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정신(淨身)의 달인
내 말에 흑도 둘의 표정이 굳었다.
“으으으······.”
손아귀에 젓가락이 꽂힌 흑도 하나만 신음을 흘리고 있을 뿐이었다.
남자의 신음이라니.
듣고 싶지 않다.
내게 신음이란 침상 위에서 여인이 극락에 이르렀을 때 기뻐서 내뱉는 교성(嬌聲)만으로 충분하다.
다른 신음은 필요 없다.
일이 다 끝나면 요순시대의 은거기인인 허유(許由)처럼 냇가에 가서 귀를 씻으며 기산영수(箕山潁水)의 고사를 재현해야겠다.
더러운 말을 들었으니 말이다.
“뭐라고, 애송이?”
테이블을 엎은 깡패가 못생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험악해졌다.
“못생기고 치졸한 흑도 깡패답게 가는 귀가 먹었나 보군. 한 판 뜨자는 소리다. 설마 건장한 사내들 주제에 지금 열네 살 어린아이 상대로 겁을 먹고 있는 건 아니겠지? 뭣하면 너희 셋 모두 덤벼도 상관없다. 얼마든지 조져주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꼬마 상대로 겁이나 먹는 고자 새끼들아. 너희는 남자의 자격이 없어. 내 친히 너희들의 불알을 따주지.”
나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손가락을 까딱했다.
좋았어.
이 정도면 충분히 멋져 보였겠지.
내 말을 들은 흑도 셋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아주 형형색색 불꽃놀이처럼 변했다.
“감히 화정현의 밤을 주름잡으면서 수많은 여인을 순결을 앗아간, 우람한 양물을 지닌 이 왕충 어르신더러 고자라고 하다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정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겠구나!”
테이블을 엎은 흑도의 얼굴이 시뻘개지며 곧바로 내게 출수했다.
놈의 박도가 빛살처럼 빠르게 내게 날아들었다.
그 옆의 다른 흑도 둘이 뒤따라 박도를 뽑아 휘둘렀다.
“사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없던 사형이 애타는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이 염병할 흑도 새끼들이······! 신성한 공동파의 객잔에서 감히 칼을 뽑다니!”
검을 든 내 손이 부르르 떨렸다.
원래 계획은 객잔 밖 저잣거리에서 놈들과 붙는 거였다.
객잔은 싸움터와 동의어이긴 하지만, 여기는 그냥 객잔이 아닌 공동파의 마지막 돈줄.
공동파 소속 사업장에서 굳이 싸워서 기물을 파손하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그거 고치는 것도 다 돈이다 돈.
게다가 중요한 건 기물을 파손하면 서 대인이랑 서하린에게도 안 좋은 인상이 심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멋진 대사와 의기 넘치는 협객다운 모습으로 어렵게 땄던 점수였다.
그걸 전부 잃어버리게 생겼다.
그래서 나가서 싸우려고 한 거다.
하지만 내 격장지계에 격분한 흑도 깡패 셋이 갑자기 달려들면서 헛수고가 됐다.
아니 고자가 뭐 대단한 욕이라고 저렇게 흥분해서 앞뒤 안 재고 달려드는 건지 모르겠다.
지금 전생에 50년 경력 고자였던 나 놀리는 거야 지금? 어?
분노가 치민다.
“내 오늘 너희들한테 친히 정신(淨身) 수술을 집도해주리라!”
쿠과과과과과과.
나는 삼음진결을 운용해 내력을 단숨에 끌어올렸다.
공동파 무리의 근간은 음양전도.
음양전도의 원리는 역혈을 통해 구현된다.
따라서 공동파의 내공은 빠르고 파괴적이다. 지금만 해도 그렇다. 내력을 일깨우려 결심한 순간 바로 단전이 반응하며 빠르게 내력이 온몸의 혈도를 휘돌고 있었다.
문제는 소양심법과는 달리 삼음진결은 음기를 다루는 음공.
음공(陰功) 특유의 음유한 내력이 몸을 내달리자 안 그래도 안 좋은 기분이 더 악화되었다.
내게 빌어먹을 게이 무공인 음한기공을 쓰게 만들다니. 규화보전 이후로 안 쓰려고 했건만.
나는 철검을 휘둘러 흑도 셋의 박도를 일합에 튕겨냈다.
채채채채챙!
쇳소리와 함께 흑도 셋의 박도가 엉뚱한 궤적을 그렸다.
놈들의 얼굴에 당황이 깃들었다.
내가 사용한 검법은 현천검.
삼음진결의 음기로 운용하는 음유한 검법으로, 방어에 치중된 무리를 지닌 검법이었다.
“애, 애송이 주제에 제법······!”
“닥쳐.”
놀란 흑도 놈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나는 지금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고자라는 말에 화나서 앞뒤 안 가리고 달려들어서 객잔에서 싸우게 된 것도 분노할 일이었다.
그런데 놈들이 감히 선제공격하는 바람에 방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음한기공까지 사용하게 되지 않았는가?
나는 진기의 흐름을 곧바로 삼음진결에서 소양심법으로 변경했다.
원래라면 빠르게 기공을 변경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하지만 음한기공으로 현경이라는 지고의 경지에 올랐던 나였기에 가능했다.
고고고고고고고고고!
단전에서 방금의 음유한 기운과는 반대의 뜨거운 양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그래.
이게 내공이지.
나는 단전에서 치솟는 정력을 느끼면서 당황하는 흑도들을 향해 그대로 쏜살처럼 철검을 내질렀다.
번쩍!
칠살검.
소양심법의 진기로 운용하는 검법으로 현천검과는 반대로 빠르고 강맹한 공격 일변도의 검법이었다.
칠살검의 묘리에 따른 찌르기가 흑도 셋의 가랑이를 뚫고 지나갔다.
번쩍! 번쩍!
세 번의 검광이 객잔에 꽃처럼 반짝이며 피어난 순간.
털썩.
흑도 하나가 무릎을 꿇었다. 아까 자기가 대물이라고 자랑하던 왕충이라는 흑도였다.
그의 바지춤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다.
“끄, 끄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흑도의 입에서 피거품과 함께 비명이 흘러 내렸다.
그의 가랑이에서 잘려나간 양물과 고환이 피투성이가 되어 떨어졌다.
그렇다.
정교한 칠살검의 초식 운용과 소양심법의 내력 컨트롤로 나는 놈들의 음경과 고환만 정확히 도려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곧이어 다른 흑도들 역시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비명을 내질렀다.
“대물은 무슨. 작구만.”
나는 놈들의 잘린 양물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다 큰 성인 주제에 아직 열넷에 불과한 나보다도 거기가 작다니.
그러면서도 밤마다 여인들에게 범죄를 저질러?
거세당해 마땅하다.
양물이 잘린 놈들은 이지를 초월한 고통에 전의를 상실하며 주저앉고 비명을 지르다 피거품을 물고 기절했다.
나는 깔끔하게 칼을 집어넣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사, 사제······.”
사형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며 나를 불렀다.
그 뒤에는 전영이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최대한 짧게 대결을 끝냈지만, 아무래도 내공을 쓰며 싸웠다보니 객잔 내부는 이미 엉망진창이었다.
벽에는 칼자국이, 테이블과 의자와 그릇은 이미 다 박살난 지 오래였다.
내 시선이 서하린으로 향했다.
나와 눈길이 마주친 서하린의 몸이 떨렸다.
털썩.
그녀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았다.
곧이어 객잔 바닥에 따뜻한 물바다가 생겼다. 서하린이 바닥에 실례한 것이다.
그녀가 강아지처럼 나를 바라보며 바들바들 떨었다.
열네 살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너무 폭력적인 광경이었나? 괜히 미안해진다.
이게 다 저 흑도 놈들 때문이다.
“야, 일어나. 야.”
찰싹.
나는 왕충의 뺨을 세게 후려갈겼다.
놈의 입술에서 이가 서너개 튀어나왔다.
“으, 으으으으······.”
“너 때문에 분위기가 개판이 됐잖아.”
계획대로 밖에서 나가서 싸웠다면 얼마나 좋냐고.
서하린이 겁먹을 일도 없고, 객잔 기물도 안 부서지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을 굳이 거절한 건 저놈들이다.
“으, 어으어아으아······.”
왕충이 퉁퉁 부은 입술로 뭐라 말하려 했지만, 나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어차피 흑도 놈들이다.
변명 따위는 들을 필요 없다. 나는 테이블 위에 아직 멀쩡한 백건아 한 병을 서하린이 만든 웅덩이 위로 부었다.
콸콸콸.
술과 오줌이 뒤섞였다.
“너희들 때문에 술이 쏟아졌잖아. 이 새끼가 술 귀한 줄 모르고.”
“으어!?”
놈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술은 내가 쏟았는데 왜 본인에게 따지냐는 표정.
물론 나는 놈의 항변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어린아이가 모두 보는 앞에서 오줌을 지린 상황.
얼마나 부끄럽겠는가?
자다가 남몰래 이불에 지도를 그려도 부끄러운 판국에, 백주대낮에 모두 앞에서 수치스러운 일을 보이고 말았으니.
그녀의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희석하려면, 이걸 오줌이 아닌 술로 만드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이건 술이고, 백건아를 쏟은 건 흑도 놈들인 거다.
그대로 놈의 면상을 바닥에 처박아 기절시켰다.
“하여간 흑도 놈들은 쓸모가 없어요. 재활용도 안 돼.”
나는 투덜거리면서 품에서 늘 갖고 다니던 헝겊 손수건을 꺼내 바닥에 쏟은 소변과 술을 직접 닦아냈다.
이제 이걸 직접 닦아서 서 대인과 서하린에게 점수를 따는 일만 남았다.
슥, 슥슥, 스윽스윽. 뽀득뽀득.
조용한 객잔에 바닥 닦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황녀가 열 살 때부터 그녀를 돌봤으니까. 이건 비밀인데 황상은 열한 살에 이불에 지도를 그린 적이 있었다. 그때 황상이 이걸 비밀로 해야 한다고 하도 강조해서 다른 환관이나 나인을 시키지도 못하고 내가 그걸 직접 몰래 빨았었지.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손수건 전부를 써서 바닥을 깨끗이 닦아낸 나는 손을 털고 일어서 서하린에게 다가갔다
서하린은 여전히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텅 비어있는 하늘색 눈에는 아까와는 달리 조금의 생기가 돌았다.
나는 주저앉은 그녀에게 깨끗한 왼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
서하린이 초점 없는 하늘색 눈동자로 나와 내가 내민 왼손을 번갈아가며 바라봤다.
그녀가 침묵했다.
하지만 나는 인내심 강한 남자.
그녀가 내 손을 잡고 일어설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의 시간이 지난 뒤, 서하린이 꼬물거리는 손을 뻗어 내 왼손을 잡았다.
그녀의 체온은 따뜻했다.
나는 그녀를 잡아 일으켰다.
서하린은 내 손을 잡고 완전히 일어난 뒤, 내 손을 뿌리치고 쪼르르 달려가 서 대인 뒤에 숨었다.
나는 서 대인을 향해 다가간 뒤에, 포권을 취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서 대인. 객잔을 어지럽혀 본의 아니게 큰 피해를 주고 말았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이 공자. 이 공자가 아니었더라면······.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군요.”
내 말에 서 대인이 손사래를 치면서 한숨을 내뱉었다.
“서 대인. 무슨 일이라도 있소?”
그의 말에 전영이 헛기침하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서 대인이 전영의 질문에 살짝 머뭇거리며 답하기 시작했다.
기나긴 그의 말은 전생에 입수했던 정보에서 조금 더 디테일이 가미된 것 말고는 별 차이가 없었다.
화정현의 이권을 장악한 흑도 방파인 사영회에서 주변 상인들을 압박해 요리 원재료 공급을 끊었다는 것.
거래처가 전부 끊긴 뒤, 어쩔 수 없이 유일한 공급처가 된 사영회 놈들에게 저질 식재료를 비싼 가격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는 것.
음식의 맛이 변하니 자연스럽게 손님도 나가고, 매출도 떨어지면서 원재료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사영회에게 외상으로 원재료를 구입하다가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것 정도였다.
그렇게 빚을 늘린 사영회는 외상값 대신 객잔을 넘기라는 요구를 하고 있었다.
“······장사가 어려워지자 린아가 기특하게도 가게 일을 직접 돕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후회되는군요. 놈들이 린아한테도 그런······. 참혹한 말을 내뱉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마외도의 무리다운 무도한 방식이군요. 본 장문인이 직접 놈들을······.”
“그러지 마십시오. 대협. 사영회의 배후에 흑룡방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사도팔문의 일좌를 차지하는 흑룡방의 세력은 실로 강대하기에 대협과 공동파가 대적하기에는 무리가 따를 것입니다. 제 한 몸 건사할 재주는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하지만 린아가······.”
“린아는 본 파에서 맡도록 하겠소. 놈들이 아무리 흑룡방을 배후에 두고 있다지만 본산까지 침입할 정도로······.”
전영과 서 대인의 대화가 오갔다.
이대로라면 전생처럼 서하린이 공동파에 입문, 내 사매로 들어올 터.
하지만, 그게 정말 최선일까?
그녀를 위한 옳은 선택이 맞을까?
나는 서하린을 보았다.
아버지 뒤에 숨어 떨고 있는 작은 소녀의 눈동자를 보았다.
지금의 서하린은······. 나와 처음 만났을 때의 황상을 연상하게 했다.
궁에서 허드렛일하다 3황녀의 보육 담당으로 처음 발령받았을 때. 3황녀는 서하린처럼 텅 빈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면서 침상 뒤에 숨어서 나를 바라봤다.
황제인 아버지도, 후궁인 어머니에게도 관심받지 못했던 그녀. 사실상 어머니나 다름없는 유모를 잃은 직후의 3황녀는 서하린처럼 마음의 문을 닫아걸고 있었다.
지금의 서하린이 여동생 같은 황상과 너무나 겹쳐 보여서.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아졌다.
이것이 서하린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사부님.”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지금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기다리거라.”
“외면하라고 두 눈이 있는 것 아니고, 듣지 않으라 두 귀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철수야.”
“가족 같은 이들의 어려움을 못 본 척 넘어간다면, 본파가 어찌 백도라 할 수 있겠습니까?”
내 말을 들은 사부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속으로 웃었다.
사영회? 흑룡방?
모조리 고자로 만들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