 지극히 유교 탈레반적인 논리를 들이밀면서 그녀의 몸 닦기를 거부했다.
솔직히 미녀와 함께하는 목욕과 그 이후 이어지는 수중 운우지락 역시 내 버킷 리스트이긴 했다.
하지만 장성한 미래의 백도제일화 서하린이라면 모를까, 지금의 서하린은 예쁘기는 해도 그냥 어린애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공자께서 몸을 닦을 동안 저는 잠깐 나가 있겠습니다.”
드르륵, 탁.
서하린이 문을 닫고 나갔다.
그녀가 이고 왔던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은 그대로였다.
“휴우.”
그녀가 나가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에 이불을 벗겼다.
마침내 혼자 있는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우선 바지춤에 숨겼던 속명단을 꺼내 궤짝에 넣은 다음 기름병을 꺼냈다.
이제 어제 못했던 젤크 운동을 할 시간이었다.
기름을 듬뿍 바른 내 손이 아래로 향했다.
*
문을 닫고 나온 서하린의 투명하면서도 무감각한 눈동자가 공동파의 전경을 훑었다.
‘어째서······. 거절한 걸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잔뜩 들어차 있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서하린은 본인의 미모에 대해 아주 잘 자각하고 있었다.
그녀를 향한 시선 끝에 담긴 사내들의 음심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철수는 그녀가 직접 몸을 닦아준다는데도 자연스럽게 거절했다.
이철수의 거절이 겸양이 아니라는 사실은 서하린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낯빛에 음심 따위는 없었으니까.
‘······여러모로 특이한 사람.’
서하린의 머릿속에 그날의 기억이 재생됐다.
흑룡방과의 대결을 밀어붙이며 그녀를 바라보던 이철수의 눈빛은 사내가 여인을 보는 눈빛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아버지가 딸을 보는 그런 눈빛이었다.
그녀의 실금을 백건아를 부어 감싸줄 때도 그랬다.
그때의 이철수는 이불에 지도를 그린 자식을 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녀와 이철수가 동갑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특이한 일이었다.
또래 사내가 또래 여인을 보고 딸이라고 생각한다니?
‘······읏.’
서하린의 무표정한 얼굴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
또 그랬다.
그때의 작은 호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객잔에서의 일만 생각하면 그녀의 감정이 드물게 요동쳤다.
‘······흑도와 다툰 뒤에 멋진 척하는 건 별로였지만······.’
역시 기묘한 사람이다.
그를 생각하기만 해도 흔들리는 이 감정의 근원을 알고 싶다.
그렇다고 이철수의 간호를 소홀히 할 생각은 없었다.
그녀가 모시는 아버지의 말대로 지금은 객잔보다는 공동산이 안전하니까.
공동파에 머무르려면 밥값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서하린은 최선을 다해 이철수의 병 수발을 들 생각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혼자 몸을 닦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어.’
그리고 그녀가 본 이철수의 거동은 불편해 보였다.
하지만 이철수에게 남녀가 유별하다며 이미 거절당한 상황.
‘내가 여인이라 안 된다면, 불가피하지만 유 공자께 부탁드리는 수밖에.’
시중을 들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다.
서하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유진휘가 있는 주방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동파 주방.
유진휘는 사제를 위해 구해온 돼지고기를 식칼로 토막 내서 다듬고 있었다.
‘사제가 돼지고기를 좋아할 줄은 몰랐어.’
그동안 사제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는 대충 파악해둔 유진휘였다.
사제는 뱀, 장어, 민들레 같은 음식들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제가 내상으로 몸져누웠을 때, 처음에는 산에 가서 뱀을 잡아 올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사제가 요구한 건 의외로 돼지고기였다.
‘사제, 역시 고기가 먹고 싶었던 걸까? 역시 내가 더 노력해서 사제한테 고기를 매끼 먹일 수 있도록 해야겠어.’
유진휘가 그렇게 다짐하면서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기 위해 가마솥에 물을 올린 그때.
“유 공자, 계십니까?”
문 밖에서 서하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휘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녀는 여전히 서하린이 본산에서 머무르며 이철수를 간호한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받아들여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유진휘는 가슴 한쪽에서 치솟는 기묘한 불쾌감을 억누르면서 고개를 돌려 말했다.
“무슨 일입니까? 서 소저.”
유진휘의 시야에 죽은 눈을 한 서하린이 들어왔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서하린이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송구스럽지만, 유 공자님께서 이 공자님의 몸을 닦아주실 수 있으신지요? 원래는 제가 하려 했지만, 이 공자님이 남녀가 유별하다며 거절하셨기에······. 하지만 이 공자님께선 거동이 여전히 불편해 보여서 같은 사내인 유 공자님께 염치불구하고 부탁을 드리려 합니다.”
정중한 말투지만 감정이 전혀 담기지 않은 서하린의 말에 유진휘의 눈동자가 커졌다.
남녀유별이 엄밀히 구분되는 중원 무림에서, 아무리 병자의 수발을 위해서라도 남자의 나신을 아녀자가 닦아주는 건 상당히 남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서하린은 또래 소년이라면 누구나 선망할 만한 미모를 지닌, 장차 경국지색(傾國之色)이 될 미소녀.
그렇기에 그녀의 제안을 거절할 사내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제는 거절했어······!’
그러나 이철수는 거절했다.
그 사실에 유진휘의 굳은 표정이 살짝 풀어졌다.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역시 내 사제다. 사제는 미색과 욕망에 휘둘리는 남자가 아니다. 아무 여인이나 옆에 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내가 되기를 잘했다. 그럼, 남녀가 유별하니 이런 일은 같은 사내끼리 하는 것이 도리에도 맞다.
여인인 서하린이 아닌 오직 나만이, 사형으로서 같은 사내로서 할 수 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유진휘의 표정을 보는 서하린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역시 이상해.’
누구에게나 친절한 호인인 유진휘를 이 정도로 동요하게 만드는 상대라니.
이철수는 알면 알수록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알겠습니다. 소저의 말대로 사내의 일은 사내끼리 처리해야겠지요. 아직 시집도 안 간 아녀자가 외간 남자의 알몸을 함부로 보는 건 아니 될 일이니까요. 사제의 몸을 닦는 건 사내이자 사형인 제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서 소저한테는 사제가 먹을 특식 준비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서하린의 대답을 들은 유진휘가 들뜬 마음으로 경공을 펼쳐 사라졌다.
유진휘 대신 주방에 남은 서하린이 손질된 돼지고기와 끓는 물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걸까?’
유감스럽게도 서하린에게는 요리에 관한 재능이 전무했다.
*
젤크 운동과 행잉 운동을 내력과 함께 지속적으로 병행한다면 이론상 성인이 되었을 때 2cm 정도 양물이 성장할 것이다.
2cm, 누군가는 고작 2cm라고 하겠지만 내게는 그 2cm라도 중요했다.
2cm만 더 키운다면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는 이상적인 대물이 완성되기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서 2cm란 초절정과 화경 사이를 가로막는 벽과도 같다. 2cm의 깨달음이 없다면 평생 절대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초절정에 머무르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수행을 계속하고 있을 때.
“후우. 흐읍.”
열어놓은 기감에 빠르게 내 방을 향해 다가오는 인기척이 감지되었다.
인기척이라니!
나 혼자 있은 지 얼마나 됐다고! 대체 왜 내 방에 자꾸 다가오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젤크 수행을 들켜서 오해를 살 필요는 없으니까.
나는 재빨리 아랫도리를 가라앉혔다.
문 앞에 기척이 도달한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이불을 덮고 누웠다.
드르륵, 탁.
내가 이불을 덮고 눕자마자 미닫이문이 열렸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렇게 내가 눈을 감고 누워있던 그때.
“사제! 사제 몸 닦아주러 왔어!”
훌러덩.
이불이 벗겨짐과 동시에 사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깐, 사형이라고?!
사형이 내 몸을 닦는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끔찍한 일에 내 얼굴이 창백해진 그때.
“사제, 서 소저는 여인이라 돌려보냈다며? 잘했어. 나는 사제랑 같은 사내니까, 안심하고 몸을 맡겨도 괜찮아.”
스윽.
사형이 내 양물 진정 망상에서처럼 내 몸을 반쯤 일으킨 후 뒤에서 끌어안으며 들뜬 목소리로 귓가에 속삭였다.
그의 말을 들은 나는 그야말로 하늘이 노래지는 걸 경험했다.
안 돼······!
*
화정현 암흑가.
사영회 장원 별채.
후원에 따로 세워진 제법 고급스러운 별채에는 사영회를 감시하기 위해 흑룡방에서 온 일류 고수인 화면호검 여예령, 아니 적사월이 머무르고 있었다.
‘후우.’
적사월이 후원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장원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진짜 대형 장원들에 비하면 규모가 현저히 작은 수준이라 그녀의 시야에 비치는 후원의 풍경도 조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지금 적사월의 눈동자에는 그런 후원의 풍경조차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빌어먹을 놈, 진짜 심하게 다친 건 아니겠지?’
화면호검의 시험을 처음으로 통과한 사내.
그와 함께 그녀에게 노골적인 음담패설을 퍼부은 사내.
감히 모두가 경외하는 사도련주의 마음을 일순간이라고는 하지만 들었다 놨다 했던 소년.
하지만 이류에 불과한 실력답게, 그녀의 공력이 실린 목소리 때문에 내상을 입은 공동파의 제자.
이철수의 얼굴을 떠올리자 적사월의 마음이 혼란스러워졌다.
두근.
그녀의 심장이 뛰었다.
속명단을 주고 오기는 했지만, 괜히 걱정됐다.
‘걱정이라고?’
이 적사월이? 하오문의 태상문주이자 천하를 삼분하는 현경의 절대고수이며 사파제일인인 내가?
중원 모든 사내가 선망하고 모든 여인이 질투하는 천하제일미인 내가?
고작 공동파 소년 제자 따위를, 그것도 나이 차이가 40년은 나는 소년을 걱정한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야!”
적사월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스스로 합리화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 감정은 걱정이 아니다. 시험을 통과한 상대를 무의식적으로 상처 입힌 행위에 대한 책임감이다.
천하의 모든 남심을 경국지색의 미모로 홀리는 천하제일요녀 적사월.
하지만 정작 진짜 사랑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적사월이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을 부정하고 합리화하면서 입술을 깨물던 그때.
“부르셨습니까? 여 대인.”
사영회주가 별채 안으로 들어와 공손하게 인사했다.
그를 본 적사월이 흠흠하고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잠깐 흑룡방 본타에 좀 다녀오도록 하겠다.”
지금의 적사월은 면사를 벗은 상태.
여예령의 인피면구에 새겨진, 얼굴 절반을 뒤덮은 끔찍한 화상 자국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태다.
“본타에는 어인 일로······.”
그렇게 말하는 사영회주의 눈빛에서 적사월은 인피면구의 화상 흉터를 향한 혐오감을 읽어냈다.
물론 철저한 상하관계라는 특성 때문에 대놓고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이게 정상이다.
사내와 여인을 떠나서, 인간이라면 흉한 외모에 혐오감을 보낼 수밖에 없다.
특히 사내라면 더더욱, 여인의 외모를 중시하기에 더 그랬다.
그래.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 빌어먹을 소년을 만나기 전까지는.
외모 상관없이 언제건 가능하다는 이철수의 말을 떠올리자 다시 적사월의 심장이 요동쳤다.
그녀는 애써 이철수의 모습을 뇌리에서 지워버리면서 말했다.
“······본녀가 너 따위한테 일일이 무슨 일을 하는지 보고하고 다녀야 하는 위치인가? 본녀가 부재중인 동안 사고나 치지 말도록.”
“알겠습니다. 여 대인.”
사영회주의 말을 뒤로 한 채, 적사월이 비무첩을 품은 채로 별채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녀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사천.
흑룡방 본타가 있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