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뜨거운 남자의 교류
더럽게 잘생긴 사형이라는 작자와 인사를 나눈 나는 전영에게서 공동파의 규율과 주의사항에 대해서 안내받았다.
“우리 공동파는 공동산에 자리하고 있는 문파로서 조사이신 광성자께서 상고시대에 창건하셨으며 이후 당나라 시절 중시조인 교성진인 비홍자께서······.”
전영의 기나긴 말을 요약하자면 간단했다.
공동파는 철저한 도가 문파였다가 당나라 시절 공동파의 중시조(中始祖)인 13대 장문인 교성진인(敎成眞人) 비홍자(飛虹子) 대부터 공동산에 존재하던 다른 유파들을 흡수통합하면서 유불선(儒佛仙)의 삼교 무학을 본산 절학에 통합하여 삼교합일(三敎合一)로 공동파를 부흥하였고, 속가에 문호를 개방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사실 공동파에서 개파조사로 섬기는 광성자(廣成子)는 삼황오제 신화 속 인물이라 진짜 조사가 아닐 확률이 높았다.
어디까지나 우리 문파가 이렇게 역사가 깊다고 내세우는 용도였다.
뭐 전근대 시절에 이런 식으로 전설을 진짜처럼 부풀려서 족보 늘리기를 하는 건 흔한 일이다.
당장 고려 태조 왕건도 정통성 강화를 위해 자기 증조할아버지인 작제건이 사실 당나라 황제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설화를 만들어서 족보 늘리기를 하지 않았던가?
공동파의 진짜 개파조사는 중시조라고 알려진 13대 장문인 비홍자일 가능성이 높았다.
아무튼 원래 도문이었지만 13대 장문인부터 도가를 중심으로 유불선의 삼교 무공이 합쳐지면서 사실상 속가 문파가 된 만큼, 일반적인 도문과는 기풍이 달랐다.
게다가 몰락한 지금은 도가인지 속가인지 별 의미가 없어진 모양이다.
하긴 구성원이 2명밖에 없는데 구분하기도 좀 그렇다.
공동파의 특징이라면 사마외도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
사마외도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
이러한 공동파가 추구하는 협(俠)의 정신은 공동파의 진산절기인 복마검법을 포함한 공동파 무공 전반에서 나타났다.
공동파의 무학이 일반적인 정종의 무학과는 다르게 사마외도의 무공으로 착각될 정도로 궤이막측(詭異莫測)하면서도 실전적인 초식을 지닌 이유도 그것 때문.
실전적인 무학 때문에 마교에 의해 몰락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동파는 점창파와 함께 군문에 입문하는 제자들도 많았으며, 황궁과 무학 교류도 잦았다.
‘황궁무고에도 공동파의 절학이 있었지.’
황궁무고를 책임지던 건 금의위였기에, 전생의 유진휘는 금의위 도독과 교류하며 황궁무고에서 공동파의 비급 사본을 얻어가기도 했다.
유진휘 생각하니까 또 빡친다.
그렇게 잘생긴 줄 알았으면 공동파로 안 오는 건데.
후회스럽지만 어쩔 수 없다.
공동파에 입문한 내 선택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그러니 나는 최대한 유진휘를 이용해서 강호의 영웅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야 삼처사첩과 운우지락을 이룰 수 있으니까.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이야기를 끝낸 전영은 장문인의 처소인 현천궁으로 돌아갔고, 나는 사형인 유진휘와 함께 제자들의 거처로 쓰이는 전각인 청운각(靑雲閣)에 도착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사형과 함께 청운각 툇마루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었다.
옆을 보자 유진휘의 모습이 보인다.
내 시선을 느낀 유진휘가 이쪽을 바라본다.
“사제. 뭐 궁금한 거 있어? 사부님 말씀, 이해 안 가는 거 있으면 내가 다시 설명해줄게.”
그가 사람 좋은 미소를 배시시 짓는다.
시간은 한밤중.
하필 보름달이 뜬 밤. 밝은 달빛을 받은 유진휘의 잘생긴 얼굴은 문자 그대로 자체발광하고 있었다.
상식을 초월한 잘생김이라면 사람 얼굴에서 진짜로 빛이 날 수도 있구나.
아직 성인이 안 된, 나와 비슷한 또래 소년인데도 저 정도로 잘생겼다니.
진짜 오징어가 된 기분이었다.
내 외모가 유진휘의 반만 닮았더라면.
그렇다면 굳이 강호의 영웅이 될 필요도 없이 얼굴 하나만으로 절세미녀들을 데리고 삼처사첩과 주지육림의 생활을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강호의 영웅이란 내게는 영웅호색을 최대한 빠르게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었다.
욕이 절로 나온다.
역시 세상은 불공평하다.
나는 뼈 빠지게 협행해도 절세미녀가 내게 웃어 줄까 말까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형이라는 인간은 그냥 가만히 앉아서 웃고만 있어도 절세미녀들이 앞다투어 품에 안기려 달려들 것 아닌가?
이런 개 같은 외모지상주의 세상 같으니.
“왜 아무 말도 없어. 어색해서 그래? 형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
유진휘가 씨익 웃으면서 내게 다가와 어깨동무를 했다.
어깨와 목에 두른 그의 팔뚝과 손에서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한 체온이 느껴졌다.
거기에 알 수 없는 들꽃 향기까지.
얼굴만 더럽게 잘생긴 게 아니라, 손까지 미인의 섬섬옥수와 같다니.
게다가 남자의 몸에서 달콤한 들꽃 향기라고?
환관은 후각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고환과 음경을 모두 제거한 거세 수술의 부작용 때문에 늘 요실금처럼 소변을 조금씩 지리는 게 일상이라 지린내를 가리려고 항상 향낭(香囊)을 차고 다닐 정도이기 때문이었다.
50년이 넘는 환관 생활 덕분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내 후각에 걸린 사형의 들꽃 향기는 더없이 향기로우며 달콤했다.
그래서 더 엿 같았다.
거기는 무조건 3cm여야 한다.
그런데 잠깐.
어깨동무라고?
나는 화들짝 놀라서 유진휘에게서 손을 빼냈다.
“이, 이게 무슨 짓입니까! 사형!”
여자도 아닌 남자.
그것도 잘생긴 남자의 어깨동무?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등을 적신다.
나는 황급히 유진휘와 어깨동무를 풀고 떨어졌다.
머릿속에서 유진휘에 대한 잊고 있던 정보가 떠올랐다.
공동파가 낳은 희대의 기린아이자, 백도제일인이었던 검성 유진휘.
그는 송옥과 반안을 뛰어넘을 정도의 미남자였고, 그를 먼 발치에서나마 봤던 모든 여인은 그를 흠모하여 상사병으로 가슴을 앓았다. 하지만 정작 유진휘 본인은 여인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공동파를 재건하고, 천하제일검에 등극한 뒤에도 유진휘는 혼인을 하지 않았다. 하다못해 정인을 두지도, 여인을 품지도 않았다.
그렇다.
유진휘는 그 잘생긴 얼굴을 가지고 평생 솔로로 지낸 것이다.
세간에서는 유진휘가 여색보다 사문과 무(武)를 더 중시해서 그런 거라고 했다. 하지만 사실 그게 아니라면.
유진휘가······. 사실은 여자 자체에 관심이 없던 거라면?
‘이 새끼, 설마 게이는 아니겠지?’
유진휘가 만약 여자가 아닌 남자에게 관심이 있었던 거라면?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환관은 고자라서 여인과 운우지락을 즐길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환관들이 성생활을 아예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양물은 잘렸지만, 뒤쪽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래서 환관들 중에서는 성욕 해소를 위해 남색이라는 금단의 길을 걷는 미친놈들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 한번 해보면 여자랑 하는 것보다 더 좋다고 나에게 권유하는 또라이도 있었다.
그런 끔찍한 말을 지껄인 인간은 내가 빡쳐서 귀양 보내버렸지만.
하고 싶어 미쳐버린 나머지 색욕에 본인의 영혼까지 팔아버린 셈이었다.
나는 남색이 싫었다.
내가 원하는 건 절세미녀와의 달콤하고 포근한 운우지락이었지 남자들끼리의 끔찍하고 땀내 나는 전우애가 아니었다.
‘나는 게이가 아니야!’
그래서 나는 금단의 길을 배척했다.
감히 단어를 말하는 것조차 꺼려지는 끔찍한 짓을 하느니 차라리 고자인 채로 사는 게 훨씬 나았다.
하물며 지금은 고자도 아니었다.
기껏 양물을 되찾았는데 게이라고?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유진휘가 너무나 완벽했기에 거기가 3cm이길 바라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내 엉덩이를 노리는 게이가 되길 바란 건 아니었다.
설마, 아니지? 아닌 거지?
“사제, 왜 그래? 나는 사제랑 친형제처럼 지내고 싶은데. 사제는 그게 별로야?”
유진휘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린다.
그의 긴 속눈썹이 흔들린다.
유진휘가 우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면서 어깨를 파르르 떤다.
여인이라면 미남이 슬퍼하는 모습조차 멋있다며 탄성을 터뜨릴 정도의, 한 폭의 화보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게이가 내 뒤를 노리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싫다고 답하면 안 됐다.
미우나 고우나 나는 이미 공동파에 입문한 상황.
그를 이용해서 명성을 얻고, 나아가 삼처사첩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놈과 친하게 지내야 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사형. 제가 어떻게 사형을 싫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오해는 슬픕니다.”
나는 50년 황궁 생활에서 우러나오는 표정 연기로 어린아이의 표정과 거짓 눈물을 짜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그와의 어깨동무를 풀고 떨어졌다.
다 좋은데 우리 떨어져서 이야기하자. 제발.
“미안해. 사제. 울지마. 하지만 사제가 아까 내 어깨동무를 뿌리치길래······. 사형제끼리 어깨동무는 당연히 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스윽.
유진휘가 사과하면서 내게 다가왔다.
그의 몸에서 은은한 들꽃 향기가 또 풍겼다.
으윽.
“그것은······. 제가 낯선 사람과의 접촉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 사형과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랬습니다.”
나는 자연스럽게 변명했다.
“아, 미안해. 사제. 내가 너무 들뜬 것 같네. 사형제가 생겼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서 그랬어.”
내 말에 살짝 어깨를 늘어뜨리는 유진휘.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표정이다.
아까부터 지나치게 사과만 하는 모습이 좀 그렇다.
유진휘와 너무 깊게 지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일단 추후 그의 명성을 빌리려면 어느 정도 친분은 유지해야 한다.
유진휘는 착하지만, 너무 몰아세우는 것도 좋지 않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한계치는 있다.
계속 몰아세우면 본인도 모르게 앙금이 쌓이는 법.
보통 그런 사람들은 선을 넘기 전까지는 아무리 심하게 대해도 바보처럼 참으면서 계속 잘해주다가 앙금과 감정이 계속 쌓여 선을 넘어버리면 하루아침에 태도가 돌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볼 때는 유진휘가 딱 그런 성격이었다.
그러니 여기서는 일단 나도 한발 물러서야 했다.
나도 모르는 업보 적금을 쌓기 전에.
“괜찮습니다. 사형. 저야말로 미안합니다. 갑자기 과민 반응을 해버려서.”
“아, 아니야! 사제. 내가 더 미안한걸. 미안해.”
내 말에 화들짝 놀라며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연신 도리도리하는 재차 사과하는 유진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괜찮습니다. 그럼 사형. 밤도 깊었고 하니 저는 이만 먼저 침소에 들겠습니다.”
나는 툇마루에서 일어났다.
망해 가는 문파라 기대도 안 했지만, 전영은 의외로 나와 유진휘의 방을 따로 배정해줬다.
나야 좋지.
개인실도 생기고 말이야.
안 그래도 남자랑 같이 방 쓰는 건 군대 느낌이 나서 꺼려지던 참이었다.
두 번째 삶에서 남자랑 같이 방을 쓴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나와 한 침대를 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여자, 경국지색의 미녀뿐이다.
나는 내 방문을 열면서 유진휘에게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사형.”
“그래. 사제도 좋은 밤 보내.”
드르륵, 탁.
유진휘의 인사를 들으면서 나는 미닫이문을 닫았다.
컴컴해진 방안, 나는 낡은 이부자리 안에 들어가 누웠다.
그와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이상, 그 이하도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이 된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엉덩이를 만졌다.
그것만큼은 절대 죽어도 안 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먼저 화로에 따뜻하게 데워뒀던 헝겊을 바지춤에 집어넣어 양물을 데웠다.
그리고 잠시간 시간이 지난 뒤에 봇짐 속에서 기름통을 꺼내 손에 발랐다.
미래의 운우지락과 주지육림, 삼처사첩을 위해.
케겔 운동에 이어 현대 의학이 낳은 또 하나의 광세절학인 비수술적 음경 확대술, 젤크 운동을 할 시간이었다.
나는 기름으로 미끌미끌해진 손바닥을 바지춤에 집어 넣었다.
내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
사제가 침소에 들어간 이후.
유진휘는 달이 밝은 진천각의 툇마루에 홀로 남겨졌다.
“후우.”
유진휘가 가슴을 두드리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축골공과 역용술로 여인의 몸이 아닌 간신히 중성적으로 보이는 호리호리한 사내의 체형을 갖췄지만, 축골공으로도 봉곳 튀어나온 가슴을 전부 가리기 힘들었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 가슴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렇기에 가슴이 물리적으로 답답했다.
하지만 지금은 심리적으로도 답답했다.
“사제한테 실례해버렸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유진휘는 단 한 번도 자신 또래의 소년과 친분을 나눠본 적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천애고아.
아버지 역할은 사부인 전영이 대신했지만, 그녀와 같은 또래의 교감을 나누며 함께 성장할 형제는 없었다.
그렇기에 사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순수하게 설렜다.
그녀는 사제가, 동생이, 단 둘뿐인 공동파에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이 마냥 기뻤다.
그래서였다.
처음 생긴 사제와 친해지려고 필요 이상으로 다가간 건.
“······.”
유진휘는 붉어진 얼굴로 마른 세수를 했다.
사제의 지적대로 그건 실수였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다.
그렇기에 사과했다.
“그런데 오히려 거꾸로 사과받아 버리다니······.”
잘못한 건 나인데.
유진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손가락을 꼼지락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자신에게 도리어 사과하던 사제의 모습이 떠올랐다.
유진휘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사제는 좋은 사람이군.”
하긴, 친아버지나 마찬가지인 사부님이 데려온 사제였다.
사부님께서 제자로 들인 사제가 나쁜 사람일 리가 없다.
그러니까 오늘의 실례도 만회할 겸, 앞으로 착한 사제에게 사형으로서 더 잘해줘야지.
“좋아. 앞으로 목표는······.”
사제와 어깨동무할 정도로 친해지기.
유진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배시시 웃으며 오른손을 꼼지락거렸다.
사제의 체온이 아직 오른손에 남아 있는 기분.
난생처음 해본 어깨동무는 좋았다.
싫지 않다. 또 하고 싶다.
다른 문파에서 사형제들끼리 나누는 뜨거운 남자의 교류를 사형제도 친형제도 없이 홀로 자란 유진휘는 동경했다.
유진휘는, 아니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었다.
휘잉.
공동산의 바람 한 줄기가 유진휘의 몸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