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3. 환웅 (1) (83/85)


83. 환웅 (1)
2023.08.1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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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포는 환웅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그가 떠들어대는 걸 막진 않았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환웅은 터무니없이 강했다.

상급 범들이 동시에 공격을 하는데도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후포 일행은 지하에 들어와서 알을 깨느라 많은 힘을 소모했기에, 힘을 회복하고 놈의 약점을 찾아낼 시간이 필요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하, 진짜 짜증이 나는데 어쩌겠어? 약한 쪽이 참아야지. 눈송이네, 귀엽네, 그딴 취급을 받아도 참아야지.”

환웅의 약점을 찾기 위해 살펴보던 후포는 ‘눈송이’라는 말에 귀를 쫑긋했다.

눈송이.

언제부터인가 타배가 데리고 다니던 작은 솜뭉치.

“그러다가 죽어가는 놈을 발견했거든. 그걸 먹었더니 커지더라고. 그래서 또 죽어가는 놈을 찾아내서 먹었는데 또 커져요. 커지고 커지고 커지고…….”

중얼거리던 환웅의 모습이 바뀌었다.

이번에도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이었다.

영웅 설.

신시를 구한 영웅. 신시를 위해 앞장서서 적들과 싸운 영웅.

‘하지만 대체 무엇으로부터? 평화로웠던 신시에 적이 있었나?’

거기에 생각이 닿자, 후포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을 느꼈다.

“네놈…… 세뇌를 하는군.”

제 힘을 들켰는데도 놈은 당황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대단하지 않아? 그저 먹는 것만으로도 커지고 강해진다니까? 내가 이렇게나 대단한 존재라는 걸 너희는 꿈에도 몰랐겠지. 알았다면 과연 그렇게나 날 무시했을까?”

“타배는 네게 잘해줬다.”

“잘해줘?”

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내가 그딴 놈에게 귀염을 받고 싶었다고 생각해?”

“…….”

“약한 자를 안타깝게 여기고 동정해주고 귀여워해주고…… 그래, 네놈들 눈에는 그런 타배가 대단히 성숙하고 속 깊고 다정하고 상냥한 놈으로 보였겠지. 역겨워, 아주 역겨워. 단지 강하게 태어났을 뿐이면서 남을 동정하고 우습게 여기고.”

“타배는 널 우습게 여긴 적이 없다.”

“아니.”

촤악-!

뻗어 나온 여러 갈래의 촉수가 순식간에 마로와 옥엽, 그리고 몰래 접근해오던 허서의 복부를 꿰뚫었다.

“헉!”

“크윽!”

부하들의 처참한 모습에 후포가 눈을 부릅떴다.

환웅의 모습으로 돌아온 놈은 여전히 제 손바닥 위에 있는 괴물을 다정하게 응시하고 있었다.

환웅의 등에서 뻗어 나온 촉수가 범들을 매달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범들이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된다는 듯이 요리조리 흔들었다.

“날 우습게 여기는 놈들은 싹 지워버릴 거야. 이 신시는 날 존경하고 경외하고 나만을 사랑하는 내 아이들로만 채워질 거야.”

환웅의 눈동자가 후포에게 향했다.

그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깊은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후포는 오래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예언을 떠올렸다.

무릇 섞인 자와 함께 멸망이 찾아오리라.

털이 비쭉 섰다.

어디를 봐도 환웅을 이길 방법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부하들은 치명상을 입은 채 촉수에 꿰뚫려 흩날리고 있고, 환웅은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으며, 후포는 여전히 환웅의 약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환웅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했다.

“다들 모였나?”

그게 무슨 의미인지 간파하기도 전에, 환웅이 촉수를 흔들어 범들을 내팽개쳤다.

어느새 후포의 눈앞으로 다가온 환웅이 후포의 목을 움켜쥐었다.

후포는 버둥거리며 환웅의 손을 쥐어뜯었지만, 놈의 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환웅의 눈이 가늘어졌다.

“과거가 그립지? 한 번 더 그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줄게.”

“큭…….”

“인간들에게 네가 괴물의 주인이라고 알려줄 거야. 그때는 살아남았지만,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까?”

+++

두두리들은 인왕산에서도 신시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한지 알 수 있었다.

인왕산까지 올라오는 인간들의 절규. 피비린내. 도시 전체를 덮은 붉은 피 안개.

이상한 점은 신시 전역에 흩어져 있던 그들이 점점 한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모여드는 곳은 이살 타워였다.

신시의 어느 곳에 있어도 그 끝을 볼 수 있는 거대하고 높은 이살 타워.

개미 떼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다면 깨닫지 못하겠지만, 멀리서 보니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두두리들은 인간들이 저렇게 이살 타워에 모여도 괜찮은 건지 불안했다.

“가서 그러지 말라고 알려야 하는 거 아냐?”

“우리가 가서 말린다고 듣겠어? 인간들은 우리도 괴물인 줄 알걸. 게다가 인간들을 말리기 전에 우리가 먼저 죽을 거야.”

누군가의 말에 누군가가 대꾸했다.

찢긴 공간으로 사라진 착호는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이 사라진 찢어진 공간 역시 보이지 않게 된 지 오래였다.

다행히 괴물이 인왕산에 나타나지 않아서 무사할 수 있지만, 이 안전이 언제까지 갈지는 미지수였다.

표리는 초조하게 신시를 내려다보다가 일어났다.

“가봐야겠어.”

“어딜 가게!”

“인간들에게 이살 타워에 모이는 건 안 좋은 것 같다고 알려야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마, 표리. 저기 가기 전에 죽을 거야.”

“하지만 모르는 척할 수는 없잖아. 저길 봐. 다들 저기로 모여들고 있어. 인간도, 범도, 괴물도.”

이살 타워를 둘러싼 넓은 부지에 속속들이 모여드는 인간들과 범들. 그리고 그 뒤를 따라오는 괴물들.

“괴물들이 인간들을 저기로 몰아넣는 것 같아.”

“네가 간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인간들을 위해 목숨을 걸 필요는 없다고!”

“하지만 제하는 날…….”

믿어줬어, 라는 말을 하기 전.

째앵-!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는 날카롭기도 하고, 아주 맑기도 했다.

넓게 퍼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균열이 생겼다.

처음에는 아주 가느다란 실 같았던 균열이 점점 벌어지는 광경을, 두두리들은 멍하게 올려다봤다.

그 균열에서 무언가가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것이 두두리들의 발밑을 적시고 지나갔다.

산등성이를 타고 신시로 내려가는 그 힘의 존재를, 두두리들은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그동안 그림자의 세계 저변에 갇혀 있던 고대의 힘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눈이 시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 내리쬐는가 싶더니, 균열이 있던 자리에 착호가 서 있었다.

착호뿐만이 아니었다.

그들의 뒤에는 고대의 전쟁에서 도망쳐 목숨을 구한 수많은 범이 있었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리둥절하기는 두두리 일족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방금 전부터 서서히 차오르는 이 힘은 뭐지?

“제하.”

표리는 가장 앞에 서 있는 제하에게 다가갔다.

제하는 어딘지 모르게 개운한 표정이었다.

제하가 표리를, 그리고 두두리들을 돌아보며 싱긋 웃었다.

신시가 멸망을 앞둔 이때에도 제하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무척이나 청명해서,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술렁거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

“너희 덕분이야.”

제하가 표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어?”

두두리들은 제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착호 일행은 알았다.

그들은 타배가 되어 과거를 유영하며, 전쟁이 벌어지기 전 일곱 종족이 타배에게 축복을 걸어주는 장면을 보았다.

그 탓이었고, 그 덕이었다.

환웅이 만들어낸 괴물은 타배를 죽였으나, 축복받은 타배의 영혼은 소멸하는 대신 일곱 조각으로 나뉘어 세상을 떠돌았다.

자신이 무엇인지도 잊은 채 길고 긴 시간을 떠돌던 영혼 조각은 하나씩, 하나씩 안착해야 할 장소를 찾아냈다.

하나는 범 바위에게로, 나머지 여섯은 인간에게로.

그렇게 타배는 먼 시간을 돌아와 다른 이름으로 또 한 번 신시에 서게 되었다.

하루는 팔짱을 끼고 서서 도포 자락을 흩날리며 신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루가 제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른 일행도 제하를 바라봤다.

그들은 대화를 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제하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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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많은 사람이 죽었지만, 살아남아서 이살 타워 부지에 도착한 사람도 많았다.

이살 타워 부지는 십만 평이 넘었지만, 생존자가 전부 들어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모여들었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괴물을 피할 수만 있다면 도달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이상하지 않아?”

성희가 옆에서 함께 달리던 동철을 보며 물었다.

동철은 뒤를 한 번, 앞을 한 번 살펴본 후에 쓰게 웃었다.

“이상하군. 하지만 어쩌겠나. 일단은 목숨을 구하고 봐야지.”

모두가 한곳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인간들을 따라오던 괴물들 역시 한곳에 모였다.

범 사냥꾼들은 신시에 괴물이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었다.

“도대체 언제 저렇게 많이 생겨난 거지?”

“인간들은 신시에 저런 게 돌아다니는 것도 몰랐던 건가?”

옆에서 달리던 범이 비아냥거리는 말에도, 동철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

사람들을 보호하며 달리던 범 사냥꾼들과 범들도 이살 타워 부지에 들어섰다.

이살 타워 부지에 보호막이라도 설치된 듯 괴물들은 부지 안까지 들어오지 않았지만, 범 사냥꾼들은 이게 다행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인간들은 털썩 주저앉거나 흐느꼈고, 몇몇 사람 사이에서는 이살 타워의 주인을 찬양하는 말이 흘러나왔다.

“환웅 님 덕분이야.”

“저 괴물들이 여기까지는 못 들어와…….”

“환웅 님은 어디 계시는 거지?”

“환웅 님이라면 저 괴물들을 없애줄 수 있을 거야.”

인간들은 몰랐다.

환웅 찬양의 시작이 완벽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한 괴물들에게서 흘러나온 말이라는 것을.

범 사냥꾼들과 범들 또한 생존자들 사이에 괴물이 섞여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저 여기저기서 시작된 환웅 찬양의 물결이 인간들 사이에 퍼져가는 걸 불안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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