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누가 독을 먹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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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누가 독을 먹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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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화. 누가 독을 먹였는가
2023.07.06.
황제가 요요화만을 데리고 나가자 남겨진 사람들은 목소리를 낮추어 수군거렸다.
“폐하께서 왜 요 이국사만 데리고 나가신 걸까요?”
“혹시 요 이국사에게 뭔가 혐의점이 있는 게 아닐지…….”
“폐하께서 따로 아시는 게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침방은 넓었으나 그 안에 모인 사람들 수가 많다 보니 수군대는 소리는 13황자가 충분히 들을 정도였다.
13황자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역시 황제가 왜 스승을 데려간 건지 알지 못했다. 몇 번이나 나서서 스승과 황제가 가까워지는 걸 막았는데. 그 둘은 언제 또 이렇게 가까워진 걸까.
그때 닫혔던 문이 드르륵 열리며 황제가 혼자 돌아왔다.
요요화는 어디 있지? 사람들은 황제의 뒤를 보았으나 요요화는 없었다.
“폐하. 요 이국사는 어디로 갔는지요?”
황후가 모두를 대신해 물었다.
“짐이 다른 일을 시켰소.”
황제는 덤덤하게 대답하고서 그를 쳐다보는 이들을 한 바퀴 둘러보며 말했다.
“요요화는 어차피 범인이 아니니 빼고 다른 사람 중에 혐의 있는 사람을 찾아보시오.”
아직 흐느끼던 교비는 주먹을 움켜쥐고서 외쳤다.
“말도 안 됩니다 폐하. 4황녀와 최근에 가장 크게 싸운 게 요요화인데 요요화를 빼라니요!”
1황자도 교비 옆으로 다가가 서며 말했다.
“아바마마, 왜 요요화를 빼고 범인을 찾으라 하십니까? 마땅한 이유가 있다면 소자들에게도 알려주십시오.”
화려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황제와 닫힌 방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 * *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생각하기 번잡하겠지. 이곳에서 잘 생각해 보도록 하거라.
황제가 배려해주는 것처럼 날 홀로 두고 나가자 오히려 마음이 더 번잡해졌다. 아니, 이 상황에서 나 혼자 두면 내가 더 이상해지잖아?
사람들이 나에 대해 수군거리는 모습이 안 봐도 눈에 선하다. 나는 기운 없이 필첩을 한 장 한 장 넘겼다.
2황자비가 쌍둥이 남아를 회임할 거라는 뜻에서 ‘2, 2, 남아’라고 적었지. 그 부분 다음에는 ‘1, 여름, 성’이라고 기록했다.
회귀 전 1황자는 이때 아직 1소황자를 밑에 두고서 떵떵거리던 시기였다. 그런 1황자에게 황제는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인지 갑자기 축성을 지시했다.
그러나 1황자는 인부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했고, 결국 엉망으로 성을 쌓다가 폭우로 절반가량이 무너졌다.
정확히 몇 월인지는 모르겠지만 2황자비가 회임한 뒤 여름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시기는 2황자비 회임과 이 사건 중앙에 있다.
‘젠장. 필첩을 봐도 무슨 소용이겠어. 회귀 전엔 아예 없던 일인데.’
그러고보니 이상하지. 회귀 전에도 독은 여기저기서 쓰였지만 그래도 이상하다. 회귀 전에 독을 먹지 않은 이들이 왜 이 시기에 독을 자꾸 먹는 거지?
보문 공주나 4황녀 모두 회귀 전에는 독 먹는 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니 수상했다. 혹시 진범이 있는 건 아닐까?
‘보문 공주와 4황녀에게 공통적으로 원한을 품을 사람이 있나? 그런 사람은…… 나? 젠장. 그러면 보문 공주랑 묶어서 독살 가능성을 제시하지도 못하잖아?’
* * *
사람들은 초조하게 제자리에서 몸의 균형만 바꾸며 대기하고 있었다. 다들 범인이 누구일까 고심하느라 바빴다.
교비와 13황자만이 한 번씩 닫힌 문을 쳐다보았으나 두 사람의 머릿속은 전혀 달랐다.
“부황.”
그러다 13황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 생각나는 게 있느냐.”
“스승님이 어디에 계시는지요?”
“그건 왜 묻지?”
“스승님이 혼자 계시면 불안할 겁니다. 소자가 곁에 있어야겠습니다.”
황제는 잠깐 13황자를 보았다가 손을 내젓고서 4황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이국사는 지금 집중해야 하니 혼자 두어라.”
“무엇을 집중해야 합니까?”
교비는 부글거리는 속을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4황녀와 어제 대놓고 싸운 건 요요화뿐이었다. 교비는 자꾸만 요요화가 의심스러웠다.
“요요화는 일전에도 좋은 의견을 내어 여러 가지 짐의 골칫거리를 덜어 주었다. 해서 이번에도 머리를 잘 짜내 보라고 혼자 두었다.”
“여기서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폐하.”
“여기 있는 이들 대다수가 자기 윗사람인데 머리가 잘도 돌아가겠군.”
황제는 더이상 그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듯 날카롭게 손을 저었다.
교비는 억지로 입을 다물었으나 끓는 속은 가라앉지 않았다.
“아바마마.”
그때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5황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하나 여쭈어도 괜찮을까요?”
5황녀는 발랄하고 활달한 9황녀와 달리 섬세한 얼음 같은 사람이었다. 아무 때나 쉽게 입을 여는 이가 아니었기에 황제는 이야기해 보라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라.”
화려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 5황녀를 바라보았다. 회귀 전 그는 5황녀를 처단하기 직전이었다.
5황녀는 한 치 흔들림도 없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근래에 보문 공주 역시 독에 당했지요. 멀지 않은 시기에 두 사람이나 궁궐에서 독에 당한 게 이상합니다. 혹시 같은 사람이 범인이 아닐지요?”
화려의 한쪽 입꼬리가 천천히 비틀어 올라갔다.
8황녀는 5황녀가 나서자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다가 퍼뜩 무언가를 떠올리고 끼어들었다.
“맞아. 부황, 듣고 보니 보문 공주와 넷째 모두 요요화와 사이가 안 좋았어요. 둘 다 요요화와 싸운 뒤에 독을 먹었네요!”
그 말에 1황자비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가늘게 뜨더니 입술을 달싹였다. 끼어들어 한 마디를 보태고 싶지만 황제에게 미움을 받은 처지이니 신중하게 굴려는 듯했다.
황제는 눈썹을 찌푸리기만 할 뿐 두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이를 보던 황후가 슬그머니 나서서 딸들에게 힘을 보태주었다.
“폐하. 요 이국사는 성정이 어질고 순하니 범인이 아닐 겁니다. 그래도 일은 공정하고 정확하게 처리해야 하니 한번 불러 살펴보시지요.”
황후의 목소리에는 조금도 사심이 섞여 있지 않았다.
황제는 눈썹을 찡그리고 황후를 쳐다보다가 의식이 없는 넷째딸을 내려다보았다. 4황녀는 낯빛이 시체처럼 창백해진 채 아주 느리게 호흡하고 있었다.
한숨을 내쉰 황제는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송소우. 요요화를 불러와라.”
“예 전하.”
* * *
대체 황제에게 뭐라고 말해야 내가 이 일을 몰랐단 걸 받아들일까? 그 고민을 하느라 방 안을 선 채로 왔다 갔다 돌아다니고 있는데, 열린 문 너머로 송 태감이 다가오는 게 보였다.
“송 공공. 무슨 일인가?”
황제가 날 불러오라고 했나? 얼른 가까이 다가가서 묻자 송 태감이 자기가 지나온 복도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요 대인. 폐하께서 요 대인을 불러오라 하십니다.”
아직 둘러댈 말을 떠올리지 못했는데!
“알았네.”
하지만 시간을 끌면 이상하게 보일 거다. 황제도 황제지만, 지금 방 안에 남은 사람들 눈에 내가 얼마나 이상하게 보이겠는가.
‘부디 황제가 기다리다 지쳐서 그냥 돌아오라고 부른 것이기를!’
나는 송 태감을 따라 4황녀의 침방으로 곧장 돌아갔다.
“폐하. 요 이국사를 데려왔습니다.”
방문이 열려 있었기에 나는 곧장 안으로 들어가 황제에게 꾸벅 인사를 올렸다.
그러고서 제자 곁으로 가려는데 황제가 “이국사.” 하고 나를 불렀다.
‘젠장. 역시 그냥은 안 넘어가는구나.’
“네, 폐하.”
나는 제자 곁에 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서서 황제 쪽을 보고 섰다.
“이국사. 5황녀와 8황녀, 황후가 네게도 혐의가 있다고 보는구나.”
그런데 뜻밖에 황제가 꺼낸 이야기는 필첩이나 예지몽과 관련된 질문은 아니었다.
“너는 4황녀와도 시비가 붙었고 보문 공주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지. 혹시 이에 관해 할 말이 있느냐.”
“혐의가 있다고 보는 정도는 아닙니다, 폐하.”
황제가 날 의심하는 인물을 하나하나 짚어주자 황후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황제의 팔을 툭 쳤다.
황제는 대꾸하지 않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어…… 예지몽은 안 꿨지만 다행히 이건 해명할 말이 있지. 사실 아까도 방 안에서 예지몽보다는 누가 이걸 지적하면 뭐라고 대꾸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 황후마마. 소신은 보문 공주님이 감금된 후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태월 사절이 온 연회 때도 공주님과 자리가 뚝 떨어져 있었고, 따로 대화를 나눈 적도 없지요. 어제도 4황녀 전하께서 상석에서 저를 혼내실 때 잠시 대화를 나누었을 뿐 근처에 간 적도 이후 대화를 나눈 적도 없습니다.”
14황녀가 빠른 걸음으로 내 앞에 다가오더니 환하게 웃으며 반박했다.
“누군가에게 시켰을지도 모르지!”
“그렇지요. 하오나 전하, 어제 연회장에 모인 황친들 중 제가 지시를 내릴 수 있는 분이 누가 있을까요?”
“!”
14황녀는 내 말에 입을 뻥긋거리더니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국사의 말이 옳군요.”
잠깐의 침묵 후. 황후가 얼른 나를 두둔하는 척해주었다.
“이국사는 그 자리에 모인 이들에게 그런 걸 지시할 처지가 안 되지요. 하다못해 요리에 손을 쓸 입장도 아니니까요.”
후우. 일단 내 혐의는 벗은 건가.
내가 혐의를 벗었으니 나와 처지가 엇비슷한 13황자에게도 이걸로 따지는 사람은 없겠지. 뭐. 보문 공주나 4황녀가 13황자와 싸운 것도 아니긴 하고.
교비는 나를 노려보았으나 나서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지 주먹을 꽉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때 내게 의혹을 제시했다던 5황녀가 앞으로 반걸음 다시 나왔다.
“폐하. 다툼이 드러난 건 요요화지만 알려지지 않은 원한 상대가 배후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7황자가 말을 받았다.
“아바마마. 그러고보니 어제 넷째 누님과 셋째 형님, 혜빈마마가 동시에 나간 적이 있습니다.”
“!”
나는 이제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안도하던 심장이 3황자 이름이 나오자마자 쿵 무겁게 울렸다. 어제 내가 알아차린 걸 7황자 저 새끼도 보았구나!
게다가 이 자리에는 3황자는 없고 혜빈뿐이었다. 그는 자신을 방어할 수도 없었다.
저절로 시선이 예혜 낭자에게 돌아갔다.
여기서 예혜 낭자가 혐의를 벗기 위해 ‘아니다, 나는 4황녀와 같이 있지 않았다’고 말하면 꼭 3황자와 혜빈이 같이 나가 있던 것처럼 들리게 된다. 설령 둘이 따로 있었더라도.
그렇다고 ‘각자 다 따로 있었다’고 말하면 4황녀를 해코지할 기회가 있었단 뜻이니 역시 혐의를 온전히 벗지 못하게 된다.
자신만 따로 있고 3황자와 4황녀와 같이 있었다고 말하면 반대로 이번엔 3황자가 곤란해졌다.
‘어쩌지?!’
속으로 애가 타서 머리를 다급하게 굴릴 때였다.
“맞습니다. 산책하던 도중 3황자 전하와 4황녀 전하를 모두 보았습니다.”
뜻밖에도 예혜 낭자가 눈을 반쯤 내리깔고 앞으로 걸어 나와 남 이야기하듯 말을 꺼냈다.
“두 분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요.”
‘3황자랑 4황녀가 같이 있었고 자기는 따로 있었다고 발뺌하는 건가……?!’
예혜 낭자가 3황자를 팔아먹을 줄이야!
“3황자께서 4황녀를 위로했으나 4황녀께서는 폭언을 퍼붓고 그 자리를 떠나셨습니다.”
“거짓말하지 마라!”
참고 있던 교비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송구합니다, 마마.”
예혜 낭자는 조금도 송구하지 않는 표정으로 사과하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두 분은 가까이 붙지도 않았고 두 분 사이엔 거리도 멀었습니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4황녀께서 화를 내고 가셨을 뿐이고 그조차도 잠깐이었습니다.”
팔아먹는 게 아니구나. 설마 예혜 낭자…… 자기가 위험해지는 걸 무릅쓰고 3황자를 변호하는 건가?
교비는 얼굴이 붉어져서 예혜 낭자를 노려보다가 매섭게 물었다.
“그럼 혜빈은 뭘 하고 있었지?”
예혜 낭자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보면 안 되는 장면인 듯해 자리를 벗어났습니다. 저도 4황녀 전하와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도 믿지 않으실 테니 원하신다면 제 방을 다 뒤져보셔도 좋습니다.”
침착한 목소리는 정말로 이 일과 아무 관련이 없어 보였다. 그리고 아마 아무 관련이 없을 거다. 예혜 낭자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데!
“좋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지시했다.
“송소우, 태감들을 데려가 혜빈의 거처를 뒤져보고 최근에 누구와 만났는지 어떤 물건을 청했는지 확인해보라.”
“예, 폐하.”
그 말에 송 태감이 얼른 대답하고 나가려 할 때였다.
“부황.”
내내 가만히 있던 13황자가 미소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한 군데 더 뒤져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군데 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