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왜 우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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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왜 우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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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왜 우리였을까?
2022.04.16.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세인은 홀린 듯 제하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방금…… 그건 뭐였지? 내가 잘못 본 건가?’
세인은 손에 들고 있던 범의 눈썹을 꽉 쥐었다.
‘어떻게 똑같을 수가 있지?’
세인은 제하와 도건, 주안과 하루의 얼굴을 꼼꼼히 살펴봤다. 네 명 다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다.
그들은 무기를 사려는 건지, 노점상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었다. 간간이 대화를 나누다가 장난스럽게 웃는 그들에게는, 이 혼란스러운 거래소와 어울리지 않는 밝음이 있었다.
‘부럽다.’는 생각을, 세인은 곧 털어버렸다.
누군가에게 특별하고 소중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는 걸, 세인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세인은 인상을 찌푸린 채, 손에 쥐고 있는 범의 눈썹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회색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들어간, 범의 눈썹.
죽다 살아났을 때, 왜인지 손에 쥐고 있었다.
‘이게 고장 났나?’
범의 눈썹에는 신기한 힘이 있었다.
이 잿빛 털뭉치를 눈썹에 대면, 상대의 전생이 보였다. 그것은 마치 영화처럼, 아니, 홀로그램처럼 떠올라 세인의 각막에 새겨졌다.
처음에 지나가던 사람의 전생을 보았을 때, 세인은 자신이 미쳐가는 줄 알았다. 끔찍한 일을 겪고, 죽다가 살아난 충격으로 머리에 이상이 생긴 줄 알았다.
범의 눈썹이 보여주는 영상은 다양했다.
-“전하. 고정하시옵소서.”
왕 앞에 무릎을 꿇은 신하도 있었고,
-“우, 우리 딸은 안 됩니다. 안 됩니다, 제발…….”
산적에게 딸을 빼앗겨 울부짖는 농민도 있었다.
어느 사람은 공주였고, 어느 사람은 노예였으며, 또 어느 사람은 전쟁터를 누비는 장수였다.
그렇게 비치는 다양한 영상이, 어쩌면 그 사람의 전생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미쳤다기보다는 차라리 이 기분 나쁜 털뭉치가 전생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게 낫겠지.’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범 때문에 혼란스러운 세상이지만, 그 때문에 세인 또한 죽을 뻔했지만, 잠시나마 공포를 잊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두려움에서 도망치려는 듯, 세인은 범의 눈썹으로 사람들의 전생을 구경하면서 다녔다.
다양한 전생을 구경하는 건, 영화를 보는 것과 비슷했다.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가 천하를 호령하던 왕이었다거나, 술에 취한 듯한 청년이 왕의 마음을 사로잡은 미녀였다거나, 울다가 엄마한테 혼나는 아이가 애를 다섯 명이나 낳아서 키운 여장부였다거나…….
그렇게 타인의 전생을 보는 동안에는, 잠시나마 범의 공포로부터 멀어질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전생이 궁금해졌다.
범에게 끔찍한 일을 당했을 때, 언뜻 보았던 영상이 있었다.
‘그게 내 전생일까? 그땐 제정신이 아니라서 제대로 기억이 안 나는데……. 지금 다시 보면, 이 털 뭉치가 내 전생을 제대로 보여줄까?’
세인은 거울 앞에 서서 범의 눈썹을 자신의 눈썹에 가져다 댔다.
-“내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세인은 보았다.
-“내가 이 검으로 범을 베겠습니다.”
검은색 검을 들고 당당하게 외치는 남자를.
거대한 체구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렵해 보이는 근육질의 남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회갈색 머리칼에, 맹수처럼 보이는 호박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둥그스름한 곰의 귀에, 범의 눈빛을 가진 남자.
인간 같기도 한데, 인간이 아닌 그 남자는, 범을 척살하겠다고 당당히 선포하면서도 왜인지 슬픈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세인은 또다시 보고 있다.
노점상을 구경하는 제하 일행.
왜인지 그들 네 명에게서 보이는 전생이, 세인의 것과 똑같았다.
그러니 범의 눈썹이 고장 났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생이 똑같을 리가 없잖아. 고장 난 거겠지.’
혹시나 싶어서 다시 한번 범의 눈썹으로 전생을 확인했는데, 역시 보이는 것은 같았다.
네 명 모두에게서 한 사내가 보인다.
흐트러진 회갈색 머리카락과 넓은 어깨, 짙은 눈썹 아래에 호박색 눈동자를 가진, 어딘지 모르게 슬픈 분위기의 사내.
세인은 범의 눈썹을 댄 채로 고개를 돌려, 지나가는 사람의 전생을 확인했다.
-“오빠, 어디 가? 가지 마아아.”
전쟁에 나가는 듯한 남자의 다리에 매달려, 엉엉 우는 소녀의 영상이 나타났다.
‘제대로 보이는 것 같은데…….’
다시 제하 일행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역시나 회갈색 머리칼의 사내가 비친다.
‘왜 이러는 거지? 설마 진짜로 나랑 저 네 명의 전생이 같다고? 그럴 수가 있나? 아니면…… 역시 내가 미친 건가? 전생 같은 건 보이지 않고, 그냥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 아냐?’
가족처럼 친밀해 보이는 제하 일행이, 세인은 부러웠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도 저들의 일행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 소망 때문에, 보고 싶은 환각을 보는 건지도 모른다.
나와 저들의 전생이 같다는, 그러니 우리는 하나라는, 그런 편리한 환각.
‘그래, 전생은 개뿔. 세상에 그런 걸 보여주는 물건이 있을 리 없잖아.’
세인은 신경질적으로 범의 눈썹을 집어 던지려다가, 생각을 바꿨다.
‘아니야. 그동안 내가 본 전생들은…… 그냥 내 상상이라기에는 너무 디테일이 쩔었어. 나는 그렇게까지 상상력이 풍부하지도 않고, 역사를 잘 알지도 못한다고.’
사람들의 전생에서 그들이 입은 옷, 말투, 헤어스타일이나 건물 같은 건, 세인으로서는 처음 보는 것들이 많았다.
‘이게 보여주는 건 진짜야. 그런 상황에서 얻은 건데, 가짜일 리가 없잖아. 그래, 범도 나타나는 마당에, 전생을 보여주는 물건이 나타나지 말라는 법도 없지.’
범의 눈썹이 보여주는 회갈색 머리칼 사내의 전생.
그와 같은 전생을 가진 사람이 4명이나 더 있다는 사실이, 세인은 싫지 않았다.
가족에게서조차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언제나 한 발 떨어진 곳에 서 있는 기분을 느꼈던 세인이었다.
그런 세인에게 같은 전생을 가졌다는 동질감은 무척이나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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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대에 놓인 무기의 가격은, 눈이 돌아갈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고작 12억을 가지고 기뻐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이건 그냥 평범한 총인데, 너무 비싼 거 아냐?”
도건이 총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 말에, 상점 주인이 툽상스럽게 대꾸했다.
“아, 비싸면 사지를 말든가. 요새 총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범 사냥꾼입네, 뭐네 하는 어중이떠중이들이 다 모여드는데, 총은 없다고, 총은.”
“칼은요?”
제하의 질문에 주인이 헛웃음을 흘렸다.
“칼? 아, 그쪽도 칼을 쓰는구만. 아니, 그런데 말이야. 칼로 범을 잡을 수나 있겠어? 범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다고. 그쪽처럼 칼 들고 다니는 놈들이 몇 명 있긴 한데, 그건 그냥 보조 무기 정도지. 누가 그걸 주무기로 써? 대세는 총이야, 총. 목숨이 아까우면 총으로 고르라고.”
주인은 판매대에 늘어놓은 총 중의 하나를 들었다.
“이거, 솜씨 좋은 놈이 만든 거야. 그립감도 좋고, 명중률도 좋아. 내가 총이라고는 써본 적이 없는 놈이거든? 그런데 이걸로 저 멀리 있는 맥주캔을 맞췄다니까? 알지? 요새 묘하게 괜찮은 무기들이 나온다는 거. 이게 바로 그런 종류의 총이란 말이지.”
도건이 흥미를 보이며 총을 받아들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던 도건이 한 발 쏴보려는 듯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자, 주인이 얼른 도건의 손목을 잡았다.
“안 돼. 쏠 거면 돈 내고 쏴.”
“치사하네.”
“치사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야. 그쪽도 이쪽 물에서 한참 굴러먹은 것 같은데…… 알잖아?”
도건은 쓰게 웃으며 총을 돌려줬다.
제하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형, 진짜로 괜찮아? 그립감은 어때?”
“쏴보지 않아서 확실히는 모르겠는데, 그립감은 좋아. 보기보다 훨씬 가볍고.”
“그럼 형, 저 총…….”
“아니, 내 건 나중에. 아직 이것도 쓸만하니까.”
도건이 허리춤에 넣고 다니는 총을 툭툭 두드리며 주안을 턱으로 가리켰다.
“저 녀석이 들고 다닐 걸 먼저 챙겨야지.”
주안은 쓸쓸한 눈으로 판매대 위의 무기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주안의 검은색 눈동자는 총을 향해 있었지만, 그 눈동자에 비치는 건 총이 아니었다.
그날, 이런 무기를 갖고 있었다면, 그녀를 지킬 수 있었을까?
-“내가 조금 더 강했더라면…….”
빛을 잃어가는 순간에도, 그녀는 주안을 향해 맑게 웃었다.
-“미안해…… 먼저 갈게…….”
그래서 주안도 웃었다.
꺼져가는 그녀의 눈동자에 비치는 것이 자신의 웃는 얼굴이기를 바라서.
그녀가 안심하고 떠나기를 바라서.
비록 이 심장이 잘게 짓이겨지는 통증에 피를 토할 것만 같아도.
주안은 웃었다.
왜 너였을까?
왜 나였을까?
왜 우리였을까?
왜 하필이면 그날, 그 시간에, 우리는 그곳을 지나갔던 걸까?
몇 번을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떠났고, 주안은 세상을 잃었다. 그녀가 없는 세상 따위, 사실 아무래도 좋았다.
범이 날뛰든, 사람이 죽든,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우리, 좀 더 평범한 커플이면 좋았을 텐데.”
하지만 그녀가 원했기에.
-“잘 살 수 있지? 응……? 약속해…… 내가 없어도…… 응……?”
그녀가 소망했기에.
주안은 살아가기로 했다.
“주안이 형.”
제하의 음성에 현실로 돌아왔다.
주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떴다.
시야 끝에 어른거리는 것이 있어서,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노점상 구석에 대충 세워둔 긴 창.
손때 묻은 긴 창이, 왜인지 모르게 신경 쓰였다.
마치 꿈결처럼, 긴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장창을 휘두르는 한 여인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래야.’
이제는 부를 일 없는 그녀의 이름을 속으로 되뇌며, 주안은 장창을 손에 쥐었다.
-“주안아.”
이제는 들릴 일 없는 그녀의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그녀가 남기고 간 힘이 장창과 공명하듯 낮게 울었다.
이 길고 무거운 창이 범을 사냥하기에 적당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주안은 마음을 굳혔다.
“나는 이게 좋겠어.”
길고 무거운 장창이, 빠르게 움직이는 범과의 싸움에 적당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 하나 주안에게 생각을 바꿔보라고 설득하지 않았다.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주안의 눈빛은 서글픈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거. 좋지. 아주 좋은 무기야.”
분위기 파악을 못 한 노점상 주인이 얼른 끼어들었다.
주인은 자리만 차지하고 팔리지 않는 무기를 얼른 팔아치우고 싶었다.
“손에 쥐는 느낌이 딱 이거다 싶지? 길이에 비해서 가벼운 편이고. 그런 장창은 구하기가 힘든데, 찾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없어서 못 팔아, 없어서. 그래도, 뭐. 기분이다. 딱 15억만 내.”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