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화. 암살자는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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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화. 암살자는 누가
2023.04.03.
“모르는 사람입니다.”
보문 공주는 빠르게 침착해져서 대답했다.
“모르는 사람이라.”
황제는 전혀 믿지 않는 투로 중얼거렸다.
“송 공공.”
그러고서 송 태감을 부르자 보문 공주가 옷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저 암살자에게 공주를 아는지 물어봐라.”
“네, 폐하.”
송 태감이 암살자 앞에 다가가자 암살자가 바로 외쳤다.
“저 여인입니다. 절 찾아와 요요화를 죽여달라 한 게 저 여인이 맞습니다.”
잠깐 감옥에 갔다 온 사이에 꽤 진실하게 변했구나.
“그렇다는데 공주.”
황제가 다시 보문 공주를 불렀다.
공주는 주저하더니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황제 폐하. 저는 동맹국인 태월에서 화음을 위해 온 사절입니다. 제가 무슨 연유로 요요화를 죽이려 하겠습니까. 요요화는 아무 가치도 없는 말단 관료일 뿐인걸요. 저자가 절 음해하는 겁니다!”
“그렇다는데.”
황제가 다시 암살자를 쳐다보았다.
암살자는 공주 쪽은 쳐다도 보지 않고서 말했다.
“그렇게 따지면 저 역시 외국인 공주를 음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다른 의뢰인이 있다면 그 사람을 말했을 겁니다.”
“그렇다는군.”
황제가 또 중얼거리자 공주가 눈을 부릅뜨고 암살자를 노려보았다.
“어디서 함부로 거짓을 고하느냐! 누가 배후냐! 요요화냐! 요요화가 네게 그렇게 말하라 시키더냐!”
공주는 버럭 외치고는 황제를 바라보며 흐느꼈다.
“폐하. 부디 공정하게 대해 주세요. 저자가 요요화를 노린 암살자인지 아닌지 어떻게 안단 겁니까. 요요화의 자작극일지도 모릅니다.”
아…… 뒷골. 아 뒷골이야. 나한테 원한이 없다더니 내 발목을 잡고 끌어당기는 물귀신이 따로 없네.
황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그가 보문 공주의 말을 믿을 거란 두려움은 없었다. 코앞에서 내가 쫓기는 걸 보았으니까.
“그렇군. 그러면 이번엔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지.”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중앙에 몰려 있는 궁인들에게 물었다.
“저자는 보문 공주가 요요화를 암살해달라 했다 한다. 한데 공주는 요요화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구나.”
궁인들이 서로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입을 맞추었을 때 죄를 뒤집어씌울 확률이 얼마나 높아지나 가늠하는 걸까?
“솔직하게 말하거라. 그리고 한 가지 미리 말해주자면, 짐이 아직 공개하지 않은 정보를 하나 가지고 있다.”
“!”
황제는 완전히 거대한 구렁이 같았다.
궁인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머릿수를 믿고 무조건 내 탓이라고 우기면 어찌어찌 될 것 같은데. 그렇게 우기자니 황제가 쥐고 있다는 그 정보가 무엇인가 불안한 듯했다.
그러다 공주가 눈을 부릅뜨자 공주와 늘 붙어 다니는 궁녀가 머리를 조아리며 외쳤다.
“공주 전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폐하. 공주 전하가 말단 관료를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으시겠습니까.”
“맞습니다, 폐하. 공주 전하는 귀하게 자란 분인데 어찌 암살자를 찾아가겠습니까.”
“왜 저 암살자가 잡혀 왔는지 공주 전하 이름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공주 전하의 말처럼 요요화가 자작극을 벌여서 그런 건지도 모릅니다.”
황제는 눈썹을 치켜올리고서 그들이 아무 말이나 하게 두었다.
궁인들이 한두 마디씩 다 끝내자 황제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렇다는구나 이국사.”
“예…… 당황스럽네요.”
나는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황제가 비밀리에 이 일을 덮고 공주를 내쫓을 거란 예상은 빗겨나갔다. 겉으로 보기에 황제는 날 위해 공주에게 복수해 주는 듯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모두 추측이었다. 그의 의도를 정확히 모르니 쉬이 대응하기 힘들었다.
“그래. 공주와 궁인들이 모두 이국사를 탓하니, 이국사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어야겠군.”
황제는 능청스럽게 중얼거리더니 내게 더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계단 옆까지 다가가자 그가 내게 물었다.
“요 이국사. 저 암살자를 보낸 게 누구 같으냐.”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검을 들고 쫓아왔으니까요.”
“네 자작극이지!”
보문 공주가 끼어들었다.
“암살자를 보낸 게 누군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절대로 자작극일 수는 없습니다.”
나는 황제의 눈치를 보면서 대답했다. 황제가 내가 나서기를 바라는 것처럼 보여서였다.
진짜 이 능구렁이 황제.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네 자작극이 아니라면 저 암살자가 왜 내 이름을 거론한다는 거냐. 넌 이전부터 13황자 전하 이름을 대면서 날 모욕하곤 했지. 13황자 전하가 내게 관심을 보이니 날 해코지하려 한 거다.”
보문 공주는 이를 드러내며 외치고는 황제에게 재차 울며 애원했다.
“폐하,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부디 저 간악한 음모에서 절 지켜주세요. 그러면 제 부황께서도 폐하께 크게 고마워하실 겁니다.”
황제가 나를 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입으로 털어놓았다.
“제가 죽을 뻔했을 때 구해주신 게 폐하십니다, 공주 전하.”
“!”
내 말이 끝나자마자 흥분해 붉어졌던 얼굴이 다시 파랗게 질렸다.
“그런, 그런 거짓을!”
보문 공주는 버럭 외치고서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황제는 뒷짐을 지고서 뱀 같은 눈으로 공주를 보고 있었다.
공주는 팔을 덜덜 떨더니 굽혔던 무릎을 펴고 처음 서 있던 가장자리로 가버렸다.
그러나 공주는 조금 비켜서자마자 다시 침착해져서 말했다.
“그러면 요요화의 자작극은 아니겠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요화를 괜히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폐하. 암살자가 제게 누명을 씌우려 드니 필시 요요화의 짓이라 여겼습니다.”
“그런가.”
“부디 진범을 잡아 주시길 바랍니다, 폐하.”
공주는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게 앞에 선을 그었다.
“자객촌 근처에 사는 사람들을 불러 보십시오, 폐하. 누가 그곳을 다녀갔는지 물어보면 답이 나올 겁니다.”
암살자가 혼자 죽긴 싫은지 차갑게 말했다.
공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들을 불러오라 지시했다.”
내가 진료받는 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이루어졌구나.
“한 시진 정도만 기다리면 화음의 관료를 암살하려 한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되겠지.”
아까 내 옷 입는 걸 도와준 상궁이 차를 가져와 황제에게 건넸다.
다른 태감은 의자를 가져와 황제 뒤에 놓아주었다.
황제가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동안 공주의 궁인들은 한겨울에 여름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덜덜 떨어댔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폐하.”
그때였다. 위엄 있고 우아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문에서 황후가 걸어 나왔다.
황후의 뒤로는 길게 그녀의 궁녀와 태감들이 따라왔다.
“황후?”
불러서 온 게 아닌지 황제가 처음으로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요 이국사를 암살하려 한 범인은 보문 공주가 맞습니다.”
“마마!”
황후의 말에 보문 공주가 찢어지는 비명을 질렀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하십니까!”
황후는 보문 공주 쪽을 차갑게 흘겨보더니, 상궁에게 말했다.
“폐하께 바치거라.”
상궁이 얼른 가지고 온 종이를 황제에게 내밀었다.
“보문 공주가 자객촌에 들어간 날짜와 시간, 공주를 목격한 사람들의 명단과 진실을 말했단 서약서입니다.”
황후는 덤덤하게 말하고서 안타깝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황제랑은 다른 의미에서 무서운 사람이야. 며칠 전만 해도 보문 공주랑 하하호호 하고 있었으면서.‘
물론 내가 사이가 틀어지게 유도하긴 했지만.
“황후가 이걸 왜 가지고 있소?”
“최근에 보문 공주가 신첩에게 이국사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하더군요. 그때 표정이 너무 섬뜩하고 수상해서 혹시 석연치 않은 행보를 보이면 보고하라 지시해두었습니다.”
“황후마마!”
보문 공주가 다시 비명을 질렀다.
황제가 뭐라고 말하든 무조건 억울하다고 외치더니. 황후가 배반하자 기가 막히고 억울해 보였다.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폐하! 이건 황후마마의 농간입니다!”
“증인들을 불러 물어보면 알겠지. 송소우.”
“네, 폐하.”
“저 궁인들을 끌고 가 심문해라.”
“네, 폐하.”
송 태감은 바로 궁인들을 끌고 사라졌다.
보문 공주는 우두커니 서서 황후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나에 대한 증오심보다 황후가 자신을 배반했단 충격이 더욱 큰 듯했다.
“들어가거라.”
황후가 차갑게 말하자 보문 공주가 입을 열려고 했다.
“마마, 어떻게 제게…….”
“가서 조용히 기다려라. 네게 죄가 없다면 결과가 나오겠지.”
“정말 너무하십니다. 마마가 이러시면 안 됩니다.”
“처음엔 요요화를 탓하더니. 이젠 본궁을 탓하는가.”
“!”
보문 공주는 궁인들이 다 끌려간 탓에 비틀거리면서도 홀로 돌아가야 했다.
공주가 사라지자 황후는 황제에게 우아하게 사죄했다.
“신첩이 잘못하였습니다. 보문 공주에게 너무 잘 대해 준 모양입니다.”
“사람이 뒤에서 작정하고 꾸민 죄를 황후가 어찌 알겠소.”
“그래도 더 세심하게 살펴야 했습니다.”
중얼거린 황후는 나를 너무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아 부담스러워.
“가서 푹 쉬도록 하거라, 요 이국사. 자네가 고생이 많았다.”
황후는 두어 마디 더 예의상 말한 뒤 부드럽게 돌아섰다. 이제 할 일을 다 마쳤으니 공을 내세우지 않고 겸손하게 돌아가려는 듯했다.
“그런데 황후.”
그런 황후에게 황제가 같이 가자는 듯 다가가며 물었다.
“황후는 그 증거를 왜 이제야 내놓으시오?”
“!”
두 사람이 계속 걸어갔기 때문에 황후가 뭐라고 변명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멀어지는 황제와 황후를 바라보다가 보따리를 끌어안고 왔던 길을 혼자 돌아갔다.
’황궁은 진짜. 가까이할 곳이 못 된다니까.‘
* * *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증언을 듣고, 그 증언이 보문 공주를 가리키는지, 공주가 데리고 다니는 궁녀 중 누군가와 일치하는지 알아내는 데는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폐하. 정식 수사관들을 풀어서 한 번에 알아낸 게 아니니까요.”
황후는 비단 같은 목소리로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그녀는 억울해하지도 않았고 그저 있던 일을 이야기하듯 할 뿐이었다.
“그렇군.”
황제가 수긍하자 황후는 슬프게 웃었다.
“신첩이 행동이 빠르지 않아 요 이국사를 위험하게 하였군요. 요 이국사는 제 며느리가 될 아이인데…… 신첩의 잘못입니다. 그 아이를 잘 위로해주어야겠어요.”
“위로는 열셋째가 해주겠지.”
황제는 무뚝뚝하게 말을 끊었다.
황후는 황제의 옆모습을 힐긋 보고서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보문 공주는 우호국의 공주이고 귀빈이니 함부로 대하긴 어렵지요. 신중하게 증거를 찾으려다 보니 좀 늦게 나서게 되었습니다.”
“황후의 마음을 이해하오.”
“송구합니다.”
“들어가시오.”
갈림길에 도착하자 황제는 미소 지으며 황후의 팔을 두드렸다.
황후는 같이 미소 짓고 돌아섰다. 그러나 돌아서는 순간 부부의 표정은 동시에 냉랭해졌다.
“황후마마께서 일부러 숨기신 걸까요?”
태직전으로 걸어가는 그의 곁에서 송 태감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황후는 어진 편이지.”
황제는 뒷짐을 지고서 가볍게 말했다. 황후를 의심하는지 아닌지에 대해 그는 대놓고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송 태감 역시 더 묻는 대신 공손하게 고개를 조아렸다.
황제가 집무실에 도착하자 책상 옆에 상궁 하나가 서 있었다. 요요화에게 상처가 있나 살펴보라 지시한 상궁이었다.
“요요화는?”
“등과 무릎에 멍이 들었지만 심하진 않습니다.”
“그래.”
그 이상의 관심은 없는 듯 황제는 책상으로 곧장 걸어갔다.
“저…… 폐하.”
그러나 상궁은 물러나는 대신 황제 앞으로 더 다가왔다. 그녀가 손에 든 필첩을 내밀었다.
“요 이국사가 이걸 떨어뜨리고 갔습니다. 저희는 요 이국사를 볼 일이 거의 없으니 폐하께서 전해주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