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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화. 그리 나오시겠다? (11/159)


12화. 그리 나오시겠다?
2022.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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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거지? 나는 멍하게 제자를 바라보았다.

반면 제자는 아주 침착하게 하얀 술주전자를 가져가 표면에 손을 대어보고 있었다.

나는 계속 입가를 닦으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 저 제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회귀 여러 번 하다가 미쳤나?

기억은 안 나지만 전전생엔 내가 그를 죽였다며. 그 복수를 한다고 전생엔 자기가 날 죽였잖아? 나와 그의 사이에 오간 건 독과 피인데,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

내가 여기서 ‘멍멍멍’ 하고 대답하면 제자가 “그렇군요.”라고 대답해 줄 것 같다. 그 정도로 그의 말은 뜬금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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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닳겠습니다.”

제자가 픽 웃으며 놀리는 바람에 나는 손수건을 얼른 내렸다. 멍하게 생각하는 내내 계속 손수건으로 내 입술을 문지른 모양이다.

나는 얼른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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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론 안 닳습니다.”

그가 한 시답지 않은 농담에 대한 반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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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긴. 그렇긴 하더군요.”

그러나 제자가 난데없이 덧붙인 동조에 나는 다시 굳고 말았다. 저건 또 무슨 소리야? 왜 자기가 나랑 입이라도 맞춰 본 것처럼 말해?

묘한 말을 툭 던져 놓고서 제자는 자기 홀로 고상하게 물을 마셨다.

나는 괜히 찝찝해져서 손수건을 계속 만지작거렸다. 제자와 술을 마시러 온 게 벌써 후회되고 있었다.

애초에 원해서 온 게 절대 아니었지만, 그래도 더 요령껏 거절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손수건 일부가 내가 만지작대는 사이에 뒤집힌 걸 보는 순간. 문득 발상이 전환되었다.

아. 혹시 제자가 한 말. 나더러 자기를 좋아하냐고 물은 게 아니라, 연모하는 대상으로 자기가 어떤지 평가해 달란 거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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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니 이거 같다. 이쪽이 훨씬 그럴듯했다. 제자가 툭 던진 말이 너무 모호해서 내가 착각한 게 분명했다.

원래 친구끼리는 이런 말을 한 번씩 하지 않던가. 내가 제자랑 친구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결 마음이 정돈되자, 나는 손수건을 반듯하게 접으면서 아까의 침묵을 만회할 만큼 밝은 투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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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선 아주 훌륭한 분이시지요. 어느 사람이 전하를 연모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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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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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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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빨리 대답하셨다면 그럴듯하게 들렸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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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흠칫하자, 제자는 농담이라는 듯 웃더니 주전자를 들어 내 쪽으로 주둥이를 기울였다.

따라주려고? 얼결에 두 손으로 술잔을 받치자 주둥이에서 졸졸졸 소리와 술이 부어졌다.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나는 한 번 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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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입니다. 설마 신이 이런 거로 농을 하겠습니까.”

어쨌든 술자리 내내 이런 분위기로 할 필요는 없지. 적당히 분위기를 풀어야 했다. 아니면 술을 마시고 취하는 게 아니라 체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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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면 스승님. 이 제자를 연모해보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제자가 건넨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손이 흔들리고 말았다.

술잔에 부어지던 술은 내 손과 탁자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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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합니다.”

나는 얼른 술잔을 내려두고 옆에 놓인 예비용 수건을 집어서 술이 떨어진 자리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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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놀라실 일인가요?”

제자는 여전히 농담조로 말하며 주전자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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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께서 방금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이 제자를 연모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거라고요.”

대체 무슨 속셈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나는 힐긋 그의 안색을 살폈다. 제자가 멍청해서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리는 없는데.

저번 삶의 행적으로 볼 때 제자는 확실히 남색을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왜 갑자기 나한테 저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내가 남장을 하고 있어도 사실은 여자라 본능으로 끌리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난 삶엔 아주 가차 없이 죽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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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내가 죽은 뒤에…… 옷이라도 벗겨봤나?’

아니, 아니야. 그럴 리가. 제자는 자기 정적들을 제대로 장사지내지 않았다. 죽으면 구덩이에 시체를 넣고 묻어버리는 게 끝이었다. 적들을 마지막 가는 길까지 모욕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제자가 나에게만 특혜를 베풀어 제대로 시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히는 긴 절차를 밟아주었을 리 없었다. 제자가 가장 원망하는 대상이 나일 텐데. 말도 안 되지.

하물며 남들 시선을 피해서 나를 죽인 상황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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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회귀한 뒤에 마음이 바뀌었나?’

아니야. 이것도 말도 안 된다. 회귀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리고 그가 진담이 아니라는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장난치듯 말하는 제자의 눈동자였다. 말투와 달리 그의 눈동자는 아주 차갑기 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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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날 가지고 노는 건가?’

영문은 모르겠지만…… 일단 정석대로 대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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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놀랄 일입니다. 저는 사내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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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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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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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은 어차피 사내도 좋아하시잖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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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제자가 오늘 나를 제대로 가지고 놀려나 보구나. 술잔을 쥐다가 순간 너무 놀라서 제자에게 술을 부어버릴 뻔했다.

나는 술잔을 꽉 부여잡고서 제자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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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새끼…… 회귀 전에 내가 3황자를 연모한 일을 아나? 알고 저러는 거 같은데?’

나는 회귀 전에 3황자를 사모했다. 호되게 마음 앓이를 한 후에 결국 연정을 접어야 했지만, 이 시기의 나는 3황자를 아직 연모할 때였다.

제자는 그걸 알고서 일부러 조롱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게 이미 3황자에 대한 마음을 접은 나라는 걸 모를 테니까.

아니면 바람둥이 호색한으로 유명한 내게 저런 말을 할 이유가 없지 않나.

표정 관리할 자신이 없어져서 나는 일부러 술잔과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술을 마셨다. 그러나 부글부글 끓는 속에는 술을 부어도 소용없었다.

결국 술 마시기도 관두고 제자를 재차 보니, 내게는 술을 따라준 제자가 자기는 홀로 물을 마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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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마시며 꽃을 감상하자 하시더니. 전하께선 물만 드시는군요.”

그것조차 마음에 들지 않자 비꼬자, 제자는 물잔을 내려놓지도 않고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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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스승님께 술을 따라 드렸는데. 제자의 잔을 채워줄 사람은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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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신이 눈치가 없었습니다.”

나는 보란 듯 그의 술잔을 가져간 다음 넘치기 직전까지 술을 부어 내밀었다.

그러고서 주전자를 내려놓자 제자는 무표정하게 그 술잔을 가져다 한번에 입에 털어놓았다.

그는 분명 무표정한데. 내 눈엔 그가 날 비웃는 것처럼 여겨져서 괜히 더 성질이 났다.

이 상황도 짜증 나는데, 얼굴만큼은 한여름 꽃처럼 아름다운 제자의 용모에 부아가 더욱 치밀었다.

나는 일부러 그에게 술을 더 따라주었다. 취해버려라.

제자는 순순히 받아 마셨다. 그의 목울대가 느릿하게 움직였다.

나는 제자가 술잔을 내려놓자마자 또 술을 따라주었고, 제자는 이번에도 거절하지 않고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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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취하나?’

그러다가 또다시 우리의 눈이 마주쳤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제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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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정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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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나 더 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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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이 다 비기 전에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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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드시고 계시지요.”

어차피 날 놀리기 위해 한 제안이면서. 무슨 수를 써서든 내게 대답을 듣겠단 건가?

내가 그를 연모하겠다고 하면 날 모욕하거나 비웃고, 내가 그를 연모할 수 없다고 하면 무엄하다고 꾸짖기라도 할 참인가?

나는 속으로 이를 갈면서 능구렁이 같은 자식에게 또 술을 따라 주려다가, 마음을 바꾸어 이번에는 술잔 바닥만 조금 젖을 정도로 따라주었다.

제자는 이번에도 술을 한번에 털어 넣으려다가, 내가 쥐 오줌 정도로만 따른 술을 보고 손을 멈칫하더니, 픽 웃으며 나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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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뭔가요 스승님.”

천천히 생각하려고 수를 쓴 게 너무 티가 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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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천천히 마셔야 하는 겁니다.”

그래도 모른 척 근엄한 투로 대답하자, 제자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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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하시는 게 제자의 건강입니까, 거절 뒤 여파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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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다요.”

제자가 이번에는 안주로 튀긴 떡을 집어 먹는 걸 보자니, 회귀 전 일화가 떠올랐다.

맞아. 생각해보니 제자는 주량이 어마어마했다. 회귀 전, 제자가 갑자기 황위 다툼에서 위로 치고 올라갈 때 일이던가.

그와 8황녀가 술 내기를 한 적이 있었다. 이때 8황녀는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사망했는데 제자는 멀쩡했지.

당시 두 사람이 하루종일 술을 마셨다고 들었으니…… 하긴. 그런 주량이라면 내가 지금 따라주는 몇 잔 정도로는 안 취하겠네.

나는 힘없이 내 술잔을 집고서 술을 두어 모금 마셨다. 난 제자와 달리 말술이 아니니 적당히 마셔야지. 술 취해서 헛소리라도 하면 큰일 날라.

그러다 식도를 타고 싸한 기운이 내려가는 순간. 불현듯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제자가 나한테 자기를 연모해보라 하는 건 회귀 전 이 시기의 내가 3황자를 연모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지. 그래서 기분이 나빴는데. 생각해보니 이걸 이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제자는 남색가도 아니고 날 좋아하지도 않으니, 내가 자기를 짝사랑한다고 해서 내 마음을 받아줄 리가 없었다.

막상 내가 대놓고 자기를 연모한다고 말하면, 처음에만 좀 놀려먹고 비웃을 뿐. 나중에는 막상 자기가 귀찮아질 거다.

어쩌면 그 귀찮은 마음 탓에 날 향한 경계심까지 좀 잦아들지도 몰랐다.

바람둥이 흉내를 내던 내가 그에게 매달리면 좀 설정이 바뀌는 것 같긴 하지만…… 그거야 다른 사람의 시선이고. 제자는 내가 3황자 연모한 일도 아는 듯하잖아?

내가 13황자에게 반한 척 굴면, 13황자도 내가 회귀 전과 달리 행동하더라도 덜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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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나 천재인가? 생각해보니 아주 좋은 방법인데?’

좋아. 그렇게 하자.

단, 갑자기 3황자에서 13황자로 연모 대상을 바꾸면 수상쩍으니, 처음에는 양다리로 시작하다가 나중에 천천히 갈아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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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진짜 괜찮아. 나 정말 천재인가?’

나는 마음을 먹자마자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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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궁금하십니까?”

제자가 이제는 술을 혼자 따라 마시다가 손을 멈추고 나를 보았다. 자기가 내게 한 제안조차 까먹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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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이요. 연모에 대한.”

내가 얼른 짧게 설명해주자, 제자는 그제야 묘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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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말씀하시니 꼭 제자가 스승님께 연모한다고 먼저 청하고 답을 기다리던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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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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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대답해 주시기를 아직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자가 눈웃음을 지었다.

어딜 웃냐고, 그의 이마를 한 대 콩 때리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서 나는 침착하게 숨을 골랐다.

그러고서 일부러 바람둥이 행세를 할 때나 짓던 매력적인 표정을 지으며 밝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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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전하를 연모해보아도 괜찮을 거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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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말이 끝나자마자 제자의 눈웃음이 조금 흐려졌다. 자기가 먼저 제안한 일이면서. 내가 순순히 대답할 줄 몰랐던 듯했다. 제자가 생각한 내 대답은 거절이었나 보네.

그가 질색하는 듯해서 나는 일부러 한 번 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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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선 제가 본 모든 이들 중 가장 고우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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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술자리를 가진 이래 그가 처음으로 내 말에 진지하게 흔들리는 걸 보는구나. 아주 유쾌하다 못해 웃음이 나오려 한다.

그래도 웃음을 꾹 참고서 나는 미를 탐하는 호색한처럼 지껄여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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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께서 감상하자 하시는 저 겨울 국화보다 훨씬 청아하시지요. 하지만 존귀한 분이라 감히 마음에 품어 볼 수도 없는 분이신데. 이리 먼저 판을 깔아 주신다면야……”

뒤의 끝말을 생략하고 방긋 웃자, 나를 빤히 바라보던 제자가 “하.” 하고 짧게 한숨을 뱉었다.

그러더니 헛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터트리며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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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나오시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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