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35화 (35/171)

35화 고백해서 혼내주기

“······.”

내 고백을 들은 화면호검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꼼지락했다.

뭐지? 왜 저러지?

방금 내 고백은 100% 진심이었다. 거짓말 탐지기 뺨치는 정확도를 자랑하는 염왕의 안법(眼法)인 찰심안(察心眼)의 감정으로도 내 말은 참이라고 나왔을 터.

염왕 본인의 모습은 물론 화면호검의 모습으로도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

“설마 아직도 내 말이 거짓이라 생각하는 거요? 여 선배?”

“······.”

여전히 묵묵부답인 적사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면서 먹힐 때까지 내 진심을 고백하기로 했다.

일명 고백해서 혼내주자 작전이었다.

“그대의 호수를 닮은 눈동자도, 흑단 같은 검은 머릿결도, 화월용태한 자태도 전부 아름답소. 가히 폐월수화(閉月羞花)와 침어낙안(沈魚落雁)의 용모인 화면호검 선배를 내가 어찌 사모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이오? 내 말을 못 믿겠다면 내 몸을 믿으시오. 사내의 몸은 솔직해서 마음에 든 여인 앞에서 하초가 발(發)하는 법이니, 내 하물도······.”

“······그, 그 입 다, 닥치지 못하겠느냐?!!”

그렇게 내가 계속해서 화면호검의 칭찬을 늘어놓던 순간.

그녀가 내 말허리를 자르며 소리쳤다.

하얀 달빛 아래 비치는 화면호검의 얼굴은 이미 홍당무차럼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이래도 내 말이 거짓으로 들리오? 강호 무림의 풍문으로는 화면호검 선배는 참과 거짓을 가릴 줄 아는 통찰력을 지니고 있어, 귀신처럼 상대의 거짓말을 간파한다 들었소. 그래서 거짓으로 아름답다고 고한 사내들을 거세해 고자로 만들었다는데, 이 후배의 말은 어떻소?”

나는 그녀의 화상으로 반이 일그러진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물었다.

불끈.

내 하물은 여전히 하늘을 향해 꼿꼿이 선 상태였다.

나는 당당하다.

내 말에는 한 점 거짓 따위는 없다.

내가 당당한 눈동자로 그녀를 응시하자, 그녀가 시선을 홱하고 돌렸다.

*

화면호검 여예령.

아니, 화면호검의 신분으로 활동하던 사도련주 염왕 적사월은 지금 60년 인생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을 겪고 있었다.

‘이게 무슨······. 마, 망측한?!’

사영회.

흑룡방의 감숙 분타나 다름없는 삼류 흑도 방파. 화면호검으로서 그녀가 받은 임무는 사영회 감시와 흑룡방과 사영회의 연락망 구축, 그리고 유사시 흑룡방의 대행자 신분으로 사영회 지원이었다.

물론 명목상 그렇다는 거지, 실제로 사영회 파견 임무는 한직 중의 한직이었다.

공동파는 이미 멸문한 것과 진배없을 정도로 영향력이 미미해진 상황이었다. 그러니 공동파의 마지막 사업장인 공동 객잔만 처리하면 이 일도 끝이었다.

그리고 공동 객잔은 사영회가 알아서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상황. 화면호검인 그녀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사영회의 흑도들은 흑룡방에서 파견된 그녀를 어려워해서 감히 말조차 제대로 걸지 않았다. 그래서 따분함을 느끼던 참이었다.

그래서였다.

공동파의 제자 한 명이 흑도 셋을 고자로 만들고, 공동파가 흑룡방에 비무첩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를 직접 시험하기 위해 공동파 본산에 오른 건.

지루한 파견 생활에서 찾은 재미라고 느꼈던 것이다.

‘거기에 비무첩에 적힌 조건······. 언뜻 보면 공동파가 불리하게만 보이지만 실상은······.’

개방과 함께 중원의 양대 정보 문파인 하오문의 수장으로서, 적사월은 공동파 관련 정보도 잘 알고 있었다.

복마검객 전영은 세간에서는 무시당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세간의 평과는 달리 기초공과 역혈대법만으로 일류의 경지에 오른 재능 있는 인물이었다.

공동파에 본산절기가 그대로 있었다면 능히 절정 이상은 바라볼 인재가 전영이었다.

그가 제자로 들인 유진휘의 실제 무위를 확인한 자는 없었다. 하지만 유진휘가 일대기재라는 소문만은 화정현 일대에 파다했다.

물론 유진휘의 재능 관련 소문은 원래 믿지 않았지만, 어제 비무첩을 본 순간 적사월은 생각을 바꾸었다.

누가 봐도 공동파가 불리한 조건을 내건 이유는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터.

그 승산을 합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공동파 장문인 전영이 장문제자 유진휘를 믿고 도박수를 던진 게 틀림없다.

‘그래서 확인차 공동산에 올랐거늘···.’

아무리 위장 신분으로 외유 중이라지만 적사월은 사도련주이자 사파제일인.

이번 일에서는 사파 편을 들 수밖에 없다. 물론 유진휘가 소문처럼 일대기재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에 하나 흑룡방이 공동파와의 후기지수 비무에서 패한다면?

그렇다면 이번 비무는 공동파의 부활을 알리는 기념식이 되어버릴 것이다. 사도팔문의 일좌를 차지하는 흑룡방은 공동파 부활의 제물이 되어 위신이 땅에 떨어질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녀가 이끄는 사도련의 체면에도 손상이 갈 것이다.

정파로 따지자면 구대문파 중 하나가 군소 사파 문파에게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니 말이다.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만에 하나를 대비해 유진휘의 전력을 알아내기 위해 택한 공동산 행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동파에서 이철수를 마주치고, 그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보길래 버릇처럼 행했던 시험이었다.

어차피 남자라면 그녀의 시험을 통과 못 한다. 적사월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손해라 생각하지 않았다.

대개 사내라는 자들은 여인의 겉모습만 보고 발정하는 자들이니까. 그녀가 다스리는 사파부터 고고한 정파의 도련님들까지 예외는 없었다.

그래, 이철수가 통과할 때까지 말이다.

“······.”

이철수.

공동파의 제자이자 유진휘의 사제이며 사영회 소속 흑도 셋을 일검에 고자로 만든 인물.

기교가 범상치는 않다. 하지만 그뿐. 딱히 특기할 대상은 아닌 듯하다는 것이 적사월의 판단이었다.

그가 시험을 통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진실이라니······. 믿을 수 없어···.’

상대의 심박수, 얼굴 표정과 떨림, 눈동자의 흔들림, 호흡과 땀 등을 살펴 참과 거짓을 가려내는 안법인 찰심안을 몇 번이나 운용해도 결과는 같았다.

이철수.

그가 화면호검의 얼굴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더불어 화면호검을 향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음담패설도 역시 전부 진심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야···.’

그녀는 혼란에 빠졌다.

천하제일미.

40년이 넘도록 그렇게 불려온 만큼 적사월은 미모가 가지는 위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내들은 그녀의 미모를 욕망하면서도 겉으로는 어떻게든 잘 보이려 애썼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따라다니던 사내는 구름처럼 많았다. 자연스럽게 경국지색의 미모를 탐낸 세간의 욕망 때문에 위험에 처한 적은 수도 없이 많았다.

여인들은 그녀의 미모를 질투하면서도 선망했고, 사내들은 그녀의 미모를 찬양하면서도 소유하려 했다.

중원에서 힘없는 미녀는 위험했다. 언제건 사내들의 음심과 여인들의 투기에 휘말려 죽거나, 그보다 더 험한 일을 당할지 몰랐다.

그래서였다. 무공을 배우고 하오문의 태상문주 나아가 사도련주가 되어 권력을 쥔 건.

미모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것도 그래서였다.

화면호검의 모습으로 변장해 아름다움을 묻고 다닌 것도 그래서였다.

적사월의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어졌다.

현경의 경지에 오른 이후 이렇게 적나라한 음담패설을 들은 적 있던가?

아니, 화면호검의 얼굴로 이렇게 진심어린 사랑 고백을 들은 적 있던가?

둘 다 없었다.

“······.”

적사월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내심 외모가 아닌 내면을 봐주는, 진실된 자신을 봐주는 사람을 원했던 적사월이었다.

화상으로 흉하게 변한 화면호검의 모습을 좋아하는 사내라면, 괜찮은 사내일지도 모른다.

적사월은 그리 생각했었다.

하지만 화면호검의 모습을 진심으로 아름답다고 해주는 사내는 없었다. 적사월은 사내들은 외모에만 관심이 있다는 그녀의 가치관을 몇 번이고 재확인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화면호검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해주는 사내를 만나길 내심 바랐었는데.

존재하지 않기에, 더욱 바랄 수밖에 없는 갈망이 적사월의 마음을 잠식해갔다.

‘이런 형태는 아니야!’

바로 지금 그런 사내를 만나긴 했다. 이철수는 진심으로 그녀를 아름답다 말했으니까.

하지만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녀가 생각한 시험 통과는 좀 더 낭만적이고 좀 더 설레는 그런 장면이었다.

잘생긴 공자가 그녀의 화상 자국을 어루만지면서 ‘소저의 얼굴은 내게는 더없이 아름답소. 세간의 평은 신경 쓰지 마시오.’라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그런 장면을 원했다.

하늘로 우뚝 솟은 양물을 과시하면서 음담패설로 이루어진 고백을 상상한 적은 맹세코 없었다.

이런 고백은 싫다.

그렇게 생각하는 적사월의 이성과는 달리, 그녀의 심장은 계속해서 좀 더 빠르게 뛰고 있었다.

어쨌거나 음담패설이라고는 해도, 그의 고백은 진심이었으니까.

표현이 좀 그렇기는 하지만, 그는 진실로 외모가 아닌 내면을 보고 그녀를 아름답다고 했으니까.

다른 사내들과는 다르다. 음담패설? 어차피 사내들의 욕망은 다 같다는 사실을 적사월은 60년 인생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얼마냐 달콤하게 포장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모든 사내는 근본적으로 미녀와의 운우지락을 꿈꿨다.

차라리 대놓고 욕망을 드러내는 쪽이, 달콤한 말로 본심을 감추고 뒤에서 수작질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게다가 이철수의 말에서는 틀린 구석이 없었다. 사내의 양물은 매력적인 여인에게만 반응하는 법. 그리고 이철수의 양물은 화면호검에 반응하여 우뚝 서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적사월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다. 어떻게 저렇게 망측하게 양물을 세워놓고 저렇게 뻔뻔하게······.

수많은 생각이 적사월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모든 게 혼란스러운 가운데, 적사월이 입을 열었다.

“내, 내가 아, 아름답다면 어째서 나를 향해 그, 그런 참담한 음담패설을 내뱉는단 말이더냐?!”

“화면호검 선배는 거짓말을 싫어한다 들었소. 그러니 나는 내 진심을 선배한테 고백했을 뿐이요. 음담패설이라니 섭섭하구려. 사내가 여인을 마음에 품었다. 거기에 다른 미사여구가 뭐가 더 필요하겠소. 정이 통하는 사내와 여인이 합방하여 구름과 비의 즐거움을 즐기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한 자연의 이치인 법.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일이요.”

이철수의 말을 들은 적사월의 심장이 터질 듯 두근거렸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황당하게도 뻔뻔한 놈이었다. 문제는 그의 말이 전부 진심이라는 점에 있었다.

두근, 두근, 두근.

추하게 일그러진 용모와 관계없이 오로지 그녀 자신만을 욕망하는 사내가 저기 있다.

그 사실에 적사월의 마음이 더 어지러워졌다.

하오문의 태상문주로서, 사도련주로서 밑바닥 흑도 왈패부터 고고한 명문정파의 대공자까지 온갖 인간 군상을 전부 만나본 그녀였다.

누구를 만나도 당황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철수 같은 인간은 그녀의 60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그래서 더 혼란스러웠다.

“이래도 내가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오?”

“······아, 아니! 아니니까 그 입 좀 다물어!”

이철수의 말에 적사월이 소리쳤다.

그의 말을 더 들으면 정신이 이상해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통과, 했으니까. 말해, 소원······.”

적사월이 이철수의 시선을 피하면서 더듬더듬 말했다.

화면호검의 시험을 통과한 사내에게 줄 보상. 그것은 화면호검이 들어주는 소원이었다.

소원.

그 말을 내뱉으면서 적사월은 심장 박동이 더 세게 요동치는 걸 느꼈다.

‘지, 진짜 합방하자고 하면 어쩌지······.’

60년 동안 지켜온 순결이었다. 이제 와서 40살도 더 어린 소년에게 빼앗길 수는······.

그녀의 머릿속에 심상이 펼쳐졌다.

푹신한 비단금침 위, 흉한 화면호검의 입에 입맞추는 이철수의 모습. 뒤이어 사르륵, 사르륵, 나삼을 조금씩 벗겨가며 새하얀 한 쌍의 수밀도가 달밤 아래 드러나는 모습까지.

적사월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어떻게 지켜온 순결인데, 이렇게 잃을 수는 없다.

정체를 드러내서라도 거절해야 하나?

하지만 그렇다고 40세 이상 연하인 홍안(紅顔) 소년의 유혹이 그렇게 싫은 건······.

그녀의 머릿속에 망측한 상상이 이어지던 그때.

“좋소. 내 소원은······. 화면호검 선배와 달이 밝은 오늘 같은 밤, 같은 침대에서 함께 음양의 도를 논하······.”

이철수의 소원이 귓가에 들어왔다.

그의 말을 들은 적사월의 심장이 미친 듯 두근거렸다.

예상했던 소원이 들렸다.

거절해야 하나? 어쩌지?

현경의 고수인 그녀는 촌각의 시간 속에서도 무수히 많은 상념을 다룰 수 있었다. 따라서 이철수가 말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와 결과가 스쳐 지나갔다.

두근, 두근.

그녀의 백회혈에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얼굴과 목덜미가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그때.

“······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정도를 걷는 공동파의 제자로서 사사로운 욕구를 사문의 대의보다 우선시할 수는 없는 법. 그러니 내 소원은 여 선배가 흑룡방주한테 본 파의 비무첩을 제대로 전달하여 후기지수 비무가 반드시 성공적으로 개최될 수 있도록 부탁하는 용도로 사용하겠소.”

뒤이은 이철수의 말을 들은 순간.

그녀의 얼굴이 새하얗게 굳었다.

두근두근 뛰던 심장도, 달아오른 뺨도 싸늘하게 식었다.

왠지 모를 실망감이 그녀의 마음에 가득 밀려왔다.

부르르.

적사월의 주먹이 세게 쥐어졌다.

“이 나쁜 새끼야!”

곧이어 그녀의 뾰족한 목소리가 공동산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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