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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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격돌
2022.03.05.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삿된 어둠이 몰려 들어왔다.
뭉게뭉게 퍼지는 안개에, 하루가 외쳤다.
“검을!”
제하는 허리에 손을 가져갔다.
“검을 잡아!”
왜인지 하루가 말하는 검이, 지금 갖고 있는 이 검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하는 고개를 돌렸다.
상고시대의 검.
도둑질을 하고 싶지 않다는 양심에 머뭇거리는데, 안개가 걷히며 범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4마리다.
“에이 씨!”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상고시대의 검이 정말로 힘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판사판이다.
어차피 지금 가진 검을 휘둘러봐야, 한 마리를 제대로 상대하기도 전에 부러질 것이다.
제하는 손을 뻗어, 벽에 걸린 검을 손에 쥐었다.
삐이이이이이-!
검을 쥐는 순간, 귀를 찢는 경보음이 박물관을 가득 채웠다.
범들이 멈칫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루가 제하 쪽을 돌아봤다.
하지만 전시관 안에서 벌어지는 그 무엇도, 제하에게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내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제하는 보고 있었다.
-“내가 이 검으로 범을 베겠습니다.”
제하는 듣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의 땅에 평화를…….!”
검의 기억이 제하에게 흘러들어왔다. 검 손잡이가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제하의 손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검과 손이 닿은 부위에서 푸른 빛이 뻗어 나왔다.
푸른 빛이 검을 휘감자, 부서질 것 같았던 검집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범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서 제하를 멍하니 구경하고 있었다.
사태를 보다가 범들을 공격하려고 했던 호랑나비 팀도 마찬가지였다.
검에서 시작된 푸른 빛이 제하의 전신을 회오리처럼 감싸고 올라가다가,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빛이 사라져서 어두운 공간.
제하가 번쩍 눈을 뜨자, 안광이 빛났다.
“척살검.”
제하가 중얼거리며 왼손으로 검집을 잡았다. 형형히 빛나는 눈을 범들에게 고정시키고, 오른손으로 발도했다.
검은 검날이 어둠 속에서 빛났다.
“다들 정신 차려!”
범이 외쳤다.
“크르르르르!”
“크아아아앙!”
범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손톱을 길게 뽑았다.
범들은 본능적으로 제하가 위험하다는 걸 깨달았다.
제일 먼저 제거해야 할 대상.
범들의 잔혹한 눈동자가 제하에게 고정되었지만, 제하는 여유롭게 검을 세로로 세우고 검날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었다.
범들이 제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루의 오랏줄이 길어져서 범 두 마리의 발목을 동시에 묶었다. 범 두 마리의 다리가 엉켜 고꾸라졌다.
“제하! 정신 차려.”
“정신은…….”
제하가 씩 웃으며 검을 비스듬히 들고, 코앞까지 다가온 범들을 노려봤다.
“이미 차리고 있어!”
새액-!
척살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공기를 갈랐다.
하지만 범들도 만만치 않았다. 위험을 느낀 범들은 제하에게 닿기 직전, 방향을 틀어서 몸을 피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다가, 쉽게 방향을 트는 범의 능력에 제하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물론 제하도 거기서 그칠 생각이 없었다.
두 번째 공격을 해오는 범들을 슬쩍 피하며, 하루가 묶어둔 범 두 마리를 확인했다.
발목만 묶고 있던 오랏줄은 점점 길어져서 두 놈의 허벅지를 칭칭 동여매고 있었다.
“집중해, 제하!”
하루의 외침에 얼른 고개를 숙였다.
범의 손톱이 제하의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른 범의 손톱이 제하의 옆구리를 향해 날아왔다.
제하는 검을 거꾸로 세워 손톱을 막아서 쳐내고, 곧바로 검 끝의 방향을 틀어 범의 복부를 향해 찔러넣었다.
범이 팔을 들어 막으려 했지만, 제하의 검이 더 빨랐다.
푸욱-!
검 끝이 피부를 파고드는 느낌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제하는 검을 한 번 비튼 후 빼내며, 뒤에서 공격해 오는 범을 팔로 후려쳤다.
괴력에 범의 몸이 붕 날아갔다.
퍼억-!
벽에 부딪쳐 떨어지는 범의 모습에, 제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이게 뭐야?’
이유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팔과 어깨에 강한 힘이 깃드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주 짧은 순간이었고, 그 힘이 사라지자 극도의 피로감이 느껴졌다.
‘여유 부릴 때가 아니야, 얼른 끝내야 해.’
공격당한 복부를 움켜쥐고 있던 범이 허리를 폈다.
피가 철철 날 만큼 깊은 상처가 어느새 아물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범들 중에는 상처가 엄청 빨리 회복되는 놈들도 있다고 했지.’
“크르르르르.”
범이 분노한 듯 콧등을 찡그리고 으르렁거렸다. 제하를 향해 달려오던 범이 갑자기 모습을 감췄다.
그동안의 전보다 범의 움직임을 따라잡기 쉬워졌지만, 아직 완벽하진 않았다.
범의 움직임을 놓쳤다.
두리번거리는 제하의 눈에, 눈에 익은 사내들이 들어왔다.
성진을 포함한 호랑나비 팀 4명.
그들은 제하가 쳐서 날려버린 범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도와주려고 온 건가……?’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하루의 오랏줄에 묶인 놈들이 손톱으로 오랏줄을 끊어내고 발을 빼내려 하고 있었다. 곧 그들도 자유로워질 것이다.
“위!”
입구 쪽에서 누군가가 외치며, 활시위를 당겼다.
쌔애애액-!
활을 떠난 화살이 천장을 향해 날아갔다.
고개를 번쩍 든 제하의 눈에, 천장에 매달려 화살을 한 손으로 잡은 범의 모습이 들어왔다.
범이 화살촉을 제하의 정수리에 고정하고 뛰어내렸다.
제하가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서 범의 공격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쪽에 있던 성진이, 제하의 등을 확 밀었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제하의 몸이 비틀거리며, 범의 공격 범위 안으로 들어갔다.
화살촉이 제하의 목 뒤를 찌르기 직전.
휘이익-!
날아온 오랏줄이 범의 손목을 감았다. 하루가 오랏줄의 반대쪽 끝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안 돼!”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은 제하가 하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하루는 제하를 돕기 위해, 묶어뒀던 범들을 풀어주고 오랏줄을 날린 것이다.
자유로워진 범들은 제하가 아닌 하루를 공격했다. 범의 손톱이 하루의 복부와 허벅지를 파고들었다.
퍼억-!
퍽-!
그때, 후드를 뒤집어쓴 누군가가 달려와서 또 다른 범 한 마리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벌었다.
제하는 다시 공격해 오는 화살 든 범을 후려치고 하루를 향해 달려갔다.
이번에 후려친 힘은 아까처럼 강하지 않았다.
제하가 하루의 복부에 손톱을 꽂은 범의 등에 검을 꽂았을 때, 금방 일어나서 뒤를 쫓아온 화살 든 범이 제하의 등을 향해 양쪽 손톱을 세웠다.
타앙-!
총소리.
뒤에 있던 범이 휘청했다.
제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을 빼내, 가로로 길게 휘둘렀다. 검날을 타고 단단한 것이 스삭, 베이는 느낌이 분명하게 전해졌다.
제하는 목이 떨어지는 걸 확인하지 않고, 곧장 하루 쪽으로 몸을 돌려, 아직도 하루를 공격하려고 기를 쓰는 범의 목 뒤를 잡아당겼다.
거칠게 당기는 힘으로 범을 던진 후, 하루의 상태를 살폈다.
“하루, 괜찮아?”
“나는 괜찮다. 싸움에 집중해라.”
물론 그럴 생각이었다.
제하가 벽에 집어 던진 범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때, 놈은 호랑나비 팀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었다.
다른 범의 목을 베느라 여념이 없던 호랑나비 팀은, 범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했다.
“어…… 어어어!”
팀 중 한 명이 뒤늦게 범의 접근을 눈치챘다. 하지만 방어할 틈은 없었다.
탕-!
타앙-!
또 총성이 울렸다.
첫 번째 총알은 범의 가슴에, 두 번째 총알은 범의 미간에 정확하게 파고들었다.
범의 손톱은 호랑나비 팀의 정수리를 꿰뚫기 직전에 멈췄다. 범의 육체가 스륵, 무너졌다.
“허억. 허억.”
제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남은 범을 확인했다. 그 남은 범은, 정체 모를 인물의 타격에 죽어가고 있었다.
회색 점퍼를 입은 남자는 제하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고, 타격하는 무기는 활이었다.
“그만……해…….”
제하가 남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마치 눈앞의 범이 철천지원수라도 된다는 듯, 붉게 충혈된 눈으로 범을 노려보며 계속 활을 휘둘렀다.
그러다 뚜욱, 활이 부러진 후에야 남자는 배터리가 다 닳은 것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투욱-
부러진 활이 바닥에 떨어졌다.
제하는 잠시 남자의 상태를 살펴보다가 뒤를 돌아봤다.
호랑나비 팀이 자기들 몫의 범 머리를 베어내고, 다른 범의 시체로 접근하고 있었다.
“안 되지, 안 돼. 그건 우리가 잡은 거라고.”
복도 쪽 어둠 속에서, 귀에 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총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이곳에 왔다는 걸 알고 있었다.
도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랑나비 팀이 염치도 없이 도건을 향해 무기를 겨눴다.
“우와, 당신들 호랑나비 팀 아냐? 상도덕 진짜 없네. 도둑도 다른 도둑이 찜해놓은 집은 안 건드리거든? 당신들은 도둑보다 더하네.”
“이 새끼가……!”
성진이 총을 들어 올렸다.
사악-!
성진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 무언가가 총신 끝을 베어냈다.
성진이 뭐가 벌어졌다는 걸 깨닫기도 전에, 누군가 성진의 멱살을 잡고 강한 힘으로 밀어붙였다.
터엉-!
성진의 등이 벽과 세게 부딪쳤다.
“콜록, 콜록, 콜록!”
성진이 세게 기침을 하며 자신을 밀어붙인 상대를 확인했다.
제하였다.
‘이, 이놈이 언제……?’
성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제하의 호박색 눈동자는 미동조차 없이 고요했다.
제하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낮고 음산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네놈들이 범들을 여기로 끌고 왔지?”
-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