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4. 환웅 (2) (84/85)


84. 환웅 (2)
2023.08.1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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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이 환웅을 찬양하는 건 아니었다.

“이런 힘이 있으면서 왜 그동안은 모르는 척한 거지?”

“괴물을 못 들어오게 할 힘이 있다는 건, 그동안 괴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설마 혼자 살려고 한 건가?”

“지금도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네. 신시를 내려다보면서 괴물이 저렇게 많아질 때까지 뭘 한 거야?”

“제하한테 현상금을 걸 시간에 괴물한테 현상금을 걸었어야 하는 거 아냐?”

환웅을 찬양하는 무리와 환웅을 의심하는 무리 사이에 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을 때였다.

쿠콰콰카카카카-!

땅이 진동했다.

무언가 지하에서 지상으로 솟구치듯 강하게 격동했다.

안전한 줄 알고 마음을 놓고 있던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그러다가 부지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은 괴물에게 꿰뚫려 죽었다.

소동 속에서 이살 타워 바로 앞의 땅이 폭발하듯 솟구치며,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평범한 인간들은 보지 못했지만, 그쪽을 주시하고 있던 범 사냥꾼들과 범들은 똑똑히 보았다.

환웅, 그리고 그 손에 잡혀 있는 후포.

“크르르르.”

주군이 잡힌 모습에 범들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가까이에 있던 인간들이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범들이 지금껏 인간들을 도와서 여기까지 온 걸 알면서도, 범들을 향한 공포는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환웅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힘없는 미물이란 이토록 연약하다.

아주 작은 바람만 불어도 덧없이 흔들린다.

환웅은 그토록 약했던 때의 제 모습을 똑똑히 기억했다. 그때 환웅을 보던 범족과 곰족들의 눈빛도.

경멸과 동정심, 짜증과 불쌍함, 조롱…… 그런 것들이 담긴 눈빛. 두 번 다시는 받고 싶지도 않고, 받을 일도 없는 눈빛.

범족이 싫고 곰족이 싫었다.

타배의 손길조차 깔보는 것 같아서 역겨웠다.

역겨운 것들이 서로 의심하고 죽이는 모습을 보는 게 좋았다.

태어날 때부터 강한 힘을 가졌다는 이유로 자기들끼리 뭉쳐서 사이좋게 지내던 것들이 서로를 향해 증오를 품고 싸우는 게 좋았다.

그렇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게 참으로 즐거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랬다.

제일 역겨웠던 타배는 죽었지만, 후포는 살아남아서 지금 환웅의 손에 잡혀 있었다.

타배가 죽을 때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환웅은 똑똑히 기억한다.

자신이 지켜줬던 눈송이가 어느새 저보다 강해져서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그 절망 어린 표정.

후포 또한 그러한 표정을 지으며 죽게 해주고 싶었다.

자기가 지켜주려던 인간들의 손에 맞아 죽으면, 그때의 타배와 같은 표정을 지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진동에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은 땅이 더 이상 요동치지 않자 다시 움직임을 멈춘 후였다.

“여러분.”

환웅의 목소리는 크지 않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의 귀에 똑똑히 박혔다.

환웅은 은근하게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휘말려 들게 하는 능력.

사람들의 시선이 환웅에게로 향했다.

이제는 그 자리에 있던 인간들도 환웅이 커다란 흑범을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자의 이름은 후포랍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친구를 사정없이 먹어치운 범들의 대장이지요. 그리고…….”

환웅이 부채로 저 멀리 있는 괴물들을 가리켰다.

“저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주인이랍니다.”

환웅의 목소리는 아무 능력 없는 인간들의 뇌를 뒤흔들었다.

하지만 범 사냥꾼들이나 범들에게까지는 통하지 않았다.

많은 괴물을 만들어내느라 전보다 힘이 약해져서 고대의 힘 일부를 갖고 있는 존재들까지 현혹시킬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인간들 사이에 불온한 분위기가 번지자 범 사냥꾼들과 범들은 불안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너무 무섭지 않나요?”

환웅이 후포를 집어던졌다.

여기저기 상처 입은 후포가 인간들 사이에 떨어졌다.

“얼른 죽여버려요.”

제정신이었다면 인간들은 후포를 죽일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범이라는 것만으로도 두려운데 괴물의 주인이기까지 하니까.

하지만 환웅의 음성이 뇌를 파고들어 실처럼 엉킨 인간들은 그저 한 가지 생각만 할 수 있었다.

‘저걸 죽이면 평화를 되찾을 수 있어!’

“우, 우와아아아아!”

“으아아!”

인간들이 괴성을 지르며 후포를 향해 달려들었다.

“크허어어엉!”

“그만둬!”

범들이 포효하며 인간들을 밀치고 후포를 향해 달려갔다.

“범이다! 이쪽에도 범이 있다!”

“죽여! 다 죽여버려!”

인간들은 더 이상 범의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분노와 증오, 울분이 새까맣게 차올라 그저 범을 모조리 죽여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도망치는 와중에 무기를 챙겨나온 인간들은 후포를 찌르고, 후포를 구하려 하는 범들을 공격했다.

범들의 발톱이 예리하게 빛나는 걸 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발톱에 팔이 찢겨도, 옆에 있던 인간이 저 멀리 날아가도 불에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범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길!”

인간을 죽일 수도, 그렇다고 범들을 죽일 수도 없어서 망설이던 동철이 무기를 쥐고 달려나갔다.

동철은 총 손잡이로 인간들의 뒤통수를 가격해 쓰러뜨리며 외쳤다.

“정신 차려! 누가 봐도 저 자식이 수상하잖아! 정신 차리라고!”

“다들 정신 차려! 범은 적이 아니야!”

다른 범 사냥꾼들도 동철처럼 인간들을 후려치고 밀쳐내면서 외쳤다.

하지만 이성을 잃은 인간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후포는 바닥에 쓰러져 인간들에게 발길질을 당하고 무기에 찔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국 이렇게 죽는가.’

일어나서 싸운다면 인간들 몇은 죽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죽일 수는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고대의 전쟁에서도 지금도 처절하게 패배했다.

진짜 적을 간파해내는 것이 너무 늦었다.

중간에서 교묘하게 범과 곰을 갈라놓은 환웅의 이간질에 두 번이나 당해버렸다.

여기서 인간을 모조리 죽인들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어차피 저 밖에서 대기 중인 괴물들이 살아남은 쪽을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

후포가 일어나서 인간들을 학살하는 건, 환웅이 원하는 것.

그것을 알기에 후포는 그저 쓰러져 인간들의 공격을 받아냈다.

진짜 적을 눈앞에 두고도 인간과 범과 범 사냥꾼들은 서로와 싸울 수밖에 없었다.

부질없는 피가 흐르고 환웅이 안배한 가짜 혈관이 피를 흡수했다.

지하를 지나가는 가짜 혈관은 또다시 꿀렁거리며 괴물들에게 생명을 나눠주고 있을 터였다.

채앵-!

맑고 날카로운 소리가 후포의 귀를 파고든 건, 한 사내가 든 부엌칼이 후포의 팔을 찔렀을 때였다.

인간들을 막아내고 후포를 구하기 위해 날뛰던 범들도 그 소리를 듣고 움직임을 멈췄다.

그들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향했다.

인왕산.

그곳에서 무언가가 내려오고 있었다.

그때까지도 환웅은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저 검은색 부채를 입가에 대고 미소를 감춘 채 모두를 지켜보고 있었을 뿐.

어느 순간부터 후포와 범들을 죽이려고 날뛰던 인간들이 하나둘씩 움직임을 멈췄다.

반 이상이 싸움을 멈췄을 때에야 환웅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삶의 의지를 내려놓은 듯 쓰러져 있던 후포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것이 환웅의 눈에 들어왔다.

후포의 털이 흩날리며 그의 주위로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뿜어져 나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아무 힘 없던 인간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듯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그곳에서 날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때에야 환웅은 제 발밑을 흐르고 지나가는 힘을 느꼈다.

오래전에 환웅이 제 손으로 부숴버린 신단수의 힘.

환웅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그 힘이 환웅의 신시에 짙게 깔려 있었다.

현혹에서 풀려난 사람들이 모두 환웅을 응시했다.

환웅은 그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저런. 벌써 정신을 차려버렸네요.”

환웅의 입술이 귀까지 찢어졌다.

“하지만 상관없어요.”

환웅이 부채를 들어 올리자, 부지 밖에 모여 있던 괴물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던 가짜 인간들도 제 힘을 드러냈다.

“으아아아!”

“우워어어어!”

인간들은 잃었던 힘을 되찾았지만 아직은 미약했다.

괴물은 너무 많고 너무 강했다.

괴물이 뿜어내는 독에 인간들이 쓰러지고, 괴물의 촉수에 인간들의 육체가 뚫렸다. 목이 베이고 팔이 떨어졌다.

그렇게 흘린 피가 모여 가짜 혈관을 지나가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알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다.

지하에서도 스멀스멀 괴물들이 기어 나왔다.

“미치겠군.”

동철은 제 육체가 전보다 더 강해지고 단단해진 걸 느꼈다.

왜인지 상처를 입어도 금방 나았지만, 괴물을 단숨에 죽이기는 힘들었다.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한 마리를 죽이면, 또 다른 괴물이 그 자리를 채웠다.

범들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지추와 허서, 옥엽 등이 지하에서 막 태어난 괴물들을 죽이며 뚫린 공간을 통해 지상으로 올라왔다.

후포는 부하들과 함께 환웅을 공격하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들에게 가로막혔다.

수많은 인간을 잡아먹어서 인간의 형체를 갖게 된 괴물은, 범 여럿이 함께 달려들어도 죽이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인간 형태의 괴물들이 환웅을 둥글게 둘러싸고 그를 보호하는 한, 환웅에게 도달할 방법이 없었다.

환웅은 느긋하게 부채를 흔들며 눈앞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광경을 눈에 담았다.

콧노래가 절로 나올 만큼 근사한 광경이었다.

환웅은 바로 이런 장면을 원했다.

내 아이들이 버러지 같은 범족과 곰족을 짓밟고 내려다보는 장면.

바로 이 장면을 위해 오랜 시간 살점을 떼어내고 피를 내어주며 공들여 아이들을 키웠다.

저 역겨운 것들을 신시에서 모조리 지우고 나면, 내 아이들이 이 신시를 채우리라.

“그리고 나를 향해 더없는 존경과 애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겠지요.”

환웅이 노래하듯 중얼거렸을 때, 이변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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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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