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75화>
공허를 보면서 애꿎은 흑색의 관리자를 탓하는 이그드라실.
성지한은 이에 확신을 가지고는, 청홍에 공허를 부여했다.
그리고, 재차 검격이 이그드라실에게 닿자.
치이이익……!
빛의 세계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성가시게 하는군요.]
스스스……
이그드라실은 공허의 일격을 얻어맞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재생을 했지만.
확실히 다른 공격을 가했을 때보다 재생 속도가 느려져 있었다.
‘공허가 우주수에겐 확실히 타격을 입히나 보군.’
이럼, 적극적으로 응용해야지.
성지한의 등 뒤로 태극이 떠오르고.
그는 오랜만에 암검 이클립스를 꺼내들어 그 안에 넣었다.
그리고 그가 거기서 손을 꺼내자.
슈우우욱……!
거대한 흑색의 검이, 그의 왼손에 쥐어졌다.
성지한보다 서너 배는 될 법한 크기의 태극마검.
공허의 정수가 담긴 그 검이 나타나자.
이그드라실이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흑색의 검까지…… 흑색의 관리자여. 공허의 주인이 이렇게 개입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입니다!]
그러자.
지이이잉…….
빛의 세계수 문양 위로.
거대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흑색의 관리자가 자신이 개입한 게 아니라고 분명하게 답합니다.]
말을 직접 하는 대신, 메시지창으로만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흑색의 관리자.
‘그래. 와서 방해만 했지.’
흑색이 이그드라실이 공허에 약하단 힌트를 본의 아니게 주긴 했지만.
어쨌거나 이놈은 기껏 와서 명계의 힘을 쓰지 말라고 경고나 날리지 않았던가.
그래도.
성지한은 굳이 상대의 오해를 고쳐 주진 않은 채.
태극마검을 본격적으로 운용했다.
검 끝이 한번 흔들리자.
치이이익……!
일제히 갈라지는, 우주수의 형상.
방금 전까지는 잘리는 그 즉시 달라붙었던 빛이었지만.
‘재생이 확실히 늦다. 아니…….’
태극마검의 공허에는 확실히 상대가 즉각적으로 재생하질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재생하는 와중에.
베인 단면에서 공허가 자발적으로 나타나.
쾅! 쾅!
강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건.
태극마검의 공허가 폭발을 일으킨 게 아니라.
이그드라실 자신이 지니고 있던 공허가 안에서 반응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그녀는 공허처리장이니 뭐니 하면서 공허 없애는 데 심혈을 기울였었지…….’
원형의 엘프, 울드가 지닌 막대한 공허를 처리하기 위해서인지.
세계수 연합은 공허를 처리하는 데 매번 진심이었다.
연합의 원로인 고엘프들도 죄다 반가면을 써서 공허를 처리하곤 했으니.
헌데.
원로뿐만이 아니라, 이그드라실마저도.
본체 안에 이렇게 공허가 많을 줄은 몰랐다.
‘울드의 공허를 그녀도 받아들인 건가.’
그리고 체내에 쌓인 공허가.
지금 태극마검에 베이면서 폭발 반응을 일으키는 거군.
‘이제 반격도 안 하네.’
치이이익…….
녹색 빛을 내뿜으면서, 성지한을 압박했던 이그드라실.
허나 공허에 베인 이후부터는, 재생도 쉽지 않은지 반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큿. 아니. 이게…… 개입하지 않은 거라구요?!]
[흑색의 관리자가 자신의 직을 걸고 확언합니다.]
흑색의 관리자에게 진짜 개입한 거 아니냐고 확인이나 할 뿐.
내부에서 반응하는 공허로 인해 이그드라실은 속수무책으로 밀리며.
거대했던 세계수 문양은.
툭……!
드디어 연결이 끊겨 나갔다.
‘결과적으론 흑색의 등장이 날 도와준 셈이 되었군……’
공허의 태극마검보다, 청홍이 위력은 훨씬 더 강해서 이걸 쓸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득을 보게 되네.
흑색의 관리자가 옆에서 경고한 걸, 이번엔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기로 한 성지한은.
본격적으로 끝을 보려 했다.
치이이익……!
일검에, 만 갈래로 갈라지는 우주수.
녹색의 빛이 재생을 위해 뿜어져 나왔지만.
[윽…… 공허가. 왜 하필, 이럴 때 반응해서……!]
갈라진 단면에 공허가 피어오르며.
세계수의 형상이 가닥가닥 끊겨 나갔다.
이대로만 가면.
확실히 끝을 낼 수 있다.
이그드라실과의 오랜 악연을, 이 자리에서 정리할 수 있다.
‘좋아……!’
성지한이 끝을 내기 위해 태극마검에 한층 공허를 더 불어넣을 때.
번쩍!
갈라진 세계수의 형상 위쪽에.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그드라실.”
거기서, 원형의 엘프.
울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 * *
[우, 울드님……? 여긴 위험합니다!]
위이이잉……!
다급한 이그드라실의 목소리와 함께.
황급히 울드를 감싸는 녹색의 빛.
이로 인해 우주수의 재생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아니. 울드…… 활동할 수 있었나?’
울드.
예전엔 관리자급의 존재라 하더라도.
지금은 무지갯빛의 나무에 보관되어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지 않았던가.
성지한과 접촉했을 때, 좀 회복했다곤 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자유롭게 다닐 수가 있었나?
“보다가 답답해서. 길을 알려 주러 왔어.”
[길…… 을요?]
“응.”
스윽.
울드는 성지한을 바라보았다.
“그는 인류를 위해 모습을 드러냈지. 그러면.”
지이이잉……!
사방에서 화면이 떠오르고.
인간의 대도시 위.
하늘에서 녹색 포탈이 열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연합의 군대가 지구를 침공하면 어떻게 될까?”
[아……]
“그가 아무리 관리자라고 한들, 조금 흔들리겠지?”
세계수 연합의 엘프 군단.
성지한이야 가볍게 제압했던 이들이지만.
인류가 상대하기엔, 너무 강대한 적이었다.
이들이 침공해 오면, 인류가 학살당할 건 불보듯 뻔한 노릇.
성지한의 표정이 딱딱히 굳었을 때.
스윽.
“어쩌면, 인간을 위해 후퇴할 수도 있고 말이야.”
울드는 그런 그를 보며 진하게 미소를 지었다.
‘얘도 만만찮네.’
이그드라실만 성가신 존재인 줄 알았더니.
울드도, 나타나자마자 바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성지한 보고, 인류를 지키기 위해 후퇴하라고.
연합의 군대를 저렇게 바로 대규모로 동원할 줄이야.
‘……이러면, 가야 하나.’
이그드라실, 이렇게 몰아붙이면 잡을 거 같았는데.
여기서 후퇴해야 하나?
이런 기회, 본체가 자기 별로 도망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텐데.
하나 세계수 엘프들이 침공해 오면 인류도 금방 학살을 당할 게 분명했다.
‘……돌아가더라도, 쟤는 잡아야겠다.’
세계수 엘프를 침공시켜서 단번에 상황을 뒤집은 울드.
이 여자, 약한 상태인 지금 제압해야 했다.
성지한은 양 손에 태극마검과 청홍을 들어.
파아아앗!
이그드라실이 보호하고 있는 울드에게 맹공을 퍼부었다.
[아. 안 돼! 울드님만은……!]
위이이잉……!
울드를 감싼 녹색 빛이 강해지며, 성지한의 공격이 몇 번이고 막혔지만.
‘울드는 지금 처리해야 한다.’
성지한 쪽도 필사적이었다.
상대는 지금이 가장 약하다.
여기서 처리하지 않으면, 백 퍼센트 후환이 된다.
파아앗!
태극마검과 청홍이 교차하며, 녹색의 빛을 강타하고.
치이이익……!
안에서 보호받던 울드의 몸뚱아리가, 폭발했다.
[아. 아……! 안 돼. 울드님……!]
울드가 터져나가자, 절규하는 이그드라실.
자신의 몸이 몇백 번이고 베였다 재생할 때만 해도, 고통을 호소하지 않은 그녀였지만.
울드가 자신의 보호막 안에서 폭발하자, 그녀는 미쳐가고 있었다.
‘……이그드라실까지 빨리 끝내고, 지구로 가자. 저 상태라면, 오래 못 버텨.’
성지한이 그런 우주수를 보며 태극마검을 재차 휘두르려 할 때.
번쩍……!
허공에 새하얀 빛무리가 터지더니.
째깍. 째깍.
백색 빛의 시계가 나타나며 초침이 거꾸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슈우우욱…….
멀쩡한 울드가 거기서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
양손을 모으면서 신기하단 표정으로 성지한을 바라보는 울드.
“공허는 그렇다 쳐도, 그 붉고 푸른 검은…… 참 신기하네요?”
“너…… 그 상태에서 살았나.”
“네. 새로운 힘을 접했는데, 쉽게 죽을 순 없죠.”
[아. 다. 다행입니다…… 역시 울드님……!]
울드의 생존에, 안도하는 이그드라실.
그녀는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성지한에게 말했다.
[청색의 관리자. 지구인들이 학살당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생각인가요? 돌아가시죠. 특별히 방해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요~ 여기 봐봐요. 죄 없는 일반인들도 학살당할 텐데, 인류의 수호자께서 이를 두고 보실 생각인가요? 저희같은 연약한 존재야 언제든 잡을 수 있잖아요?”
지잉. 지잉.
화면을 여러 개 더 띄우면서, 엘프 군단이 소환되는 모습을 클로즈업하는 울드.
이그드라실과 울드가 쌍으로 이렇게 도발하니.
‘아오. 이것들이 진짜.’
성지한은 오랜만에 혈압이 머리끝까지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이그드라실 한 놈만 이래도 짜증나는데.
더한 여자가 나타났네.
‘하아…… 어쩔 수 없나.’
성지한의 맹공에도, 너무나도 손쉽게 되살아 난 울드.
시계가 역으로 되돌아가면서 살아난 걸 보면, 시간역행인가 싶긴 했지만.
눈으로 보이는 것만 그랬기에, 실제로 그녀가 어떻게 부활했는진 명확히 규명된 바가 없었다.
여기서 저들과 싸우다가 시간이 너무 지체되면 세계수 엘프 군단에 의해 인류가 멸종당할 수도 있을 테니.
‘……가야겠군.’
성지한은 아쉬움을 삼킨 채, 귀환하려 했다.
그때.
지이이잉…….
성지한의 눈앞으로, 메시지가 하나 떠올랐다.
[삼촌! 삼촌! 저거 가짜야! 저 여자가 만들어 낸 환상이라고!]
“뭐?”
[지구엔 아직 엘프 소환 안 됐어!]
어떻게 여기 상황을 알았는지.
공허의 메신저를 통해서 전해 온 윤세아의 메시지.
성지한은 그걸 보곤 두 눈을 크게 떴다.
울드가 보여 주었던 화면.
그게 다, 거짓이었던 건가?
‘날 지구로 귀환시키려고, 환상을 만들어 낸 건가.’
애는, 여기서 꼭 죽여야 할 상대다.
성지한은 돌아가는 척, 포탈을 열었다가.
무극멸신武極滅神
태극마검太極魔劍
검흔劍痕
공허의 마검으로, 가장 강력한 무공를 발현했다.
치이이익……!
녹색의 배리어와 함께, 반으로 뚝 갈리는 울드.
째깍. 째깍…….
빛의 시계는 다시 튀어나와 시침을 거꾸로 돌렸지만.
“……어머.”
되살아난 울드는.
여전히 반으로 갈라진 상태였다.
“검의 흔적. 시계를 돌려도 계속 남는군요…….”
툭. 툭.
양손으로 얼굴을 밀어서.
갈라진 몸을 붙이려던 울드는.
몸이 붙을 생각을 하지 않자 해맑게 웃었다.
“어머. 이건 좀…… 곤란하네?”
[우, 울드님…… 죄송합니다. 제가 막질 못해서……]
“아니야. 네가 공허에 약한 건, 어쩔 수 없어. 내 탓이 크니까.”
탁. 탁.
몇 번이고 머리를 붙여보려다가 포기한 울드는.
성지한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인류는 잘도 포기하셨네요? 그들을 포기하고 절 공격한 선택. 칭찬해 드리죠.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셨으니.”
“인류 타령은 그만하지? 저게 환상임은 이미 드러났으니.”
“……환상요?”
울드는 자신이 띄운 화면을 바라보다.
갈라진 얼굴 양쪽으로 짙게 미소를 지었다.
“어머. 재밌어라…… 이래서야 죽을 수가 없잖아요?”
‘재밌다고?’
블러핑이 밝혀졌는데도 저런 반응이라니.
성지한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끼며, 재차 그녀를 제거하기 위해 검을 들었지만.
몸이 베이기도 전에 빛의 시계가 떠오르더니.
째각. 째각…….
검흔의 궤적이, 울드를 맞추지 못하고 계속 휘어졌다.
‘이 시계. 대체 뭐야……?!’
성지한의 공격이 그렇게 막히고 있을 즈음.
“이그드라실.”
울드는 무릎을 꿇어 자신을 감싼 초록색 빛을 쓰다듬었다.
“난 항상 널 자식처럼 생각했어. 자식 중에서도…… 넌 내게 가장 자랑스러운 아이였지.”
[우, 울드님……! 저도. 감히 말씀은 드리지 못했지만, 언제나 어머니로 섬겼습니다……]
“후후. 우리, 마음이 통했네? 그럼……”
울드의 미소가 자애로운 빛을 띄었다.
“내가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 대해서 말한 거. 혹시 기억나?”
[네…… 자식은, 부모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하셨죠?]
자식이 부모를 위해 살아?
원래는…… 반대 아니었던가?
“아이. 착해라. 잘 기억하고 있네.”
우주수의 빛을 찬찬히 쓰다듬는 울드.
스스스…….
그런 그녀의 손에.
보랏빛의 문양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배운 거…… 실행에 옮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