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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화. 같이 던질 순 없죠 (29/159)


30화. 같이 던질 순 없죠
2022.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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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로 추정되는 벼루를 내게 던졌단 충격이 가실 새도 없이 매서운 호통 소리가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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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그따위 놈팡이를 내 딸과 어울리게 하느냐!”

나는 납작 머리를 조아리고서 얼른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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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가 선안을 닮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선안의 아이가 아닙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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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씨 가문에서 이미 다 인정하고 갔다. 그런데도 아니라고!”

역시 선씨 가문이 손을 썼구나!

아니, 이 정도면 사이가 안 좋은 수준이 아니라 죽으라고 등 떠미는 수준으로 사이가 나쁜 가족들인데? 선안의 부모는 힘이 없나?

선씨 가문이 수상하다. 몹시 수상해.

하지만…… 아직 아무 증좌도 없는 상황에서 황제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는 정보는 거의 다 회귀 전에 듣거나 본 것들이었다.

유일하게 지금 시간대에서 일어난 암살자 사건도 선안이 스치듯 이야기해 주었을 뿐, 증좌가 있진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선씨 가문 이야기는 아직 입도 뻥긋할 수 없었다. 대신 나는 얼른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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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 선안은 제가 호색한 척할 때마다 늘 못마땅해하던 정숙한 친구입니다. 여인과 손끝 한 번 닿아본 적이 없는데, 회임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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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야 모르지. 이국사가 없는 데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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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안과 저는 거의 같이 행동합니다, 폐하. 그 고지식한 친구는 저 몰래 다른 여인을 따로 만날 시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은 폐하의 말씀처럼 저 자신의 생각이니 뒤로 미루겠습니다. 그러나 여인의 주장과 행동이 맞지 않는 게 이상합니다.”

나는 말을 멈추고 슬쩍 황제를 보았다.

다행히 황제는 일단 들어줄 생각은 있는 듯 말해보라 손짓했다.

이마에서 계속 피가 흘러내려 속눈썹에 고였으나, 나는 그걸 닦을 수도 없어서 그냥 눈을 내리깔고 계속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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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은 자기 아이를 선안이 서출로라도 키워주길 바라서 데려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거라면, 그 여인은 우선 선안과 이야기를 해보아야 했습니다. 황녀 전하와 혼담이 오가는 와중에 이런 일이 생기면 선안의 목숨이 위태롭단 걸 알 테니까요. 그러나 그 여인은 처음부터 선안은 만나지도 않고, 올 때도 최대한 요란스럽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선안이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해달라 청했지만, 여인은 선안을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며 아예 보지도 않으려 합니다. 폐하, 차라리 그 여인이 선안에게 원한을 가지고 복수하기 위해 온 거라면 지금 행보가 적절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말이 맞지 않습니다.”

머리를 잘못 맞았는지 속이 다 울렁거렸다.

눈앞은 속눈썹에 고인 피와 눈 옆으로 흐르는 피로 자꾸 붉게 보였고, 머리는 어질어질해서 바닥이 둥글게 돌아가는 듯했다.

하지만 내가 9황녀 일에 선안을 끌어들여 놓고 이대로 슬쩍 ‘난 몰랐다’라고 넘어갈 순 없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있었을까. 머리 위로 차가운 목소리가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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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말대로 그 여인이 말로는 아이를 키워달라지만, 사실은 복수하러 온 거라 그럴지도 모르지! 안 그러하냐?”

속이 철렁했으나, 나는 최대한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며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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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우의 결백을 증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폐하. 신은 누군가 선안이 9황녀 전하와 혼인할 영광을 얻게 되자 부러워 수를 썼다고 확신합니다. 궁지에 몰린 가여운 여인을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자가 배후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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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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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을 바쳐서라도 결백을 증명하겠습니다. 신이 결백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이 모든 건 신의 안목이 저지른 일이니 신을 벌하시옵소서!”

나는 그 상태로 머리를 조아린 채 황제가 아무 말이든 해주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그렇게 있었을까. 정신이 좀 가물가물해져서 내가 기절을 하려는 건지 잠이 오려는 건지 구분도 가지 않을 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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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정신을 번쩍 일깨우는 말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나는 놀라서 번쩍 머리를 들다가 진짜로 눈앞이 핑 돌면서 잠시 의식을 잃었다.

그러고서 눈을 떠보니, 뜻밖에도 13황자를 쏙 빼닮은 황제가 코앞에 있고 나는 황제의 팔에 기대어 있었다. 뭐야 이 부담스러운 근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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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다급히 빠져나와 황제와 거리 두기를 한 다음 머리를 조아렸다. 그러고서 슬쩍 고개만 들어 보니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몸을 일으켰다.

위치를 보니, 내가 쓰러지자 황제가 옥좌에서 여기로 친히 와서 나를 받아준 듯했다.

이런 걸 두고 병 주고 약 준단 거구나.

하지만 황제가 친히 부축해 주었으니 무조건 감사하는 시늉을 해야 한단 생각에, 나는 최대한 송구스러워하는 척을 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을까. 나를 빤히 바라보던 황제가 마침내 기회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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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기회를 주겠다. 네 말이 옳다는 걸 증명해오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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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폐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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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느냐.”

요요화가 나간 뒤. 황제는 바닥에 떨어진 벼루를 가져오라 손짓하며 물었다.

한구석에 서서 쥐 죽은 듯 있던 송 태감은 얼른 벼루를 챙겨 들고 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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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인이 뭘 알겠습니까. 폐하의 말씀을 들으면 폐하의 말씀이 옳은 것 같고, 요 대인의 말을 들으면 요 대인 말도 그럴듯하고, 이렇게 줏대 없이 휩쓸리는 것을요.”

송 태감은 벼루에 묻은 피를 싹싹 닦은 다음 황제의 책상에 내려놓았다.

황제는 심드렁한 눈길로 이미 피가 굳어서 잘 닦이지 않는 부분을 내려다보았다.

송 태감은 기민한 눈치로 황제를 살폈다.

사실 송 태감은 방금 전, 일부러 무조건 황제의 말이 옳다고 하지 않고 요요화를 살짝 두둔하는 말을 했다. 황제가 화를 내면 바로 발을 뺄 수 있을 정도로만 살짝.

황제가 요요화에게 화가 얼마큼 난 건지 판단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황제는 그 부분에 대해 별말 없이 그저 벼루만 보고 있었다. 벼루를 던질 때 비해 화가 많이 풀린 게 틀림없었다.

하긴. 그러니 요요화가 쓰러지자 갑자기 달려가 부축한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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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될 거라고 챙기시는 건가?’

송 태감은 미심쩍게 생각했으나, 그런 거라면 벼루를 던지지도 않았을 것 같단 생각에 그 가능성은 지워버렸다.

그러다 송 태감은 황제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간 걸 발견했다.

왜 웃으시지? 웃을 일이 있나?

의아해서 황제를 살피고 있자니 뜻밖에 황제가 이상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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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화에게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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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예, 폐하.”

갑자기 누이 이야기를 왜 물어보시지? 송 태감은 어리둥절해서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황제가 다시 이상한 질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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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요씨 가문에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 나이 차이가 얼마 안 나는 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누이는 요요화를 닮았더냐?”

태감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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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살 차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댁 낭자를 보진 못했습니다, 폐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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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황제는 아쉽다는 듯 말하고서 의자에 몸을 푹 기대어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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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화를 닮았으면 괜찮을 것 같은데.”

미묘한 발언에 태감은 등골이 쭈뼛해졌다. 무슨 뜻이시지……?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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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감히 그따위 사내를 황녀한테!”

황후는 늦가을이라 날씨가 쌀쌀한데도 부채를 부치며 분노로 인한 열기를 누르고 있었다.

황후의 측근 고 상궁은 황후에게 천천히 부채질해주며 위로하려 애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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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염려하지 마시지요, 황후마마. 아직 혼인하기 전이 아닙니까. 게다가 이 일은 명백히 선안의 잘못이니, 엄중히 벌하면 황녀 전하의 체면에도 아무 일 없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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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괘씸하지 않으냐! 내가 저에게 얼마나 잘해 주었는데. 감히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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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화도 몰랐겠지요. 선안이 그런 짓을 해봤자 요요화에게도 좋을 게 하나도 없는데, 무엇 하러 알고 그랬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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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그거야 그렇지.”

황후도 이성적으로는 요요화가 일부러 그런 친구를 소개해준 게 아니란 걸 알았다.

황제가 요요화에게 매섭게 경고를 날렸으니, 요요화는 나름대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적당한 친구를 찾아온 것일 터였다.

게다가 그 친구는 정말로 헌헌한 미장부라, 9황녀는 선안을 보고 대번에 마음이 돌아서서 그자와 혼인하겠다고 말을 바꾸었다.

황후는 9황녀의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란 건 알았지만 혼인 같은 중대한 문제에도 저 꼴이구나, 싶어서 얼른 혼담을 서둘렀다.

황후 역시 선안이란 자에 대해 따로 조사해보니 꽤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설마 이런 식으로 사고를 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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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쉽구나. 13황자와 요요화가 지금 혼인한 상태라면 이 일을 빌미로 13황자를 완전히 쳐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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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13황자는 우리 9황녀 전하보다 나이가 어리니 더 늦게 혼사를 치르게 되겠지요. 그럴 일은 없을 거랍니다.”

고 상궁은 일부러 농담조로 밝게 말했다.

황후는 그제야 코웃음을 쳤다.

그러다 황제와 선안의 대화를 알아 오려고 보냈던 태감이 들어오자, 황후는 더 부채질하지 않아도 좋다고 신호를 보내고서 손짓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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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폐하께서 요요화에게 어쩌시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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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이국사가 9황녀 전하와 선안 공자의 혼사를 막고 싶어 하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며, 누명임을 알아 올 테니 기회를 달라고 했답니다.”

황후는 눈살을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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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선? 그 말을 들으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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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송 공공이 슬쩍 언질 주길, 요 이국사가 친구의 누명을 벗기지 못하면 자신이 대신 벌을 받겠다고 나서자 폐하께서 꽤 감동하셨다더군요.”

황후는 탁자에 턱을 괴고서 흥 코웃음을 쳤다.

아직 요요화가 13황자와 혼인하지 않았으니 이 일로 13황자에게 해를 줄 수는 없다.

그러니 황후도 분기가 나긴 했으나 이 일을 요요화가 잘 해결하는 쪽이 좋긴 했다.

그래야 9황녀도 우스갯거리가 되지 않고 무사히 정혼할 테고, 13황자 역시 남장한 요요화와 엮어 후계자 자리에서 아예 쫓아낼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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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감은 있구나.”

 

* * *

황제한테 맞은 부위가 너무 아프다. 오늘은 도저히 수업할 수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대로 그냥 가버리면 13황자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에, 나는 일단 얼굴만 제자에게 보이고서 내가 이만큼 다친 걸 증명한 다음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머리가 어지럽다 보니 월무궁까지 가는 길이 평소보다 더욱 멀게만 느껴졌다.

그래도 가까스로 월무궁에 도착해 제자가 있는 서재 안에 들어가니, 저절로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제자는 전처럼 서책을 읽고 있다가 내가 들어오자 책을 아래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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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황자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그러다 제자는 날 보더니, 평소의 느긋한 움직임이 어디로 간 건지, 눈 깜짝할 사이 코앞으로 다가와 다친 이마 부근을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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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 힘이 없어서 그가 짚는 대로 휘청이자, 제자는 내 이마를 놓아 주면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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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루에 맞았군요. 누가 한 짓입니까.”

네 아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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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하께서 좀 화가 나셔서요. 홧김에 옆으로 던지셨는데 그만 제가 맞고 말았습니다.”

나는 차마 황제가 나한테 정통으로 집어 던졌단 말은 할 수가 없어서 적당히 둘러댔다.

그러나 제자는 회귀 전 제 손으로 아버지를 폐위시켜 지하에 가두어버린 패륜 자식답게 곧장 표정이 섬뜩해져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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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인간이 또!”

황제의 벼루 던지기는 습관성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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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그냥 맞고만 계십니까.”

……그럼? 같이 던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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