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71화>
이그드라실의 이름이, 왜 이그드라실이냐니.
‘그건 그냥 배틀넷의 자동 번역인 줄 알았는데. 인류의 세계수 이미지에 가장 부합하는 이름과 연결된 거 아니었나?’
저 이름은, 세계수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이었으니까.
성지한은 당연히 배틀넷이 외계의 언어를 자동 번역하는 과정에서, 세계수 연합의 수장 이름도 이그드라실이라고 불리는 줄 알았다.
[아니, 본명이 맞다.]
‘흠…… 그래? 우연의 일치인가. 그럼.’
[우연의 일치라…… 원형의 엘프가 울드인 것도 그럼 우연인가?]
그건 이상하군.
이그드라실 건만 있다면야,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울드까지 나온 이상, 뭔가 연관성이 있다고 보는 게 맞았다.
‘울드나 이그드라실, 원래는 지구 출신이었나.’
[이그드라실은 확실히 아니다. 그 엘프는 모르겠다만.]
‘흠…….’
일단 지구 출신도 아니라고 치면.
왜 이름이 같지?
‘……전혀 모르겠군. 네 생각은 뭐지?’
성지한의 물음에, 적색의 관리자는 옅게 웃었다.
[후후…… 나도 아는 건 이게 전부다. 이 현상을 규명하기엔, 아직 정보가 너무 없지.]
‘정보라…… 애초에 울드란 이름은 어디서 알아낸 건데?’
[백색의 관리자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알아냈다.]
거긴 또 언제 털었대.
재주도 좋아.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적색의 관리자가 말을 이었다.
[그 안에 울드에 대한 정보는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암호화되어 있어서 이름밖엔 알아내지 못했다. 스탯 ‘백광’이 있었다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겠지.]
‘백광이 그런데 쓸모가 있었나?’
[극비자료의 암호화를 해제하는 데에는, 필수적으로 필요하더군.]
울드에 대한 정보를 더 얻기 위해선, 결국 백광 스탯을 얻어야 한다는 건가.
이거야, 뭐 적색의 관리자 계정으로 배틀튜브에 접속하면 바로 얻을 수 있었지만.
‘울드에 대한 정보를 더 입수하겠다고, 백광을 얻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같은데.’
스탯 백광.
백색의 관리자가 가져가라고 마구 시스템창을 띄워놓은 그 능력은.
누가 봐도, 수상쩍기 그지없었다.
특히 지금처럼 이그드라실의 내부에 잠입해, 청을 탈취하려는 상황에서는.
괜히 그런 능력 추가했다가, 뭔 문제가 생길지도 몰랐다.
[후후…… 당연히 당장 얻으라는 게 아니다. 지금은 이그드라실을 토벌하는 데 전력을 다해야 할 테니. 백광과 같은 변수는 없는 게 좋겠지. 이그드라실 토벌이 끝나고, 이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아라.]
‘그래. 지금은 당면한 문제가 먼저니까.’
울드와 이그드라실의 이름이 인류의 신화와 겹치는 건, 확실히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그보다는 청의 탈취가 먼저다.
그리고.
‘이그드라실이 죽으면 울드의 생명유지도 끝날 테니. 뒷사정 따위 알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우주수를 확실히 없애버리면, 이번 의문점은 그냥 풀지 않고 지나가도 되겠지.
이 세상에 미스테리가 얼마나 많은데, 뭐 죄다 밝힐 필요 있겠어?
‘이그드라실만 확실하게 제압하면, 울드랑 엮일 일도 없겠지…….’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김지훈의 몸으로 길드에서 나와 집에 들어섰다.
삑. 삑.
그리고 그가 문을 열려는 찰나.
“아. 오셨어요? 오늘은 빨리 끝났네요?”
안에서 문이 열리더니, 윤세아가 그를 마중 나왔다.
이젠 완전 자기 집이네.
“그럼, 바로 작업 시작할까요?”
윤세아가 그러면서 침대를 가리키자, 김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에 적합도를 1%씩 올려주는 윤세아의 ‘작업’.
오늘도 어김없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 *
[플레이어 김지훈의 적합도, 40%를 돌파했습니다.]
“40%…… 참 순조롭네.”
세계수 연합의 총독부 안.
총독의 몸에 강림해 있던 이그드라실은, 김지훈의 적합도를 보고 받으면서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이젠 적색이 좀, 나와줬으면 싶은데 말이야…….”
저번 테러를 마지막으로,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적색의 관리자.
이그드라실은 이제 슬슬, 그가 나타나지 않는 게 걱정되기 시작했다.
적색의 관리자를 붙잡아야, ‘그녀’를 치료할 수 있는데.
이러다간 청을 다 흡수해도, 사냥감이 사라져서 일을 그르치게 생겼다.
“적색의 관리자 탐색에는 진척이 있어?”
“다방면으로 조사 중입니다만, 아직은 큰 진척이 없습니다.”
“그래…….”
하루가 멀다하고 연합 행성에 테러올 땐 언제고.
이젠 왜 이렇게 얌전한 건가.
이그드라실이 굳은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때.
“우주수시여. 본성에서, 뿌리의 연결을 해제했다고 합니다.”
“이제야 끝났구나.”
고엘프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이그드라실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럼, 지금 바로 강림을 진행하시는 것인지요……?”
“강림. 말이지.”
이그드라실은 그 질문에, 아까 보았던 적합도 40% 보고서를 떠올렸다.
“일이 너무 순조로워서, 이젠 굳이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그, 그렇습니까?”
“그래. 청의 회수는 김지훈을 통해 끝이 날 테니까.”
미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김지훈의 청검.
청이 다 모이는 때엔, 아마 적합도가 50%에 도달하지 않을까 예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쯤 되면, 굳이 이그드라실이 강림하지 않더라도.
인류의 청을 수거하는 건 손 쉬웠으니.
“강림에 힘을 쏟는 대신, 적색의 관리자를 본격적으로 탐색하는 게 낫겠어.”
“그럼…… 본성과 뿌리를 다시 연결할까요?”
“그래…….”
이그드라실이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 할 때.
번쩍……!
그녀의 눈앞에서, 영롱한 빛무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거기서 곧 무지갯빛으로 번뜩이는 나무가 나타나자.
“일단은, 모두 중지시켜. 갔다 올 곳이 있으니까.”
“아. 알겠습니다!”
이그드라실은 모든 업무를 중지시키고.
나무 문양을 만졌다.
그러자.
총독 미아의 머리색이 변하며, 그녀의 기세가 눈에 띄게 약해졌다.
“……그분께서 가셨습니다.”
“그래. 알았다.”
강림된 상태에서 해제된 총독을 보곤, 고엘프가 고개를 끄덕일 즈음.
슈우우우……!
이그드라실은 나무 문양을 거쳐서, 의식을 이동했다.
그렇게 해서 그녀가 도착한 곳은.
“……울드님.”
원형의 엘프, ‘울드’가 있는 장소.
무지갯빛의 나무 안에서, 생명을 겨우 유지 중인 그녀는.
적색의 관리자가 테러를 가했을 때를 제외하곤.
의식을 찾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역시, 잘못된 신호였나.”
울드를 담은 나무를 지켜보던 이그드라실은.
그래서 이번의 일도 신호가 잘못된 건 줄 알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적색의 관리자 때문에 몸이 많이 상했는데 어떻게 여기서 신호를 보낼 수가 있겠어.
그녀가 그렇게 실망한 기색으로 등을 돌렸을 때.
[잘못되지, 않았단다.]
나무 안에서 울드의 음성이 은은하게 울려퍼졌다.
“우, 울드님……?”
이그드라실이 두 눈을 부릅뜨자.
[오랜만, 이네. 이그드라실.]
울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그드라실의 이름을 불렀다.
“어. 어떻게……!”
[적색의 관리자……였었니? 저번의 침략자.]
“네. 네. 맞습니다. 그놈이……!”
[그의 힘이, 나를 치유했어.]
이그드라실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울드의 몸이 회복되는 걸 보고, 적색의 관리자를 붙잡아야겠다고 마음먹긴 했지만.
그녀가 이렇게 의식을 찾을 정도로 효과가 좋을 줄은 몰랐다.
[……저기. 이그드라실. 나 부탁 좀 해도…… 괜찮을까?]
“울드님은 저한테 부탁할 필요가 없으신 분입니다. 명령하세요. 뭐든지 할 테니까.”
[나 말이지. 사실, 오래전부터 죽음을 각오했거든. 이 공허는, 절대 이겨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근데……]
울드의 목소리가, 살짝 잠겼다.
[적색의 관리자 때문에, 희망이 생기니까 말이지. 염치없지만, 나. 좀…… 더 살아보고 싶어졌어.]
“당연히 그래야죠. 울드님. 저만 믿으세요. 제가 적색의 관리자를 잡아서, 당장 끌고 올 테니까……!”
생의 의지를 내보이는 울드를 보며, 이그드라실의 얼굴은 기쁨에 벅차 있었다.
오랜 세월, 그토록 바라던 일이.
이제 이루어지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그럼…… 부탁 좀, 해도 되겠니?]
“뭐든 하겠어요. 말씀만 하세요.”
이그드라실의 대답에.
번쩍……!
울드의 눈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나왔다.
[적색의 관리자…… 지구에 있는 것 같아.]
“그가…… 지구에 있다구요?”
울드의 말에 놀란 눈으로 생각에 잠기는 이그드라실.
“……지구는 완전히 장악한 줄 알았는데, 잘도 기척을 숨겼네. 적색의 관리자. 어쩐지, 청검의 양산도 바로 알아채고 기습을 했었지…… 지구에 있을 가능성도 고려했지만, 탐색 결과 나오는 게 없었습니다. 하지만 울드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지구에 있는 게 맞겠죠…….”
그녀는 직접 탐색 작업을 진행한 세계수 연합보다.
나무 안에서 눈만 번뜩인 울드의 말을 더 신뢰하고 있었다.
[응. 네가 직접 살피지 않으면, 그를 잡는 건 힘들 거야. 그러니 네가 직접 그곳에 강림할 수 있겠니……?]
조금 전 철회하려던 본체 강림이었지만.
울드가 직접 부탁해오자, 이그드라실은 이를 바로 받아들였다.
“네. 그렇게 할게요. 직접 강림해서, 제가 다 뒤져볼 게요.”
지이이잉…….
무지개빛의 문양이 허공에 떠오르고.
“뿌리 연결, 해제한 채로 놔둬. 오늘 지구에 본체로 뿌리내릴 거니까.”
[오, 오늘 말씀이십니까? 그…… 오늘 바로는……]
“바로 할 거니까 그렇게 알고 준비해.”
이그드라실은 원로들에게 지금 당장 지구에 강림할 거라고 지시를 내렸다.
“적색의 관리자…… 그가 쓰던 몸은 청색의 관리자의 것이었습니다. 그걸 생각해보면 아마 인류의 몸속에 숨어있을 거 같은데…….”
[청색의 관리자?]
“네. 인류 출신의 관리자예요. 적색에게 장악당했지만, 나름 능력은 있었죠.”
[인류 출신의, 관리자…… 라. 그런 사람이 있었구나. 청색이라……]
그 말에, 울드가 청색을 되뇔 무렵.
“울드님. 그럼 강림 이후, 어떻게 해야 적색의 관리자를 잘 찾을 수 있을까요? 예전처럼, 제게 길을 알려 주셨으면 해요.”
이그드라실이 그녀에게 적색을 찾을 방법을 물어보았다.
[그는 분명, 인류의 몸속에 숨어 있다고 하지 않았니?]
“맞아요.”
[그럼, 숨을 장소를 모두 없애면…… 되지 않을까?]
“그러네요. 숨을 곳…… 인류를 다 터뜨리면 되겠네요!”
이그드라실이 해맑게 말하자.
[맞아.]
울드는 미소를 지으며 이에 동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