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음양합일의 천재
이철수가 공동파에 입문하고 두 달이 흐른 아침.
공동파 대연무장.
한때 구대문파의 일좌를 차지했던 명문정파의 대연무장답게 수백의 제자가 동시에 수련해도 남을 정도로 거대한 장소.
거기에는 단 세 명만이 있었다.
공동파의 검법을 수련하는 유진휘와 그를 지도하는 전영.
그리고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면서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채로 마보를 수행하는 이철수였다.
“헉, 헉.”
벌써 두 달이 지났지만, 이철수의 얼굴에는 첫날과 비슷하게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를 가르치는 사부인 전영이 이철수가 외공 단련에 익숙해질 때쯤에 모래주머니를 더해서 이철수의 신체를 한계까지 몰아붙였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이철수는 매일매일 육체의 한계까지 외공 단련을 하고 있었다.
전부 기초가 튼실해야 고수가 될 수 있다는 전영의 지론에 의한 수련법이었다.
전영 본인이 입문했을 때 당했던 수련법이기도 했고 말이다.
유진휘의 자세를 봐주던 전영의 시선이 슬쩍 이철수 쪽으로 향했다.
그의 시야에 땀에 푹 젖어서 상체에 달라붙은 낡은 옷을 입은 이철수의 모습이 보였다.
‘신기하군. 철수 나이의 어린아이라면 두 달째 매일 외공 수련만 반복한 지금쯤 불평을 토로할 만도 한데······.’
전영은 내심 살짝 놀란 심정으로 이철수를 바라봤다.
일반적으로 강호 무림에서 외공은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물론 명문정파에서는 기초부터 튼튼히 다지기 위해 내공에 입문하기 전에 토납법과 함께 외공을 지도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초공의 영역에 불과했다.
강호 무림에서 외공은 내공의 보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강호에 철포삼 같은 외공 무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외공만 익힌 무인은 삼류무사나 낭인 취급을 면치 못했다.
실제로 외공으로 상승의 경지에 오르는 건 전설로만 전해지는 금강불괴가 아닌 이상 불가능했다.
외공을 아무리 단련해봤자 일류와 비비는 수준이 고작인, 한계가 정해진 무공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문파에 막 입문한 제자이며 나이가 어릴수록 외공 수행을 등한시하거나, 기초공으로서의 외공 단련에 불평을 내뱉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동경하는 건 천하를 위진시키고 일검에 태산을 가르는, 인간을 초월한 위력을 선보이며 강호 무림을 오시하는 내공의 고수이지 강호에서 삼류 취급받는 외공 단련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내가 내공 배우고 고수 되려고 문파에 입문했지, 이런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신체 단련이나 하려고 문파에 입문한 게 아니라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이었다.
물론 이런 어린 제자들의 사고방식이 틀렸다는 걸 고수들은 잘 알고 있지만, 막 입문한 어린 제자들은 외공보다는 내공을 배워서 고수가 되고 싶어했기에 고수들이 아무리 조언해도 그들에게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기 마련이었다.
문파에 입문하는 어린아이라면 누구나 강호 무림의 영웅을 꿈꾸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당장 나부터가 입문했을 때 외공 단련에 무례하게 불평을 내뱉었으면서 선사(先師)께 내공 사사를 졸랐거늘······.’
다른 누구도 아닌, 복마검객 전영 본인조차 공동파에 입문한 뒤 시작된 혹독한 기초 외공 단련에 불평을 내뱉은 전력이 있었다.
게다가 외공 수련은 지루했다.
내공처럼 영약이라는 지름길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운기조식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내공이 느는 성과를 가시적으로 확인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외공 단련의 성과는 단기가 아닌 중장기에 걸쳐서 서서히 나타나는 형식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외공 수련은 보통 하기 싫어하는 제자들을 사부가 다그치면서 강제로 주입하는 형식으로 진행되기 마련이었다.
전영 본인도 사부에게 입문 시절 기초 외공과 토납법 수련이 지루하다며 빨리 내공을 가르쳐달라고 조르다가 수없이 혼난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이철수는 달랐다.
입문하기 전부터 토납법을 배우고 있었던 것 정도야, 강호의 고수를 동경하는 어린아이라면 종종 있는 사례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지루하고 힘든 외공 단련에 단 한마디의 불평도 하지 않는다는 건 어린아이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어. 철수의 무재는 범재 수준이라 내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거늘······.’
전영의 눈동자가 살짝 떨렸다.
이철수의 근골은 둔재도 수재도 아닌 범재 수준이었다.
뼈를 깎는 노력에 운을 더한다면 일류까지는 간신히 오를 수 있겠지만, 절정 이상은 천운이 더해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자질.
이철수는 소위 말하는 어중간해서 더 불행한 재능의 표본 같은 존재였다.
일대종사의 자질을 지닌 천재 중의 천재인 유진휘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전영은 이철수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가 이철수의 입문을 허락한 것은 어디까지나 유진휘의 훈육에 대한 도우미 역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외공 단련을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견뎌내는 걸 넘어서, 심지어 힘든 와중에도 실실 웃으며 즐기기까지 하는 이철수의 모습을 보면서 전영은 자신의 평가를 수정해야만 했다.
‘자질은 비록 범재지만, 끈기와 노력만큼은 천재의 수준이구나.’
13세 어린아이가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외공 단련을 힘든 얼굴을 하면서도 웃으면서 즐기는 이철수의 모습은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의 눈빛을 볼 때 가끔 전영은 눈동자 너머에서 비치는 광기의 일면을 엿보는 듯해 등골이 섬찟해진 적도 있었다.
‘저런 독기어린 끈기와 노력이라면, 철수는 최소한 일류 이상, 천운(天運)과 기연(奇緣)이 따른다면 절정의 경지를 엿볼 수도 있겠구나.’
당대의 무림에서 일절(一絶)로 꼽히는 절대고수들은 전부 어린 시절부터 비범한 일화를 선보이거나 기초를 튼실히 수행한 경우가 많았다.
이철수가 강호 무림을 오시하는 절대고수들처럼 화경의 경지를 바라볼 정도의 자질은 아니지만, 저만한 독기라면 능히 일류 이상, 절정의 경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허허. 그 정도라면 휘아를 보조하기에는 충분하겠구나. 철수를 입문시키기를 잘했어. 휘아와 철수 모두 공동파의 홍복(洪福)이로군.’
전영은 속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둘째 제자의 재능을 확인한 순간이며, 공동파의 재건 가능성이 상승한 순간이니 안 기쁠 수가 없었다.
“앞으로 한 시진 남았다.”
그는 기쁜 심정을 애써 감추면서 마보 자세를 부동으로 유지하는 이철수의 어깨를 툭하고 치면서 말했다.
“예, 사부님.”
이철수는 불만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답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흐흐흐. 체력도 두 달 전보다는 좋아졌고, 깡말랐던 몸에도 슬슬 근육이 붙는군. 좋았어.’
이대로라면 장차 야성미 넘치는, 여자들에게 인기 많은 몸짱이 될 수 있으리라.
몸짱이 된 미래를 떠올리니 힘든 외공 수련도 그에게는 꿀 같이 달콤했다.
전생에도 외공 수련을 한 적이 있지만, 현생만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그곳이 거세당해 테스토스테론 한 방울 안 나오는 고자였던 이철수로서는 아무리 외공을 단련해봤자 한계가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현대와는 달리 무림에는 모자란 테스토스테론을 보충해줄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같은 것도 없어서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도 그가 현경이라는 지고한 경지에 오를 수 있었던 건, 동창의 고수에게만 전해지는 비전절학인 규화보전(葵花寶典)을 대성했기 때문이었다.
규화보전은 북해빙궁의 빙백신장(氷白神掌), 마교의 소수마공(素手魔功)과도 비견되는 신묘하기 이를 데 없는 최상승의 음한기공(陰寒氣功)이자 황궁무공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로 뛰어난 신공절학이었다.
단 하나.
여자도 남자도 아닌, 오직 고자가 된 남자만 익힐 수 있다는 패널티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전생에는 그딴 걸 배우고 싶어서 자진해서 거세했던 놈도 있었지.’
실제로 절세의 음한기공인 규화보전을 배우기 위해 자진해서 거기를 자르고 동창에 들어온 미친놈도 있었다.
전생에서 사례태감 이철수의 오른팔이었던 동창 장인태감 금태준이 그런 놈이었는데, 고자가 되고도 규화보전을 대성할 수 있다며 좋아하던 그의 모습을 이철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규화보전은 부작용도 심했다. 규화보전은 화후가 깊어질수록 체내에 음기가 쌓여 더 여성스러운 체형으로 변하고 목소리도 사극 내시 목소리처럼 가늘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여간 강호인이라는 놈은 죄다 미친놈들 뿐이야.’
신공절학 배우기 vs. 고자 되기에서 둘 다 선택이라니.
도저히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었다.
이철수는 속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절학은 무슨. 그딴 무공, 줘도 안 배워.’
아무리 무공이 강하면 뭘 하나.
결국 고자가 되어야 익힐 수 있는데.
‘신의(神醫) 이 돌팔이 새끼가······.’
환골탈태를 겪으면 신체가 재구성되는데, 그 과정에서 훼손된 신체가 복원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신의의 한 마디를 철썩 믿었던 본인이 병신이었다.
괜히 애꿎은 동창 놈들만 혹사하고, 중원 전체의 영약을 모은답시고 환경 파괴나 했다.
고자는 환골탈태해도 고자라는 사실을, 이철수는 현경의 경지에 올라서야 깨닫고 분루를 삼켰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거기가 멀쩡히 달린 이상, 규화보전 같은 끔찍한 쓰레기 무공 따위는 익힐 필요 없다.
그런 빌어먹을 무공의 구결 같은 건 잊어버리는 쪽이 백번 낫다.
이철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술을 불끈 깨물면서 외공 수련을 이어갔다.
*
수련이 모두 끝난 뒤.
저녁 상차림까지 끝낸 나는 하루 일과인 젤크 운동을 마쳤다.
나만의 신공절학인 젤크 운동을 행한지 2달이 지난 지금, 내 양물은 2달 전보다 명백히 커진 상황이었다.
‘흐흐흐흐. 이게 섹스지.’
나는 바지춤을 들춰서 아프리카 코끼리를 닮은 커다란 양물을 확인하며 웃음을 흘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복부에는 어느새 식스팩의 윤곽이 잡혀가고 있었다.
아무리 외공을 단련해도 몸짱은커녕 규화보전의 부작용 때문에 음기(陰氣)가 강해져서 호리호리한 하남자 체형으로 변해갔던 전생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틀이 잡혀가는 상남자의 근육을 보면서 나는 웃었다.
하지만 외공 단련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근육만 좋아서는 정력왕이, 색도의 일대종사가 될 수 없다.
여인을 유혹하는 야수 같은 근육도, 강철 같은 대물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무산지몽(巫山之夢)에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건 역시 지구력이다.
내가 장담한 대로 칠주야 동안 주지육림에서 삼처사첩과 조운모우(朝雲暮雨)를 즐기기 위해서는 당연히 오랫동안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지구력이 중요했다.
그리고 지구력을 기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역시 달리기였다.
구보의 효능은 지구력 향상에서 끝나지 않는다.
발기란 무엇인가? 현대 의학에 따르면 발기란 음경 해면체에 흥분 등의 요인으로 혈액이 평소보다 다량 공급되며 발생하는 현상이다.
‘발기력을 증진하려면 심폐 지구력 향상은 필수 코스지.’
그렇다. 이 혈액이 바로 중요 포인트였다.
발기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혈액을 지속적으로 음경 해면체에 공급할 필요가 있었다.
따라서 혈류를 관장하는 기관인 심장의 기능과 심폐 지구력 또한 지속력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인이었다.
튼튼한 심장과 혈관, 순환계로 심폐 지구력을 향상한다면 자연스럽게 정력이 좋아지는 것이다.
소림의 대환단(大還丹)과도 비교되는 현대 의학이 낳은 최고의 영단(靈丹), 고개 숙인 남자의 자존심을 되찾는 절세영약인 비아그라의 원래 용도가 심장 질환 치료제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높은 심폐 지구력은 곧 높은 지속력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심폐 지구력 단련에는 달리기만한 운동이 없었다.
‘흐흐 그럼 오늘도 미래의 부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달리기 수련을 시작해 볼까?’
꾸준히 달리기를 수련한다면, 언젠가는 스포츠 메이커 광고처럼 달리는 모습만으로 여심을 사로잡을 수도 있으리라.
나는 이제는 내 몸 같은 모래주머니를 팔과 다리에 매단 뒤, 곧바로 공동파 본산 주변을 뛰기 시작했다.
“헉, 헉, 허억······.”
낮에 한계까지 외공 단련, 쉽게 말해서 무산소 운동을 한 탓인지 달린 지 얼마 안 되었는데도 벌써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옆구리가 아파오며 입 안에 단내가 감돌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달밤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케겔 운동까지 병행하면서 계속해서 달렸다.
내가 꿈꾸는 색도(色道)의 일대종사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낮에는 외공 수행, 밤에는 비밀 달리기 수행 및 맨몸 운동.
이것이 내가 지난 두 달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지킨 운동 루틴이었다.
장차 약관의 나이에 완벽한 음양합일의 천재가 되기 위해서, 색골(色骨)의 신체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쉴 수 없었다.
그렇게 내가 공동파 본산을 두 바퀴 째 돌고 있던 그때.
공동파 산문에서 나는 익숙한 누군가를 맞이했다.
“사제? 지금 안 자고 뭐 해?”
달빛을 받으며 서 있는, 송옥과 반안을 합친 절정의 미모를 지닌 미소년.
빌어먹을 사형 유진휘가 산문에서 나를 바라보며 눈을 크게 하고 있었다.
주륵.
등 뒤에 식은땀이 흘렀다.
아니.
저 인간이 왜 여기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