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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불길한 어둠 (49/85)


49. 불길한 어둠
2022.12.17.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후포가 들어가자,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던 허서가 벌떡 일어나서 달려왔다.

“주군! 대체 어디 계시다가 이제야 나타나시는 겁니까?”

“호들갑 떨지 마라.”

“주군, 이건 호들갑이 아니라 걱정입니다.”

“걱정한다는 놈이 늘어지게 앉아서 TV를 보고 있나?”

“불안하니까 TV라도 본 거죠. 주군이 그 미친 괴물한테 당한 줄로만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미친 괴물이라는 말이 귀에 박혔다.

후포를 끔찍한 상황에 밀어 넣었던 괴물 거미가 떠올랐다.

“거미를 만났나?”

“예? 거미요?”

“괴물을 만난 거 아닌가?”

“괴물……을 만나기는 했는데, 헉! 설마 주군도 괴물을 보신 겁니까?”

후포는 허서의 하얀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다가, 소파에 앉아 있는 하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주군. 왜 저랑 말씀 안 하시고…….”

매달리는 허서의 뒤통수를, 후포는 가볍게 때렸다.

“네놈 말은 항상 중구난방이라서. 설명해라, 하라.”

“동족이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보통 상황이 아닌 것 같아서, 옥엽과 지추도 같이 갔는데…… 거기에서 반의를 씹어먹고 있던 괴물을 발견했습니다.”

반의는 불티를 따르는 갈색 범이었다.

“송충이 같은 몸뚱이에 커다란 인간의 대가리를 가진 놈인데, 독을 사용하더군요. 그 자리에 제하가 있었습니다.”

제하. 또 제하다.

하지만 후포는 감정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제하와 그 일당이 괴물의 힘을 많이 빼놓은 듯했습니다. 그런데도 저희가 괴물을 처리하는 데 상당한 힘이 들었죠. 어쨌든 이겼고, 두개골 반쪽을 갖고 왔는데……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후포는 한숨을 쉬며 소파에 앉았다.

인간이 해준 음식을 먹어서 배가 부르긴 하지만, 체력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괴물과의 싸움에서 크게 다치고 자체적으로 치유하느라 힘을 너무 많이 소진했다.

후포를 살펴본 하라가 눈치 빠르게 말했다.

“주군. 인간이라도 하나 잡아 올까요?”

“아니, 됐다.”

내키지 않았다. 지금 같은 기분으로 먹었다가는 체할 것 같았다.

제하. 괴물. 인간 가족. 따뜻한 음식. 식탁.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 부모의 상냥한 눈빛. 풍래.

그런 것들이 후포의 속을 술렁거리게 만들었다.

“주군도 괴물과 싸우셨습니까?”

허서가 물었다.

“그래.”

“대체…… 뭐죠?”

“글쎄.”

감도 잡히지 않았다.

다만 후포를 술렁이게 만드는 많은 것 아래에서 불길한 예감이 고요히 눈을 뜨고 있었다.

“인간이 만든 걸까요?”

“……그런 것 같지는 않군.”

그것은 생명이지만 생명이 아니었다.

생명이라기에는 너무도 섬뜩한 것이 그것의 안을 채우고 있었다.

“반의는 죽었나?”

“살아는 있습니다. 너무 심하게 당해서 치유하는 데 오래 걸릴 것 같아요.”

“마로와 불티는?”

“……아직 못 찾았습니다.”

“당장 찾아내. 그 녀석들도 괴물을 만났는지 알아야겠다.”

+++

후포가 허서와 하라에게 마로와 불티를 찾아내라고 명령한 그 순간에, 마로와 불티는 괴물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최근 싱숭생숭한 마음도 잠재우고, 인간들을 향한 복수심을 다시 한번 불태우기 위해, 동족을 여러 명을 이끌고 사냥을 나왔다.

목적지는 8구에 있는 교도소.

후포의 방침대로 ‘나쁜 놈’들만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곳에 인간이 많고, 대부분 갇혀 있어서 습격하기 편하기 때문이었다.

단지 그뿐이라고, 불티와 마로는 생각했다.

교도소의 높은 담을 뛰어넘는 건 일도 아니었다.

교도관 몇 명, 경찰 몇 명, 그리고 범 사냥꾼 두 명이 있었지만, 코웃음이 나올 정도로 쉬운 상대였다.

포수를 누른 건지, 중간에 다섯 명 정도 되는 범 사냥꾼이 더 합류했지만 역시 어린애 수준이었다.

범 사냥꾼 중 딱 한 명, 윤미라고 부르는 인간 여자가 유독 강해서 조금 성가시기는 했다.

“죄수들을 풀어줘!”

윤미는 마로를 상대하며, 교도관들을 향해 외쳤다.

“하, 하지만…….”

“지금 저기 가둬 둬봐야 몰살이라고!”

교도관들이 후다닥 건물로 달려가는 걸 보며, 마로는 히죽 웃었다.

‘그래, 살려고 날뛰어라. 너희는 그런 게 어울리지.’

“으아아아! 저게 뭐야?”

동족의 비명이 울려 퍼진 건, 교도관들이 건물 안으로 사라졌을 때였다.

마로가 휙 돌아본 곳에 ‘그것’이 있었다.

마로는 움직임을 멈췄다.

아니,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그랬다.

‘그것’의 경악할 만한 생김새와 위압감에, 그 누구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그것을 쳐다볼 뿐이었다.

인간의 몸통을 가졌으나, 머리는 마치 꽃잎 같았다.

아름다운 꽃이 아닌, 마치 조갯살처럼 물컹거릴 것 같은 재질의 다섯 장의 붉은 꽃잎. 그 꽃잎 한 장, 한 장에 동그란 눈알이 하나씩 박혀 있었다.

꽃잎 사이사이로 튀어나온 촉수들이 꿈틀거렸고, 문어 같은 주둥이 끝의 갈라진 부분에는 뾰족하고 작은 이빨들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3미터쯤 되는 키, 한 손에 네 개뿐인 손가락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다섯 장의 징그러운 꽃잎에 달린 눈동자가 데구루루 굴러 일제히 한 곳을 응시할 때의 숨 막히는 위압감에, 마로는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형.”

불티의 부름에 마로는 정신 차렸다.

저것이 무엇이든, 불길하다.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죽여야만 한다.

“공격해!”

마로는 힘을 끌어 올리며, 범들에게 명령했다.

범들이 일제히 날아오르고, 검은 안개가 해일처럼 일대를 뒤덮었다.

범이 7명이나 되는데도,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괴물은 그저 조용히 서서, 꽃잎 사이사이에 있는 촉수들을 움직여 공격할 뿐인데도, 그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강하고 예리해서 접근하기 힘들었다.

단단하기는 또 얼마나 단단한지, 상급 범인 마로의 발톱으로도 촉수가 잘리지 않았다.

“안개를 거둬. 어차피 통하지도 않는데, 쓸데없는 데에 힘을 낭비하지 마라.”

불티의 명령에 안개가 걷혔다.

범 한 명이 촉수에 꿰여 신음하고 있었다.

타앙-!

뒤에서 총성이 울렸다.

‘제길!’

마로는 욕설을 뇌까렸다.

인간 놈들을 잊고 있었다.

괴물도 버거운데 저놈들까지 상대해야 한다니.

인간 놈들은 범들이 괴물을 상대하는 틈에, 범의 뒤통수를 노릴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마로의 예상과 달리, 총알이 명중한 곳은 괴물의 촉수였다.

타앙- 탕-!

윤미가 총을 연발하며 외쳤다.

“다들 정신 차려! 범들을 엄호해!”

총성이 하늘을 갈랐다.

수십 개의 총알이 범을 꿰고 있는 촉수에 적중했다.

아무리 괴물의 촉수가 단단하다 해도, 사냥꾼의 힘을 담은 총알 전부를 버티지는 못했다.

툭-

촉수가 끊어지고, 범이 풀려났다.

“키에에에에엑!”

괴물이 고통과 분노에 찬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악!”

“우왁! 저, 저, 저게 뭐야? 저게 범이야?”

“으아아, 도, 도망쳐!”

갑작스러운 자유를 얻어서 뛰어나오던 수감자들이, 상상을 벗어난 괴물을 목격하고 혼란에 빠졌다.

“이 새끼들아, 비명 그만 지르고 와서 싸워! 싸우는 거 좋아하잖아!”

윤미가 괴물의 촉수를 피하며 악을 썼다.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촉수가 윤미의 허벅지를 깊이 베었다.

수감자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반이 도망치고, 반이 남았다.

적당한 무기가 없어서 집히는 걸 아무거나 손에 쥐고 괴물을 공격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는 큰 힘이 실려 있지 않았지만, 괴물을 성가시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많은 사람이 죽고, 많은 사람이 다쳤으나, 괴물을 쓰러뜨리는 데 성공했다.

팔다리가 잘렸는데도 끼이이 움직이는 괴물의 목을, 마로가 썩둑 썰어냈다. 징그러운 꽃잎이 파르르 떨다가 움직임을 멈췄다.

마로는 제 몸을 내려다봤다. 괴물이 아무렇게나 휘두르는 촉수에 당해서 여기저기 찢겨나갔다. 깊이 베여 뼈가 드러난 곳도 있었다.

범 7명이 이곳에 왔는데 살아남은 범은 4명뿐이었다. 그조차 한 명은 죽어가고 있었다.

마로는 불티가 죽어가는 범을 챙기는 걸 확인하고 나서, 인간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인간들의 피해는 더 심했다.

60명이 넘는 인간 중 40명가량이 죽고, 그나마 살아 있는 인간들은 숨만 간신히 붙어 있는 상태였다.

마로는 절뚝거리며 윤미의 옆으로 걸어갔다.

인간 중 가장 앞에서 싸우던 윤미는, 촉수에 가슴과 배, 어깨를 뚫려 죽은 지 오래였다.

마로는 윤미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눈을 부릅뜨고 죽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증오가 눈앞을 가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인제 와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로, 마로. 진짜로 귀여운 애가 하나 있어. 불티, 너도 와서 들어봐.”

쾌활한 음성이 귓가를 스쳤다.

-“언젠가 결계가 깨져서 저 밖에 나가 살게 된다면…… 그 애랑 평생 같이 살고 싶어.”

윤미는 나래와 조금도 닮지 않았는데, 왜 나래가 떠오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 명랑한 미소와 희망찬 눈빛이 이제야 마로의 심장을 쥐어뜯었다.

마로는 손을 뻗어 윤미의 눈을 감겨주고 그녀의 품을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뭐 하게?”

불티가 마로의 옆에 서 있었다.

“구급차라는 걸 불러보려고.”

“아.”

불티는 짧은 탄성을 냈을 뿐, 반대하지 않았다.

“지금도 구급차라는 게 올지는 모르겠지만.”

마로는 신호가 가는 걸 확인하고 나서, 휴대폰을 살아남은 범 사냥꾼 손에 쥐여주고 돌아섰다.

“그래, 뭐. 강하지도 않은 녀석들인데, 살아난다고 해서 위협이 되지는 않겠지.”

“덤벼들면 그때 죽이면 되는 거고.”

“어. 뭐, 저렇게 다쳤는데 살아남을 수나 있겠어?”

“……살아남았으면 좋겠군.”

“……그러게.”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유독 쾌청한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마로는 이 신시가 어둠에 갇혀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끝을 가늠하기 어려운 불길한 어둠, 그리고 악의.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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