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7. 대체 누가? (67/85)


67. 대체 누가?
2023.04.2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실험?

갑자기 웬 실험 타령이지?

의아해하는 범 사냥꾼들을 보며, 제하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 신시에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존재가 있어. 우리는 그걸 괴물이라고 부르지. 저번에 체육관에서 영상을 봤던 사람들은 알겠지만, 큰 놈도 있고, 작은 놈도 있었어. 게다가 굉장히 끔찍하게 생겼고.”

범 사냥꾼들은 제하가 왜 다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 중에서도 그 괴물을 목격한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

목격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이상하지 않아?”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어리둥절해하는 범 사냥꾼들을 향해, 제하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렇게 괴상한 게 이 신시를 돌아다니고, 또 누군가에게 목격을 당하기도 하는데…… 왜 아무도 그 괴물에 대해 떠들어대지 않는 걸까?”

“아……!”

“그러게……”

“그렇구나.”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제하는 소란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했다.

“조금만 신기한 일이 벌어져도, 조금만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인터넷에 올려서 떠들썩해지는 세상이야. 실제로 작년에 범이 나타났을 때도, 인터넷이 떠들썩했지. 범한테 지인이 죽은 사람들이 글을 남기고, 또 어떤 사람들은 범처럼 생긴 인간을 봤는데 범이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다면서 몰래 찍은 사진도 올렸었어. 다들 이렇게 인증을 하고 싶어 하는데, 왜 괴물에 관한 걸 인증하는 사람은 없는 걸까?”

긴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범 사냥꾼이 손을 들었다.

“괴물을 본 사람은 다 죽었으니까?”

“다 죽진 않았잖아. 여기도 괴물을 보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우리는 일반인보다 빠르잖아. 나도 괴물을 목격했는데, 정말 필사적으로 도망쳤거든. 일반인들이 과연 그 괴물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렇게 따져도 이상한 점이 있어.”

도건이 끼어들었다.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신시에 범이 아닌 뭔가가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 내 동생 중에 괴담에 환장한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이 자주 가는 사이트가 하나 있었어. 일반적인 검색으로는 찾을 수 없는 사이트인데…… 그, 뭐라 하더라.”

“딥웹.”

세인이 작은 목소리로 알려줬다.

“아, 그래. 딥웹. 뭐, 음모론에, 귀신 목격담에…… 그런 거 좋아하는 녀석들이 드나드는 곳인데, 이번에 괴물 목격담은 없나 싶어서 들어가 봤거든. 그랬더니…….”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고, 존재해서도 안 될 기괴한 생명체가 신시의 어둠 속을 누비고 다닌다는 글.

범이 아닌 무언가가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글.

“조작 아닐까? 그런 데 모여 있는 놈들, 눈에 띄고 싶어서 조작 글 올리는 경우도 많다던데.”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게…… 딥웹 말고 다른 유명한 커뮤니티 게시판에도, 괴물 목격담이 올라왔었어. 마침 게시물이 올라오는 순간에, 내가 거길 보고 있어서 그 글을 봤거든. 그런데 몇 분도 지나지 않아서 게시글이 삭제되더라고.”

“자기가 올려놓고도 너무 거짓말 같아서 삭제한 거 아닐까?”

도건의 말에 반박하는 범 사냥꾼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녀도 아는 것이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그래서 우리가 실험을 해본 거야.”

세인이 말했다.

“대포폰을 몇 개 구해서, 유명 커뮤니티에 괴물에 관한 글을 올렸어. 영상도 올리고, 영상을 캡처한 사진도 올렸지. 그뿐만이 아니야. 익명으로 기자들에게, 방송국에, 신문사에 영상과 사진을 보냈어. 괴물이 있다, 무시무시한 게 신시에 살고 있다, 뭐 그런 편지랑 같이.”

세인이 범 사냥꾼들을 돌아봤다.

“이 중에서 괴물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이나 TV로 본 사람 있어?”

없었다.

혹시나 있을까 싶어서 서로를 돌아봤지만, 누구 한 명 손을 들지 않았다.

착호가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착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누군가 정보를 막고 있군.”

“대체 누가……?”

“신문사나 방송국까지 좌지우지한다고? 신시에 그럴 만한 사람이…….”

떠오르는 인물이 한 명 있었다.

이살그룹의 환웅

하지만 범 사냥꾼들은 애써 그 생각을 털어냈다.

신시를 위해 많은 걸 베푸는 환웅이 그런 짓을 할 리 없으니까.

환웅은 언제나 신시의 부흥을 가장 우선으로 여겼다.

각종 복지부터 시작해서 신시의 안전까지.

환웅이 없으면 신시가 돌아가지 않을 거란 말이 있을 정도였다.

범이 나타났을 때도, 환웅이 범 사냥꾼들에게 얼마나 많은 지원을 해줬던가.

막판에 현상금을 줄이는 바람에 범 사냥꾼들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기는 했지만, 환웅의 잘못은 아니었다.

현상금이 줄었다 해도 큰돈이기는 했고, 사실 환웅이 현상금을 지원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착호 또한 범 사냥꾼들과 같은 의심을 품었다가 내려놓은 터였다.

이유는 하나.

신시를 그토록 아끼는 환웅이 괴물을 시켜 신시를 엉망으로 만들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의심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다.

그들도 모르는 새에, 의심은 작은 씨앗처럼 그들의 가슴에 깊숙이 박혔다.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제하가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짧은 통화를 마친 제하가 범 사냥꾼들에게 알렸다.

“아까 말했던 무기 제작자가 왔어.”

범 사냥꾼들의 눈에 호기심이 깃들었다.

무기 제작자.

한창 범 사냥이 활발할 때, 거래소가 생겼다.

거래소에서 파는 무기는 평범한 총이나 검도 있었지만, 기이한 힘을 가진 무기도 있었다.

힘을 불어넣으면 긴 검기가 뻗어 나오는 검이나, 표적을 따라가는 총알, 몸 내부에 있는 힘을 순간적으로 강하게 끌어올리는 검 같은 것들.

그런 무기를 만드는 게 누군지 궁금했던 터였다.

잠시 밖에 나갔던 제하가 긴 망토를 걸치고 후드를 깊이 눌러쓴 사람과 함께 돌아왔다.

호리호리하고 마른 체구의 무기 제작자는, 사람들의 시선이 버거운 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괜찮아, 표리.”

이윽고 원래 앉아 있던 자리로 돌아간 제하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제하의 옆자리였던 도건이 옆으로 이동해, 표리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표리는 긴장한 듯 뻣뻣하게 움직여 그 자리에 앉았다.

표리가 어떻게 하냐는 듯 제하를 돌아봤고, 제하는 다시 한번 말했다.

“괜찮아, 표리.”

제하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표리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에 후드를 벗었다.

드러난 모습에, 범 사냥꾼들은 헛숨을 삼켰다.

제하에게서 표리가 인간과 조금 다른 생김새라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까지 다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유독 커다란 눈, 퀭한 볼, 그리고 기묘하게 뒤틀린 긴 손가락.

하지만 묘한 침묵이 내려앉은 시간은 짧았다.

“그래서, 그 녀석이 두두리인가, 뭔가 하는 일족이라고? 신시 지하에 살고?”

동철이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물었다.

그제야 다른 범 사냥꾼들도 정신을 차렸다.

표리의 모습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범도 있고 괴물도 있는 판에 좀 다른 모습이면 어떻단 말인가.

강한 무기만 만들어주면, 외모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응, 표리라고 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표리를 대신해서 제하가 말했다.

“우리가 싸우는 능력을 갖게 된 것처럼, 두두리라는 일족은 무기에 여러 능력을 부여하는 힘을 갖게 됐다는 거지?”

다른 범 사냥꾼이 물었다.

긴장하고 있던 표리는, 범 사냥꾼들의 시선이 착호들을 볼 때와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닫고 용기를 냈다.

아직 뻣뻣한 목을 움직여 고개를 끄덕이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응, 모두가 그런 힘을 갖게 된 건 아니지만…….”

“네 동료 중에 그런 힘을 갖게 된 사람이 몇 명이나 되지?”

“이제 15명 남았어. 더 많았는데 실종됐거든.”

실종이라는 말에, 범 사냥꾼들은 동질감을 느꼈다.

범 사냥꾼 중에도 동료가 실종되어서 이곳에 찾아온 이들이 몇 명 있었기 때문이다.

“무기를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지?”

“처음부터 만들어야 하면 한 달은 걸려. 하지만 갖고 있는 무기를 개조만 하는 거라면 보름으로 충분해.”

“필요한 게 있나?”

“……동료들은 겁에 질려 있어. 장로님은 위험이 사라질 때까지 더는 무기를 만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셨고. 그들을 설득해야 해.”

“그럼 위험을 무릅쓰고 움직일 만한 대가를 치러야겠군.”

그들은 한동안 두두리 일족이 다시 한번 무기를 만들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것이, 무기 제작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무기를 만들 수 있도록 장소를 제공하고, 범 사냥꾼 여러 명이 그 장소를 지키기로 했다.

그 외 필요한 생필품이나 식량 같은 것을 제공하며, 나중에 이 모든 싸움이 끝났을 때, 두두리 일족 전부가 지상에서 터를 잡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기로 했다.

표리는 그저 말로만 하는 약속이 얼마나 부질없는지 알았다.

오래전, 타배도 목숨을 걸고 함께 싸운 다른 종족들을 전부 배신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경험도 못 한 옛날 일 때문에 몸을 사릴 때가 아니야.’

표리는 아까 보았던 괴물들을 떠올렸다.

그 괴물들은 지금 지상에서 인간들을 잡아먹지만, 지상에 있는 것들이 사라지면 나중에는 지하까지 들어올 게 분명하다.

그리고.

‘얘들은 타배가 아니야.’

표리는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착호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얘들은 날 배신하지 않을 거야.’

표리는 마음을 다잡고 말했다.

“내가 동료들을 설득해볼게.”

오랜 세월 등을 돌리고 서로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살아온, 인간과 두두리 일족이 같은 목적을 위해 동맹을 맺었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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