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호랑나비 군
(10/85)
10. 호랑나비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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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호랑나비 군
2022.03.19.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오싹-
제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내가 범처럼 움직였다고?’
확실히 제하에게는 범인 아버지의 피가 흘렀다.
하지만 이전까지는 범 같은 능력을 발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아니라고 단호하게 부정하기에는, 제하도 짚이는 장면이 몇 가지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두 마리의 범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버겁지 않았다. 한 놈에게 검을 꽂으며, 다른 손으로 뒤에서 달려드는 놈을 후려쳤다.
그때는 전투에 집중한 상태라서 이상하다는 걸 깨닫지 못했지만, 되새겨 보니 확실히 이상했다.
‘난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지?’
도건은 여전히 제하를 빤히 응시하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눈이 자신을 비난하는 것만 같았다.
‘너, 범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 아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아서 눈을 마주치기 힘들었다.
‘내 아버지가 범이야. 나는 범과 인간의 혼혈이야.’
그렇게 대답하면 과연 도건은 어떻게 나올까?
아까 환이라는 남자도 그렇고, 도건도 그렇고, 범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물론 제하가 한 짓도, 제하의 아버지가 한 짓도 아니었다.
하지만 과연 범 때문에 많은 것을 잃은 그들이 이해해줄까?
제하가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자, 도건이 벽에서 등을 떼고 제하를 향해 다가왔다. 올라간 도건의 손이 멱살이라도 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도건은 제하의 어깨를 툭 치며 웃었다.
“뭘 그렇게 심각한 표정을 짓고 그래? 훈련 방법이라도 캐낼까 봐 그래?”
“아니, 그게…….”
“뭐, 순순히 얘기해주면 열심히 들어서 내 걸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얘기해주기 싫으면 됐어. 원래 자기 훈련 방법은 남이랑 잘 공유하지 않잖아.”
“어, 으응…….”
“그나저나 너, 저 비실비실해 보이는 놈이랑 단둘이 다니는데 너무 설치고 돌아다니는 거 아냐?”
도건의 지적에 발끈했다.
“내가 언제……!”
“범들이 박물관을 습격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거긴 왜 기어들어 가? 범이 나타난 곳에는 당연히 나비들이 온다고.”
나비들이라는 건, 호랑나비 팀을 말하는 것 같다.
“그놈들이 그렇게 위험해?”
“수많은 범 사냥꾼 팀이 생기고 있는데, 왜 걔들이 이렇게 빨리 사냥률 1위를 차지했겠냐?”
제하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멍하게 쳐다보는 제하의 이마를, 도건이 검지로 쿡 눌렀다.
“순진한 녀석. 뻔하잖아. 그놈들, 다른 사냥꾼이 잡은 걸 중간에 가로채거나, 다른 사냥꾼을 미끼로 삼아서 사냥을 한다고. 골로 간 사냥꾼 중에서 상당수는 그놈들 손에 죽었을걸.”
“설마 그런 짓까지 할까?”
“아까 그런 짓을 당하고서도 몰라? 끼리끼리 모인다잖아. 그놈들 중에 정상인 놈 없어. 혼란 중에 교도소에서 탈주한 놈, 잡히지만 않았을 뿐 범죄를 저지르고 다녔던 놈…… 미친놈들이란 미친놈들은 다 모여 있다더라.”
어릴 때부터 뒷세계에 발을 걸치고 있던 도건은, 그런 쪽의 소문에 밝았다.
“그러니까 조심해. 범도 범이지만, 혼란 속에서 광기에 젖은 인간들은 범보다 위험해질 수 있거든.”
“조언, 고마워.”
제하가 솔직하게 말하자, 도건이 씩 웃으며 제하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제하는 타인이 자신의 몸에 손대는 걸 좋아하지 않았지만, 도건의 손길은 싫지 않았다.
형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그런데 우리가 위험하면 너도 위험하지 않아? 우린 그나마 둘이지만 넌 혼자잖아.”
“난 괜찮아.”
도건이 총을 꺼내서 손가락에 걸고, 한 바퀴 빙글 돌렸다.
“총잡이잖아. 멀리서 지켜보다가 끼어들 만하면 끼어들고, 아니다 싶으면 냅다 튀면 되거든.”
“아, 그러셔.”
“모쪼록 몸조심해라. 다음에도 살아서 만나게.”
+++
호랑나비 팀의 총대장인 동철은, 박물관 침입 사건을 조사하는 5구의 경찰서에 찾아갔다.
“아이고, 수고들 하십니다.”
동철이 뒤따라 들어온 부하들에게 눈짓하자, 부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들고 온 음식들을 돌렸다.
“아이고, 뭘 이런 걸 다 갖고 오시나?”
동철이 요새 유명해진 호랑나비 팀의 총대장이라는 걸 알아본 소장이 몸소 일어나서 동철을 향해 다가와 악수를 나눴다.
둘은 안쪽의 회의실로 이동했다. 동철이 서장에게 준비해온 두툼한 봉투를 넘겼다.
“박물관 침입 사건 당시의 영상을 좀 보고 싶은데요.”
“영상이라면, 범들이 학살했을 때 영상을 말씀하시나?”
소장이 봉투 안에 담긴 돈의 액수를 확인하며 건성으로 물었다.
“아니, 아니. 그 후에 절도범들이 들어왔을 때 영상이요.”
“흐음. 그런 건 왜 보고 싶어 하시나?”
소장이 수상쩍다는 듯 물었다.
“범이 습격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어떤 간 큰 놈들이 박물관을 털러 들어갔나 궁금해서 그럽니다.”
동철이 실실 웃으며, 품에서 봉투 하나를 더 꺼냈다. 이번 봉투는 처음 것보다 두툼했다.
소장이 침을 꼴깍 삼켰지만, 동철은 아까처럼 바로 봉투를 넘기지 않았다.
“볼 수 있겠습니까?”
“봐도 뭐 별거 없네. 멍청한 놈들이 다 부서져가는 것만 훔쳐 갔거든. 더 가치 있는 것들은 3층에 있었는데, 범 때문에 위층에 올라갈 엄두도 못 낸 모양이야.”
소장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더 이상 캐묻지 않고 밖에 나갔다가, CCTV 영상이 담긴 노트북을 갖고 돌아왔다.
“혼자서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래, 뭐. 복사하면 안 되네. 망가뜨려도 안 되고.”
“아무렴요.”
소장이 나간 후, 동철은 모니터에 비치는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어제 성진이 찾아왔다.
-“총대장님. 죽여버리고 싶은 놈이 하나 있습니다.”
-“그럼 죽여버려.”
-“저 혼자서는…….”
-“네 팀원들은 어디다 두고? 국 끓여 먹었냐?”
이제 호랑나비 팀은 더 이상 ‘팀’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무색할 정도로 성장했다.
사람들은 호랑나비를 ‘호랑나비 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호랑나비 군은 여러 팀으로 나뉘어 각지에서 활동하는 중이었다.
성진은 그 팀 중 하나를 맡고 있었다.
-“강한 놈입니다.”
-“범이냐?”
-“인간입니다.”
성진은 그놈이 ‘제하’라고 했다. ‘하루’라는 이름의 묘한 말투를 쓰는 놈이랑 같이 다닌단다.
동철은 둘 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었다.
성진은 호랑나비 팀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그런 성진이 자기 팀을 데리고도 상대하기 버겁다면 상당히 강한 놈들이라는 의미다.
성진의 개인적인 원한과 관계없이, 제하라는 놈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아까운 돈까지 써가며 그날의 영상을 확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모니터 안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저게 뭐야……?’
전시관에는 인간 여러 명과 범 4마리가 있었는데, 거의 제하 혼자서 싸우고 있었다.
조금 밀리기는 해도 질 것 같은 느낌은 아니었다.
중간중간 위험에 처하기는 했지만,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제하가 충분히 이길 수 있었으리라는 걸, 싸움에 일가견이 있는 동철은 알 수 있었다.
‘저거, 뭐 하는 놈이지?’
제하는 거의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보통 속도가 빠르면 힘이 약해지기 마련인데, 범 한 마리를 쳐서 날려버릴 정도의 괴력까지 가지고 있었다.
‘내가 왜 저런 놈이 있다는 걸 몰랐지?’
동철이 능력 좋은 신인을 대하는 방식은 둘 중 하나였다.
호랑나비 팀에 끌어들이거나, 거부하면 죽이거나.
완전히 혼자서 싸운 건 아니라지만, 범 4마리를 두려움 없이 상대할 수 있는 인물을 여태까지 몰랐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저런 놈이 있었다면 돈을 꽤 벌어갔을 텐데…….’
이살 타워에 있는 범 현상금 담당처에 팀원 하나를 보내뒀다.
유독 자주 범 머리를 들고 찾아오는 놈이 있으면, 미행해서 거주지를 알아두라고 했다.
부하가 알아낸 뛰어난 신인 중에 제하는 없었다.
‘뭐, 어쨌든 지금이라도 알게 됐으니 다행이야.’
동철은 범 사냥 1위에 빛나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제하처럼 강한 놈은 완전히 굴복시켜서 자신의 아래에 두거나, 그게 불가능하다면 일찌감치 싹을 제거해둬야만 한다.
+++
“얼마 전에 파리들이 뭔가 대단한 놈을 잡았다더라.”
이제 도건은 호랑나비 팀을 ‘나비들’도 아닌 ‘파리들’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 제하는 3구에 있는 편의점 앞에서 컵라면을 먹는 중이다.
범의 무차별적인 습격으로 폐허가 된 3구.
혹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보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찾아왔다가, 비슷한 생각으로 온 도건과 딱 마주친 것이다.
편의점은 한 번 강탈이 일어난 듯 창문이 부서지고, 진열장이 엉망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 사이에서 그나마 먹을 만한 컵라면 몇 개를 발견해서, 생으로 우적우적 씹어먹고 있었다.
“대단한 놈이라니?”
“범 한 마리를 발견했는데, 전투에 들어가기 전에는 인간이랑 완전히 똑같았대.”
“범은 원래 인간이랑 똑같…… 아, 좀 다르구나.”
범은 인간과 똑같이 생긴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피부색이나 모질, 눈동자 색깔 같은 것이 인간과 좀 달랐다.
그래서 범들은 낮에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다닐 때, 온몸을 가리는 옷을 입었다.
범 사냥꾼들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피부를 가리는 느낌으로 다니는 사람만 보면 기습적으로 모자를 벗기고 피부색과 눈동자 색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범을 발견하기도 했다.
“범은 피부가 약간 푸르딩딩하다고 해야 하나? 거무죽죽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좀 다르다 싶잖아. 그런데 그 범은 인간이랑 똑같았나 봐. 게다가 어마어마하게 강하대. 파리들 몇 명이 죽은 모양이야.”
“중급일 게다.”
생라면 끄트머리를 한 가닥씩 잘라서 오물오물 씹던 하루가 말했다.
“중급? 그게 뭔데?”
제하는 도건에게 하루가 말한 범들의 급에 대해 설명했다.
도건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파리들이 잡은 것보다 더 강한 급도 있단 말이야? 그런 걸 이기는 게 가능하기나 해?”
“인간은 가능성의 동물이지. 뭐든 가능하다.”
하루의 말에 도건이 제하를 돌아봤다.
‘쟤, 왜 갑자기 명언 폭발이야?’라는 눈빛이었다.
제하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TV를 많이 보거든.”
“하여간 특이한 놈이야. 너도 그렇고, 저 녀석도 그렇고.”
“목에 문신이 있는 놈은 아직 못 찾았어?”
“어. 그런데 내 동생을 잃은 날, 목격 정보를 하나 더 찾았어. 다른 범들이 그놈을 불티라고 불렀다더라.”
“불티…… 이름이 왜 그 모양이야?”
“지금 그게 문제냐?”
면박을 주면서도 도건은 키득키득 웃었다.
도건은 웃는 얼굴이 근사했다.
제하는 도건과 좀 다른 상황에서 만났더라면 좋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그 생각을 지웠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둘은 어울릴 수 없는 상대였을 것이다.
제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아르바이트 인생이었고, 도건은 아무리 봐도 뒷세계에서 좋지 않은 일을 해온 것 같았다.
“또 소식 생기면 연락할게. 몸조심해라.”
언제나처럼 도건이 먼저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려고 할 때였다. 누군가 그들이 앉아 있는 파라솔 테이블 옆에 섰다.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