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소리 없는 신경전
유진휘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그녀의 시선이 서하린을 향했다.
일순간 유진휘의 마음에서 검고 찐득찐득한 무언가가 치솟았다.
그것은 질투였다. 하지만 유진휘는 본인 마음을 잠식하는 감정의 정체를 아직 모르고 있었다.
‘······대체 왜······. 마음이 안 좋은 거지······.’
유진휘가 입술을 깨물었다.
서 대인의 딸, 서하린.
그녀에 대해서는 유진휘도 잘 알고 있었다. 객잔에서 벌어진 무림인들의 분쟁에서 어머니를 잃은 안타까운 사연도, 그 이후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다는 사실도.
그녀가 무림인을 미워하고, 어머니와 객잔을 지켜주지 못한 공동파를 원망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유진휘는 서하린에게 평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서하린은 사제를 만나기 전, 유진휘의 작은 세계에서 유일한 또래 아이. 그런 그녀에게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유진휘는 그녀의 마음의 문이 열리길 바라기도 했다.
‘서 소저한테 이러면 안 되는데······. 어째서······.’
벙어리라도 된 것처럼 말을 하지 않던 서하린이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꺼낸 제대로 된 말이었다. 기쁜 마음이 들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진휘는 지금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서하린이 그녀의 소중한 사제, 이철수를 간호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사제는······. 사제는······.’
유진휘의 머릿속에 사제의 병 수발을 드는 서하린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리고 서하린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하는 사제의 모습도.
그녀가 보기에도 서하린은 여인으로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아직 앳된 모습이었지만, 장차 자라면 경국지색(傾國之色)의 미모를 갖추기에 충분한 잠재력이 보였다.
그녀의 미모에 반하지 않는 남자가 없으리라.
지금만 해도 그랬다. 서하린이 본격적으로 객잔 일을 돕자 그녀를 보러 온 남자 손님 때문에 매출이 일시적으로 상승하기까지 했으니까.
‘그건······.’
공동파는 무당파처럼 철저한 도가 문파가 아니다. 삼교합일을 기치로 삼아 공동산의 유가, 불가 유파를 통합하면서부터 속가에 문호를 개방했고, 제자들의 혼인도 허용했다.
따라서 언젠가는 사제 역시 짝을 만나서 혼인을 하게 될 것이다.
‘사제가······. 정인을 만나고······. 혼인을······.’
언젠가는 다가올,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던 사실이 눈앞에 닥치자 유진휘의 눈앞이 아득해졌다.
사제가 누군가와 정을 통하는 모습을 보기 싫다.
사제가 혼인하는 모습도 보기 싫다.
그런 생각을 한 유진휘가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면 안 됐다. 소중한 사제가 평생 독수공방하는 건······.
‘아니야. 그래, 사형으로서······. 사제의 색시가 될 여인을 철저하게 검증할 필요가 있어! 아무나 우리 사제의 짝이 되게 할 수 없어!’
유진휘는 생각을 바꾸며 자기 합리화했다.
어중이떠중이와 사제를 혼인시킬 수 없다.
아무나 사제의 정인이 되게 할 수 없다.
그러니 사제의 정인 후보를 사형으로서 철저히 검증하리라.
그것이 설령······.
‘서 소저라도 예외가 될 수 없어.’
지금까지 알고 지내던 서하린이라도.
그것이 사형으로서의 도리니까.
유진휘는 그렇게 애써 질투심을 사형제의 우애로 합리화하면서 서하린에게 물었다.
“······사제는 제가 돌봐도 됩니다. 그런데 굳이 왜 소저가 본산에 오르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려고 하는 겁니까?”
놀랍도록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와 표정이었지만, 유진휘는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 유진휘를 본 서하린이 입술을 우물거렸다.
‘······왜일까?’
그녀답지 않은 다분히 충동적인 제안이었다.
서하린의 머릿속에는 10년 전의 그 일이 아직도 생생했다.
객잔의 테이블을 박살 내며 싸우던 무림인들.
그 여파에 눈먼 칼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던 어머니의 모습. 객잔에 얼룩진 핏자국.
그 모든 장면이 생생했다.
그래서 숨었다. 마음의 문을 닫았다.
어머니를 죽게 한 강호 무림이 미웠고,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 무력한 공동파가 미웠다.
그런 일을 겪고도 웃으며 공동파에 기부금을 내는 아버지가 한편으로는 조금 원망스러웠다.
‘무림인은 싫어. 공동파도······. 싫어.’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그는 달랐다.
이철수. 유진휘의 사제이자 공동파에 새로 입문한 제자.
처음 그가 인사를 건넬 때만 해도 서하린은 그에 대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른 무림인과 다르지 않다 여겼다.
그녀에게 무림인이란 칼 든 무법자에 불과했다. 협의를 내세우는 정파는 위선자들이요, 사파는 대놓고 칼 든 도적떼였다.
그렇기에 이철수 역시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힘이라고는 없는 공동파 출신이니 더더욱.
이철수가 객잔에서 행패를 부리는 사영회 흑도 셋을 처리했을 때도 그랬다.
당장 속시원히 흑도 셋을 치울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은 조금 의외였지만······.’
예외라면 그녀의 실수를 가려주기 위해 술을 바닥에 부었던 일 정도.
하지만 그가 직접 사영회와의 문제 해결을 주도할 때부터 서하린의 마음은 조금씩 달라졌다.
그날 이후 텅 비어버린 마음과 잃어버린 감정이 조금씩 자극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이철수가 흑의복면인과의 싸움에서 부상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하린은 막연한 책임감을 느꼈다.
결과적으로 이철수는 그녀와 객잔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상처를 받은 꼴이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내 책임이 있어.’
그러니 책임을 져야 한다.
그리고 자꾸 움직이는 감정의 정체도 알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이철수의 간호를 자처한 것이다.
그런데.
‘······유 공자가 이렇게 동요하는 건 처음인데······.’
정작 그 말을 들은 유진휘의 반응은 서하린의 예상과 달랐다.
무림인을 별로 안 좋아하는 서하린이었지만, 그런 그녀도 인정할 정도로 유진휘는 호인(好人)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휘는 평소와는 달랐다.
타인의 감정에 민감한 서하린이기에 알 수 있었다.
유진휘의 얼굴에 드러난 건 부정의 감정.
‘대체 왜······. 이 공자가 어떤 사람이길래······.’
그리고 유진휘의 부정적 감정에 이철수가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을 서하린은 어렵지 않게 추측해낼 수 있었다.
공동파에 갈 이유가 하나 늘었다.
호인인 유진휘를 이렇게 동요하게 만들고, 본인의 감정을 움직인 이철수.
그에 대한 흥미가 깊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서하린이 말을 덧붙였다.
“······안 됩니까? 저 때문에 상처 입은 분입니다. 제가 수발을 드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입니다.”
서하린의 말에 유진휘는 주먹을 살짝 쥐었다.
이성적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명분이다.
게다가 서하린은 외인도 아니라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서하린을 본산에 들이고 싶지 않았다.
“서 대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딸아이의 말이라면 저도 동의합니다. 여기보다는 아무래도 본산이 좀 더 안전하기도 하고요.”
서 대인의 말에 유진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까지 이렇게 나오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어쩔 수 없다.
그녀는 서하린을 바라보면서 심호흡하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서 소저. 그럼 돼지고기를 구한 뒤에 함께 본산으로 가시지요.”
“감사합니다. 유 공자.”
소리 없는 신경전 끝에 승리한 건 서하린이었다.
유진휘는 알 수 없는 패배감에 몸을 살짝 떨면서 숨을 골랐다.
*
환자라 두꺼운 솜이불을 덮어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곧추선 내 양물이 외부에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나는 대물이었기에 두꺼운 솜이불 위로도 존재감을 드러낼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나는 절묘한 자세 변경과 내력을 담은 양물 제어를 통해 두꺼운 이불 아래로 발기를 숨겼다.
움찔.
나는 누운 채로 사부의 보살핌을 받으며 계속해서 케겔 운동을 했다.
아침에 기지개를 켠 내 대물은 해가 중천에 걸린 지금까지 꼿꼿하게 서 있었다.
전부 그동안 해온 정력 수행 덕분이었다.
‘흐흐흐.’
나는 씰룩거리는 입꼬리를 간신히 통제했다.
발기 지속력과 강직도가 예전보다 향상된 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전부 현대 의학의 상승절학인 행잉 운동을 수행한 덕분이었다.
이제 곧 돼지고기도 올 테니 아주 만족스러운 환자 생활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손을 아래로 내려 직접 내 양물을 만져보며 스펙을 점검하고 싶었지만······.
‘사부가 있어서 그건 안 되겠군.’
너무 격렬한 움직임은 눈에 띈다.
그래서 나는 손으로 양물을 건드릴 수 없었다.
내 우람한 아프리카 코끼리를 직접 만질 수 없다니.
개탄스럽다.
‘수음(手淫)도 해야 하는데.’
수음.
자기 위로 역시 색도에 빠질 수 없는 일이었다.
옛말에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백승(百戰百勝)이라 했으니 섹스도 이와 같다.
생사결에서 상대를 이기려면 우선 본인의 무공 역량을 철저히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운우지락으로 상대를 보내려면 먼저 본인의 육신과 쾌감에 대해 철저히 알아야 했다.
본인에 대해 잘 알고, 본인의 쾌락을 철저히 통제해야 진정한 운우지락으로 절세미녀를 극락으로 보낼 수 있는 것이다.
본인의 쾌락을 모른다면, 운우지락을 리드할 수 없다.
그리고 본인의 쾌락을 가장 잘 아는 방법이 바로 수음이었다.
너무 잦은 수음은 지루나 조루로 발전할 위험이 있지만, 적당한 수음으로 인한 욕구 해소는 삶의 활력을 불어넣어 건강에 좋고 오히려 정력에 도움이 된다.
거기다 청소년기때 지나치게 금욕하면 성년이 되어서 힘없는 정자를 생산한다고 하니, 적절한 수음이야말로 색도 수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련법인 것이다.
‘전생에서는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지······.’
문득 전생의 내가 떠올랐다.
성욕은 존재하지만, 고자였기에 스스로 위로조차 할 수 없었던 비참한 현실.
차라리 수음의 쾌락을 몰랐다면 좋았을 텐데. 현대의 자극적인 성인물에 길들여진 내게 수음조차 할 수 없는 내시의 삶은 생지옥 그 자체였다.
이부자리에 누워 잠들기 직전 무심코 오른손이 아랫도리로 향했을 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던 허망함이란!
밤마다 들끓던 성욕을 해소할 길 없어 울며 잠들던 비참함이란!
죽고싶은 날이 하루이틀이 아니었다. 양물을 복원해서 운우지락도 수음도 마음껏 하겠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이미 자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나는 묵직한 아랫도리의 매머드를 느끼면서 속으로 웃었다.
그때.
“휘아가 도착했나보군. 나가보도록 하겠다. 쉬고 있거라.”
사부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감으로 산문에 도착한 사형의 기척을 감지한 모양.
사형이 왔다는 건 곧 돼지고기가 왔다는 뜻.
정력제를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또 좋아졌다.
사부가 문을 열고 청운각을 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드르륵, 탁.
사부가 닫고 나간 미닫이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보나마나 사형이겠지.
제발 내 첫 아앙~ 먹여주기만큼은 사형이 안 뺏어갔으면 좋겠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 내 시야에 보인 사람은.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이 공자. 오늘부터 이 공자의 병 수발을 들기 위해 본산에 머무르게 된 서하린이라 합니다.”
문 너머 비치는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백금발 머리카락.
하늘을 담은 듯한 하늘색 눈동자.
눈처럼 새하얀 피부가 인상적인 미소녀, 미래의 정파제일미녀 서하린이 나를 향해 다소곳이 인사하고 있었다.
서하린이라고?
내가 놀라고 있던 그때.
“우선 공자님의 몸부터 닦도록 하겠습니다.”
서하린이 머리에 인 대야를 내려놓으면서 물수건을 들어올렸다.
잠깐.
내 몸을 닦는다고?
지금 케겔 운동 때문에 내 불기둥이 서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