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몸이 좋은 남자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쭈뼛쭈뼛 멋쩍은 표정을 지은 사형이 있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하자 살짝 눈을 내리까는 사형.
아궁이에서 올라오는 열기 때문인지 사형의 뺨이 붉어져 있다.
안 그래도 남자치고는 선이 고운 중성적인 미모에 중성적인 체형인 사형이 저러고 있으니 더 열받는다.
혈액 순환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왜 저렇게 홍조가 심하지?
설마 진짜 본 건가?
등골이 섬찟하다.
그와 나 사이에 수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
타닥타닥.
아궁이에서 장작 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식사는 내가 차릴게! 사제는 쉬어도 괜찮아!”
사형이 내게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저렇게 머뭇거리나 했더니, 그 말이었나?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아까 못 본 게 틀림없다.
아무튼 식사는 자기가 준비한다니.
매사에 공명정대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항상 협(俠)을 행하고 다녔다던 일대 협객이며 모든 강호인의 대협, 강호제일협객이라 불렸던 유진휘다운 말이었다.
사형의 눈이 아궁이의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골치가 아프다.
당연히 사형의 제안을 수락해서는 안 된다.
나는 어쨌거나 지금은 공동파의 막내.
막내가 해야 할 일을 사형에게 떠넘기는 건 있을 수 없다.
배분이라는 이름의 짬대결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는, 대한민국 군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험하고 무정하며 부조리가 판치는 풍진강호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물론 호구 사형이야 순수한 선의로 제안한 거겠지만, 그래서 더 문제다.
전생에 입수한 복마검객 전영의 성격은 실로 고지식하고 고리타분한, 그림으로 그린 듯한 명문정파인 그 자체.
한 마디로 꼰대였다.
그런데 내가 저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사형을 시키고 난 쉬고 있으면 그 꼬장꼬장한 사부가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사문의 위계질서가 무너졌다고 생각할 거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앞으로 이런 잡일은 본파의 막내인 제가 전담할 테니 사형은 쉬셔도 됩니다. 그게 사문의 위계질서를 해치지 않는 일입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했다.
“······알았어. 사제. 그럼 내가 사제를 돕는 건 괜찮은 거지?”
하지만 여전히 물러서지 않는 사형.
아니 놀고먹으라고 하면 보통은 좋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대체 왜 저러지.
스윽.
그가 내 곁에 다가왔다.
예의 들꽃 향기가 코 끝을 스쳤다.
빌어먹을.
대체 왜 남자 몸에서 저런 향기가 나는 거냐고.
계속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기분이 이상해지는 느낌이 들었기에, 나는 그의 몸에서 반 발짝 떨어지면서 말했다.
“그건 괜찮습니다.”
어차피 내가 뭐라 해도 안 물러날 것처럼 보이는 사형이었다.
같이 일하는 정도는 괜찮겠지.
“알았어. 그럼 사제.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 잘 따라 해야 해.”
대체 무슨 시범을 보인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가 밥을 짓는 모습을 보면서 칼과 도마로 산채나물을 다듬었다.
탁탁탁탁.
도마 위에서 나물을 다듬는 내 모습을 본 사형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과거 자취 경험과 동창 말단 요원 시절 야숙 경험을 살려서 능숙하게 나물을 다듬고 반찬을 준비했다.
반찬이라고 해봤자 흔히 잡채라고 불리는 나물볶음과 나물국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우와. 사제. 대단해. 나보다 더 잘하는 거 같아.”
옆에서 밥을 짓고 있던 사형이 내 능숙한 요리 솜씨를 보면서 감탄했다.
“별로 대단한 재주는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조실부모하고 중원을 방랑하면서 익힌 잔재주일 뿐입니다.”
“아, 미안해······. 내가 또 사제의 아픈 기억을······.”
조실부모 이야기를 하자마자 또 위축되는 사형.
저런 모습이 은근히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놀리는 재미?
내가 미쳐가는군.
“괜찮습니다. 이제 다 되었습니다.”
탁탁.
나는 마지막으로 정갈하게 그릇에 반찬을 담아서 상 위에 차린 뒤에 손을 털어냈다.
“나도 다 했어.”
사형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쌀밥을 밥그릇에 담아 상 위에 올렸다.
나는 다 차려진 상을 번쩍 들어올렸다.
꼬르르륵.
꼭두새벽부터 일한 탓인지 위장에서 밥을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헤헤헤.”
뭐가 그렇게 웃긴 건지, 사형이 내 배꼽시계 소리를 듣고 꺄르르 웃었다.
하긴, 어렸을 때는 낙엽 구르는 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절로 나오는 법이다. 그래도 남자 웃음소리는 별로 듣고 싶지 않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형과 함께 사부의 처소인 현천궁으로 향했다.
*
사형과 함께 현천궁으로 가서 사부를 깨운 뒤, 아침 식사를 마치고는 설거지까지 끝낸 뒤에야 나는 마침내 본격적인 무공 수련에 입문할 수 있었다.
“무공은 내공과 외공이 조화로울 때 가장 위력이 강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강한 무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기초적인 신체 능력부터 함양해야 한다. 무공도 결국 몸으로 펼치는 것이니, 같은 경지라면 타고난 신력이 강하고 신체 단련을 잘한 자가 우위에 서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동파의 대연무장.
깨진 청석 바닥 사이로 흙모래가 흩날리는 곳에서, 나는 전영의 무공 강의를 듣고 있었다.
그의 말은 지극히 정론이었다.
내공이 실존하는 중세 무림 세계였지만, 어쨌거나 무공을 사용하는 것도 결국 인간의 몸.
당연히 같은 수준의 무인이라면, 신체 능력이 더 강한 자가 훨씬 유리했다.
똑같은 수준의 무공을 펼치더라도 보통은 평범한 사람보다 근육 돼지가 더 강하고.
그래서 명문이라 불리는 문파에서는 절대로 외공을 경시하지 않는다.
그래도 전생에 고자를 극복하기 위해, 환골탈태하면 거기가 자라나지 않을까 싶어 현경까지 찍어본 나였다.
전영이 강조하는 외공의 중요성 정도는 굳이 말 안 해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내공에 입문하기 전에, 우선 외공 단련을 통해 무공을 익히기 위한 최적의 신체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기초가 튼튼해야 나중에 상승의 경지에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따라서 오늘부터 철수 너는 외공 단련에 들어간다. 우선 마보부터 취하도록.”
전영이 내게 마보 자세를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나는 사부의 지시를 순순히 들으면서 마보 자세를 취했다.
마보 자세.
투명 의자 비슷한 자세인데 현재 내공이 전혀 없는 어린아이의 신체를 지닌 나로서는 오래 유지하기 힘든 자세기도 했다.
마보 자세를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팔다리가 떨렸다.
“그럼 나는 네 사형을 지도할 테니 요령 피우지 말도록. 요령 피우면 요령 피운 만큼 마보 시간을 늘리겠다.”
전영이 그렇게 말하면서 등을 돌렸다.
그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나는 요령을 피울 생각이 없었다.
외공 단련이 모든 무공의 기초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물론 무공이 강해지면 좋지만, 전생에 현경까지 도달해본 나였기에 이런 외공 수련 없이도 나는 충분히 상승의 경지에 도달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이런 무식한 외공 수련을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몸이 좋은 남자는 인기가 좋다!’
이 세계에는 현대 의학의 최상승 절학인 성형수술이 없다.
따라서 사형 유진휘와 비교했을 때 현저히 떨어지는 내 얼굴을 고칠 방법도 없었다.
역용술이나 인피면구 같은 변장술이 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전부 일시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이 빌어먹을 얼굴은 중세 무림에서는 절대 고칠 수 없는 천형(天刑)인 셈이다.
지금 이 얼굴로는 안 된다.
심지어 나 혼자라면 모를까, 내 옆에는 사형이 있지 않은가?
장차 미래에 너무 잘생겨서 여난(女難)을 피하려고 얼굴을 그물망 달린 삿갓으로 가리고 다니던, 기개가 헌앙하고 얼굴이 관옥과도 같은 절세의 미남자 말이다.
그런 사형 옆에 있다면, 설사 내가 강호의 영웅이 되더라도 미녀들이 나는 쳐다도 안 볼 끔찍한 가능성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지.’
말 그대로 한 번 죽은 뒤에야 되찾은 남자의 삶이었다.
전생과는 달리 하반신도 멀쩡한데, 사형 때문에 독수공방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태어난 얼굴을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남은 건 신체 단련뿐이었다.
어떻게 해도 고칠 수 없는 얼굴과는 달리, 근육은 내 노력 여하에 따라 충분히 기를 수 있었다.
자고로 근육 싫어하는 여자는 없었다.
초콜릿 같은 복근! 남자가 봐도 감탄할 정도로 우람하고 탐스러운 근육을 길러 몸짱으로 거듭난다면.
그렇게 거칠고 야성적인 매력을 지닌 짐승남으로 거듭난다면.
그렇다면 강호의 여인들 역시 내 탄탄한 근육에 반해 내게 구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게다가 검성 유진휘는 전생에서도 남자답지 않게 중성적이고 호리호리한 체형이었다.
물론 얼굴이 치트키 수준이기는 했지만, 어쨌건 내가 남자답게 우람한 근육을 만든다면 그와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머릿속에 근육을 단련해서 몸짱 알파메일이 된 미래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 이 공자! 이 탄탄한 근육은······!’
‘호호호호! 이 공자! 몸이 정말로 탄탄하군요!’
‘유 공자도 좋지만, 저는 이 공자의 탄탄한 몸이 좀 더 취향이어요.’
우람한 가슴과 복근을 보며 눈을 빛내고 얼굴을 붉히는 절세미녀들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게다가 몸짱의 효용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우수한 신체 능력은 곧 우수한 정력으로 직결된다.
운우지락을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신체부터 튼튼해야 하는 셈이다.
단순히 그곳만 커서는 안 된다.
체력이 좋아야 침대 위에서 오래도록 여인을 즐겁게 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내 궁극적인 야망인 삼처사첩과의 운우지락과 주지육림을 위해서라도 외공 단련은 필수였다.
‘게다가 마보의 효능은 거기서 끝이 아니지.’
중세 무림에서 말하는 마보(馬步)는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하체 트레이닝이었다.
그리고 운우지락에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튼튼한 하체와 허리였다.
하체와 허리가 튼튼할수록 침대 위에서의 체력이 덩달아 늘어나서 오래 사랑을 나눌 수 있다. 거기에 남성 호르몬의 생산이 촉진되어 정력까지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꾸준히 마보로 하체와 허리, 기초 체력을 단련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는 궁극의 색도에 도달할 수 있는 지름길인 셈이었다.
색도는 일조일석(一朝一夕)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니 나에게는 마보가 곧 신공절학이나 마찬가지였다.
“흐흐흐흐흐······.”
줄줄줄.
마보 자세를 오래 취해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고 다리가 덜덜 떨리고 힘든 나였지만, 입가에는 미소가 절로 떠올랐다.
비록 몸은 힘들지만, 마음만큼은 이미 알파메일 짐승남이 된 기분이었다.
오늘의 단련이 내일의 몸짱과 정력왕으로 이어진다면.
그렇다면 이것보다 더 혹독한 외공 수련도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다.
지금의 내게 내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런 건 내 머릿속에 있는 미래의 영약 정보를 사용해서 충분히 보충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외공 단련에는 영약 같은 게 없었다.
오로지 꾸준한 단련뿐이었다.
난 미친놈처럼 웃으면서 마보를 포함해서 사부가 시키는 각종 외공 훈련 코스를 군말없이 충실히 소화했다.
물론 외공 단련 와중에도 케겔 운동을 병행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외공 훈련이 끝난 뒤.
입 안에서는 단내가 나고 현기증이 치밀어 시야가 가물가물하고 근육은 비명을 지르고 온몸이 얻어맞은 듯 쑤셨다. 하지만 정신은 날아갈 듯 기뻤다.
이렇게 꾸준히 외공을 수련해서 알파메일이 된 미래를 떠올리니 없던 힘도 절로 솟아올랐다.
그렇게 공동파에 입문해서 외공 훈련을 시작한 지 2개월이라는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