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4. 결의 (1) (64/85)


64. 결의 (1)
2023.04.01.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호랑나비 본부는 7구에 있는 번듯한 건물이었다.

범이 인왕산에서 내려오기 전에는 커피숍과 패밀리 레스토랑 등이 입점해 있었는데, 신시가 혼란스러워지면서 동철이 인수했다고 했다.

“내가 이 근처를 지나다닐 때마다 죽기 전에 이 건물 하나는 갖고 싶었었거든. 그때는 평생 일해도 건물 하나 갖기 힘든 처지였는데, 범 덕분에 나도 건물주가 되었다고 해야 하나?”

동철은 생각보다 말이 많았다.

이곳에 오는 내내 제하는 동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소망을 갖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착호 일행보다 동철에 대해 아는 게 더 많아질 때쯤, 그들은 호랑나비 본부 지하 1층에 도착했다.

“원래 여기에 패밀리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계단이 있는 비상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문은, 아직도 패밀리 레스토랑일 때의 분위기가 남아 있었다.

제하도 이곳에 있던 패밀리 레스토랑에 한 번 와본 적이 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예전에 패밀리 레스토랑은 즐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서 식사를 즐기던 곳이었는데, 이제는 범 사냥꾼들의 본부가 되었다.

그때의 아늑함과 즐거움 같은 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들어가지.”

동철이 문에 손을 가져갔다.

착호는 아직 완전히 동철을 믿는 게 아니기에, 긴장한 채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뭐야? 정말 데려온 거야?”

“와, 착호네. 진짜 왔네?”

“아, 정말 몇 시간을 기다렸는지 알아?”

그 안은 비어 있지 않았다.

얼추 확인해도 50명이 넘는 범 사냥꾼들이 여기저기 늘어지듯 앉아 있다가, 착호가 들어오자 벌떡 일어났다.

착호는 이게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기에, 무기를 단단히 쥐고 동철의 뒤통수와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범 사냥꾼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동철은 긴장한 착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왜? 이놈들이 너희를 공격이라도 할까 봐?”

“의심할 만하잖아. 그동안 한 짓이 있는데.”

“아, 그렇지.”

동철이 쓴웃음을 짓더니, 턱으로 범 사냥꾼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야. 아까도 말했지만, 지금은 우리가 잡아야 하는 게 범이 아니잖아. 하물며 인간은 더더욱 아니고.”

“그럼…… 이 사람들 전부, 그 괴물이 있다는 걸 믿고 온 거라고?”

제하의 질문에 동철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범 사냥꾼들은 말없이 착호를 응시하고 있었다. 착호를 보는 그들의 눈동자는 비장하게 빛났다.

꿀꺽-

제하는 마른침을 삼켰다.

신시에 범이 나타났다.

범과 싸우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이 뒤에서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간신히 범과 화해할 길을 찾았다 생각했더니, 누군가의 이간질 때문에 범에게 쫓겨 고립되는 상황에 처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서 눈앞이 캄캄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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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볼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생긴다.

그런 제하를 보며, 동철이 물었다.

“이제 우리가 뭘 해야 하지?”

+++

표리는 신시의 땅밑을 지나가는 지하수로에서도 한참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길을 따라 내려갔다.

고대에 신시 밖으로 쫓겨났던 두두리 일족이 오랜 시간을 들여서 은밀하게 파낸 길은, 두두리 일족만이 알고 있었다.

마치 개미굴처럼 여기저기로 뻗은 길은, 잘못 들어오면 평생 헤매도 못 빠져나갈 만큼 복잡했다.

어두운 길을 따라서 한참을 내려간 끝에, 표리는 두두리 일족이 살아가는 땅밑 세계에 도착했다.

상당히 넓은 굴에는 고대의 향취를 느끼게 하는 여러 건물이 지어져 있었다.

신시 위에 사는 인간들은, 자신들의 땅 깊은 곳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걸 전혀 모를 것이다.

표리는 잠시 멈춰서 두두리 일족의 마을을 둘러봤다.

‘평소보다 조용하네.’

땅 밑 깊은 곳에서 몰래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범이 신시로 내려오면서 두두리 일족도 위험해진 건 마찬가지였다.

해가 들지 않아 아무것도 나지 않는 지하 세계를 살아가려면, 지상에서 나오는 음식이나 생필품 같은 것들이 필요했다.

평생 햇빛을 받지 않고 살아갈 수도 없기에, 정기적으로 지상에 올라가서 햇볕을 쬐기도 해야만 했다.

지상이 위험하면 지하도 당연히 위험해질 수밖에 없다.

인왕산 범바위의 결계가 깨지면서 흘러나온 힘.

인간들이 고대의 힘을 되찾은 것처럼, 두두리 일족 중에도 고대의 힘을 되찾게 된 자들이 있었다.

옛날처럼 힘이 깃든 무기를 만들 수 있게 된 두두리 일족 중 몇 명은 표리처럼 지상으로 올라가, 비어 있는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던 두두리 일족에게, 지상의 삶은 소망이자 꿈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좋았다.

근사한 무기를 가져다주는 두두리 일족을, 무기상들은 무척이나 반겼다.

많은 돈을 벌었고, 필요한 걸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언젠가는 다른 두두리 일족도 전부 지상에 올라와서, 인간들과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다.

‘하지만 하나둘씩 죽어가기 시작했지.’

지상으로 올라온 두두리 일족들이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그 괴물이 한 짓일 거야.’

표리는 장로의 집으로 향했다.

나이가 지긋한 장로는 혼자 있지 않았다. 한 여자가 장로의 품에 안겨서 울고 있었다.

표리는 그녀가 얼마 전 괴물에게 죽은 친구인 무원의 아내라는 걸 알아봤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표리, 왔느냐.”

“장로님. 저기…….”

무원의 아내는 훌쩍거리며 일어나더니, 표리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장로의 집을 나갔다.

표리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낙화가 슬픔을 이길 수 없는 모양이야. 이제 곧 아이가 태어날 테니 더 그렇겠지.”

장로의 침통한 목소리를 들으며, 표리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무원에게는 임신한 아내가 있었다.

표리는 그런 친구가 괴물에게 잡혀 죽어가는데, 도와주지 못하고 도망쳤다.

간신히 접어뒀던 절망과 죄책감이 가슴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저 때문에…….”

“표리, 너 때문이 아니다.”

“하지만 제가 조금만 용기를 냈어도…….”

“표리.”

장로가 짐짓 엄한 눈빛으로 표리를 응시했다.

“네가 용기를 냈다면 너 또한 그 괴물에게 죽었겠지. 낙화도 널 원망하지 않으니, 너도 네 자신을 원망하지 마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후회를 불러일으킨다.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음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후회와 죄책감.

고개를 푹 숙인 표리에게 장로가 인자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것 아니냐?”

“아…….”

그제야 표리는 친구를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다는 걸 떠올렸다.

그런다고 해서 무원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그의 아이가 살아갈 세상을 지금보다는 낫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무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표리의 말에 장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무기를 만들러 나갔던 두두리들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장로는 일족에게 무기 제작 금지령을 내린 터였다.

적어도 일족을 잡아가는 게 무엇인지 파악할 때까지는 몸을 사리라는 명을 내렸다.

“지금까지 만든 것보다 더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더 많은 힘이 담긴 무기가 필요합니다.”

“표리. 힘이 좀 돌아왔다고 무기를 만들려다가 너무 많은 피해를 입었다. 우리 동족이 몇이나 사라졌는지 아느냐?”

“……사라진 게 아니라 죽었지요.”

표리의 지적에 장로의 표정이 침통하게 가라앉았다.

“그래, 표리. 그래. 믿고 싶지 않지만, 죽었겠지. 그런데도 무기를 만들자고?”

“괴물이 있습니다.”

“우리의 일이 아니다. 범도, 괴물도 전부 저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닥친 위험일 뿐. 우리가 지상을 욕심내지 않는다면, 위험 또한 우리를 피해갈 게다.”

표리의 표정이 굳었다.

가볍게 생각하면, 장로의 말이 옳았다.

지상의 일에 끼어들지 않고 지하에서 조용히 살아갈 때는, 아무 위험도 없었다.

불편하기는 해도, 지상의 햇빛과 풍요로움이 부럽기는 해도, 죽어가는 사람 없이 조용히 살아갈 수 있었다.

어쩌면 괴물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숨죽이고 있는다면, 그들은 두두리 일족이 신시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 인간들만을 죽이고 넘어갈지도.

‘하지만 정말 그럴까?’

장로는 범이 인왕산에서 내려왔을 때도, 동족이 무기를 만들려는 걸 말렸었다.

우리의 일이 아니라고,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줘봐야 인간들은 감사한 줄 모를 거라고, 우리는 지하를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그런 말로 힘을 얻게 된 동족들을 말렸지만, 일족 중에도 아직 지상을 꿈꾸는 젊은이들은 장로의 말을 무시했다.

그리고 반 이상이 죽었다.

‘그때 우리가 장로님 말씀을 들었다면, 아무도 죽지 않고 전처럼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도, 지금도 동족을 죽이는 건 범도, 인간도 아니었다.

동족의 실종은 그들 때문에 벌어진 게 아니다.

표리는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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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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