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3화. 왜 날 쳐다보시는지? (133/159)


133화. 왜 날 쳐다보시는지?
2023.06.08.



 
왜 보자마자 저렇게 정색하는 거람. 제자가 너무 정색하고 쳐다보니 괜히 신경 쓰인다. 너무 과하게 차려입었나? 하지만 나 혼자 소박하게 차려입으면 그것도 영 이상할 텐데.


“전하. 제가 너무 예뻐서 그러세요?”

하도 제자가 날 빤히 쳐다보기에 당황스러워서 결국 묻고 말았다.

제자는 그래도 시선을 거두지 않고서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유감이군요, 스승님. 오늘은 셋째 형님이 오지 않는답니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인데요?”

“…….”

혹시 내가 잘 차려입은 게 3황자 보라고 입은 거라 여기나? 쟤는 회귀 전에 3황자와는 데면데면한 사이였고 싸운 적도 없으면서. 3황자가 내게 관심이 전혀 없단 걸 알면서. 왜 저렇게 3황자를 경계해?


“전하. 제가 잘 차려입은 건 다른 사람들이 다 화려하게 입는데 저만 수수하게 입었다가 더 눈에 띌까 봐 그런 거예요.”

어쨌든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진실을 알려주었다. 3황자는 그래도 싸늘하게 웃었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시는군요. 스승님은 누더기만 걸쳐도 눈에 띕니다.”

“연회장에서 누더기를 걸치고 있으면 누구든 눈에 띄어요, 전하.”

제자가 노려본다. 자기가 헛소리해 놓고서는 괜히 내 탓을 하고 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하고서 얼른 대로를 가리켰다.


“얼른 가셔야지요. 너무 늦으면 눈치 보여요.”

 

* * *

제자가 나를 보면서 왜 정색한 건지는 연회장에 도착하자 더 이해하기 쉬웠다.


‘내가 손꼽히게 화려하게 차려입은 쪽이잖아?’

다른 사람들이 화려하게 안 입은 건 아니다. 하지만 화려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열 손가락 안에 들 것 같았다.


“제자가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놀란 걸 눈치챘는지 옆에서 제자가 안 그래도 놀란 데 부채질까지 해댔다.


“전…… 전 이럴 줄 몰랐어요.”

나만큼 화려하게 차려입은 건 품계가 높은 후궁들 뿐이다. 품계가 낮은 후궁들은 품계 높은 후궁 눈치를 봐야 해서 오히려 화려하게 입지 못하는구나.


“요 귀인보다 언니가 더 잘 차려입었네. 요 귀인이 수수한 거야, 이국사가 눈에 띄는 걸 좋아하는 거야?”

그 생각을 하자마자 원비가 린화에게 말 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을 보니, 린화는 사가에서 지낼 적보다 수수한 차림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린화가 싸늘하게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서 휙 고개를 돌려버린다.


“소자가 스승님께 잘 차려입고 와달라 하였습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스승님이 곱게 차려입은 모습을 보기 힘드니까요.”

대신 제자가 거짓말로 원비에게 대꾸했다. 아까는 구박해 놓고서.


“13황자. 너무 얼굴을 밝히는 거 아닌가?”

그 말에 원비는 입가를 가리더니 웃으면서 물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인사하자 입가에서 손을 치우고서 가라고 손짓해버렸지만.


“송구합니다, 전하. 제 용모가 아름다워 전하께 폐를 끼치네요.”

나는 우리 자리로 걸어가면서 제자에게 사과했다. 제자는 내 말을 다 들었을 거면서 못 들은 척 무시했다.

* * *

사람들은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왔다. 태월 사절이 왔을 때나 10황녀 생일 때보다 더 많은 친인척이 모였다.

개중엔 선안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따로 아는 척하진 못했다.

제자 말처럼 3황자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자리를 채울 사람들이 거의 도착했을 즈음 황제와 황후가 함께 나타났다.

황후의 뒤에는 제자만큼 황제의 아름다움을 잘 물려받은 5황녀가 뒤따르고 있었다.

나는 제자를 쳐다보고 싶은 충동을 열심히 눌렀다.

5황녀는 회귀 전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와 싸운 인물이지. 이때 제자를 쳐다보면 그가 바로 날 의심할 거다. 이미 의심하는 거 같지만.


“다들 앉아라.”

우리는 황제가 입장하는 동안 일어났다가 황제가 앉으며 지시하자 도로 의자에 앉았다.


“이렇게 또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구나.”

황제는 연회장 안을 꽉 채운 가족들을 흐뭇하게 둘러보면서 웃다가 술잔을 들어 올렸다.


“모두 한 해 동안 또 건강하길 바란다.”

거기에 황후가 몇 마디 덕담을 더 하면서 신년일 연회가 시작되었다.

나는 처음에는 사방 눈치를 살피면서 음식을 찔끔찔끔 먹었다.

하지만 다들 가까이 앉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고 모두가 떠들썩하여지자 일각 정도 지났을 땐 처음보단 마음이 놓였다.


“그러고 보니 작년 신년일엔 전하께서 저희 집에 찾아오셨지요.”

그래서 제자에게 나도 슬며시 말을 걸어보았다. 제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인간처럼 식사하다가, 내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스승님은 이따가 빠져나가실 건지요?”

“그러려고요. 집에 부모님만 계시니까요.”

“…….”

“왜요?”

“같이 가면 되겠습니다. 제자도 스승님 집에 갈 생각이어서요.”

“전하가 왜요?”

“집에 스승님이 계시니까요.”

“!”

세상에. 뭐래. 기가 막혀서 나는 정면을 보고 열심히 국수만 먹었다. 여기서 보면 됐지 내가 집에 가서까지 자기 얼굴을 봐야하나. 흥! 아주 웃기다.


“오지 마세요.”

“왜, 가면 안 됩니까?”

“저희 집이잖아요.”

“스승님도 제 집에 자주 오시는걸요.”

“전하의 집은 제 직장이잖아요.”

말이 되는 비교를 해야지! 어이가 없어서 항의하자 제자가 손수건을 내밀었다.


“손수건은 왜요?”

얼결에 손수건을 받고서 묻자 제자가 입을 닦으란 신호를 보냈다.

입 닦는 시늉을 하고서 손수건을 돌려주자 근처에 있던 6황자비가 끼어들었다.


“어머, 이국사. 내가 다 봤어요. 이국사 입에 아무것도 안 묻어 있었어요.”

“!”

“13황자 전하께서 손수건에 이국사 연지 묻히고 싶었나 봐요.”

아이고오……. 이 눈치 없는 분아.


“하하하하, 나도 봤습니다.”

거기에 6황자가 바로 동의하자, 6황자 예비부부는 둘이서 서로 마주 보고서 낄낄 웃어댔다. 이 둘 중매쟁이가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찰떡 한 쌍을 붙여 놨구먼.

회귀 전엔 6황자비랑은 대화할 일이 없고 6황자와는 첫 만남부터 삐거덕거려서 이런 한 쌍일 줄 몰랐는데.

나는 좋아 죽는 6황자와 6황자비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서 힐긋 제자를 보았다.

제자는 얼음이 내려앉은 표정으로 대꾸도 하지 않고 식사 중이었다. 문제의 손수건은 보이지 않았다.


‘젠장. 오두방정을 떤 건 6황자 예비부부인데 왜 눈치는 내가 보이지.’

어쨌든 무엇이 원인이든 제자가 내게 화나게 해선 안 되기에 나는 슬쩍 제자의 귀에 대고서 속삭였다.


“전하. 괜찮아요. 전 부끄럽지 않아요.”

“제자가 부끄러우니 그만하시지요.”

“아.”

제자의 귀를 놓고서 살피니 확실히 그의 귀와 목덜미가 새빨갛게 변해 있다.

나는 얼른 제자의 앞에 그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밀어주었다.


“이거 드세요.”

제자는 젓가락을 든 손을 움찔했으나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그걸 본 6황자비가 히죽히죽 웃으면서 또 눈치 없는 말을 하려고 들기에 나는 아예 대놓고 ‘쉿!’ 하고 표시를 보냈다.

6황자비는 눈치가 없긴 해도 못된 사람은 아닌지, 대놓고 그만하라 말하자 눈이 동그래져서 자기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다행이야. 이제 좀 조용히 식사하겠네.’

그런데 제자는 진짜로 왜 나한테 손수건을 줬나 몰라. 6황자비가 상상하는 그런 사유 때문은 아닌 것 같은데…….

혹시 내 흔적이 묻은 손수건을 가져가서 그걸로 저주하거나 하진 않겠지.


“그만 좀 울게!”

그때 찢어지듯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숟가락을 깨작거리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거리를 둔 맞은편 좌석에서 1황자비가 계속 울고 있었다.

소리를 지른 게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1황자비를 좋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여럿 되는 걸 보니 개중 하나같다.

존대를 안 썼으니 예비 황자비나 2황자비는 아닐 거고. 후궁 중 하나인가?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닙니다. 신년일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 운이만 빠졌지 않습니까. 전 오늘 운이를 볼 수 있을 줄 알고 아이에게 줄 선물도 가져왔단 말입니다.”

1황자비가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면서 항의했다. 그 목소리 역시 커서 사람들은 모두 그녀 쪽을 쳐다보았다.


“선물이야 원비마마께 드려서 전해달라고 하면 되는 거지. 그리고 밤늦게까지 계속되는 연회에 오면 운이가 힘들어할 테니 원비마마께서 어련히 신경 쓴 게 아니겠나.”

그만 울라고 화낸 건 현 귀인이었나 보다. 1황자비의 바로 옆자리였는데, 옆에서 1황자비가 계속 울어대니 신경에 거슬린 듯했다.


“그럼 운이를 데리고 왔다가 나중에 아이가 피곤할 때 데려가면 됐잖아요!”

“원비마마가 아이를 챙기느라 도중에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저라면 그렇게 했을 겁니다. 전 운이의 친모니까요!”

1황자비가 지지 않고 대꾸하자 현 귀인은 한숨을 내쉬고서 고개를 저었다.


“자리를 잘못 잡았어. 한 해 시작을 기뻐하는 날에 옆에서 내내 울어대다니.”

그 모습을 멍하게 보고 있자니 제자가 내 귀에 대고서 속삭였다.


“1황자의 친모인 교비는 지금 폐하의 총애를 잃었습니다. 그런 데다 1황자 부부는 1소황자 일로 부황께 미운털이 박혔지요. 그러니 현 귀인이 대놓고 괄시하는 겁니다.”

그렇구나. 그런데 왜 그걸 나한테 다 하나하나 설명해주지? 의아해서 제자를 쳐다보자 그가 다시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황자비로 입궐하게 되면 저들 사이에 스승님도 끼이게 됩니다. 미리 흐름을 알아두는 게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자의 설명을 듣고 나니 의아하긴 매한가지이다.

제자는 내가 괴로워하는 걸 좋아하지 않나. 나한테 이런 조언을 해주면…… 하긴. 회귀 전과 상황이 다르긴 하지.

부부가 되면 내 잘못이 제자의 잘못이고 제자의 잘못이 내 잘못이 되어 버린다. 회귀 전에도 자기 체면에 해가 될 듯하면 내 체면도 보호해주었으니, 아내가 되면 그 범위가 더 넓어지겠지.

그때 1황자비의 뒤에 앉아 있던 2황자비가 앞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형님,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원비마마는 7황자 전하를 훌륭히 양육하셨으니 운이에게도 최선을 다하실 거예요.”

1황자비는 2황자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


“자네는 부모가 되어 본 일이 없으니 내 심정을 모르네. 원비마마가 아무리 아이를 잘 양육해주셔도 나는 운이가 신경 쓰일 수밖에 없어.”

1황자비는 힐긋 황제 쪽을 보더니 목소리를 높였다.


“게다가 난 억지로 갈라진 이후 아직 한 번도 운이를 못 보았단 말이네!”

그 말을 끝으로 1황자비가 흐느끼자 내내 차분하게 상황을 지켜보던 원비가 처음 눈썹을 꿈틀했다.

황제도 사태를 미간을 찡그리고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운이를 한 번도 못 보다니?”

1황자비는 구슬픈 표정으로 황제를 보다가 흐느끼며 말했다.


“운이를 치료하는 내내 제 부황과 모후께서는 운이를 아주 예뻐하셨지요. 최근에 어마마마께서 운이의 상태가 어떤지 물어보는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이에 답하기 위해 운이를 만나려 했지만…… 보지 못하였습니다.”

1황자비는 누구 때문에 못 보았다고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 사이에 들어갈 사람이 원비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원비.”

황제가 이에 원비를 부르자 원비가 얼른 일어나 해명했다.


“아이가 아직 제 처소에 익숙해지지 않았습니다, 폐하. 매일같이 1황자비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온갖 물건을 다 깨부수며 떼를 쓰고 태감들을 물어뜯고 있지요. 이런 때 1황자비를 보게 하면 더 심하게 소란을 비울 듯해 당분간은 1황자비와 못 보게 하려 합니다.”

1황자비는 자기 아들이 행패를 부린다는 원비의 말에 어이가 없는지 입을 벌렸다. 하지만 그녀는 인내심을 발휘해서 바로 항의하진 않았다.

그때 뒤에서 2황자비가 다시 1황자비에게 말을 걸었다.


“형님. 나중에 1소황자가 원비마마 처소에 익숙해지면 저와 함께 원비마마께 찾아가요. 그리고 염려 마세요. 얼마 지나지 않으면 1소황자에게도 동생이 둘이나 생길 거예요. 아이들끼리 어울려 놀게 되면 1소황자를 더 자주 볼 수 있을 거예요.”

2황자비의 의미심장한 말에 사람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동생이 둘 생기다니?”

황후가 가장 먼저 묻자 2황자비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2황자를 툭 쳤다.

2황자가 얼른 일어나서 자랑하듯 외쳤다.


“아바마마, 어마마마,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제 비가 쌍둥이를 회임했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숨을 들이쉬면서 모두 2황자비를 쳐다보았다.

단 한 사람. 황제를 빼고.


‘왜 폐하는 날 쳐다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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