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기묘하고 두려운 것 (5/85)


5. 기묘하고 두려운 것
2022.02.1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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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 후.

제하는 하루를 우습게 본 걸 후회했다.

훈련이라고 해봐야 적당히 체력단련을 하는 수준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50km 달리기를 한 후, 곧바로 팔굽혀펴기와 스쿼트에 들어갔다.

온몸이 흐물흐물해져서 쓰러질 것 같은 와중에, 어디선가 주워온 막대기를 500번은 휘둘러야 몸을 쓰는 훈련이 끝났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이제 앉아서 집중해라. 네 안에 있는 힘을 발견할 수 있게, 신경을 예민하게 만들어야 해.”

“그게 뭔 소리인지 짐작도 안 되는데.”

“일단 해봐라.”

그래서 일단 해봤는데, 잠만 솔솔 왔다.

꾸벅꾸벅 졸고 있노라니, 하루의 오랏줄이 제하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잘 때가 아니다, 제하. 범을 잡고 싶은 것 아니냐?”

“범을 잡고 싶지. 하지만 이런 무식한 훈련으로 강해질 수 있겠어? 다른 사람들도 이 정도 운동은 하지만 다들 범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너는 특별하다. 이 정도의 훈련으로 충분히 강해질 수 있어.”

제하는 하루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조금쯤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원래 남들보다 좀 더 크고 강한 편이었던 제하의 육체는, 훈련의 성과를 빠르게 가져왔다.

몇 시간씩 걸리던 기초 체력 다지는 훈련의 시간이 줄었고, 막대기를 휘두르는 것도 하루에 1천 번은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제하가 휘두른 막대기에 나무 한 그루가 박살났을 때, 제하는 무기를 바꿨다. 하루의 조언 때문이었다.

“좋은 총을 구하기도 힘들고, 구한다 한들 네 실력으로 표적을 정확하게 맞출 수나 있겠느냐.”

듣기 싫지만 정확한 지적이었다.

“그때도 보니까 범이 바로 지척에 왔을 때에야 발사하더구나. 그럴 거라면 네 힘을 이용할 수 있는 검이 낫겠지.”

“검으로 그렇게 빠른 놈들을 잡을 수 있을까?”

“너는 놈들보다 체격이 크니 가까이 오는 순간 밀어붙이고, 검으로 쳐올리면 가능성이 있을 게다. 게다가 나도 도울 것이고.”

제하는 하루의 호리호리한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과연 하루가 도움이 되기는 할까?

무기로 할 만한 것도 없는데.

제하의 눈빛을 눈치챈 하루가 검지로 제하의 미간을 쿡 찔렀다.

“요상한 눈빛이로고. 날 비웃는 듯한 느낌이 드는 연유는 무엇일까?”

“눈치는 빠르네. 너도 무기가 필요하지 않아?”

“나는 이거면 된다.”

하루가 자기 허리에 맨 밧줄의 끝을 잡아서 살짝 흔들었다.

목에 걸기도 하고 허리에 매기도 해서 패션 아이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밧줄로 뭘 어쩌게? 내가 잡아놓으면 묶어서 이살 타워에라도 데려가게?”

제하가 미심쩍어하자, 하루가 씩 웃었다.

“보면 안다.”

+++

해윤은 작은 틈으로 밖을 내다보며 벌벌 떨었다.

도망치라고 한 엄마와 아빠의 비명 소리도 이제는 들리지 않았다. 다른 방으로 도망친 동생의 울음소리도 그쳤다.

그게 좋은 현상이 아니라는 걸, 해윤은 직감했다.

‘다…… 다 죽은 거야.’

몸이 벌벌 떨렸다.

‘다 죽었어…….’

하지만 슬픔보다는 공포라는 감정이 해윤을 짓눌렀다.

범들이 출몰한지 벌써 세 달이 흘렀다. 그사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정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구시가지를 중심으로 점점 나빠져만 가고 있었다.

해윤이 사는 3구에 범의 습격이 잦아졌다. 잠을 자다가도, 식사를 하다가도, 사람들은 죽거나 사라졌다.

경찰도, 군대도, 도우러 오지 않았다. 아니, 오기는 오지만, 모든 상황이 끝난 후에야 도착했다.

-“사람이 이렇게 죽어 나가는데 정부는 대체 뭘 하는 거야?”

-“왜 미리 군대를 보내서 지키게 하지 않는 걸까요?”

-“다들 너무 늦어. 다 죽은 다음에 오면 어쩌라고!”

정부에 불만을 가졌던 사람들도 사라졌다.

사람들은 3구를 떠나기 시작했다.

해윤도 3구를 떠나고 싶었지만, 아빠는 완고했다.

-“이 집을 사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제야 대출을 다 갚았다고! 무서워할 거 없어. 어차피 인간이 이길 거야. 이제 곧 경찰이나 군대가 나서겠지. 이살그룹이 있는 신시를 가만히 둘 리 없잖아.”

아빠는 신시와 정부를 믿었고, 엄마는 아빠를 믿었다.

그래서 죽었다.

‘이제 나도 죽겠지.’

그제야 가족의 죽음이 심장을 후려치며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고 싶은 일이 많았다.

친구들이랑 놀이공원도 가고 싶었고, 얼른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학 생활을 즐기고 싶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이살 그룹이 운영하는 회사에 당당하게 입사해서, 첫 월급으로 부모님과 동생에게 선물을 사주고 싶었다.

끼이이이이-

그때였다.

가까운 곳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짐승이 내는 신음 같기도 하고, 기계가 내는 소음 같기도 했다.

해윤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옷장의 작은 틈으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싫어.’

무언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싫어. 난 죽기 싫어.’

온몸이 덜덜 떨리고 비명이 흘러나오려 했다. 히끅거리며 새어 나오는 숨을 멈췄다. 크게 뛰는 심장 소리가 놈에게 들릴까 두려웠다.

드디어 놈이 모습을 드러냈다.

문틈으로 보이는 놈은…….

‘범이 아니야…….’

범 사냥꾼들이 잡아서 인터넷과 TV에 공개한 범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몸체는 사람인데 얼굴에 눈이 여러 개 달리고, 코와 입이 없었다. 귀는 토끼 귀처럼 긴데 끝이 뾰족했고, 한쪽 팔은 사마귀의 다리처럼 생겼다.

‘저, 저게 뭐야……?’

영화에서나 보던 끔찍한 몰골에,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간신히 삼켰지만, 목에서 울리는 작은 소리까지 멈출 수는 없었다.

“끄륵…….”

아주 작은 소리였을 뿐인데, 놈이 반응했다. 사마귀 같은 날카로운 다리로 단숨에 옷장 위쪽의 반을 갈라냈다.

해윤은 얼른 몸을 움츠렸지만, 머리카락이 후두득 베어나가 떨어졌다.

‘죽기 싫어.’

날카로운 다리 끝이 해윤의 등을 꿰뚫고 심장을 반으로 갈랐을 때, 해윤은 생각했다.

‘엄마…….’

+++

제하는 검을 손에 쥐고 3구 거리를 걸었다.

“어떻게 이 동네가 이렇게까지 변했지?”

3구는 번화가까지는 아니었어도 깨끗하고 살기 괜찮은 동네였다.

“완전히 폐허가 다 됐네.”

부서진 채 방치된 집, 약탈당해 문이 활짝 열린 집,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쓰레기와 건물 파편들.

그런 와중에도 아직 떠나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제하가 주위를 쭉 둘러보며 말했다.

“이상하지 않아?”

“무엇이?”

“범들이 처음에 인왕산에서 내려왔을 때는, 신시 여기저기를 막 습격하고 다녔잖아. 그런데 요새는 한 군데씩 공략하는 것 같아. 1구가 끝났고, 그다음에 2구가 끝났어. 그리고 지금은 3구가 이 지경이 됐지.”

“흐음.”

“이렇게 한 군데만 집중적으로 공략을 하면, 군대가 이쪽에 와서 지켜줘야 하잖아. 그런데 군대가 안 움직인단 말이야? 대신 범 사냥꾼들만 우글우글하고.”

범들이 한 곳만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덕분에 범을 찾아내기는 쉬워졌지만, 경찰과 군대가 움직이지 않는 게 수상쩍었다. 마치 희생양으로 내주는 것만 같았다.

타앙-!

멀리서 총성이 들려왔다.

제하는 빠르게 검을 들어 올렸고, 하루는 목에 걸고 있던 오랏줄을 손에 쥐었다.

“뭔가 온다.”

하루가 어딘가를 노려보며 말했다.

푸아아아-!

하루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먼지 바람이 일었다.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검을 두 손으로 쥔 제하는 놈을 향해 달려갔다.

놈은 제하가 달려오는 걸 봤으면서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검을 쥔 인간 따위, 밀어붙여서 넘어뜨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렇게는 안 되지.’

놈과 마주치기 직전, 제하는 멈춰서 두 다리에 힘을 줬다.

콰앙-!

놈의 몸이 제하에게 부딪쳤지만, 제하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놈이 당황한 듯 제하를 올려보는 순간, 제하의 검이 궤적을 그렸다.

어깨와 어깨가 맞닿은 상황에서, 사선으로 길게 그어 올라간 환도의 날이 놈의 허리를 베고 올라갔다.

뒤늦게 공격을 눈치챈 놈이 황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늦었다.

무식할 정도로 강한 힘이 실린 검날은 놈의 갈비뼈를 가르고 폐를 찢고 심장에 닿았다.

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 떴다.

“크르르르.”

놈의 목에서 분노에 찬 신음이 흘러나왔다.

마지막 발악으로 길게 뻗은 손톱을 뻗었지만, 제하는 능숙하게 몸을 틀어 공격을 피했다.

놈의 몸에 틀어박힌 검을 빼냈다.

사악-

검을 가로로 그어 놈의 목을 완전히 잘라버렸다.

툭-!

이빨을 길게 드러낸 놈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저기다!”

“저쪽으로 갔어!”

놈이 달려왔던 곳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제하는 환도를 툭툭 흔들어 피를 털어내며, 맞은편에서 오는 놈들을 확인했다.

범 사냥꾼 3명.

목이나 팔에 나비 문신이 있는 걸 보니 호랑나비 팀이다.

그중 아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성진.’

제하의 앞에 멈춘 놈이 제하를 쳐다봤다. 제하를 알아본 성진이 히죽 웃었다.

“또 만났네. 야, 이 자식 기억해? 그때 그 어리버리한 놈.”

“아아. 덩치만 컸지, 총 하나 제대로 못 다루던 놈?”

“총은 관뒀나 봐? 그 검은 뭐야? 검으로 범을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아?”

“멍청한 놈.”

놈들이 낄낄거리며 제하를 비웃었다.

제하는 무표정하게 검을 검집에 넣었다.

그러는 동안 성진은 범의 목을 집어 들었다.

“이건 네가 한 거냐?”

“그래.”

“흥. 검은 좀 쓸 줄 아나 보지? 그런데 이건 네가 운이 좋았던 거야. 이놈은 이미 상처를 입어서 도망치는 중이었거든.”

어쩐지 평소에 만나는 범보다 속도가 느리고 약하다 싶긴 했었다.

“하여간 이건 우리가 가져간다. 목 베느라 수고했는데, 원래 먼저 발견한 쪽이 임자잖아.”

성진이 당연한 듯 범의 목을 들고 돌아섰다.

“거기 서.”

성진은 서지 않았다.

제하는 저벅저벅 걸어가 성진의 어깨를 세게 잡아 돌려세웠다.

성진의 동료들이 무기를 들어 올렸다.

“푸핫. 범 한 마리 잡았다고 아주 의기양양해졌네.”

성진은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웃었다.

“말했지? 이놈은 원래 상처를 입었었다고. 네가 이놈을 잡았다고 해서 우리를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라니까?”

“난 당신들이랑 싸울 생각 없어. 그 머리나 내놓고 가.”

“푸하하하하. 야, 야. 이 자식이 하는 말 들었어? 내놓고 가래.”

“크하하하하하.”

뭐가 웃긴 걸까?

제하는 서늘한 눈으로 성진과 그의 동료들을 응시했다.

“야, 이 새끼야.”

놈의 동료가 제하의 어깨를 툭 밀쳤다.

상당히 세게 쳤는데도 제하의 어깨가 꿈쩍도 하지 않자, 놈은 조금 당황한 듯했다.

하지만 자기들 쪽이 더 많다는 걸 깨닫고,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냥꾼 놀이는 딴 데 가서 해. 여긴 우리 구역이야.”

“네 구역, 내 구역이 어디 있어? 그건 내가 잡았으니까 내려놓고 가. 그럼 봐줄게.”

“뭐? 봐줘? 아하하하하하. 진짜 미친 새끼네, 이거.”

동료들을 돌아보며 껄껄 웃던 놈은, 예고도 없이 제하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퍼억-!

주먹은 정확하게 꽂혔지만, 제하의 얼굴에 꽂힌 게 아니었다.

어느새 위로 올라온 제하의 손바닥이 놈의 주먹을 정확하게 받아냈다.

우둑-!

제하가 힘을 주자, 놈의 주먹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악!”

놈이 비명을 지르며 주먹을 빼내려 했지만 제하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당황하는 놈들을 보며, 제하가 싱긋 웃었다.

“이제 봐주는 게 어느 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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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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