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내 친구를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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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내 친구를 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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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화. 내 친구를 돌려줘
2023.07.27.
뒤에, 뒤에 있어? 지금 제자가 내 뒤에 있어? 나는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내 관절이 돌로 변한 듯했다.
제자가 내가 자기한테 독을 먹일 거라 의심하는 게 짜증 나서 마구 둘러댄 건데…… 설마. 설마. 제발 없기를!
“좋게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하 낭자.”
있구나!
“그리고 내…… 토끼 같은 스승님.”
게다가 다 들었어! 애써 표정을 관리하려 해보았으나 이미 온 얼굴에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도 최대한 정색하고서 천천히 돌아보니 운귀가 동정심 가득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을 죄다 들어버린 모양이다.
제자는 당장 내 입을 틀어막고 싶단 듯 눈을 부리부리하게 빛내면서 입꼬리만 올리고 있었다.
내가 허풍떤 걸 모르는 6황자만이 ‘참 사이가 좋네’ 하는 얼굴로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이리로 오시지요. 토 선생.”
달달 떨고 있으려니 제자가 한 손을 내밀며 싸늘하게 말했다. 나는 얼른 제자 곁으로 다가가 그의 팔을 살짝 잡았다. 진정해. 이건 생각해보면 화낼 일이 아니잖아.
6황자와 6황자 정혼녀가 손을 잡고 먼저 나가자 제자는 내 귀에 자기 입을 가져다댔다.
“언제부터 박쥐가 토끼가 되었는지요?”
“박쥐 조상이 토끼였단 이야기가 있어요 전하.”
“제자가 그런 이야기를 믿을 정도로 멍청해 보이십니까.”
“왜 그렇게 화를 내세요.”
“스승님이 저를 멍청한 작자로 만들었으니까요.”
사이 좋으면 정혼한 사람끼리 토끼라 부를 수도 있지. 뭐. 너무하네 너무해.
“알았어요. 제가 책임질게요.”
“뭘 어떻게 책임지시려고요.”
“앞으로 절 토끼라 부르셔도 돼요.”
“하.”
제자가 싸늘하게 나를 비웃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대화원에 도착했다. 길목에는 이미 6황자의 궁녀가 서 있어서, 우리가 다가오자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전하. 모든 준비를 다 갖추어 놓았어요.”
궁녀를 따라가니 그야말로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꽃이 구름처럼 피어 있는 나무 아래에 탁자와 의자 네 개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자 6황자가 손짓했다. 그러자 운귀가 두 황자가 싼 도시락을 탁자에 내려놓고 뚜껑을 치웠다. 뚜껑을 벗기자 극과 극의 음식이 나타났다.
하나는 숙수를 불러서 한 게 아닌가 의심되리만큼 화려했고, 다른 하나는…… 다 태웠네. 요리를 한 건지 요리를 태운 건지 구분이 가지 않는 수준이다.
한 사람이 요리를 만들고 다른 한 사람은 아궁이에서 재를 긁었나?
“와. 이 다 태운 음식이 전하께서 하신 건가요?”
내가 탄내가 진동하는 음식을 가리키며 묻자 6황자는 헛기침하고서 자신을 가리켰다.
아차 싶어서 입을 다물자 제자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내가 말실수 하는 게 그렇게 좋냐.
“13전하께서는 정말 다정한 낭군이 되시겠어요. 요리도 잘하시고 늘 동서만 챙기시고, 토끼라고도 불러 주시고.”
6황자가 자기 정혼녀와 ‘우리도 애칭을 정할까’ ‘그럼 전 사슴이 좋아요’ ‘ 그대는 꽃사슴이지’ 같은 말을 주고받는 동안 나는 심호흡을 하고 젓가락을 쥐었다.
그러고서 13황자가 한 음식 중 가장 조그만 음식 하나를 입에 가져간 다음 빠르게 씹어 넘겼다. 독 있을지도 몰라 독.
“…….”
제자가 노려보아도 어쩔 수 없었다. 옆에서 요리하는 걸 직접 봐도 나는 제자가 한 음식은 먹기 싫은걸.
6황자 정혼녀는 나와 제자, 6황자 사이를 슬금슬금 쳐다보다가 같이 13황자가 한 음식을 먹었다.
“맛있어요!”
6황자도 13황자가 한 요리를 먹었다.
“열셋째, 요리를 잘하는군. 어머니가 궁녀가 그런가?”
13황자도 당연히 자기 요리를 먹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6황자가 만들어 온 탄 음식을 먹었다.
그렇다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6황자는 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를 힐긋거렸다. 자기 정혼녀는 13황자 음식을 먹고 나는 자기 음식을 먹고 있으니 이게 뭔가 싶은 듯했다.
“전 살짝 탄 음식을 좋아합니다, 전하.”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6황자 음식을 먹었고, 그 후유증은 6황자 예비부부와 헤어진 다음 나와 제자 둘만 남았을 때 나타났다.
“그렇게 여섯째 형님이 좋으십니까.”
“좋아서 먹은 게 아닌데요.”
“정신없이 드시더군요. 제가 한 요리는 왜요. 더럽고 불결해서 입에 담기도 싫으시던가요?”
뭐야 저 말도 안 되는 비약은? 더럽고 불결은 어디서 나온 거야?
“그런 게 아니잖아요, 전하. 전하가 한 음식은 하 낭자가 잘 먹고 있고 6황자 전하 음식은 아무도 안 먹으니 제가 먹은 거지요. 6황자 전하께서 민망하실 거잖아요.”
치졸하게 따지는 제자를 애써 좋게 달래보았지만 제자는 이미 단단히 마음이 비틀려 있었다.
“누가 봐도 쓰레기라 자기 정혼녀도 안 먹은 건데 왜 그걸 스승님이 드시느냔 말입니다.”
최소한 독은 아닐 테니까.
“그 말도 안 되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여섯째 형님과 하 낭자가 먹었어야지요. 스승님은…….”
제자는 화가 어디까지 난 건지 잠깐 눈을 감고 숨까지 골랐다.
나쁜 놈. 그래도 나는 자기가 한 음식 하나는 먹었는데. 자기는 내가 만든 음식은 한 입도 먹기 싫어서 요리까지 한 거면서.
“스승님은 제 형수님이 아니라 제 정혼녀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전하는 양심에 손을 얹고 스스로를 살피셔야 해요.”
* * *
용정은 궁전 부근에 빌린 작은 집의 뒤채에서 뒷짐을 지고서 왔다 갔다 돌아다녔다. 늘 분주한 머릿속이 오늘은 더욱 혼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 요씨 가문 사람이 날 구했지?’
그가 화음에 남은 건 황녀들을 황제 자리에 올리겠다는 황후의 야심이 흥미롭고 재밌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는 어려운 일을 해내는 걸 놀이처럼 여겼다. 이 정도의 난도는 그를 흥분시키기 충분했다. 특히 황후와 그녀의 장녀, 차녀는 참으로 영민한 이들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그에게는 한 가지 목표가 강제로 더 부여되었다.
-폐하께서 이 서신을 공께 꼭 전하라 하셨습니다.
태월 사절은 죽은 보문 공주의 시신을 수습해 가기 전, 그를 찾아와 황제의 친필 서신을 건넸다.
서신 안에는 황제의 매서운 분노와 자식을 잃은 슬픔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태월 황제는 반드시 요요화와 13황자의 목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태월 황제는 보문 공주가 자결한 게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하긴. 그건 다른 이들도 모르는 듯하지만.’
용정은 걷던 걸 멈추고 평상에 걸터앉았다. 이런 상황에서 요씨 가문의 여인이 그를 구하다니. 이건 운명의 장난인가 누군가의 계략인가.
‘설마 요요화 본인은 아니겠지.’
용정은 요요화의 얼굴을 몰랐기에 한층 더 불안해졌다.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용정은 자신을 구해준 여인의 손수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집을 찾아가서 ‘이러이러하고 날 구한 사람이 있는데 누굽니까’라고 묻지 못하고 있었다.
고민하던 용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할 준비를 했다. 그가 요씨 가문을 찾아갈 수 없다면 요씨 가문에서 그를 찾아오게 만들면 될 일이었다.
* * *
‘아니 용정 그 자식은 내가 자기 구한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날 안 찾아와?’
용정을 구한 지 거의 칠일은 됐을 거다. 그런데 증거를 퍼다 붓다시피 하고 왔는데도 용정이 내게 오지 않는다.
둘 중 하나였다. 그놈이 은혜를 갚을 마음이 없거나. 날 찾아냈지만, 태월 사람이라서 은혜를 무시하기로 작정했거나.
젠장. 내가 아끼는 손수건까지 주고 왔는데…….
‘일단 가보자.’
어쨌든 연유라도 알아보자 싶어서, 나는 수업이 없는 날을 골라 전에 간 골목길로 들어갔다.
용정을 옮겨둔 객잔으로 가자 객잔 주인이 날 보고 환하게 웃었다.
“착한 낭자로군요! 오늘은 무슨 일로 왔습니까?”
나는 주인이 서 있는 계산대 앞으로 다가갔다. 내 얼굴을 알아보았는지 일전의 점소이도 웃으면서 다가왔다.
“먹을거리도 사가고 물어볼 게 있어서요. 포장되나요?”
“얼마든지 물어보시지요. 포장도 됩니다.”
점소이가 주문 판을 가져왔다. 나는 가장 인기가 좋다고 표시해둔 음식 몇 개를 짚은 다음 주인에게 물었다.
“저기, 전에 제가 구해드린 그 손님은 무사히 돌아갔나요? 걱정되어서요.”
그런데…… 어라. 이게 뭘까. 내내 웃고 있던 주인이 몹시 당황한 기색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점소이도 주문 판을 들고서 곁에 서 있더니 다급히 안쪽 주방으로 들어갔다.
“포장이요!”
내가 빤히 쳐다보자 주인은 쩔쩔매면서 “그게 말이지요.” 하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결국 푹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참 복잡하게 되었군요.”
“복잡하게 되다니요?”
“그 손님은 몇 시진 뒤에 무사히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에 그 손님이 다시 객잔을 찾아와서 자기 방값은 자기가 낼 테니 미리 받은 방값은 돌려주라고 하더군요.”
여기까지는 일이 제대로 흘러온 거 같은데?
“그래요?”
“예. 그래서 요씨 가문에 사람을 하나 보냈습니다. 제가 그 다쳤던 분에게 낭자가 선하고 선녀처럼 아름다운 낭자라고도 말씀드렸지요.”
요씨 가문에 객잔에서 사람이 왔나? 물론 난 수업 있는 날에는 자리를 비우니 손님이 다녀가도 알기 힘들다. 하나하나 보고를 받는 것도 아니고.
“얼마 지나자 요씨 가문 소저가 저희 점소이 하나랑 같이 왔습니다. 그야말로 대갓집 규수 같은 소저였지요. 그 소저도 참 어여쁘긴 했지만 그래도 낭자는 아니었습니다. 당연히 알아봤지요.”
“네…….”
“놀라서 점소이에게 물으니 요씨 가문에서 데려온 소저가 확실하다더군요. 그래서 혹시 낭자가 그 소저를 대신 보냈나, 싶어서 일단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후 낭자가 구해준 분과 요씨 가문에서 온 소저가 둘이 얘기를 나누었고, 그분은 은인을 바꿔 알고 돌아가셨지요.”
“뭐라고요?”
그걸 그냥 두고만 봤어? 황당해서 쳐다보자 주인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변명했다.
“당황해서 나중에 그 소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그 소저는 자기가 진짜 은인의 자매인데, 진짜 은인 낭자는 이미 정혼한 사람이라 사내를 만나는 자리에 나오기 힘들다 하더군요.”
이게 무슨…….
“그래서 대신 자기가 나온 거고 이미 이야기가 된 거라면서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고 가지 뭡니까. 그래도 혹시 몰라서 그 소저를 데려온 점원에게 뒤를 밟으라 했더니, 다시 요씨 가문에 들어갔습니다.”
점소이가 포장한 음식을 가지고 나와 계산대 위에 올려두며 덧붙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이 정말인 줄 알았어요.”
점원과 사장이 눈치를 보면서도 흥미를 느낀 듯 나를 빤히 힐긋거렸다. 나는 너무 화를 내지 않기 위해 표정을 관리했으나 참지 못하고 목 뒤를 짚었다.
아이고 머리야. 아이고 이게 웬일이야. 용정과 친구가 되려고 판을 깔았는데 누가 거기 가서 홀랑 드러누운 거야?
“저…… 낭자. 여기 왔던 소저는 낭자랑 비슷한 나이대 같았습니다.”
점소이가 조심스럽게 정보 하나를 더 주었지만 소용없었다. 지금 우리 집에는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사촌들이 우글우글하니까!
아이고 내 용정. 아이고 내 용정!
‘젠장. 절대로 이렇게 못 넘기지. 누군지 잡아서 다시 돌려받아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