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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화. 불똥이 어디까지 튀는지 (153/159)


153화. 불똥이 어디까지 튀는지
2023.08.17.



 


“요요화. 왜 대답하지 않나.”

내가 머뭇거리자 황제가 앞에 놓인 종이들을 옆으로 밀어내며 물었다. 종이가 치워지자 벼루가 드러났다. 설마 던질 준비 하는 건 아니겠지.


“아직 꾸지 못했습니다, 폐하.”

나는 일단 거짓말을 고하고서 고개를 숙였다.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었다.

필첩 어딘가에 ‘7, 1, 끝’이라고 적어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회귀 전 7황자와 1소황자 사이의 문제가 불거지는 건 이보다 몇 해 뒤의 일이었다. 그러니 순서도 뒤쪽에 있겠지.

게다가 ‘7, 1, 끝’이란 조합은 어떻게든 잘 우기면 다른 식으로 해석이 가능했다. 황궁 문제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쨌든, 황제에게 7황자가 1소황자의 친자 여부에 의문을 내밀었다가 큰 벌을 받는단 이야기는 감히 내가 꺼낼 수 있는 주제가 아니었다.

회귀 전과 회귀 후의 상황이 꼭 같지 않은데. 괜히 잘못 나섰다가는 불똥이 튀지. 절대로 모험하지 않을 거다.


“정말인가.”

황제가 싸늘하게 물었지만 나는 꿋꿋하게 밀고 나갔다.


“예, 폐하.”

“…….”

거대한 돌덩이 같은 침묵이 서재 안을 가득 채웠다. 거기에 짓눌려 있기를 한참.


“나가보아라. 혹시 생각나는 게 있으면 바로 알려라.”

황제가 손을 내저었다. 나는 꾸벅 인사를 올리고 달아나듯 밖으로 나왔다. 송 태감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송 태감이 들어가고서도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숨을 고르다가 가까스로 계단을 내려갔다. 어휴. 아직도 심장이 펄쩍펄쩍 뛰네.

* * *

황후의 방에서 저녁 문안을 하는 시간. 단정한 차림으로 모여든 후궁들은 불안한 눈으로 원비와 교비, 1황자비를 번갈아 살폈다.

1황자비와 2황자비는 후궁들이 황후에게 문안할 때 끼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오늘은 1황자비가 교비 뒤쪽에 자리 잡고 앉아 있었다. 한소리를 하려고 일부러 참석한 게 틀림없었다.

마침내 문안이 시작되자 모두의 예상대로 1황자비가 황후 앞으로 나아가더니 흐느끼며 입을 열었다.


“황후 마마. 오늘 낮에 저는 1소황자를 보고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 통통하던 아이가 홀쭉해져서 절 보자마자 펑펑 우는데…… 아이의 손바닥도 다 까져 있고 무릎도 옷이 다 찢어져 있었습니다!”

원비는 이를 갈았다. 살이 빠진 건 그놈의 사탕 사탕 노래를 부르며 밥을 안 먹으니 그런 거고 손바닥과 무릎은 자기가 담벼락을 넘다가 혼자 다친 거잖아!


“황후 마마. 저는 원비 마마의 인품을 믿었기에 제 아이를 맡기고서도 늘 뒤에서 아이를 그리워하고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제 품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꼴이 되어 있다니요…….”

1황자비가 흐느끼자 후궁 몇 명이 덩달아 눈시울을 붉혔다.


“황후 마마. 혹여 춘운이 괴롭힘당하고 있진 않은지 확인해주세요.”

마침내 1황자비가 본론을 꺼내자 내내 참고 있던 원비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닥치거라!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입을 그따위로 놀리느냐!”

“마마를 음해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 궁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마마께서 다 아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마마 처소의 궁인 중 누군가 아이를 괴롭히더라도 마마께선 모르실 수 있지요!”

1황자비는 돌려서 원비가 1소황자에게 무심한 걸 지적했다. 원비의 얼굴이 분노로 자두 빛으로 변했다.

소식을 전해 들은 7황자는 너무 화가 나서 당장 1황자에게 뛰쳐나갈 뻔했다.


“전하, 안 됩니다. 전하!”

“놓아라! 내가 첫째 형님에게 한 소리 할 거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기에 형수님이 감히 그런 얘길 한단 말이냐!”

원비의 태감들은 7황자를 필사적으로 붙잡고 말렸다. 7황자는 가까스로 진정하자 원비의 앞에 무릎을 꿇고 말했다.


“어머니, 이대로 당하실 겁니까? 그 비열한 부부가 어머니를 모해하는데 어떻게 억울하게 당하기만 하겠습니까!”

“그럼 어쩌란 말이냐. 자기들이 강제로 날 보호자로 만들고서는 그 애가 편식으로 굶건 자기 혼자 뛰다가 다치건 다 내 책임이라는데!”

7황자가 눈짓하자 궁인들이 모두 다 물러났다. 방 안에 모자만 남게 되자, 7황자가 은밀하게 말했다.


“어머니. 1소황자가 첫째 형님 아이가 맞는지 살짝 검사해보면 안 됩니까? 이상한 건 확실하게 짚고 가야지요.”

“…….”

“만약 1소황자가 형님의 아이가 아니라면 모든 걸 뒤집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이런 일은 너무 위험하다.”

“괜찮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우리끼리 먼저 확인해보면 됩니다. 문제가 없다면 다른 방도를 강구하면 되고요.”

 

* * *

1소황자와 7황자 건으로 불똥을 맞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집 밖으로 아예 나가지도 않았다.


“언니. 이것 좀 먹어봐요.”

집 안에서 머물고 있자니 도화가 뜬금없이 날 찾아와서 밖에서 나온 먹거리를 내밀었지만, 나는 다 잡은 용정을 놓친 일이 아직도 아쉬웠기에 뚱하게 그냥 돌려보내 버렸다.


“언제부터 자기랑 소가주님이 친했다고 저러는지 모르겠어요.”

내 시비인 월섬은 청정차를 가져와 앞에 놓아주면서 이미 가고 없는 도화를 쏘아보며 투덜거렸다.


“이 집에서 온전히 내 편은 너뿐이구나.”

“전 소가주님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평온한 시간은 이틀 뒤에 깨졌다. 수업은 없었으나 제자가 이틀 전, 전각을 보수할 사람들을 부른다고 내게 오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는 가고 싶지 않은데.’

나는 오전이 다 가도록 침대 안에서 뒹굴뒹굴하면서 끙끙댔으나 안 갈 방도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눈에 띄지 않도록 최대한 무난하게 차려입고서 입궐했다.

그러고서 월무궁으로 가보았는데 제자는 막상 날 불러놓고서 자기는 자리에 없었다.


‘뭐야.’

제자가 불렀다는 목수들도 없었다.


‘어디 간 거야?’

제자가 없는데 혼자 서재에 들어가기도 뭐해서, 나는 금사연석 의자에 앉아서 누구든 좋으니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제자가 목수를 불러오는 문제 때문에 일이 있어서 자리를 비웠을 거라고 여겼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각쯤 지났을 무렵 청양이 다가왔다.


“요 대인!”

청양은 서점에서의 일이 생각나지도 않는 듯 반갑단 얼굴로 가까이 왔다.

나는 그날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기에 좋은 표정이 나가지 않았지만, 청양은 그래도 모른 척 웃으면서 말했다.


“요 대인, 전하께서 요 대인이 월무궁에 왔으면 돌려보내라고 하셨습니다.”

“뭐? 정말인가?”

이 제자가 날 괴롭히려고 일부러 오라고 한 거야? 황당해서 되묻자 청양이 얼른 손을 내저었다.


“아니 대인이 상상하는 그런 이유는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목수도 불렀고 이 자리에서 요 대인도 제대로 기다리셨지요. 그런데 오늘 커다란 일이 펑펑 터져서요. 전하께서도 그쪽에 가셨습니다.”

“커다란 일이라니?”

“7황자 전하께서 1소황자가 1황자 전하의 친자가 아닌 듯하니 검사해보자고 하셨거든요.”

아…… 결국 사고를 쳤구나.


“7황자 전하께서는 병에 걸린 1소황자가 외국으로 요양 갔을 때 다른 건강한 아이로 바꿔치기 된 것 같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폐하께서 황궁 식구들을 모두 불러놓고 검사를 하셨습니다. 결과는 당연히 헛소리였지요.”

“이런. 전하께서도 거기 불려가셨군.”

“네. 폐하께선 몹시 분노하셔서 7황자를 감옥에 가두라 하셨습니다. 조카를 음해하다니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렇구나. 그럼 제자가 일부러 날 방치한 건 아니네.


“그런데 왜 아직도 전하는 안 돌아오셨나? 일이 해결됐으니 돌아와도 좋을 듯한데.”

청양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일이 하나 더 터졌거든요.”

“또?”

“예. 7황자의 태감 하나가 갑자기 자백을 해버려서요. 1황자의 의뢰를 받고서 7황자가 1소황자에 관해 오해하도록 유도하였다고요. 1황자는 아니라고 반발했지만 목숨을 걸고서 자백한 거라…….”

청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뒷말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짐작이 갔다.


“폐하께선 그자 말을 믿으셨군.”

“진짜로 믿으시는 건지 아니면 이 일을 계기로 1황자를 밀어내신 건지 어심은 모르지요. 어쨌든 그 일로 태감은 처형되고 1황자는 7황자 옆방에 갇혔습니다.”

청양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그럼 우리 전하는?”

“우리 전하께선 다른 황친분들과 함께 형제자매의 우애에 관한 글을 백 장 적고 계십니다.”

청양이 돌아가고서도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다가 일어났다. 몇 해 뒤에나 일어날 일이 지금 터져서…… 정신이 다 어질어질했다.

게다가 회귀 전과 다른 점도 하나 있었다. 회귀 전에도 1황자는 그리 좋은 결말을 맺진 않았지만, 이 일 때문은 아니었다. 1황자는 이 일로 감옥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1황자까지 연쇄적으로 불똥을 맞은 거야? 제자가 나섰나? 아니면 황후? 아니면 또 다른 후궁이나 황족?


‘일단 난 집에 얼른 가야겠다.’

 

* * *

황제의 측근 태감인 송 태감은 발소리조차 내지 않고 황제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 장성한 그의 두 황자가 감옥에 갇혔다. 황제는 형제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기분이 완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이럴 땐 황제가 언제 어디로 벼루를 던질지 모르니 최대한 가까이하지 않아야 했다.

송 태감은 황제 앞의 식은 찻잔을 소리 없이 들어 올렸다.


“송소우.”

하지만 빠져나가기 전 황제가 그를 불렀다.


“네, 폐하.”

송 태감은 웅 태감에게 찻잔을 건네고 얼른 황제 곁으로 다가갔다.


“요요화가 오늘 입궐했나.”

그런데 황제가 뱉은 질문은 난데없이 요요화에 대한 일이었다.

하지만 송 태감은 황제가 요요화를 아끼는 걸 안 이후 내내 그녀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었다.


“예, 폐하.”

그는 바로 대답하고서 황제의 눈치를 살피다가 물었다.


“불러올까요?”

“불러와라.”

 

* * *

궁전을 빠져나가기 직전 송 태감에게 붙들렸다.


“요 대인, 대인께서 폐하의 마음을 좀 풀어주십시오. 폐하는 대인이 재치 있게 말할 때면 바로 마음이 풀리지 않으십니까.”

송 태감은 나와 함께 어전으로 걸어가면서 이렇게 말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폐하. 요 이국사를 데려왔습니다.”

“들라 해라.”

그리고 내 예상대로, 황제는 내가 도착해도 마음이 전혀 풀리지 않은 표정이었다. 황제가 손을 젓자 송 태감이 얼른 물러났다.

어전 안에 둘만 남게 되자 황제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뒷짐을 지고서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얼른 고개를 숙였으나 내 앞으로 그림자가 지는 게 또렷하게 보였다. 황제는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와 서서 물었다.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이지, 이국사.”

“예, 폐하.”

“그런데 왜 입궐했지?”

“13황자 전하께서 부르셔서요. 월무궁 전각을 수리하는 일로 왔습니다, 폐하.”

“참으로 공교롭지 않으냐. 오늘 같은 날에 자네가 입궐하다니.”

나는 두 손을 모으고서 가만히 있었다. 황제의 그림자가 내게서 멀어지더니 벽 부근에서 쾅 돌 깨지는 소리가 났다.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보니 황제의 벼루가 저쪽 벽에 부딪혀 박살이 나 있었다. 황제의 손길이 문진을 오가는 걸 보고서 나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국사.”

“예 폐하.”

“필첩에 1, 7, 끝이란 단어가 있었다.”

젠장! 나도 1황자가 이 일에 같이 연루될 줄 몰랐다고요……!


“이국사.”

“예, 폐하.”

가까이 다가온 황제가 내 턱을 잡더니 번쩍 들어 올려 자기 눈과 마주치게 만들었다. 제자와 다른 의미로 흉흉한 시선을 마주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짐에게 일부러 예언을 틀리게 해석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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