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회귀해서 독식
털썩.
다리에 저절로 힘이 풀리면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럴 수 없다.
어떻게 고생해서 온 광성단혈인데.
한 줌도 안 되는 내공을 산 타는 데 올인하면서 계곡도 넘고 절벽도 넘어가면서 온 광성단혈에서 발견한 영약이 남자에게 안 좋은 미타성수라고?
“으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전생의 기록에 따르면 유진휘는 절세의 영약을 광성단혈에서 얻었다고 했다.
확실히 미타성수는 절세의 영약이 맞다.
전생의 내가 ‘그 내시 무공’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음한기공에 좋은 영약이라 하여 동창과 서창을 동원해 찾아 먹어 봤으니까.
전생의 내가 미타성수를 취하고 규화보전을 운용해 얻은 공력은 무려 일갑자에 달했다.
꼭 음한기공이 아니더라도 먹으면 임독양맥(任督兩脈)을 타통하여 벌모세수를 이룰 수 있는 절세의 영약이 맞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 빌어먹을 영약은 무려 천 년이나 천지간의 음기가 물에 농축되어 만들어진, 그야말로 극음지기(極陰之氣)의 덩어리라는 점이었다.
음한지기(陰寒之氣)의 정수라는 뜻은 무엇인가?
‘정력에 쓸모가 없어!’
미타성수, 아니 이 빌어먹을 이름조차 언급하기 싫은 흉물(凶物) 따위를 처먹어봤자 내게 도움 될 일이 단 하나도 없다는 뜻이었다.
내공의 상승?
그딴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벌모세수?
물론 벌모세수는 중요하다. 중세 무림이 현대를 능가하는 몇 안 되는 강력한 치트키 중 하나가 바로 벌모세수(伐毛洗髓)니까.
피부과에 돈을 일억 원 넘게 박아도 벌모세수 한 번 한 것보다 못할 정도다.
하지만 문제는 저 폐수를 내가 취하면 기껏 지금까지 단련한 양기가 약해진다는 것이다.
양기가 약해진다는 건, 곧 정력이 약해진다는 것.
부작용은 그뿐만이 아니다.
‘이 정도로 강력한 음기가 몸에 쌓이면 체형도 여자처럼 변한다!’
과도한 음기가 몸에 쌓이면 남자라도 근골이 여인처럼 변한다.
그 사실은 음한기공(陰寒氣功)의 전문가였던 내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미타성수를 취한다면, 어쩌면 부작용으로 전생에 달고 다니던 여유증이 재발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저 사형처럼 꼭지 툭튀를 막기 위해 가슴에 붕대를 다시 감아야 할지도 몰랐다.
아니 지금까지 궁극의 육체미, 알파메일 짐승남이 되기 위해 수행해온 외공의 성과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지도 몰랐다.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만든 알파메일 짐승남의 육체미인데.
고작 벌모세수 따위를 하자고 그걸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없다.
‘왜 옥양수가 없는 거야!’
옥양수(玉陽水).
미타성수와는 반대로 천지간의 양기가 천 년 동안 농축되어 만들어진 분홍색 액체로 극양(極陽)의 성질을 지닌 영약이었다.
옥양수가 있었더라면!
그렇다면 그걸 취해서 벌모세수로 피부 미용도 하고, 내공 증강으로 정력도 증진하고, 양기도 취해서 더욱 남자다운 알파메일 짐승남으로 거듭났을 텐데!
음기가 쌓이면 여인의 체형으로 변하는 것처럼, 양기가 쌓이면 사내다운 체형, 그러니까 알파메일로 변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눈앞의 액체는 절세의 영약인 옥양수가 아닌 미타성수라는 이름의 쓰레기였다.
대체 왜!
하늘은 광성단혈을 낳고! 또 미타성수를 낳았단 말인가!
“사제? 왜 그래? 어디 아파?”
옆에 사형이 다가와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사형의 순진한 얼굴을 보자 분노가 치솟았다.
대체 전생에 왜 무슨 영약을 먹었는지 말을 안 해서.
나를 여기까지 헛걸음하게 만들었느냐는 말이다.
여기에 미타성수 같은 쓰레기가 있는 줄 알았다면, 절대 직접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사형에게 위치만 알려주고 비급 회수만 시켰을 거라고.
그런데 왜!
역시 전생에 유진휘가 여인을 멀리한 건 미타성수를 취한 부작용으로 정력이 감퇴하고 사내다움을 잃어버려 중성적인 몸으로 변해서 그랬던 건가?
하긴 미타성수가 부작용만 감내하면 벌모세수와 1갑자 내공의 1+1 행사가 가능한 절세영약은 맞으니까 안 먹는게 더 이상하긴 하다. 아마 사형이 아니라 다른 남자 무림인이 발견했어도 미타성수를 먹었을 것이다.
이러니까 무림인이 문제다. 무공에 도움이 되면 똥이라도 먹을 종자들 같으니.
나는 치밀어오르는 감정을 꾸욱 누르면서 초인적인 연기력으로 사형을 향해 말했다.
“아닙니다. 기쁨의 눈물입니다. 사형. 여기를 보십시오. 피부까지 느껴지는 영기와 한기를 품은 유백색의 액체라니. 이건 전설에서나 나오던 미타성수가 틀림없습니다.”
미타성수라는 말에 사형의 눈동자가 커졌다.
사형도 강호 무림에 한 발 걸친 무림인으로서, 유명한 영약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사제? 정말이야? 저 물이 정말 미타성수야?”
“그렇습니다.”
나는 사형의 말에 눈물을 닦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말했다.
“미타성수는 사형께서 취하십시오.”
“내, 내가?!”
내 말에 사형이 화들짝 놀랐다.
“사제는? 미타성수는 절세의 영약이잖아. 그런데 사제는 안 취해도 괜찮아?”
그가 놀란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나는 사형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절세의 영약은 무슨.
내게는 안 타는 쓰레기, 전설의 무형지독(無形之毒)을 능가하는 극독(劇毒)에 불과하다.
어차피 쓸모도 없는 물건이니, 차라리 사형을 먹여서 재활용이라도 하는 쪽이 낫다.
음한지기의 영약이라도, 어쨌거나 사형의 언급대로 천고의 영약은 맞다.
그러니 저 물건은 사형이 취해서 이 자리에서 임독양맥을 타통하여 장차 미래의 검성이 될 기반을 빠르게 닦는 쪽이 옳다.
왜냐하면 사형이 빠르게 강해질수록, 공동파 재건도 빨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공동파 재건은 빨라질수록 좋다.
그래야 내가 검성의 사제로서 귀찮고 책임지는 일은 사형에게 전부 미루면서 공동파의 비선실세로 정파 무림을 지배하고, 검성의 사제로서 무명(武名)을 날려 강호의 미녀들에게 내 매력을 어필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삼처사첩의 미래와 책임 없는 쾌락을 위해서는 여기서 사형이 미타성수를 취해야 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여기 고인 미타성수의 양으로 짐작하건대 한 명이 온전히 취하면 임독양맥을 타통할 수 있지만, 두 명이서 나눠서 취한다면 양자 모두 공력만 조금 상승하는 효능밖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둔재지만 사형은 천재이지 않습니까? 둔재인 저보다는 일대기재이자 장문제자인 사형께서 미타성수를 취해서 임독양맥을 타통하는 쪽이 본 파의 재건을 위해서도 옳은 길입니다.”
나는 반박할 수 없는 논리로 사형이 미타성수를 먹어야 하는 이유를 말했다. 그와 함께 아까 벗긴 뱀가죽으로 손을 칭칭 감싼 뒤에 들고 온 잔에다 조심스럽게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바닥에 고인 미타성수를 전부 담았다.
희뿌연 미타성수가 잔 위로 찰랑대며 드라이아이스처럼 하얀 연기를 피워올렸다.
잔 안의 미타성수에서 피어오르는 음기가 상당했다. 괴물 살무사의 가죽과 내력으로 몸을 보호하고 있는데도 손이 얼 것 같았다.
“자, 취하십시오.”
내가 미타성수가 든 잔을 내밀자 사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사제. 역시 미타성수는 사제가 취하는 쪽이 좋겠어. 사제의 말대로 나는 기재니까, 영약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수행만으로 상승의 경지에 올라 본 파의 재건에 일조할 수 있어. 그러니까······. 이 미타성수는 오히려 자질이 부족한 사제한테 더 필요해. 지금이라도 사제가 벌모세수를 한다면 내 옆에 설 수 있을 거야. 사제는 언제나 내 옆에 서고 싶어했으니까······.”
사형이 조심스럽게 나를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나는 사제한테 양보할래.”
그가 끔찍한 결론을 내렸다.
뭐?
나에게 양보한다고?
이런 쓰레기를?
미타성수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럴 수는 없다.
어떻게 쌓아온 양기고, 어떻게 만든 몸인데.
이런 쓰레기 때문에 삼처사첩(三妻四妾)의 대계(大計)를 하루아침에 망칠 수는 없다.
“아닙니다. 사형. 우제(愚弟)한테 미타성수 같은 절세의 영약을 양보해주신 사형의 뜻은 감사하지만, 저는 영약을 받을 수 없습니다. 지금의 본 파에는 어중간한 고수 여럿은 필요 없습니다. 영락한 본 파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본 파의 명성을 천하에 떨칠 한 명의 일대고수(一代高手)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런 일대고수가 될 자질을 지닌 사람은 본 파에서는 오직 사형뿐입니다. 그러니 사형께서 취해서 장차 일대검객(一代劍客)이 되어 본 파의 이름을 강호 무림에 위진시켜야 합니다. 제게는 저 자신의 무위보다 사문의 재건과 사형의 안녕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니 저는 영약이 아닌 사형의 마음만 받겠습니다.”
나는 제발 이거 먹고 떨어지라는 말을 곱게 포장하면서 사형을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내 눈빛을 받은 사형이 고운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
아니 절세의 영약이라니까?
왜 이걸 양보하려고 하는 거지?
아무리 호구라도 그렇지, 보통은 양보하면 못 이기는 척 먹어야 정상이 아닌가?
물론 나는 이런 흉물은 줘도 안 먹을 거다.
안 그래도 중성적인 체형에 여유증까지 있는 사형이 극음의 영약인 미타성수를 취하면, 벌모세수로 근골이 여인처럼 변화하여 여자보다 예쁜 남자인 낭자애로 자라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까지 내가 신경 쓸 필요는 없다. 내가 그런 취향도 아니고. 아무리 여자보다 예쁜 남자일지라도 결국 성별은 남자다. 나는 남색(男色)을 싫어한다.
어쨌거나 전생의 사형도 미타성수를 취했을 테니까.
그렇게 내가 고민하는 사형과 미타성수를 두고 말없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던 그때.
‘저건 뭐지?’
내 시야에 벽면에 돋아 있는 검붉은 이끼가 보였다.
보통 검붉은색이면 죽은 이끼이기 마련인데, 놀랍게도 벽에 있는 검붉은 이끼는 죽기는커녕 정반대로 싱그러울 정도로 활력이 넘치는 생기(生氣)를 머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내 머릿속에 영약 이름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저 이끼 설마······.’
나는 곧바로 한 줌 내공을 소양심법의 경로로 운기(運氣)하면서 기감을 검붉은 이끼를 향해 뻗었다.
허공을 향해 섬세하게 뻗어나간 기감 레이더에 검붉은 이끼에서 솟아나는 뜨거운 기운, 남자의 힘인 양기(陽氣)가 감지되었다.
양기를 품은 검붉은 이끼라니!
틀림없다.
저 이끼야말로 백 년의 세월 동안 양기를 품고 자라난 이끼 형태의 영약, 홍양태(紅陽苔)다!
‘유레카!’
나는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아르키메데스처럼, 홍양태를 발견하고 속으로 유레카를 불렀다.
그래.
초고온의 화산이나 극저온의 북해(北海) 같은 극음지기 또는 극양지기가 지배하는 특수한 환경이 아닌 이상, 대다수 영약은 비율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음과 양의 기운을 동시에 품고 있거나, 아니면 음의 영약과 양의 영약이 같은 장소에 둘 다 자라나는 게 상식이었다.
비록 미타성수보다 한 티어 낮은 영약이고 양도 적어서 내가 홍양태를 지금 취한다고 해서 벌모세수를 이루지는 못하겠지만, 상관없었다.
양기를 품은 영약이라니!
아까 토막 쳐서 뱀탕으로 끓여 먹은 살무사 따위는 트럭으로 갖다줘도 저 홍양태 한 꼬집보다 못할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저 홍양태를 취해서 운기행공을 통해 전부 정력으로 전환하면, 내 정력이 단번에 증강된다는 것이다.
아까 내가 홍양태를 발견하지 못한 이유는 미타성수 같은 쓰레기가 전생에서 사형이 취했던 영약의 정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미타성수가 풍기는 극음의 기운에 홍양태의 양기가 가려져서 기감에 감지가 안 됐기 때문이었다.
모든 상황을 파악한 나는 사형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사형. 사형께서는 미타성수를 취하십시오. 저는 저 벽면에 붙은 홍양태(紅陽苔)를 취하겠습니다.”
아마도 전생의 사형은 미타성수와 홍양태를 동시에 취해 음양(陰陽)의 균형을 맞췄을 것이다.
극음의 영약은 위험하다. 만일 음한기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적인 무림인이 단독으로 미타성수를 취했다가는 음한기공의 고수가 옆에 붙어있지 않는 이상 기혈과 신체가 얼어 죽거나 폐인이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니 양의 영약인 홍양태와 함께 극음의 영약인 미타성수를 취하는 것이 영약 복용의 정석이자 강호 무림의 상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홍양태를 사형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장차 내 창창한 미래를 만들어주고 나 대신 공동파의 재건을 위해 굴러야 할 사형을 폐인으로 만들 생각도 없었다.
언뜻 보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모순적인 상황.
하지만 공교롭게도 전생의 나는 절세의 음한기공인 규화보전을 대성해서 현경의 경지에 오른 음한기공의 절대고수였다.
전생에 얻은 음한기공의 심득과 여기 있는 삼음진결의 구결을 활용해서 사형에게 말로 운공 경로를 지도한다면, 양의 영약인 홍양태 없이도 사형이 안전하게 미타성수의 정기를 온전히 내력으로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그 쓰레기 무공의 지식을 활용할 때가 왔군.’
개똥도 약에 쓰려면 쓸모가 있다더니.
쓰레기 내시 무공을 이런 데서 활용하게 될 줄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사형을 바라보았다.
내 제안을 받은 사형이 잠깐 고민하다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알았어. 사제.”
드디어 사형의 승낙을 얻은 나는 웃었다.
그래, 이래야 회귀해서 독식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