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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고마워요 가주님 (34/159)


35화. 고마워요 가주님
2022.06.30.


제자를 남겨두고 빈방 밖으로 나와 보니, 다행히 유동백이 그사이에 유 가주에게 다녀온 것 같지 않다. 그는 어느 놀이판에 자리를 잡고 앉아 패를 쥐고 있었다.

그러다 나를 힐긋 보고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가볍게 까딱하는데, 그 모습은 모든 걸 다 가진 외형제를 질투하는 열등감 있는 형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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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은 겉만 보고는 모르지. 나도 겉으로 보기에는 호색하지만 속은 순애보로 꽉 차 있잖아?’

어쨌든 제자의 간섭은 드디어 넘겼다. 나는 안도해서 이번에는 아주 잽싸게 행동했고, 그 덕택에 점원에게 또 잡히는 일 없이 유 가주가 머무는 방 부근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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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라.”

통로에서 붙잡히긴 했지만, 이 경우는 대비해 선안에게 받아 온 패가 있기에 걱정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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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요. 유 가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나는 복도를 지키고 선 유 가주의 호위들에게 선안이 빌려준 패를 내보였다.

패를 확인한 호위들의 표정이 한결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뿐. 호위들은 날 들여보내 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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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공자. 가주님은 지금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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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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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내일 다시 오시지요. 언제 방문할지 미리 알려주고 가면 가주님께 말을 전하겠습니다.”

한시가 바쁜 와중에 유 가주가 하필 자리를 비웠다니! 유 가주의 위치를 생각한다면 매일 자리를 비워도 이상하진 않지만, 그래도 하필 시기가 이렇다 보니 아쉽다.

한시라도 빨리 선안의 오해를 벗겨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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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내일 미시 초에 찾아뵙겠습니다.”

 

* * *

다음날. 미시 초보다 좀 더 이른 시간에 나는 천금수화로 홀로 찾아갔다. 어제는 너무 소박하게 입어서 눈에 띄었기에, 오늘은 적당히 그곳에 어우러지도록 꾸민 차림이었다.

그러고서 약속 장소로 찾아가 일각 정도를 기다리자 마침내 유 가주가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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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만나지 못해 미안합니다, 요 공자.”

유 가주는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친근하게 날 부르고는, 시비가 차를 내려놓고 나가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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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무슨 일로 온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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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에 대한 일입니다,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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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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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어떻게 되었냐면…….”

나는 선안과 9황녀, 난데없이 나타난 여인에 관한 이야기, 수상쩍은 점, 황제의 분노, 황제가 다시 준 기회 등에 대해 최대한 빠르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마친 뒤. 유 가주의 표정은 지금껏 만난 이래 가장 어두워졌다. 그렇겠지.

자기가 아끼는 손주가 자기 친척에게 당했을지도 모른다는데. 태연하면 그야말로 정 없고 삭막한 사람이다.

나는 유 가주가 좀 진정하길 기다렸다가 그에게 조심스레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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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폐하께선 제게 이 일을 비밀리에 조사해보라 지시하셨습니다. 제가 그런 쪽으로 능력은 미약하지만 입을 조심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해서 염치를 무릅쓰고 가주님을 찾아왔습니다. 혹시 선안의 누명을 벗기는 일에 절 도와주실 수 있으실까요?”

나는 유 가주가 당연히 그러겠다고 할 줄 알았다. 그러나 유 가주는 도와준다 만다, 또렷한 말을 하는 대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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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안고 찾아왔단 여자는 누군가에게 매인 신분이거나, 아니면 궁지에 몰려 그런 일을 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부모가 갓 태어난 아이를 안고 그러긴 쉽지 않지요.”

유 가주가 확실하게 대답해주지 않자 좀 불안했으나, 나도 우선 수긍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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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요. 저도 사연이 있을 거라 여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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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 쪽을 파고들어 가보면 정보가 나올 겁니다, 요 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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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에…….”

그런데 끝? 이게 끝? 자기가 나서서 도와준단 말은 없나? 잠시 당황해 바라보고 있다가 결국 직접 묻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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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실 거지요?”

유 가주는 잠시 놀란 표정을 하다가 곧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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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가 나선다면 범인을 찾기 쉽겠지요. 하지만 제 목소리는 폐하께 닿지 않을 겁니다. 손주를 지키지 못해 한탄만 하게 되겠지요. 운이 좋으면 닿을 수도 있겠지만 운으로만 일을 도모할 수는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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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유 가주가 하는 말이 이해 가지 않는다. 아니, 내가 날 도와달라고 했지 직접 조사하고 폐하께 보고까지 하라 했나?

아니잖아. 날 도와주면 내가 황제에게 전하겠다는데, 왜 딴소리하는 것 같지?

하지만 유 가주가 적극적으로 나설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기에 더 무어라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전혀 수긍하지 못하면서도 고개만 끄덕였다.

유 가주는 그런 나를 바라보더니 뒤늦게 웃으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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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절 대신해 공자를 도울 사람을 소개해드리지요.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실망한 게 눈에 보였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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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민망했으나 나는 모른 척 감사 인사만 했다.

그러나 이각 뒤. 유 가주가 소개시켜 주기로 한 인물을 만나자마자, 나는 유 가주가 날 싫어해서 이러나 의심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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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입니다, 요 이국사.”

유 가주가 함께 선안의 누명을 벗기라며 소개해 준 이는 이미 아는 얼굴이었다. 그것도 아주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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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뵙습니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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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발을 한 손으로 걷어 올리고서 느릿하게 걸어 나오는 수려한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젠장, 왜 여기서 또 저 제자가 나오냐고!

내가 억울한 눈으로 바라보자, 유 가주의 입꼬리가 장난스레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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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요 이국사께선 전하의 도움을 받는 게 싫은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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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닙니다. 좀 놀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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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합니다, 이국사. 하지만 폐하께서도 새어나갈까 염려해 일부러 이국사에게 시킨 일이 아닙니까. 그 말을 듣고 나니 다른 사람에게 이 일을 부탁하긴 이 노부도 좀 꺼림칙해져서요.”

유 가주는 신뢰하는 눈길로 제자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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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9황녀 전하는 13황자 전하의 누이이니, 일이 새어나가지 않게 이국사를 잘 도와주실 겁니다.”

과연 그럴까? 저 새끼가?

* * *

솔직히 말해 나는 제자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

유 가주 앞에서 거절할 수가 없어서 제자와 같이 마차로 이동하긴 했으나, 마차 안에 올라타 단둘만 있게 되자마자 나는 재빨리 제자에게서 최대한 떨어져 앉으며 추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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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하께서 절 도우시려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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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가주가 부탁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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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전에도 도와줄까, 하고 물어보셨지 않습니까. 전하께선 원치 않으면 유 가주 부탁도 거절할 수 있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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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일이 아닌데 거절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너무 경계하는 티를 내지 않으려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제자는 사뭇 친절한 척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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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로서 당연히 스승님을 도와야지요. 스승님의 곤경을 모른 척 넘어간다면 이 제자의 마음이 더 불편해질 겁니다. 부담 가지지 마세요.”

네가 내 곤경을 보고 불편해할 인간이냐? 제 손으로 직접 독을 먹이기까지 했으면서? 내가 곤경에 처한 걸 보고 춤추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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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회귀 전에는 없던 일이 생기고 거기에 내가 연루되어 있으니까 의심해서 따라다니려는 건가?’

그래. 이게 가장 그럴듯하네. 젠장. 그런 거라면 바짝 긴장해야겠어. 조금이라도 제자에게 의심스러운 구석을 보이지 않아야 해.

* * *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 가주가 제자를 붙여준 건 좋은 선택이었다. 제자는 도움은 확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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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지역의 산파와 부인과 의원, 약사들을 조사해서 근 두세 달 내로 출산한 산모들이 누구인지 조사해라. 그들 중 누가 행적이 묘연한지 알아내.”

제자는 유동백을 부르더니 그렇게 지시했고, 그걸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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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해 올 때까지 스승님은 저와 함께 있으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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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요? 조사해 오는 데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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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무렵이면 올 겁니다.”

나는 두 발로 뛰어다니며 정보를 수집할 필요 없이, 제자와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몸과 마음의 편안함을 거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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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는 그 도박장엔 유동백……이란 자를 만나러 계속 드나드신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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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가주를 보러 갈 때도 있고, 유동백을 보러 갈 때도 있고. 반반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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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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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요? 도박하러 갔단 거짓말은 하지 마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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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늘 선안과 관계된 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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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란 걸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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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진짠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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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스승님 자신을 위해서 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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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닌데요?”

제자가 말을 나눌 때마다 멋대로 남의 의도를 추측하고 결론짓는 게 황당하긴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고 드디어 저녁이 되었을 무렵. 유동백이 돌아왔다.

유동백은 제자와 마주 보고 앉은 날 잠시 묘한 눈길로 보긴 했으나, 이는 아주 찰나였다. 그는 인사를 하자마자 바로 결과부터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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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은 뒤 행적이 사라진 여인을 다섯 찾았습니다. 하나는 병사했고, 세 명은 몸이 좋지 않아 집에 틀어박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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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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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졌습니다. 그 집으로 가서 자세히 알아보니, 남편이 빌린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어 집에서 식구가 다 쫓겨나게 생기자 거짓말을 강요받았다고 합니다. 짧으면 보름, 길면 마흔일 정도만 버텨 주면 빌린 돈을 탕감해 주겠다고요.”

이래서 제자가 유동백을 데리고 다녔지. 저자의 정보 수집 능력은 아주 비상하기 짝이 없다. 나는 주먹을 꽉 쥐고서 제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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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자가 확실합니다, 전하.”

고개를 끄덕인 제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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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찌하실 건지요,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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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대신 갚아줄 테니 진실을 밝혀 달라 부탁할 겁니다.”

내 말에 유동백이 무어라 말하려는 듯 입술을 움직였으나, 제자는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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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지?’

그 행동에 의구심을 느낄 사이도 없이. 제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인자한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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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게 하세요.”

유동백은 나와 제자를 번갈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짓더니 내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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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셔다드리겠습니다.”

유동백이 보인 그 일련의 미심쩍은 미소와 행동 탓에 조금 꺼림칙하긴 했으나, 한시가 급한 와중에 남편을 시간을 들여 설득할 수는 없었다.

자기 아내와 아이를 이런 위험한 일에 몰아붙인 작자에게 양심이나 도덕심을 들먹인다고 해서 효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이후 나는 그자를 찾아가 돈을 갚아줄 테니 이 일에 대해 자백하라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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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미 아내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갑자기 말을 바꾸면 선씨 가문에서 저희 식구들에게 해코지하려 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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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선 이 일로 몹시 분노하셨다. 나는 폐하께 이 일에 대해 모두 말씀드릴 셈이고. 자네가 나서서 먼저 자백하지 않는다면, 폐하께선 자네를 협박한 이를 벌할 때 자네를 공범으로 함께 벌하시겠지. 하지만 자네가 자백한다면 협박받은 처지를 헤아려 주실 거다.”

사내는 황제와 선씨 가문 중 누가 더 무서울지 헤아려 보더니, 결국 자백하겠다고 나섰다.

다음날. 나는 먼저 입궐해 황제에게 이 이야기를 전했고, 황제의 측근 태감인 송 공공이 측문 밖으로 나가 사내에게 죄를 실토받았다.

이후의 일은 이틀에 걸쳐 빠르게 잘 해결되었다.

알고 보니 사내에게 돈을 빌려준 다음 협박한 건 선안의 중부였다.

황제는 그 중부를 당장 죽여버리겠다고 벼루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으나, 9황녀가 시집갈 집안의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그러진 않았다.

선안의 중부가 한 일은 그대로 묻혔고, 대신 중부는 천적 되어 외진 곳으로 떠나게 되었다. 좌천된 것이다.

선안과 9황녀의 혼담은 다시 진행되기 시작했고, 선안은 자유로워졌다.

그리고 이 일은 내게도 뜻밖의 이득을 가져다주었다.

사흘째 되는 날, 안정되어 가는 상황을 보며 안도하고 있는데 유 가주가 사람을 보내어 나를 보자 청하더니 이렇게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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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주를 위해 나서 주다니.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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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은 제 친구인걸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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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이 깊어도 목숨을 걸고 나서긴 어렵지요. 노부는 무척 감동했습니다. 일전에 제게 은신처를 구해 달라고 하셨지요? 제대로 된 은신처로 찾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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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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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사는 좋은 사람입니다. 나쁜 의도로 은신처를 원하는 게 아닐 겁니다.”

유 가주는 감동받은 나를 보며 인자하게 웃더니, 한쪽 눈을 깜빡이며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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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은신처는 13황자 전하께도 비밀로 해드릴 테니 안심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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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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