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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화. 여기저기 튀는 불똥 (131/159)


131화. 여기저기 튀는 불똥
2023.06.01.



 
아니, 쟤가 갑자기 여긴 왜 온 거지? 혼란스럽다. 제자는 회귀 전 힘을 갖추기 전까지 몸을 낮추었다. 황제와 대립하는 일도 없었다.


“무슨 소리냐. 이국사를 부르지 말라니.”

황제는 제자의 말에 기분이 좀 상한 것 같았다. 나서긴 제자가 나섰는데 내 심장이 콩닥거린다. 오늘 1소황자 때도 그렇고 왜 자꾸 나서지?


“보문 공주 사건과 셋째 형님 정혼녀의 입궁이 있은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자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서 자기는 태연자약했다.


“그게 왜.”

황제가 심드렁한 목소리로 묻자, 제자가 입가에 따뜻해 보이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부황께선 스승님께 연이어 선물 공세까지 펼치십니다. 이런 일들이 이어지니 사람들이 스승님을 두고 수군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목소리와 표정과 말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구나.


“수군거려?”

황제는 눈살을 구기더니 송 태감을 쳐다보았다.


“열셋째의 말이 정말인가?”

“송구하옵니다, 폐하.”

제자가 다시 끼어들었다.


“소자는 부황이 나쁜 뜻으로 스승님을 부르지 않은 걸 압니다. 하지만 용의 마음을 미꾸라지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

“이럴수록 중간에서 곤란해지는 건 스승님입니다. 부디 헤아려 주시지요.”

이쯤 되니 의심이 솟네. 혹시 이 제자가 이번 생엔 황제를 이용해 날 죽이려 하나. 독살은 한번 해 봤으니까?


“남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뭘 하겠느냐.”

“그건 부황이 황제이니 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스승님은 말단 관리일 뿐입니다.”

황제는 눈썹을 찌푸리고서 탁상을 툭툭 두드리다가 날 보았다.


“요요화.”

“네, 폐하.”

“정말이냐.”

아이고…… 미치겠네. 곤란하다. 몹시 곤란하다. 난 여기서 제자를 편들어도 황제를 편들어도 입장이 난처해진다. 최후의 승자는 제자이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몇 년이 걸리니까.

이건 딱 양옆에 사자와 호랑이를 두고 있는 형세였다. 어느 쪽 말을 따라도 한쪽은 으르렁거릴 게 뻔했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중립을 선언할 수도 없다. 그게 통할 상황이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 황제를 편들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다. 황제가 날 불러도 괜찮다고 말하면 이 닮은꼴 부자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내가 황제의 총애를 기뻐한다고 오해할지도 모른다.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폐하.”

결국 나는 눈을 딱 감고 제자 쪽을 선택했다. 어느 쪽으로 가도 위험하다면 그나마 내 체면이라도 차려지는 쪽으로 가야 했다.


“폐하께서 미신에게 주는 총애를 백안시하는 사람들이 조금 있습니다. ……많은 건 아니고 조금이요.”

그 조금이 지금으로서는 제자와 황후, 린화 정도란 말은 하지 말자. 몰라. 난 어쨌든 거짓말한 건 아니다.

황제는 자세를 조금 고쳐 앉더니 나와 제자를 언짢아하는 표정으로 번갈아 바라보았다. 제자는 미동도 없었다.

불편한 시간이 그렇게 얼마나 지나갔을까. 황제가 혀를 차며 나가보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냥 가면 된단 건가?

이대로 가면 간다고 나중에 화풀이 당하진 않을까.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제자는 자식이고 나는 아직 남이니, 황제가 나한테 화풀이하면 어쩌지?


“화려.”

“네, 부황.”

“이국사를 데려가라.”

내가 우물쭈물하면서 눈치 보는 티가 났는지, 황제가 결국 대놓고 말했다.


“예.”

제자는 순순히 대답하고서 내게 팔을 내밀었다. 주저하다가 그 위에 손을 살포시 얹자 제자가 돌아서서 걸어갔다.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면서 나는 제자를 따라 나아갔다.

* * *

태감들이 들어와 음식을 치우는 동안에도 황제는 가만히 앉아 있기만 했다.

그 덕택에 태감들은 편하게 얘기를 나누며 일하지 못하고 허리조차 제대로 펼 수 없었다.

송 태감은 황제의 곁에 서서 분위기를 살피다가, 황제가 픽 웃으면서 고개를 젓자 슬며시 말을 걸었다.


“폐하. 요 이국사께 감히 폐하의 총애를 시기하는 이가 누구인가 물어볼까요?”

“되었다. 알아도 말하겠느냐.”

“물론 그렇지요.”

송 태감은 한 번 더 황제의 눈치를 살폈다. 황제는 입꼬리가 더 올라가 있었다. 아까 13황자와 요요화 앞에서 싸늘하던 기색은 온데간데없었다.

이를 본 송 태감은 좀 더 용기를 내어 보았다.


“그래도 어찌 보면 무엄할 수 있는 말이었는데. 폐하께서 이렇게 좋게 넘어가 주시니, 이국사와 13황자님은 폐하께 잘해야 합니다.”

황제가 요요화와 13황자에게 화가 났는지 살피기 위한 말이었다. 그는 황제의 심경을 잘 파악해서 자신의 대인관계를 늘 살펴야 했다.

황제가 요요화와 13황자에게 화가 났다면 그는 절대 황제 앞에서 그들 이야기를 좋게 해서는 안 됐다. 가장 좋은 건 아예 꺼내지 않는 것이었다.


“요요화는…… 의리가 있어.”

“예?”

송 태감은 어리둥절해졌다. 황제가 요요화에게 생각보다 화난 것 같지 않단 생각은 했지만, 난데없이 칭찬이 나올 줄은 몰랐다. 갑자기 의리라니?


“요즘 젊은 관리들은 그런 게 없지. 필요 없는 말은 쓸데없이 하면서 필요한 말은 하지 않아. 하지만 그 아이는 아니야. 해야 할 말은 대차게 하지.”

송 태감은 황제가 누구 얘기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혹시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시나?

요요화는 황제 앞에서 납작 엎드리는 모양새가 다른 관리들과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요요화는 유별나고 빼어나게 아름답단 점이었다.

하지만 송 태감은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황제의 비위를 맞추었다.


“그렇지요. 이국사께선 보기 드문 인재신 데다 의리까지 최고시지요. 친구를 위해서도 목숨을 걸고 나서지 않았습니까.”

“그렇지.”

 

* * *



“폐하가 제 욕하고 계시면 어쩌지요……?”

일단 제자 편을 들고나오긴 했지만 월무궁으로 걸어가는 내내 심장이 조마조마하다. 나는 너무 겁이 나서 썩은 동아줄에게 질문했다.

하지만 제자는 자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큰 결심을 했는지 모르는 듯했다.


“그럴 리가요.”

“그럴 수도 있지요.”

“욕을 먹어도 같이 먹을 테니 안심하시지요.”

“어떻게 안심해요? 전하는 폐하의 핏줄이고 저는 남인걸요.”

그 순간 제자가 우뚝 멈추어 서더니 나를 휙 돌아보았다. 뭐야. 왜 그래. 내가 뭐 기분 나쁠 말 했나?


‘별말 안 한 거 같은데? 제자가 황제 핏줄이라고 해서 싫은가?’

“스승님. 스승님은 남이 아닙니다.”

아. 저 부분이 싫었던 거야?


“남인데요.”

하지만 이게 왜 싫지? 사실이잖아.


“스승님은 예비 며느리입니다. 그래서 같이 가족 모임에도 가시고요.”

그렇긴 하지. 하지만 예비 며느리랑 며느리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 않나? 혼례를 끝내기 전엔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지 않는가. 예혜 낭자처럼.


“그래도 아직은 남이지요.”

“스승님은 사적으로도 폐하의 사돈 가문입니다.”

“사돈 가문이 한둘인가요.”

사돈 가문도 열 가문을 넘어가면 남과 비슷해지지 않을까. 황제는 황후 가문 정도만 ‘진짜 사돈’이라고 여길 거 같은데.


“남은 아니란 겁니다.”

제자는 딱 잘라 말하고서 다시 앞서 걸어갔다. 쟤는 정말…… 속을 알 수가 없다. 아까는 황제에게 날 부르지 말라고 위험을 무릅쓰고 말해주더니, 지금은 또 혼자 막 성질이나 내고.


“전하. 같이 가요!”

그래도 월무궁에 내가 입고 온 의복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같이 가야 했다.

* * *

1황자비는 흐느끼면서 1황자의 품에 기댔다. 1황자는 아내를 안고 연신 등을 토닥거렸다. 하지만 본인도 눈물이 계속 흐르고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비. 아바마마께서 잠시 화나셔서 그럽니다. 화가 풀리면 다시 우리에게 아이를 양육하라 하실 겁니다.”

“운이는 아직 나이가 어려요. 원비 밑에서 자란 운이가 우리에게 정이 남아 있을까요?”

“당연하지요. 아무리 원비 밑에서 자라도 우리가 친부모인 걸 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송 태감 말처럼 며칠에 한 번씩은 볼 수 있을 테고요.”

교비는 아들과 며느리를 위로하러 왔다가 부부가 끌어안고 흐느끼고 있자 주저하다 돌아갔다.


 
1황자비는 교비를 보았지만, 지금은 말을 섞고 싶지 않아서 아는 체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실 교비에게도 조금 화가 났다. 교비가 황제의 총애를 제대로 붙잡아 두었더라면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수습할 수 있었을 텐데.


“어쩌면 폐하께서 어머님께 화가 나서 우리에게 화풀이를 심하게 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설마요.”

“폐하께 우리는 교비마마의 사람들이잖아요. 당연히 연관이 있을 거예요.”

1황자는 이 일을 어머니 탓으로 돌리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이에 그는 아내의 말에 동의하는 대신 다른 이를 꺼냈다.


“……난 열셋째가 좀 신경 쓰입니다.”

“13황자요? 13황자가 눈치가 없긴 했지요. 그자가 숙모 이야기를 꺼내지만 않았어도 운이가 말실수할 일이 없으니까요.”

“그게 과연 눈치가 없는 걸까요?”

“……설마. 13황자가 고의로 말을 꺼냈다고 여기나요?

”평소엔 연회장에서 입도 뻥긋하지 않는 놈 아닙니까.“

1황자는 이따금 모든 걸 안다는 듯 그를 쳐다보던 동생을 떠올리자 불쾌한 기분이 치밀어 인상을 구겼다.


”고의로 말을 꺼냈다 해도 내게 시비를 건 거겠지요.“

하지만 1황자비가 그에게 동의하지 않자, 마지못해 1황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운이가 거기서 그런 말을 꺼낼 줄 우리도 몰랐으니까요.“

”그렇더라도 당신 말이 맞아요. 고의든 실수든 누구를 노렸든 13황자도 이 일에 책임이 있지요. 반드시 이 원한은 갚아주어야 합니다.“

1황자비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1황자는 원한을 누르고 다시 아내의 등을 토닥였다.


”그럴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부부가 폐하께 단단히 미움을 샀으니 자중하고 숨죽여야 합니다.“

 

* * *

10황녀의 생일날 난리가 난 이후에는 잔잔한 일상이 찾아왔다. 겉보기에 황실은 평소와 다를 바 없어졌다.

제자는 다시 평소처럼 조용하게 지내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1황자비 부부도 황제에게 한 차례 경고를 당해서인지 아주 조용히 지냈다.

1소황자에 대한 소식은 아예 들리지 않았다. 요란하게 1소황자를 자랑하면서 지내던 1황자비와 달리, 원비는 아주 조용하게 아이를 양육했다.

황제도 10황녀 생일날 제자가 한 말 때문인지 나를 따로 부르지 않았지만, 슬슬 2황자비가 회임할 시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안도할 수 없었다.


‘2황자비가 12월 말인가 1월 초 즈음에 회임 소식을 전했던가?’

12월 초 날이 잔뜩 흐린 어느 날. 2황자비의 회임 소식보다 배상액을 물어보러 간 태월 사절 소식이 먼저 전해졌다. 심지어 그 소식을 전해준 건 황제였다.

황제가 수업 날이 아닌데도 나와 제자를 부르더니, 우리를 서재에 세우고서 머리 아프단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태월 황제가 대답을 보내왔다.“

태월 황제가 대답을 보냈는데 날 불렀다는 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닌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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