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제자가 무서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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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제자가 무서우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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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화. 제자가 무서우십니까?
2022.06.16.
나와 제자는 잠시 침묵했다.
나는 아무리 화가 나도, 제자가 앞장서서 황제를 욕하더라도, 절대로 같이 황제를 욕할 수 없는 처지였다.
내가 황제를 씹으면 그것만으로 이미 대죄니까. 제자에게 약점 잡히는 거지.
제자가 날 위해 화내주는 척하지만 속지 않는다. 쟤는 ‘나’를 위해 화를 내는 게 아니다. 그냥 ‘자신의’ 스승이 맞았다는 데 화내는 거다.
그렇게 불편한 침묵이 한동안 계속된 후. 나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송구합니다, 전하. 오늘은 제가 정신이 없고 머리도 너무 아파서요. 수업은 다음에 열심히 해도 되겠는지요?”
보충 수업은 안 돼. 그냥 다음 시간에 열심히 하는 거로 하자.
그러나 제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
제자가 날 안고 그대로 들어 올린 것이다.
“전하!”
놀라서 끙끙 앓기를 그만두고 외쳤으나, 제자는 그대로 나를 안고 서재 옆에 붙은 작은 방문을 발로 열었다.
‘황자가 문을 발로 열다니!’
체면은 개한테 줘버린 제자는 곧장 나를 서재에 딸린 방으로 데려가 그곳의 긴 의자에 눕혔다.
“괜찮습니다.”
놀라서 벌떡 일어서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제자는 내 어깨를 눌러 다시 눕혀버렸고, 그 바람에 나는 일어서지도, 편하게 눕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얼어서 제자를 올려다보았다.
“제자님…….”
나도 모르게 평소와 다른 호칭으로 그를 부르자 제자는 잠시 흠칫했으나, 일어서도 좋단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계속 간절하게 그를 올려다보는 건 부담스러운지, 제자는 아예 자기 손으로 내 눈을 덮어버렸다.
“!”
그 따뜻하고 커다란 손에 놀라서 굳어 있자니, 제자는 내 눈꺼풀을 눌러 강제로 눈을 감게 만들고서 말했다.
“어의를 불러올 테니 쉬시지요.”
“괜찮습니다. 전하께 폐를 끼칠 순 없습니다.”
“우리는 혼약한 사이입니다.”
“아직 사주단자도 교환하지 않았는데요.”
“스승님 사주는 이미 압니다.”
“?”
네가 어떻게? 회귀 전에 난 13황자에게 내 사주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는데?
“이마에 벼루 맞고 죽을 사주는 아니니 눈 감고 계세요. 어의를 불러오겠습니다.”
그래. 벼루 맞고 죽을 사주는 아니지. 독 먹고 죽을 사주겠지.
그가 내 사주를 알고 있다는 데 의문을 느껴야 할지, 날 독살한 그가 사주 운운하는 데 분노와 공포를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상반된 감정은 제자가 서재로 걸어가는 걸 보고서 다른 의문에 옆으로 밀려났다.
“전하?”
나는 놀라서 상체를 일으키며 물었다.
“태감은 어쩌고 직접 가십니까……?”
내 질문에 제자는 잠시 시선을 피하는가 싶더니 평소 같은 말투로 대답했다.
“기양은 휴가를 갔더군요.”
‘갔습니다’가 아니라 ‘갔더군요’? 말도 안 하고 갔단 건가?
“상하가는 일곱째 형님께 맞은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 일할 수 없답니다.”
뭐야?
“심하가는 어디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벼루에 맞은 머리보다 뒷골이 더욱 아파온다.
13황자가 아주 못돼먹은 성품이고, 지금은 몸을 숙이고 있을 뿐이란 건 안다. 알지만 자기 궁의 궁인들에게 개무시 당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보고 있자니 어이없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사이 13황자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전하, 정말 괜찮습니다!”
나는 그를 말리기 위해 따라나서려 했으나, 침상에서 일어나자마자 두개골이 울리는 통증이 일어나 결국 도로 앉아야 했다.
‘쫓아가는 건 무리구나.’
대신 그가 올 때까지 정자세라도 하고 있으려 했으나, 몇 호흡 쉬기도 전에 이번에는 어지러워서 옆으로 눕고 말았다.
“토할 거 같아…….”
* * *
잠시 기절했던 모양이다. 눈을 뜨니 앞에는 어의인 초감이 앉아 내 맥을 짚고 있었다. 13황자가 결국 어의를 불러왔나 보다.
나는 얼결에 ‘초감?’ 하고 부르려다가 가까스로 입을 다물었다.
어의 초감은 13황자가 미래에 총애하는 어의였다. 그러나 회귀 전 기준으로, 이 시기에는 13황자와 별 접점이 없었다. 신입 대신인 나는 당연히 초감에 대해 모르는 척해야 한다.
다행히 말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서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누구인가?”
그러다가 뒤늦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니, 그보다 13황자는 어떻게 초감을 지금 데려온 거지? 초감이 그를 따르는 건 이 시기의 일이 아닌데?’
등골이 서늘해지다 못해 얼어붙겠다. 월무궁 궁인들이 그를 개무시한다고 동정할 때가 아니었다.
내가 대체 누굴 동정한 거야? 미쳤지.
회귀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13황자는 회귀 전 자기 측근들을 하나하나 다 회유하고 있었다.
유 가주, 6황자의 측근 태감인 운귀, 그리고 훗날 그의 사람이 되는 어의 초감까지. 회귀 전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월무궁 궁인들이 13황자를 무시하는 건 13황자가 그들을 통솔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13황자가 그들을 방치하기 때문이었다.
‘자기가 무능하다는 걸 다른 황족들에게 보이려고 월무궁 궁인들은 방치하는 건가?’
오싹해 하고 있자니, 어의 초감은 내 손목에서 손을 떼면서 대답했다.
“요 이국사께 인사드립니다. 신은 어의 초감이라 합니다.”
아직도 두려운 기분이 가시지 않았으나, 나는 애써 태연하게 대답했다.
“안녕하시오.”
그러고서 일부러 어리둥절한 척 초감의 뒤에 선 제자에게 물었다.
“전하께서 어의를 불러주셨습니까?”
“예.”
13황자는 사람을 아주 놀라게 해 놓고서는, 자기는 태연자약하게 초감에게 물었다.
“스승님 상태는 어떤가.”
나도 일단 놀란 마음을 누르고 초감의 대답을 같이 기다렸다.
나도 지금 내 부상 정도가 걱정되긴 했고, 초감은 사람을 쓰는 데 있어 까다로운 13황자가 아낄 만큼 그 실력이 아주 대단하니까.
초감은 읍을 하고 물러서며 대답했다.
“다행히 이국사께서 벼루에 맞으실 때 반사적으로 머리를 좀 빼신 모양입니다. 벼루에 정통으로 맞은 것치고는 부상이 심하지 않은 편입니다.”
“괜찮단 건가.”
“지어드린 탕약을 꾸준히 드시고, 연고도 꾸준히 바르시고 잘 쉬면서 무리하지 않으시면 스무날 뒤쯤엔 쾌차하실 겁니다.”
“스무날이나?”
“예. 완전히 쾌차했는지는 그때 다시 상처를 보아야 알 듯합니다.”
부상이 심하지 않은 것치곤 요양 기간이 긴 거 같은데.
‘진짜 괜찮은 거 맞나?’
나는 떨떠름해서 상처 부위에 손을 올렸다. 이미 치료를 해두었는지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해 그 까끌까끌한 부위를 이리저리 더듬고 눌러 보려는데, 상처 부위를 제대로 누르기도 전에 13황자가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잡더니 하지 말라는 듯 손을 내려버렸다.
“건드리지 마세요. 덧납니다.”
그뿐만 아니라 13황자는 내 손을 그대로 잡고 있기까지 해서, 나는 물론 어의 초감까지 동공이 심하게 흔들리게 만들었다.
13황자는 초감의 그 표정을 보고서야 내 손을 놓아주었으나, 이미 초감은 많이 놀란 뒤였다.
“그럼 신이 의랑을 시켜 약제와 연고를 이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하.”
어찌나 놀랐던지, 초감은 그 길로 바로 처방을 마무리 짓고 나가버렸다.
하지만 초감이 갑자기 달아나듯 가 버리는 바람에, 남겨진 나는 졸지에 더욱 어색해지고 말았다.
나는 기절하기 전에는 없던 이불을 두 손으로 붙잡은 채 먼저 말을 걸지도 못하고 그 상태로 굳어 있었다.
그가 내 손을 잡은 일을 농담처럼 흘려 넘겨야 할지, 아니면 사람들 이목을 생각해달라 청해야 할지 머릿속이 그저 뒤죽박죽이었다.
그 상태로 얼마나 멈춰 있었을까. 문 쪽에서 "전하! 전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났다. 초감이 보낸 심부름꾼이 약재를 가지고 돌아온 모양이었다.
제자가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가자, 나는 안도해서 이불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재만 받아서 얼른 돌아가야지.’
하지만 급하게 일어나자 다시 눈앞이 어지럽더니 균형을 잃고 바닥에 엎어지고 말았다.
‘젠장. 진짜로 내 상태 괜찮은 거 맞아?’
초감의 진단에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어지러웠다. 사람이 벼루에 맞으면 상태가 이렇게 안 좋아지는구나. 나는 일어나기 위해 허우적거렸으나, 균형을 잡을 수도 없었다.
그 사이. 밖으로 나갔던 제자는 빨리도 돌아와서는 나를 빤히 내려다보며 물었다.
"뭐 하십니까?"
헤엄치는 건 아니겠지! 더욱 얼굴에 열이 올라와서 나는 빨리 일어나려 애썼다. 그러나 벼루가 대체 내게 무슨 짓을 한 건지 손으로 바닥을 짚고도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나는 바닥을 몇 번이나 헛짚으면서 다리에 힘을 주었다.
그러나 제자는 내가 이렇게 가엾게 버둥거리는데도 날 일으켜주지 않았다. 그 자리에 서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구경하나?’
처음에는 그의 구경꾼 같은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그러나 날 내려다보는 제자의 감정 없는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수치심이 순식간에 날아가고 공포감이 찾아왔다.
왜 저렇게 쳐다보지? 내가 바닥에 엎어진 걸 보니 죽일 때 생각이 나기라도 하나?
'일, 일어나야 해.'
이 구도는 피하는 게 좋다. 제자가 날 죽이던 순간을 떠올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나는 다급히 바닥을 손으로 더듬거리면서 일어나려 애썼다. 하지만 긴장하면 할수록 손은 뻣뻣해지고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는 지끈거렸고 울렁이는 속 탓에 계속 토가 나올 것 같았다.
그때였다. 나를 바라보기만 하던 제자가 천천히 다가오더니 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하지만 날 일으켜주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제자는 나와 거리를 둔 채 나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려 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제자는 고개를 기울이더니 인자한 모습으로 물었다.
"스승님. 제자가 무서우신지요?"
"!“
정곡을 찌르는 그의 말에 가슴이 섬뜩해졌다. 나는 놀라서 제자를 쳐다보았다. 제자는 아예 턱을 괴고서 입가에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다시 눈이 마주치자, 제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제자는 스승님께 불온한 적이 없는데. 왜 이리 무서워하십니까?”
“신은…….”
굴러가라 혀야. 굴러가라고!
“무, 무섭지 않습니다.”
“제자가 말씀드린 적 있지요, 스승님.”
“무엇을…….”
“스승님은 표정 관리를 잘 못 하십니다.”
“!”
“이상하지요? 벼루를 던진 건 부황이고, 뺨을 때린 건 7황자이고, 스승님을 오라 가라 하는 건 다른 형님들인데. 왜 스승님이 절 무서워할까요?”
“안, 안, 안 무서워합니다. 제가 전하를 무서워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노력이 결실을 보았는지 드디어 혀가 매끄럽게 굴러가기 시작한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제자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제자는 표정에 별 변화가 없었다.
그러기를 한참. 인자해 보이던 그의 눈매가 가늘게 휘어지더니, 제자가 또 내 턱을 잡아 들었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스승님. 혹시…….”
하지만 그가 뒷말을 하기 전.
“기억이-.”
내내 울렁이던 속이 결국 사달을 내고 말았다.
“우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