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13황자를 사모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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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13황자를 사모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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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화. 13황자를 사모하느냐?
2022.04.28.
고 상궁은 당황해서 황후를 쳐다보았다. 왜 얘기가 거기로 튀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마. 소인은 마마의 고견이 잘 이해 가지 않사옵니다.”
결국 고 상궁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황후는 요요화가 여인이란 이야기를 할 수는 없기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옆의 탁상에 팔을 기대기만 했다.
그냥 막 던진 말이 아니었다. 황후는 자신이 떠올린 게 생각할수록 좋은 계책으로 여겨졌다.
화음의 모든 황제는 사내였다. 이에 황후는 아들을 낳으려 애써 보았지만 딸만 넷을 낳았다.
특히 막내를 낳을 때는 너무 무리해서, 어의는 황후에게 더이상 회임하면 황후의 목숨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황후는 ‘다음에는 다음에는’ 하고 생각하면서 연이어 아이를 가지려 노력했으나 결국 모든 게 물거품이 되자 크게 실망했다.
5황녀와 8황녀는 다른 황자들보다 영민하였으나 그게 무슨 소용인가.
게다가 황제에게는 건장한 아들만 여덟이었다. 황손이 도두 열다섯이고 그중 황녀가 일곱인데, 일곱 중 넷이 그녀의 딸인 것이다.
기가 막히지만 다음 보위는 후궁 소생의 황자가 이을 터였고, 그렇게 되면 황후는 누구의 황자가 즉위하든 두 명인 태후 중 하나가 되어 자신의 아랫사람이 윗사람이 되는 꼴을 보아야 했다.
황후와 황제의 친모 모두 태후 자리에 오르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둘은 동급이었다.
후궁과 동급이 되는 것도 황후로서는 기분이 나쁜데, 황제는 자기 친모를 더 따를 수밖에 없으니 사실상 두 태후 중 더욱 권세가 높은 건 친모인 태후 쪽이었다. 역사상 언제나.
이는 황후가 황자를 자기 밑으로 넣어 기르더라도 마찬가지이니 황후로서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에 황후는 친정 가족들과 고민한 끝에 영민한 두 황녀 중 하나를 황제 자리에 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모든 황자들이 황제 자리에 오르지 못하도록 쳐내기로 했다.
‘내 황자가 멍청하다면 영민한 황자들만 제거하면 되지. 하지만 내 딸이 황위에 오르려면 모든 황자를 제거해야 한다.’
힘 있는 어머니와 외가가 있는 황자들은 그 점이 위협적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쳐낼 기회가 많았다.
친인척들이 많으니 사고를 칠 사람도 많았고 어디서든 꼬투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저 가만히 기다리다가 그들이 실수했을 때 쳐내면 되었다. 혹은 실수를 유도하거나.
그러나 13황자는 외가 쪽으로 아무도 식구가 없고 인척은 모두 황제의 핏줄이며 멍청해서 세력조차 없다 보니, 오히려 꼬투리를 잡기가 힘들었다.
정말로 멍청한 황자라면 나중에 적당히 사고를 치도록 유도하면 되는데. 13황자는 아둔한 시늉을 하고 있는 듯하니 그런 계책도 통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좋은 기회가 넝쿨째 굴러들어온 것이다.
‘요요화는 여인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사내이지. 13황자가 요요화와 정혼 하면 황위는 절대 이을 수 없다. 요요화가 훗날 여인임을 밝힌다 하더라도 그땐 이미 소용없어. 오랫동안 속여온 일로 대신들의 반대가 극심할 테니까. 요요화와 이혼하면 된다지만, 폐하께서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친히 혼인시킨 며느리를 쫓아내진 못하실 테지. 설령 폐하께서 요요화를 쫓아내려 해도 내가 가엾다고 막으면 돼……. 이렇게 되면 13황자가 요요화를 데리고 황위에 오를 길은 자기 정적들을 모조리 없애는 것뿐이다!’
황후는 입꼬리를 올리고 물었다.
“오늘이 폐하께서 본궁에게 오는 날이지?”
“예, 마마.”
“그럼 그때 말씀드려야겠다.”
고 상궁은 여전히 어리둥절해 황후를 보다가 물었다.
“나라에서 인정받고 족보에 올라가려면 사내와 여인이 맺어지는 혼인이어야 하지요. 혹여 사내와 13황자를 혼인시키면 황위를 이을 수 없어서 이러십니까?”
“그래.”
황후가 덤덤히 대답하자, 고 상궁은 눈썹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걱정했다.
“13황자께서 요요화와 정혼 하면 물론 보위에 오를 일은 없어지시겠지요. 하지만 폐하께서 이를 윤허할 리가 없습니다, 마마. 폐하께선 오히려 마마께 다른 뜻이 있다고 눈치채실지도 모릅니다. 폐하께서는 황녀님들을 후계로 세울 생각이 없지 않으십니까.”
“폐하께선 내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실 거다.”
황후는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폐하께서도 요요화가 여인인 걸 아니까.’
* * *
그날 저녁. 황제가 침전에 찾아오자, 황후는 그가 겉옷 벗는 걸 도와주면서 정말로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의 혼인은 부모가 정해주어야 하지요.”
고 상궁은 따뜻한 차를 가져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으며 불안한 눈길로 황후를 살폈다.
황제는 평소와 엇비슷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으나 아직 황후의 말에 크게 관심은 없어 보였다.
“그렇지. 왜 그러시오. 마음에 드는 사윗감이 나타났소?”
“아니요. 황녀들의 또래 중엔 마음에 차는 이가 없네요. 가장 뛰어난 이가 요 이국사인데, 아시지 않습니까 폐하. 요 이국사는…… 너무 호색하니까요.”
“그렇지.”
황제는 황후가 에둘러 말했지만 무슨 소리인지 알았다.
황후는 고 상궁에게 나가라 눈짓했다. 그러고는 고 상궁이 나가자 황제에게 따뜻한 찻잔을 건네며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황자와 황녀들은 신첩이 신경 쓸 필요가 없지요. 다들 친모와 세력 좋은 외가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폐하, 13황자는 신경 써 줄 친모가 없으니 신첩이 이를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공사다망하신 폐하께서 직접 며느릿감을 고르기도 힘드니까요.”
황제는 차를 마시며 황후를 보았다.
“13황자에게 짝지어주고 싶은 규수가 있나 보군.”
황후는 황제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기를 기다렸다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을 꺼냈다.
“실은 폐하. 13황자와 요 이국사를 정혼 시키면 어떨까 합니다.”
이는 무척 현명한 선택이었다. 황제가 아직 찻잔을 들고 있었더라면 필시 쏟았을 것이다. 황제는 입을 벌리고 황후를 멍하게 바라보다 물었다.
“짐이 뭘 잘못 들은 것 같은데.”
황후는 흥분하지 말라는 듯 황제의 팔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서 말을 꺼냈다.
“실은 폐하. 신첩이 요 이국사가 13황자를 사모한단 걸 알아버렸습니다.”
황제는 황당하단 투로 되물었다.
“요 이국사가? 열셋째를?”
“무얼 놀라십니까. 13황자는 어미인 제 눈으로 보기에도 참으로 훤칠한걸요. 전 그 아이만큼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답니다. 그런데다 요 이국사는 황자의 또래이지요. 그런 둘이 늘 붙어 있으니 어찌 정분이 안 나겠습니까?”
황제는 넋을 놓고 듣다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그렇긴 하지만, 요요화는 대외적으로 사내가 아니오. 그런데 둘이 정혼 시키자니. 말도 안 되오.”
“저도 처음에 놀랐지요. 하지만 생각해보니 참 잘된 일이었습니다.”
“잘되었다고?”
“13황자에겐 외가가 없으니 아내를 잘 맞이해야 하지요. 그런데…… 송구합니다, 폐하. 황자에게 도움이 될 만한 권세 높은 이들은 13황자와 연을 맺고 싶어 하지 않잖아요. 영민한 황자가 여덟 명이나 되니까요.”
“…….”
“그렇다고 13황자를, 귀한 황가의 피를 아무 데나 장가보낼 수야 있습니까? 하지만 신교 요씨 가문은 모든 걸 가지고 있습니다. 권세도 있고 이름도 높고 평판도 좋지요. 게다가 요 이국사는 대외적으로 적장자이니, 그 가문을 이을 겁니다. 13황자가 그 집안에 가면 훗날 폐하의 손주들도 편안할 거예요.”
화음에서는 황족으로 실질적인 지원을 받는 건 황자와 황녀들 뿐이었다. 이들이 혼인한다고 해서 황족이 아니게 되진 않지만, 이들의 자녀는 황손으로 대우받지 않았다.
그렇기에 부마와 종친들도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것이었다.
어쨌든 황실 피를 이었다고 여겨서 높게 쳐주긴 해도 황가에서 지원해 주지 않게 되니, 황자와 황녀도 후손이 잘 지내려면 좋은 가문과 혼인해야 했다.
황후가 지적한 것도 이 부분이었다.
황제는 시름에 잠긴 얼굴로 생각하다가 수긍했다.
“13황자는 외가가 없으니 권세 높고 부유한 아내를 얻어야 자식들도 잘되긴 하겠지.”
황제는 쓸모없는 13황자에게 신뢰는 없었으나 가여운 마음까지 없진 않았다. 그도 외가가 없는 아들을 좋은 가문에 보내고 싶긴 했다.
황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니 요 이국사가 딱입니다. 요 이국사도 처지가 어중간하지 않습니까.”
“받아들이려 할까 모르겠소.”
“받아들일 겁니다. 폐하께서도 요 가주가 여식을 장자로 키우게 해달란 청을 허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별 상관없으니 그렇지. 하지만 이건 혼사 문제잖소.”
“요 이국사도 참으로 딱하지요. 그렇게 고운 얼굴에 영민하기까지 한데, 제대로 혼인하지 못할 테니까요. 본인도 그걸 아니 호색한 시늉을 하며 지내잖아요.”
“음.”
“요 이국사는 그 처지에 누구와 혼인하겠습니까? 요 이국사가 여인과 혼인한다면 그 여인은 무슨 죄인가요? 호색하다는 이국사가 자신과는 동침조차 하지 않으려는 데 자존심이 상할 거고, 언제 회임하냐는 집안 어른들의 훈계에 평생 시달릴 겁니다.”
“그렇긴 하지.”
“이국사가 사내와 혼인한다면 그것도 가엾지요. 분명 요씨 가문에서는 입막음을 할 만한 만만한 가문의 사내를 데려와 여장시킬 겁니다. 여장하는 거야 그렇다 쳐도, 비밀리에 일을 진행하려면 그 사내는 자기 가문과 연을 끊고 살다시피 해야 하겠지요.”
“흠.”
황제는 황후의 말에 서서히 넘어가는 기색이었다. 그가 다 식은 차를 홀짝이는 걸 보면 확실했다.
“13황자가 사내와 혼인한다면 한바탕 소란이 나겠지요. 정식으로 할 수 있는 혼인도 아니고요. 하지만 어차피 13황자는 보위와 관련이 없으니, 이 일은 13황자에게 실보다 득이 더 커요.”
“그래도 체면이…….”
“훗날 아이를 회임했을 때 남장을 그만두라고 하면 되지요. 배도 부를 거고, 어의를 보내 진맥도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남장을 밝힐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도 믿을 테고요. 13황자가 모든 걸 알고도 아내를 위해 침묵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황자가 입이 무겁다고 할 거예요.”
“!”
“요요화는 다른 사람과 혼인하면 가주 자리를 빼앗길지 모르니 평생 남장을 못 풀 거예요. 하지만 황자와 혼인해 회임하면 이야기는 달라지지요. 감히 누가 황제의 며느리와 손주에게 가주 자리를 내놓으라 하겠어요?”
황후는 자애롭게 미소 지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요요화가 맺어질 수 있는 사내 중에 우리 13황자 만한 사내는 없답니다. 요씨 가문은 황자 사위를 볼 수 있으니 황송할 거예요. 요요화는 사모하는 13황자와 연을 맺으니 우리에게 감읍하겠지요. 13황자가 처음에 놀라긴 하겠지만 요요화가 여인인 걸 알고 폐하의 깊은 뜻을 알면 폐하의 은덕에 감사할 겁니다.”
황제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보던 황후는 입가에 손을 올리고서 일부러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지금도 그리 고우니, 이국사가 남장을 푼 모습은 분명 선녀 같겠지요. 13황자가 보면 좋아서 울지도 모릅니다.”
황제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웃음을 터트리고서 황후의 어깨를 잡고 가볍게 주물러주었다.
“황후는 참으로 현명하고 생각이 깊소. 친자가 아닌 아이까지 이리 신경 써주고…… 황후만큼 어진 부모는 없을 거요.”
* * *
하지만 혼사 문제는 확실히 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 때문에 황제는 황후의 말에 다 넘어갔으면서도 우선 가장 중요한 요요화가 13황자를 진정 사모하는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애초에 이 일을 진행하는 건 요요화가 13황자를 사모한다는 전제가 있어서인데, 그게 아니라면 일을 진행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었다.
“요 이국사께서는 친분 있는 관리가 없으십니다, 폐하. 요 이국사가 친구 중 처음으로 관직에 올랐거든요.”
하지만 관리 중에서는 요요화가 친하게 지내는 이가 없었고, 관리가 아닌 이는 황제가 불러서 떠보기 곤란했다.
이에 황제는 혹시 황자들 중에 친한 이가 없나를 살피다가 좋은 소식을 들었다.
“2황자 전하와 6황자 전하께서 최근에 요 이국사를 불러 함께 노셨지요.”
황제는 바로 그 둘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은근히 요요화에 대한 일을 떠보았다.
“요요화는 13황자와 잘 지내고 있다더냐? 또래를 스승으로 붙인 건 처음이라 신경 쓰이는구나. 하지만 본인들에게 물어봐야 짐의 눈치를 보느라 좋다고만 하겠지. 너희가 솔직하게 말해보거라.”
그 말에 2황자와 6황자는 서로를 마주 보고 웃다가 황제가 마음에 들어 할 말을 해주었다.
“아바마마, 요 대인은 열셋째 동생의 외모에 완전히 푹 빠졌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나누었사온데, 권력보다도 열셋째의 얼굴이 더 좋다 하더군요.”
두 황자의 말에 황제는 흐뭇해졌다. 과연 황후의 말이 맞구나.
하지만 이 일은 정말로 신중해야 한다. 게다가 그가 명령을 내려 13황자와 요요화를 혼인하는 건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 혼담 역시 자연스럽게 진행되어야 했다.
이에 황제는 다음으로는 요씨 가문에 측근 태감을 보내 슬쩍 운을 띄어보게 했다.
“요, 요 대인과 13황자 전하의 혼담을 말씀이시옵니까? 13황녀 전하가 아니라요?”
“짐에게 13황녀가 어딨는가.”
“그게…… 그렇지만…… 예이.”
측근 태감은 황제의 지시에 몹시 당황했으나 따를 수밖에 없었다.
* * *
“야. 황궁에서 태감이 와서 어머니랑 아버지 만나고 있대. 너 뭐 사고 쳤냐?”
나는 린화가 ‘야’라고 부를 때부터 한소리 퍼부을 준비를 하다가 태감 이야기에 놀라서 되물었다.
“뭐? 진짜야? 거짓말 아니고?”
“나도 모르니까 물어보잖아.”
폐하가 우리 가문에 태감 보낼 일이 뭐가 있지? 나는 멀뚱히 린화를 쳐다보았다.
린화는 계속 나를 째려보고 있었다.
그 뚱한 얼굴을 보는 순간. 린화보다 배로 사랑스럽지만 부담스러운 9황녀가 떠올랐다.
문득 태감이 온 게 9황녀에 대한 일일지도 모른단 생각이 떠올랐다.
설마! 아니겠지? 그래 아닐 거야. 9황녀 전하가 나와 몇 번이나 만났다고?
첫 번째 두 번째 만남에 둘 다 날 이글이글한 눈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그래도 그거 가지고 혼담이 진행되진 않을 거야.
아니, 내가 여인인 걸 아는데 폐하께서 혼담을 꺼낼 리가 없지.
‘뭐야. 그럼 대체 왜 온 거지?’
혹시…… 9황녀가 나와 혼인하고 싶다고 조르니, 빨리 아무하고나 대충 혼인해 버리라 지시하러 왔나?
그 의문은 태감이 돌아간 뒤. 부모님이 직접 불러 풀어주었다.
“요화야. 솔직하게 말하거라.”
“예, 아버지.”
“너 13황자 전하를 사모하느냐?”
“아니요.”
“솔직하게 말하거라.”
“솔직하게 아닌데요.”
“폐하께서 너와 13황자 전하를 짝지어주고 싶어 하신다.”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