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회차 환관이 남성을 되찾음-30화 (30/171)

30화 내면의 아름다움

중세 무림에서 객잔이란 곧 싸움터와 동의어다.

무협 소설에서처럼 강호 무림 분쟁 50%는 객잔에서 발생한다.

체육관에 들어간 포켓몬 트레이너마냥 무림인들은 객잔에서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것이다.

객잔이야말로 헌터물의 짐꾼처럼 이세계 중세 무림의 극한직장인 것이다.

이세계 중세 무림의 다른 극한직업으로는 표사, 쟁자수, 산적, 수적, 점소이, 경비무사, 흑도 조무래기, 그리고 극한직업의 TOP인 환관 정도가 있다.

후, 너희는 이런 거 하지 마라. 빌어먹을.

그러고 보니 전생의 나는 전직 기회를 박탈당한 채로 환관 클래스로 강제 전직을 했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아직도 아랫도리가 서늘하다.

노비 상인과의 커넥션을 통해 선량한 고아들을 거세해서 황궁에 내시로 팔아먹는 엄공 장이현 이 새끼도 왕삼처럼 손수 지옥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놈의 손에 강제로 고자가 돼서 황궁으로 팔려 간 피해자가 수없이 많은 걸 생각해보면, 하루빨리 놈을 단죄할 필요가 있다.

전생에서는 왕삼과 마찬가지로 권좌에 올라서 복수하려고 놈을 찾았을 때, 장이현은 이미 종기의 일종인 등창으로 사망, 지옥으로 도피했기 때문에 복수를 못 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감히 나를 고자로 만들고, 고아들을 거세해서 그 고혈을 빨아먹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주변 상황을 살폈다.

테이블을 엎은 양아치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서하린을 바라보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이런 걸 음식이라고 하고 있어? 여기 주인이 누구야? 주인 불러와! 주인!”

얼굴에 칼자국까지 난 흑의 장한 옆에 있던 다른 흑의 장한이 인상을 찌푸리면서 소리쳤다.

“뭘 봐? 구경 났어? 썩 꺼지지 못해?”

쥐 수염을 달고 있는 흑의 장한의 샤우팅에 민간인에 불과한 손님들이 혼비백산하며 객잔 밖으로 흩어졌다.

“······야, 왜 얼타냐? 주인 불러오라니까? 느그 애비 말이야.”

“흐흐흐······. 고것 색목인을 닮아 도깨비처럼 생긴 게 흠이긴 하지만 예쁜데? 너, 우리 사영회가 알선해주는 일자리에서 일하지 않으련? 흐흐. 너 정도라면 외상빚 정도는 금방 갚겠는데?”

쥐 수염 장한이 서하린에게 다가가 음흉한 웃음을 흘리면서, 진부하기 짝이 없어서 이제는 듣는 것조차 지겨운 클리셰 대사를 내뱉었다.

나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그래, 오늘인 모양이다.

전생에서 흑도 방파 사영회가 공동 객잔에 깽판을 놓고, 사형과 사부가 맞선 뒤에 서하린을 보호하려고 서 대인과 합의해서 그녀를 공동파에 입문시킨 날 말이다.

‘사영회라.’

사영회는 공동파가 몰락한 틈을 타서 공동산 아랫마을인 화정현을 장악한 흑도 방파다.

흑도 놈들이 다 그렇듯, 고리대의 일종인 염왕채를 놓는 건 물론 화정현 일대 상인들에게 보호비를 상납받고 있었다.

요는 전형적인 흑도 깡패 무리라는 점이다.

공동파가 구파일방의 일좌를 차지했던 시절에는 화정현에 흑도 깡패들이 설치는 건 상상도 못 하는 일이었다.

그 어떤 문파도 자기 앞마당을 다른 세력에게 내어주지 않는다. 똥개도 제 집에서 반은 먹고 간다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별들의 전쟁에서도 앞마당을 털리면 곧바로 GG를 쳐야 하는 법이다.

하지만 지금의 공동파는 구성원이 단 3명뿐인 좋소 문파.

당연히 앞마당이 관리가 될 리 없다. 하지만 공동산 입구를 낀 화정현의 상권은 아직 제법 쓸 만하니 그 틈을 타서 흑도가 들어온 것이다.

앞마당에 적 멀티를 들여놓다니, 이거 완전 GG감이다.

어쨌거나 화정현의 이권 대부분을 장악한 사영회는 주변 상인들을 협박해 공동 객잔과의 거래를 끊게 만든 뒤,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질 나쁜 원재료를 객잔에 강매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원재료의 질이 떨어진 대신 비싸지니 음식 가격은 오르고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비싸고 맛없는 음식 때문에 매출이 하락했다. 하지만 장사는 해야 했으니 식재료 외상 빚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사영회가 공동 객잔을 몰아간 것이다.

전부 공동 객잔을 압박해서 그 배후에 있는 공동파의 숨통을 끊기 위한 수작이었다.

공동 객잔은 공동파의 마지막 자금줄이었으니까.

‘문제는 사영회가 단순한 사채업자 깡패가 아니라는 데 있지.’

사영회는 단순한 흑도가 아니었다.

놈들이 단순한 흑도였다면, 일류의 무위를 지닌 전영과 사형이 전생에서 놈들을 처음 만났을 때 바로 처리해버렸을 것이다.

사영회 자체는 별 볼일없는 삼류 사채업자 깡패 조직이지만, 그들의 배후에는 감숙 아래지방인 사천의 거대 흑도 방파인 흑룡방(黑龍傍)이 있었다.

그렇다. 사영회는 흑룡방의 감숙성 멀티였던 것이다.

물론 감숙성에 백도 문파가 없는 건 아니다.

50년 전, 공동파가 몰락한 틈을 타 감숙성의 패권을 순식간에 장악해서 기존의 오대세가를 육대세가로 만든 입지전적 신흥 재벌 그룹, 서문세가(西門世家)가 있었다.

하지만 난주(蘭州)의 서문세가는 사영회의 존재를 방관하고 있었다.

서문세가는 알고 있었다. 감숙성은 수백년 동안 공동파의 터전이었던 지역. 당연히 감숙성의 민심은 아직 공동파를 지지하고 있었다. 공동파는 단순한 문파가 아닌, 감숙성 민초와 무인들의 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공동파는 몰락했더라도 아직 감숙의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공동파를 처리하지 않는다면 서문세가는 권세는 높을지언정 감숙에서는 만년 2등에 머무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만에 하나 공동파가 재부흥하기라도 하면, 지역 연고가 부족한 서문세가는 곧바로 밀려날 수밖에 없을 거고.

‘하지만 서문세가는 정파, 같은 정파에다 역사가 유구한 명문인 공동파에 직접 손을 쓰는 건 불가능해.’

그래서 서문세가는 사영회의 화정현 이권 침탈을 묵인했다. 사실 사영회 같은 삼류 흑도는 서문세가까지 갈 것도 없이 걔네 하청 문파만 나서도 조져질 것이다.

눈 가리고 아웅이지만, 어쨌건 흑룡방이 직접 진출한 것도 아닐뿐더러, 그들이 공동파의 숨통을 끊어준다면 손 안 대고 코 푸는 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흑룡방의 세력이 커진다한들, 어차피 흑룡방은 사파에다 감숙에 연고도 없었다. 그러니 그때는 정파로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의 기치와 같은 백도로서 공동파의 복수라는 명분을 내걸어 흑룡방과 결전을 벌인다면.

손쉽게 흑룡방과 사영회를 토사구팽(兎死狗烹)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거겠지.

‘아주 훌륭한 발상이야.’

정치 경력 50년에 달하는 내 시선으로 봤을 때, 서문세가 놈들의 계책은 객관적으로는 아주 훌륭했다.

흑룡방이 사도팔문에 속하는, 정파로 따지자면 구파일방 급인 대기업 문파이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놈들의 연고는 사천.

서문세가의 본진인 감숙성에서 서문세가와 원정 경기로 붙는다면 흑룡방은 절대 이길 수 없다.

거기에 서문세가 쪽에서 이미 망한 공동파의 복수를 한다고 선동한다면 감숙성의 민심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일부 똑똑한 사람들은 서문세가의 차도살인지계를 의심하겠지만, 심증만 있지 물증은 없다. 거기에 계획이 성공적이라면 서문세가도 실제로 흑룡방과의 항쟁에서 피를 흘릴 테기 때문에 흐지부지 넘어갈 테고.

서문세가는 감숙성을 비로소 완전히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50년 차 간신배인 내가 감탄할 정도로 완벽한 계획이군.’

일석이조가 뭐냐 대체 일석 몇조인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놈들이 노리는 목표가 하필 내가 몸담은 공동파라는 사실이다.

거기에 지금 감히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의 하청 주제에 미래의 정파제일미녀 뺨을 건드리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참을 수는 없다. 감히 내 삼처사첩 계획을 방해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내 친히 직접 서문세가와 흑룡방 양자 모두 상처받는 결말을 만들어주지.

그리고 이 새끼가 어디서 어린 여자애를 건드려?

순식간에 싸해진 분위기.

서하린의 텅 빈 눈동자가 떨리고 있었다.

그녀의 온몸이 얼은 듯 딱딱하게 굳었다.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아마도 어릴 적 PTSD가 다시 떠올라 말문이 막히고 몸이 움직이지 않는 모양.

전생에서는 사형이 구해줬을 테고, 나와 상관없으니 사형이 나설 때까지 기다려도 됐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주륵.

서하린의 하늘색 눈망울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순간,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손에 쥔 젓가락에 내력을 담아 투척했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액!

파공성과 함께 날아간 젓가락이 그대로 흑도 놈의 손에 꽂혔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주르륵.

서하린의 뺨에 놈의 손이 닿기 직전, 찰나의 순간 날아간 젓가락에 손아귀가 꿰뚫린 흑도 놈이 끔찍한 비명을 질렀다.

놈의 손에서 피분수가 솟아올랐다.

“네놈, 그 흑색 무복에 역태극 무늬, 설마 공동파 놈이냐?”

“다 망한 문파의 떨거지 주제에 감히 내 형제를 상처입히다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가! 내 너한테 오늘 형제의 혈채를 받아내리라!”

흑도 두 마리가 나를 바라보면서 꼴값을 떤다.

못생긴 남자 셋이서 형제니 뭐니 지랄을 하는 꼴이 아주 가관이다.

무슨 게이도 아니고.

안 그래도 놈들의 최종 목적은 공동파. 그 상황에서 공동파의 제자인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놈들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리라.

물론 내가 때린 싸대기가 놈들의 수명을 끊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 못 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 음식이 맛없다고?”

나는 흑도 놈들을 바라보면서 소양심법을 운용해 기도를 개방했다.

전생의 나는 현경의 고수이자 대명제국 최고의 권력자.

비록 내력은 아직 일류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전생의 내 경험에서 체득한 기세는 그대로였다.

단전에서 남자의 정력을 상징하는 뜨거운 양기가 치솟아 사지백해와 전신세맥으로 흘렀다.

내 몸에서 기도가 피어오르자, 흑도 놈들의 표정이 굳었다.

어차피 놈들의 무위는 고작해야 삼류 수준.

저 정도 놈들은 내력이 없어도 나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있다.

“그, 그래! 재, 재료도 싸구려고 맛도······.”

아까 테이블을 엎은 흑도 하나가 말을 더듬었다.

나는 놈이 엎은 테이블을 향해 저벅저벅 다가갔다.

객잔 안에 있는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서하린의 텅 빈 눈동자마저도.

나는 그들의 시선을 느끼면서 바닥에 떨어진 양고기 수육을 집어서 입 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미친 건가?! 요즘 공동파 자금 사정이 안 좋다고 들었는데, 제자들한테 밥도 못 먹일 정도란 말인가?!”

“바닥에 떨어진 음식을 먹다니?! 개방도도 안 할 짓을!!”

흑도들이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음식을 전부 씹어 삼킨 뒤에 말했다.

“야, 맛있잖아.”

“뭐?”

내 말에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 흑도 셋.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엎은 수조양육. 맛있다고. 서 대인이 정성스럽게 요리해서, 린아가 너희한테 준 음식이야. 맛없을 리가 없지. 그런데 왜 맛없다고 애꿎은 애한테 트집 잡고 지랄이야, 지랄은.”

나는 내 등에 꽂히는 서하린의 시선을 느끼면서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르릉.

대장간에서 파는 싸구려 철검이 칼집에서 빠져나와 빛을 뿌렸다.

나는 아까 나에게 형제 운운하면서 혈채를 받겠다는 흑도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야, 너 이 새끼 뭐해? 혈채 받는다며, 나한테. 어디 한 번 해봐.”

나는 지금까지 끊임없이 연습한 멋진 대사를 놈을 향해 내뱉으면서 씨익 웃었다.

앞으로 강호 무림을 주유하면서 흑도와 싸울 일은 무수히 많을 터.

민초와 상인의 고혈을 빨아먹는 간악한 흑도를 징치하는 정파 협객의 모습이야말로 강호의 여인들이 가장 동경하는 이상적인 알파 메일이 아니겠는가?

현대로 친다면 아이돌, 배우 같은 게 바로 협객이다.

그리고 나는 빌어먹을 사형처럼 외면이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내면의 아름다움을 가꿀 필요가 있었다.

그 내면의 아름다움이 바로 의협심이다.

그렇다면 여심을 사로잡는 매력 넘치는 협객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연습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연습의 때였다.

본격적으로 강호 무림에 출도하기 전에 시비를 거는 흑도라니! 이렇게 감사할 때가!

아주 훌륭한 교보재가 제발로 찾아온 것이다.

이 정도면 나 좀 멋있어 보였겠지?

이거 서하린이 벌써 나에게 반하면 곤란한데.

나는 데인저러스 보이니까.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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