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정말이지 완벽한 계획
“이 나쁜 새끼야!”
적사월의 뾰족한 목소리가 공동산을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에 공력이 담겨 있는지, 산문을 쩌렁쩌렁 울렸다.
이러면 곤란한데.
나는 즉시 소양심법을 운용했다.
우우우웅!
단전에서 일어난 소양심법의 내력이 혈도를 타고 전신을 달리던 순간, 나는 공동파에 전해지는 비전 역혈대법인 역라순혈공(易螺巡穴功)을 운용했다.
쿠콰콰콰콰!
역혈의 경로로 소양심법의 경력이 흐르며 증폭된다. 나는 증폭된 내공을 전신에 둘러 적사월의 공력이 담긴 목소리 공격에 대비했다.
“크윽!”
행잉 운동과 젤크 운동을 행하면서 음경과 고환에 내공을 주입하는 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더욱 정교해진 내력 컨트롤로도 현경의 고수가 내지른 목소리에 담긴 공력을 전부 막아내지 못했다.
제 위력도 아닌, 그저 감정이 격해저 본신의 힘이 살짝 1푼도 안 되는 수준으로 무의식적으로 나왔을 뿐인데도 이 정도인가.
“쿨럭!”
나는 피를 한 움쿰 토해냈다.
체내가 진탕되면서 가벼운 내상을 입은 것이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 사흘 정도 정양하며 운기요상을 하면 낫겠지만······. 그 과정에서 행잉 운동을 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현대 의학의 상승절학인 행잉에 입문한지 이제 1년밖에 안 된 상황. 무쇠 수레바퀴를 음경에 끼워 돌리는 것이 목표인 내 입장에서 사흘의 정력 손실은 치명적이었다.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화면호검 선배는 손속이 독랄하지만, 인정한 상대한테는 자비를 베푼다고 강호 무림의 풍문에서 들었거늘. 어찌 시험을 통과한 강호의 후배를 이리 핍박하는 것이오? 후배가 들은 화면호검의 명성은 전부 허명이었단 말이오?”
어차피 입은 내상.
나는 최대한 적사월의 모성애를 자극하고 그녀에게 빚을 지우는 방향으로 이 내상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화면호검과 운우지락을 즐기고 싶다.
방금 나의 고백은 100% 진심이었다.
그리고 적사월이 나를 향해 호감을 품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나는 알아차렸다.
그녀가 부캐 화면호검으로 빨간 마스크 놀이를 하는 건, 거꾸로 말하자면 외모가 아닌 자기 자신을 봐주는 사내를 찾기 위해서였다.
천하제일미로 50년을 넘게 살아온 적사월이 품고 있는 결핍이 바로 외모와 관계없이 그녀를 사랑해주는 사내의 존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녀를 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화면호검, 아니 적사월은 남자를 불신하는 성격 때문에 날카롭고 제멋대로인 성격. 거기에 현경의 고수이기까지 하니 그녀를 잘못 품었다가는 적사월이 집착녀로 타락해 그녀에게 코가 꿰여 감금당하는 수가 있었다.
머릿속에 벌써 적사월 배드엔딩이 떠올랐다.
사디스트 집착녀로 변한 그녀가 하오문의 비밀 안가에 나를 감금해놓고 365일 착정하는 엔딩이.
게다가 그녀는 채양보음으로 사내의 양기를 흡수하여 내력을 보충하는 흡정공의 대가.
지금까지 그녀는 순결을 지키기 위해, 중세 무림판 최면 어플인 섭혼술로 사내의 정신을 흐린 뒤에 손목의 혈도를 제압해 양기를 뽑아갔었다.
하지만 흡정공의 본 용도에 따라 운우지락 과정에서 채양보음을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적사월이 안 했을 뿐이었다.
그러니 잘못했다가는 서큐버스 같은 적사월과의 교합에서 양기를 쭈욱 빨려 목내이(木乃伊)처럼 비쩍 마른 몰골로 전락할 위험도 있었다.
‘말해! 누굴 생각했지?’
‘후후. 수사슴처럼 울부짖는 모습이 애처롭구나. 더 울어보아라.’
찰싹!
날 천잠사로 기둥에 묶은 적사월이 교룡의 꼬리로 만든 채찍을 들고 내 알몸을 내려치는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에 흡정공을 통해 내 양기를 빨아서 기력을 없애서 나를 도망가지 못하게 만드는 모습까지!
끔찍했다.
내가 바라는 색도는 상호가 만족하는 운우지락. 하지만 나는 마조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적인 성욕의 소유자였다. 그래서 적사월의 감금 여왕님 착정 운우지락에서는 쾌락을 느낄 수 없었다.
게다가 흡정공은 위험하다. 채양보음에 당하면 양기가 줄어든다. 그리고 양기란 곧 정력!
그렇다, 그녀에게 잘못 걸리면 지금까지 케겔 운동, 젤크 운동, 행잉 운동, 토납법 및 각종 정력제 섭취와 내공심법으로 힘겹게 쌓아온 내 귀중한 정력이 일장춘몽(一場春夢)처럼 한순간에 날아갈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상호 만족을 불충족하는 이것은 올바른 색도가 아니다.
‘나는 색마가 아니야.’
내가 이성이 아닌 양물로 사고하는 욕망의 노예였다면, 그녀와의 운우지락을 청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나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냉철한, 욕망의 노예가 아닌 욕망의 주인 될 자인 색도의 수행자. 예쁘다고 아무 여인과 운우지락을 하지 않는다.
색도에 어긋나는 섹스도 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 삼처사첩을 이루어야 할 몸. 고래가 연못에서 놀 수는 없는 법이니, 이대로 적사월에게 코가 꿰일 수는 없다.’
적사월의 흡정공을 이겨내려면 그녀와 같은 현경의 경지에 진입해야 했다.
그런데 내 경지는 고작 이류였다. 따라서 내가 그녀를 제대로 제어하는 건 불가능인 상황.
거기에 나는 엄연한 정파 무림인이고, 저쪽은 사도련의 수장이 아닌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우리의 관계는 공인받기 어려운 관계인 것이다.
내가 강호 무림의 영웅으로 등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니 지금은 그녀를 물러나게 해야 했다.
현경의 경지에 오르고, 강호 무림의 영웅으로 공인받기 전까지는 소위 말하는 ‘밀당’을 해야 했다.
그러니 지금은 일단 적사월을 물러나게 해야 했다.
‘게다가 사영회와 흑룡방이 순순히 우리의 비무 요청을 받아들일지도 의문이었고.’
내가 소원을 비무첩 전달에 쓴 이유는 비무 성립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흑룡방에 지나치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해서 테이블에 나올 확률을 높이기는 했지만, 상대는 저능아도 아니고 정파도 아니다.
사파 문파인 만큼 정정당당한 비무보다는 치사하게 나올 확률도 무시할 수 없는 확률로 존재했다.
흑룡방 입장에서는 만에 하나 공동파에 패배한다면 사파 전체의 체면을 실추시킨 원흉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흑룡방이 흑도의 방식으로 나올 경우에도 대응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많이 귀찮아지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협객 이철수의 일대기를 시작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발생했다.
‘뭇 강호 여인들의 여심을 사로잡을 스토리를 쌓기 위해서는 반드시 흑룡방과의 비무를 성립시켜야 해.’
흑도의 방식에 대응하는 건 멋있지 않다. 귀찮고 지저분한 일이다. 자연히 여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요소도 없다.
하지만 비무는 반대다. 화려하고 직관적이며 여심을 사로잡을 극적인 연출과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화면호검에게 비무를 반드시 성립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한 것이다.
얼굴이 부족한 나로서는 여심 공략을 스토리 같은 외적 요소에 기댈 수밖에 없으니까.
화면호검, 아니 적사월의 자존심은 황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드높다. 그런 그녀가 본인이 한 말을 번복할 가능성은 아예 없다. 시험을 통과한 자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또한 철저히 이행할 것이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비무 성립을 요구하는 것이 맞다.
“쿨럭.”
나는 자리에 주저앉으면서 피를 더 많이 토해내면서 아픈 모습을 그녀에게 드러냈다.
화면호검의 죄책감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
“······괘, 괜찮으냐?”
“······소원······. 들어줄 거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화면호검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가 소원을 안 들어주면 안 된다.
나는 필사적이었다. 그래서 진심을 담아 그녀를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상대를 속이는 연기는 거짓이 없어도 된다. 진심을 증폭해서 속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참과 거짓을 판별하는 적사월의 안법도 진심을 담은 연기는 간파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황궁이라는 복마전에서 50년 동안 암투에서 모두를 찍어누르고 살아남아 권력의 정점에 오른 간신배.
이 정도 연기를 펼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내 애처로운 눈빛을 본 화면호검이 고개를 홱 돌렸다.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주마. 아해야. 흥. 네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오해하지 말려무나. 방금의 일은······. 내 시, 시, 실수······. 여, 였느리라······.”
화면호검이 모기처럼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실수를 마지못해 인정했다.
뒤돌아선 그녀의 목덜미와 귓불이 빨개진 모습이 보였다.
자존심이 강한 그녀기에 실수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행이구려······.”
내가 말끝을 흐리던 그때.
“사제! 무슨 일이야? 사제!”
“철수야!”
공동파 본산 쪽에서 사부와 사형의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기척이 감지되었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
그들의 기척을 감지한 적사월이 몸을 날려 달밤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툭.
그녀가 사라진 자리에 주머니 하나가 떨어졌다.
나는 사형과 사부가 오기 전에 재빨리 적사월이 떨어뜨린 주머니를 회수했다.
주머니를 열자 청명한 약향이 코 끝을 은은하게 자극했다.
‘이 냄새는······. 속명단이로군.’
내상 치료제인 속명단이었다.
그것도 상품(上品)의 물건.
내가 내상을 입은 모습을 본 적사월이 놓고 간 모양.
뜻하지 않은 횡재였다. 나는 사형과 사부가 오기 전 주머니를 바지 안에 넣고는 검을 휘둘러 전투 흔적을 조작하고 몸을 흙밭에 뒹굴뒹굴 누워서 엉망진창으로 만든 뒤 바닥에 누워 마지막으로 아직 서 있던 양물을 애국가를 불러 가라앉혔다.
동창 요원 시절 익힌 흔적 조작법으로 만든 전투 흔적이다.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사부와 사형의 눈썰미로 간파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제!”
직후 가장 먼저 도착한 건 사형이었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그가 내 모습을 보면서 와락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이번에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미안해 사제······.”
코 끝에 사형 특유의 들꽃 향기가 스쳤다.
전투 흔적을 조작할 때부터 사형의 포옹은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하지만 몇 번을 당해도 사내와의 포옹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빌어먹을. 나는 케겔 운동으로 정신을 붙잡으면서 말했다.
“사형, 우제는 괜찮습니다. 그러니 이만 놓아주십시오.”
“사제······. 미안해······. 진짜 미안해······.”
내 간청에도 나를 품에서 놓아주지 않는 사형.
아주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슬슬 인내심에 한계가 오려던 그때.
“철수야.”
사부가 우리 앞에 도착했다.
“무슨 일이더냐? 산문에서 느껴지던 기도는 무엇이고?”
사부가 차분하게 내게 질문을 던지고 난 다음에야, 나는 사형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흑, 히끅······.”
아직 울고 있는 사형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미리 준비해둔 시나리오를 사부에게 읊었다.
“제자는 오늘따라 달이 밝아 잠이 오지 않은 탓에 바람이라도 쐬고자 산문에서 달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웬 흑의 복면을 차려입은 신비인이 본 파의 산문을 찾아왔습니다.”
“흑의복면인······! 사영회 놈들이 기어코······!”
내 말에 사부가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말투로 중얼거렸다.
알아서 착각해주니 나야 좋다.
역시 중세 무림의 영원한 밤친구, 모두의 악당 흑의복면인 정말 고마워요!
“흑의복면인은 산문에 앉은 저를 보자마자 문답무용으로 출수하였습니다. 흑의복면인의 기습에 저는 다급히 무공을 펼쳐 대항하였습니다. 그렇게 놈과 대적하던 도중 사부님과 사형의 기척을 느낀 흑의복면인이 방금 물러난 것입니다. 본산의 수호에는 성공했지만······. 그만 내상을······. 쿨럭!”
나는 말끝을 흐리면서 일부러 핏덩이를 기침과 함께 토해냈다.
동창 요원 재직 시절 병자로 위장하기 위해 배웠던 꾀병 기술을 사용하자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핼쑥한 얼굴이 완성되었다.
“이런······. 무도한 자들을 보았나! 내 결코 사영회와 그 졸개들을 용서치 않으리라!”
힘없는 내 얼굴과 몸을 보면서 비분강개하여 소리치는 전영.
“사영회······. 흑룡방······. 사제를······. 사제를 이렇게 만들다니······. 이번에는 내가 지켜내지 못했지만 비무에서는 반드시······.”
그리고 굳은 얼굴과 초점이 사라진 눈동자로 섬뜩하게 중얼거리는 사형까지.
다들 흑룡방에 대한 적의와 사기가 완전히 충전된 상황.
그 모습을 본 나는 눈을 감았다.
좋았어.
이 정도라면 거대 흑도 방파인 흑룡방을 상대로 사형도 사부도 위축되지 않을 것이다.
사형이 위축되지 않아야 본 게임인 비무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테고, 그래야 비무 승률을 완벽하게 100%로 만들 수 있다.
어쨌건 이겨야 하니까.
사기 문제도 해결했으니 이제 남은 건 3일 동안 환자 대우를 받으면서 내 방에 누워 정력에 좋은 돼지고기와 돼지 간을 환자 특식이라는 명목으로 얻어먹는 것뿐이다.
그러면서 흑룡방과의 비무를 기다리며 정력 수행을 하고.
정말이지 완벽한 계획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