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이것이 박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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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화. 이것이 박쥐다
2023.07.20.
“2층 가장 끝방을 잡은 사람인데요.”
만의 하나를 대비해야지. 나는 떠나기 전 방값을 미리 계산하면서 점소이와 객잔 주인에게도 확실하게 얼굴을 보였다.
“소저,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십니까?”
일부러 그들이 날 인상 깊게 보도록 방값도 몇 배로 넣었다.
“혹시 오늘 못 깨어날지도 모르니까요.”
나는 적당히 둘러댄 다음 최대한 선한 말투로 말했다.
“저녁이 되어도 못 일어나면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주겠어요? 아프다면 의원을 불러주어도 좋아요.”
나는 돈을 한 움큼 더 내민 다음 생각하는 척하다가 덧붙였다.
“혹시 돈이 모자라면 요씨 가문으로 찾아오면 돼요.”
“세상에…… 정말 선녀 같은 분이십니다. 모르는 이에게 이렇게 친절을 베풀다니요.”
나는 쑥스러운 척 웃고서 객잔 밖으로 나갔다. 좋아. 이 정도면 확실하게 얼굴도장을 찍었겠지.
여기저기에 내가 누군지 추측할 단서를 남겨두고 왔으니 용정이 날 찾기 쉬울 거다. 너무 복잡하게 꼬아둔 것 같지만 이 정도가 적당했다.
용정은 호기심도 많았지만, 의심도 많은 성품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서 그를 돕고 스스로를 소개한다면 그는 내가 자기를 도운 데 계략이 섞여 있지 않나 의심할지도 몰랐다.
그 사람은 태월 사람이고, 태월 사람은 보문 공주 건 때문에 날 싫어할 테니까.
그러니 그가 직접 단서를 쫓아 날 찾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용정이 나와 친분을 쌓게 되면 제자가 날 의심할지도 모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전략가인 용정을 손에 넣는 게 더 낫다.
어차피 책방 사건으로 제자는 날 의심할 대로 의심하고 있지. 결정적인 증거를 잡히지만 않으면 돼.
‘그런데 용정은 어쩌다가 거기서 얻어맞고 있던 거야?’
* * *
요화가 떠난 뒤. 용정은 한 시진 가량이 지나서야 눈을 떴다. 그가 몸을 일으키자 축축한 물수건이 옆으로 툭 떨어졌다.
용정은 이마를 문지르며 떨어진 물수건을 보다가 그 옆에 놓인 손수건을 발견했다. 손수건도 축축했다.
‘요……?’
용정은 손수건 귀퉁이에 수놓아진 글자를 보다가 눈살을 구겼다. 가물가물한 기억 속 그를 내려다보던 여인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사라졌다.
분명 얼굴을 본 것 같은데…… 꿈에서 본 얼굴처럼 똑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주 아름다웠던 기억이 났다.
방 안을 둘러본 용정은 그 여인이 자신을 간호했단 걸 알아차렸다. 여기저기에 간호하고 남은 흔적이 보였다.
‘날 구해주고 떠난 건가…….’
용정은 여인의 얼굴이 다시 흐릿하게 떠올라서 침상에 다시 앉았다. 구해주었기 때문일까. 여인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묘하게 들뜬 느낌이 났다.
그는 은혜도 갚을 겸 자신을 구하고 왜 그냥 간 건지 알아볼 겸 은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유 없는 호의는 의심스럽다.’
용정은 몸을 일으키고서 의자에 걸린 옷을 들어 올렸다. 그러다 용정은 자신이 얇은 바지만 입고 그 외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걸 알아차렸다.
“!”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용정은 다급히 그의 몸을 살폈다. 팔과 다리에 붕대가 돌돌 말려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배와 가슴까지도 붕대가 감겨 있었다.
붕대 한쪽을 풀어 보니 안에 꼼꼼하게 찧은 약초가 뭉개져 있었다. 제대로 치료를 한 듯했다.
용정은 풀어헤친 붕대를 옆에 두고 놀란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그 낭자가 내 옷을 벗긴 건가?’
* * *
요요화를 대신할 소가주 후보 중 하나인 요소모는 데려온 이들을 전부 다 풀어서 익명의 서신이 전한 정보가 진짜인가 확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너무 내밀한 사정이라 진위조차 일기 힘든 걸 제외하면 거의 다 진짜였다.
이를 확인한 요소모는 기뻐서 웃음을 터트렸다.
“이걸로 요씨 가문 소가주 자리는 내게 차지하게 되었구나! 누군가 날 돕고 있다!”
하지만 요소모의 종복은 영 불안했다.
“도우면서 이름도 밝히지 않고 수상쩍게 서신만 남기고 간 게 너무 수상합니다, 나리. 다른 목적이 있을 거 같습니다.”
요소모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당연히 있겠지. 아마 서신을 남긴 건 요 가주나 직계 식솔들에게 불만이 있는 사람일 거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냐.”
아니, 오히려 그런 거라며 일을 서둘러 도모해야 했다.
요 가주 식구에게 불만을 가진 누군가가 요소모가 꿈지럭거리는 걸 보고 다른 소가주 후보에게 같은 정보를 주려 들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미 주었을지도 모르고.
“얼른 가자.”
요소모는 정신이 번쩍 들어서 다급히 객잔 밖으로 나가 요 가주의 둘째 동생에게 접근했다. 요 가주와 아내, 그 동생들이 평소에 어디를 자주 다니는지는 이미 요소모도 꿰뚫고 있었다.
“바로 가신다고요? 어떻게 대응할지 그래도 좀 생각이라도 해보시는 게…….”
“생각한 바가 있다.”
요 가주의 둘째 동생 요모화가 한 번씩 들르는 음식점에서 기다린 끝에 요소모는 그와 따로 다루를 찾아 이야기를 나누는 데 성공했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였습니다. 소가주 자리에 대해 의논하여야 하는데, 후보가 될 친척들이 하나같이 나타나질 않으니까요.”
요소모는 요모화가 반갑게 말을 걸었으나 냉랭하게 대답했다. 형 부부에게 최근 실망했다지만, 어쨌든 요소모는 먼 친척이었고 그의 부모님이 남긴 가산을 뺏으려 드는 인물이었다. 기꺼운 마음이 들 수가 없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놀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확인을 해보아야 하니까요.”
요소모는 그래도 기분 나쁜 내색 없이 호탕하게 대답했다. 그 태도에 요모화는 그제야 요소모를 좀 제대로 살폈다.
요소모는 그래도 태연히 웃고 있다가 요모화가 좀 수그러든 듯하자, 익명의 서신을 받고서 생각해 둔 바를 꺼냈다.
* * *
“자기 막내아들과 우리 딸 중 하나를 정혼 시키자고요?”
요요화의 둘째 숙모인 조비영은 외출한 남편이 갑자기 애매한 시간에 돌아와 한 이야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자가 그렇게 말하던가요?”
“네. 생각보단 도리를 아는 자더군요. 자기 딸과 우리 아들이 혼인하게 된다면 우리는 부모님이 물려준 가문을 먼 친척에게 그냥 뺏기지 않아서 좋고, 자기는 소가주가 되는 데 우리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좋을 거랍니다.”
“나이가 맞나요?”
“나이를 맞춰보니 그자 막내아들이 우리 일곱째랑 여덟째 또래였습니다.”
조비영은 눈살을 구기고서 바느질하던 옷감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고 했나요?”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혼사는 쉽게 결정할 일이 아니니까요. 당신 생각도 들어야 하고요.”
조비영은 말없이 실을 꿴 바늘을 움직였다.
요모화는 아내가 생각을 정리할 동안 아내가 따라둔 차를 홀짝홀짝 마셨다. 그가 차 한 잔을 거의 다 마셨을 즈음. 마침내 조비영이 입을 열었다.
“그럴 생각이면 차라리 요소모의 막내아들보단 당신 숙부의 서출 아들을 살피는 게 나아요. 당신 또래이니 그 집 장자가 우리 딸과 나이가 비슷할지도 모르잖아요.”
요모화는 그 말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렇군! 요소모의 막내아들보단 장자에게 시집보내는 게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딸이 다음 대 소가주의 아내가 될 테니, 결국 우리 아이가 여길 물려받는 셈 아닙니까!”
맞아요. 그리고 이렇게 해야 당신 서녀 딸들이 아니라 내 딸이 소가주의 아내가 되겠죠. 조비영은 뒷말은 굳이 덧붙이지 않았다.
“그런데 형님이 싫어하진 않을까……?”
“첫째 아주머님이 싫어하진 않을 거예요. 아주버님이야 어차피 두 딸 모두 혼처가 정해졌고 소가주 자리는 누구에게든 잃게 되니까요. 그럴 바에야 자기 조카가 소가주의 아내라도 되는 게 좋겠지요.”
요모화는 눈살을 구겼다. 그 말이 맞았다. 요 가주는 누구에게든 밀려날 일뿐이니 싫어하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어쩌면 그나마 자기 피붙이를 남길 수 있어서 낫다고 여길지도 몰랐다. 어쨌든 사촌이 소가주의 아내가 되면 요화 린화 자매에게도 힘이 될 게 아닌가. 문제는…….
“둘째 형님과 도련이가 싫어할지도 모르겠군요.”
* * *
“요씨 가문이 제대로 들썩이기 시작했습니다, 전하. 아직은 물밑에서 서로 눈치를 보는 정도이지만 요소모가 움직였고 요모화는 요소모를 배반할 준비를 시작했으니 불화는 점점 커질 겁니다.”
청양의 보고를 들은 화려는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머금었다.
“잘했다.”
청양은 주군의 칭찬에 뿌듯하게 웃었다. 왜 화려가 이런 걸 시키는지, 요요화와 주군의 사이는 대체 무엇인지 아직도 헷갈렸지만 어쨌든 그는 화려가 시키는 걸 잘 해내기만 하면 되었다.
화려는 먹을 싼 종이를 반 뜯어냈다. 청양이 얼른 벼루에 물을 채워주었다. 화려는 먹을 갈면서 거기서 풍기는 향을 상쾌한 기분으로 들이마셨다.
가문이 혼란스러워지면 스승도 이제 딴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다. 스승이 가문에서 벌어지는 소동에 정신이 산만해진 동안 그는 황제가 요화에게서 시선을 떼고 혜빈에게 푹 빠지도록 만들면 되었다.
황제가 혜빈을 총애하게 되면, 혜빈이 요요화의 호의에 보이는 관심도 사그라들 것이다. 황제가 요요화를 아끼는 게 꼴 보기 싫어질 테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일일이 챙겨야 한다니. 화려는 고운 미간을 찡그렸다. 왜 스승을 죽이는 것보다 손에 넣는 게 더 까다로운 걸까? 역시 그 사람이 박쥐라 그런 걸까?
“비열한 인간.”
“…….”
청양은 주군에게 ‘전하 자신 이야기인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뒤에서 음흉한 모략을 세워 스승의 가문에 풍파를 일으키려 하는 주군이 대체 누구를 비열하다고 말하는 걸까.
하지만 주군은 적반하장 같은 말을 하면서도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보기 드물게 입가에 따뜻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만 가보아라.”
“예.”
청양은 꾸벅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하지만 그는 문밖으로 나가다가 다시 돌아왔다.
화려는 먹을 계속 갈면서 청양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지?”
“그리 중요한 건 아닙니다만, 혹시 싶어 보고드릴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내가 지시한 건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요 이국사에 대한 일입니다.”
그리고 전하는 요 이국사 일에는 과민하고 기이한 반응을 계속 보이시죠. 청양은 이번에도 뒷말을 삼켰다.
과연 화려는 스승 이야기가 나오자 입꼬리를 내리고서 분위기가 바로 바뀌었다. 그가 말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지?”
“저…… 전하께서 관심을 보였던 용정 말입니다. 보문 공주를 통해 만나려 하였는데 황후가 먼저 만나 버려서 이후 관심을 접은 그 태월 전략가요.”
화려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회귀 전 그가 몇 번이나 곁에 두었던 사내이니 모를 리가 없었다.
“그자가 내 스승과 무슨 상관이란 거지?”
“확실한 건 아닙니다, 전하. 저…… 용정이 요 며칠간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용정이 찾는 사람이 요 이국사 같습니다. 그리 중요한 정보는 아니지만 혹시 전하께서-.”
먹이 빠득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청양은 입을 다물었다. 청양은 숨도 쉬지 않았다. 먹을 움켜잡은 13황자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도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박쥐가 언제 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