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4황녀 혼례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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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4황녀 혼례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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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화. 4황녀 혼례 준비
2023.06.22.
아무래도 제자는 나에게 시비를 걸기로 작정한 모양이다. 그게 아니라면 자꾸 저런 식으로 나올 리가 없었다.
“흙을 턴 거예요 전하.”
그래도 내가 스승이고 연상이니 의젓하게 알려주었건만.
“제자가 손을 잡기 전엔 흙을 안 터셨습니다.”
제자는 계속해서 꼬투리를 잡고 매달렸다.
“그땐 계속 물건을 나르고 있었으니까요.”
“아직 물건이 남았는데 그럼 왜 지금 터십니까.”
“전하께서 제가 직접 나르는 걸 안 좋아하시는 거 같아서요.”
제자는 나를 노려보았고 나는 제자를 쳐다보았다.
“스승님이 눈치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무난한 편이에요, 전하. 한 열 명 중 다섯 명은 눈치가 없다 말하고 다섯 명은 눈치가 좋다고…….”
“대답하라고 한 말 아닙니다.”
“송구해요.”
나는 도대체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내가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제자가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거다.
“하오나 전하. 전하는 속을 알기 힘들어요. 대체 뭐에 화내시는 건가요? 혹여 신이 물건을 마음대로 주문해서 화내신 거라면…… 사비로 주문한 거니 너무 화내지 마세요, 전하.”
제자는 한숨을 내쉬더니 손수건을 꺼내 내게 내밀었다.
“손 닦으세요. 그리고 앞으로 힘든 일을 혼자 하진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 *
제자와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고 나니 온몸의 진이 쏙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제자가 나보다 서류상 연하인 건 맞지만 회귀를 몇 번 거듭했다면 사실상 정신은 저쪽이 연상 아닌가. 그런데 왜 저렇게 짜증만 나고 연상 같은 느낌이 없지?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그러나? 하긴. 주위 사람들이 늘 그대로라면 본인도 그 이상 성장하긴 힘들지도…….’
“요 대인.”
그런데 제자가 아닌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났다. 놀라서 돌아보니 길목에 1황자비의 궁녀가 서 있었다. 내무부에서 마주쳤던 그 궁녀가.
‘왜 저기 있지?’
보란 듯 물건을 버리고 가더니. 왜 또 여기 있는 거야?
눈이 마주치자 1황자비의 궁녀는 내 쪽으로 다가와 물었다.
“요 대인. 혹시 지금 바쁘신가요?”
“그러네만.”
궁녀는 내 대답에 잠시 입을 다물고 대답을 끌었다. 내가 바쁘지 않다고 대답할 줄 알았나 보다. 물론 실제로는 바쁘지 않았다.
그래도 대답을 정정하지 않고 기다리자 궁녀가 정신을 가다듬었는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바쁘시군요. 그런데 대인, 지금 1황자비 전하께서 대인을 부르십니다. 급한 일이라고 하시니 가보셔야 합니다.”
‘가도 되냐’가 아니라 ‘가야 한다’ 쪽이네. 꿍꿍이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저렇게 단호하게 나오니 거절하기도 난감해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 * *
“소황자에게 줄 장난감이 필요하네.”
그렇게 해서 1황자비를 찾아갔더니 그녀는 이렇게 말하면서 옆에 놓아둔 나무토막과 나무칼을 자기 궁녀에게 건넸다.
궁녀는 나무와 칼을 받아 내게 대신 전달해 주었다.
“자네가 소황자에게 줄 장난감을 하나 만들어주겠나? 아이 장난감은 정성을 담는 게 좋다더군.”
날 부르러 왔던 1황자비의 궁녀가 뒤에서 픽 웃는 소리를 냈다. 아무리 봐도 급한 일 같진 않았다.
날 골려 먹기 위해서 일부러 급한 일이라 해놓고서 불러서 이런 걸 시키는 건가? 그런 거 같다.
“이국사. 싫은가?”
내가 칼을 받지 않자 1황자비가 눈썹을 찡그리면서 물었다.
왜 1황자비가 갑자기 내게 시비를 거는진 모르겠지만…… 이런 시비에는 휘둘리지 않는 게 낫겠지.
몇 시진 전에 내무부에서 물건을 양보했는데 그러자마자 돌아오는 게 이런 대접이라면, 1황자비는 약한 모습을 보이는 상대에게 더 기고만장해지는 모양이니 말이다.
“어휴, 제 정성을 담아서 뭐에 쓰겠습니까 전하. 전하 정성이 담겨야지요. 직접 하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나무칼을 받지 않고 거절하자 미소 짓고 있던 1황자비가 눈썹을 찡그렸다.
“이국사. 지금 나를 모욕하는 건가.”
“모욕이라니요. 제 정성보단 전하의 정성이 더욱 가치 있을 거라 말씀드렸을 뿐인걸요.”
“이국사. 자네는 곧 13황자와 혼인할 사람이네. 예비 숙모로서 아이에게 장난감 하나 만들어주지도 못하다니. 참으로 실망스럽군.”
“송구합니다, 전하. 하오나 신은 아직 황실 사람이 아니라 폐하의 신하가 아닙니까. 신이 사사로이 1소황자 전하께 과한 정성을 보였다가, 폐하께 군신 간의 결탁이라 오해받을까 두렵습니다.”
1황자비의 낯빛이 점점 가라앉는다. 어린아이를 두고 군신 간의 결탁이니 어쩌니 하자 열이 받는 모양이다.
하지만 내무부에서 한 번 양보하자마자 바로 만만하게 보고 이렇게 나오는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일 순 없다.
“그래. 그런가.”
그러기를 잠시. 마침내 1황자비는 억지로 미소 짓듯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자네가 동서 간의 우애에 관심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
* * *
교비는 찻잔을 앞에 둔 채 황제가 자신을 찾지 않은 지 며칠째인가 확인하고 있었다.
찻물에서 연기가 올라오지 않은 지 오래였지만 교비는 책자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교비는 한숨을 연거푸 내쉬었다. 그녀는 입궁한 이래 단 한 번도 황제에게 이런 대우를 받은 적이 없었다.
“마마. 1황자 전하께서 오셨습니다.”
상궁이 다가와 슬며시 말해주자 교비는 그제야 책자를 덮어 다른 책 뒤에 놓았다.
“들여보내라.”
교비는 애써 무거운 기색을 덜어냈다. 1소황자 건으로 마음이 아플 아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곧 문에 걸린 발을 젖히고 1황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마마마. 도와주십시오.”
웃으면서 아들을 맞이하려던 교비는 1황자가 채 자리에 앉기도 전에 한 말에 눈썹을 치켜올렸다.
“도와달라니? 무슨 일이 있느냐?”
1황자는 교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요요화가 제 아내를 괴롭힙니다.”
교비는 머리가 아파서 이마를 짚었다.
“요요화가 무슨 수로. 그자는 아직 이국사일 뿐이지 않으냐.”
“그러니까요. 고작 이국사일 뿐인데 어떻게든 머리를 짜내서 제 아내를 괴롭힙니다. 요요화 때문에 충후 공주는 지금 너무 화가 나서 앓아누웠습니다.”
교비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러니까, 요요화는 네 아내를 만날 처지도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요요화가 그 애를 괴롭혔단 거냐.”
“공주가 요요화에게 사소한 부탁을 했답니다.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요요화는 그걸 가지고 공주를 조롱하고 비웃어 대다가 갔답니다. 궁녀들이 말하기를, 요요화가 너무 무례하게 굴어서 차마 눈을 뜨고 보기도 힘들 지경이었답니다.”
교비는 오랫동안 궁궐에서 지내왔기에 그 ‘사소한 부탁’이라는 게 중요한 쟁점이란 걸 대번에 눈치챘다.
“1황자비가 요요화에게 부탁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 요요화가 가진 게 1황자비에게 없겠느냐, 요요화만이 할 수 있는 의술이나 재주가 있기라도 하느냐. 먼저 시비를 걸다가 당한 거겠지. 그런 것까지 내가 나선다면 우리 셋 다 비웃음거리가 될 거다.”
교비는 딱 잘라 선을 그었다. 황제는 요 귀인을 최근 가장 총애했고 그 총애의 범위는 요 귀인의 자매에게까지 뻗어갔다.
황제가 요요화를 어여쁘게 보고 있는데 그녀와 아들, 며느리가 나서서 요요화를 괴롭힌다면 황제의 심기가 더욱 불편해질 터였다.
“어머니. 요요화가 절 괴롭혔으면 어머니가 이렇게 가만히 계시겠어요?”
“뭐?”
“제 아내가 모욕받은 건 제가 모욕받는 거란 다름없습니다. 공주가 모욕받았다 여기지 마시고 제가 모욕받았다 생각하고 나서주세요.”
교비는 아들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뒷골이 욱신거려왔다.
아들이 멍청한 거야 원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1황자비가 자기가 먼저 시비를 걸어 놓고서 그 일을 꼬고 꼬아 1황자에게 고자질한 걸 듣고 있으려니 1황자비도 자기 아들과 별반 차이가 없게 여겨졌다.
이에 분노한 교비가 한마디를 퍼부으려던 때였다.
“내가 나서줄게.”
곁방 안에서 혼수품을 정리하던 4황녀가 밖으로 나오며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쓸데없는 짓 말거라.”
교비가 단호하게 말했으나 4황녀는 조금도 거리낌 없이 웃었다.
“염려 마세요, 어머니. 걱정하지 마 오라버니. 곧 내 혼례잖아. 내 혼례 때는 요요화도 내게 선물을 올려야 해. 요요화가 내게 뭘 주든 꼬투리를 잡아서 혼낼게. 아니면 요요화가 내게 준 선물에 뭘 섞었다가 화를 내도 좋고.”
“네 혼례 날에 그런 짓을 했다가 일이 잘못되면 어쩌려고.”
이를 들은 교비는 걱정되어 반대했다. 3황자 때문에 막힌 혼례가 가까스로 성사되었다. 황제는 4황녀와 정혼한 후 오랫동안 그녀를 기다리며 점잖게 지내온 예비 사위를 좋게 보고 있었다.
교비는 좋은 이야기만 하고 들어야 할 혼사 날에 4황녀가 초를 칠까 염려되었다.
“어머니. 넷째가 절 위해준다는 데 왜 그러세요.”
하지만 1황자는 이미 4황녀 말에 끔뻑 넘어가서 오히려 교비에게 반발했다.
1황자는 4황녀의 손을 꽉 잡고서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너만 믿으마.”
* * *
유 가주는 오랜만에 13황자가 찾아오자 몹시 기뻐하며 귀한 설루차를 꺼내 대접했다. 그로서는 마음을 드러내기 위한 파격적인 대우였으나 13황자는 설루차를 마시면서도 태연했다.
“전하. 곧 4황녀의 생일이지요.”
하지만 유 가주는 실망을 드러내지 않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혹시 원하는 물건이 없으십니까? 소인이 구해드리겠습니다.”
13황자는 유 가주가 보기엔 모든 황자 황녀들 중 가장 출중한 재질이 있었다. 유 가주는 13황자가 당연히 보위에 오르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지금 13황자의 처지가 곤궁한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입지가 낮은 13황자는 원하는 물건을 구하기 어려우니 유 가주는 이럴 때 도움을 주어 13황자에게 잘 보이고 싶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이상한 물건을 내밀었다가 비웃음당하면 기분 나쁘지 않습니까. 좋은 선물을 주면 전하의 체면도 올라갈 겁니다.”
13황자는 찻잔을 잡고서 그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 혹시 금사연석도 구할 수 있나?”
“금사연석이요?”
유 가주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물론입니다.”
“그러면 금사연석을 구할 수 있는 만큼 구해주게.”
금사연석은 은은한 금빛 광채를 내는 돌이었고, 그 아름다움과 희소성으로 인해 어마어마한 고가였다.
유 가주는 혀를 내둘렀다.
“4황녀께 아주 좋은 선물을 주시는군요. 우애가 좋으신가 봅니다?”
“아니. 스승에게 줄 생각이다.”
유 가주는 ‘13황자는 4황녀와 사이가 좋다’는 정보를 잘 기억해 두려다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예? 4황녀 혼사에 왜 요 이국사에게 그런 선물을…… 아. 혹시 이국사께서 4황녀에게 선물하도록 하실 생각이신지요?”
“아니. 그걸로 침상을 만들 거다.”
그럼 4황녀와는 아무 관련도 없어지는 거 아닌가.
유 가주는 떨떠름해서 13황자를 쳐다보았다. 그가 알기로 분명 두 사람은 4황녀 혼사 이야기 중이었다. 그런데 요요화가 어디로 튀어나온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럼 4황녀께는…….”
“적절히 아무거나 주면 되겠지.”
“그걸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앞으로 몇 해 더 무시당하면서 경쟁 상대로 여겨지지 않게 몸을 숙일 생각이니 상관없다. 무시해준다면 더욱 좋지.”
그런데 요요화에게는 금사연석 침상을 줄 거라고. 유 가주는 금사연석 침상을 월무궁에 가져가는 순간 모두가 주목할 거란 생각을 했으나, 13황자에게 다 생각이 있겠지 싶어 입을 다물었다.
“그보다 유 가주.”
“네, 전하.”
“스승님이 요즘도 은신처에 대해 물어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