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66화>
깨져 나가는 그릇.
그와 함께, 길가메시의 머리가 비추는 내부의 세계가 부서져 내리자.
성지한에게 금이 간 그릇이 저절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기프트 - 청색의 대기’가 SS급으로 업그레이드 됩니다.]
[스탯 청의 상한선이 300 오릅니다.]
그릇의 모습이 반쯤 사라지자, 업그레이드되는 청색의 대기.
스탯 청은 상한에 따라 자동으로 1549까지 올라갔다.
‘적도 1100까지는 운용할 수 있겠군.’
대폭 늘어난 스탯의 상한치를 점검하며, 성지한은 계속 그릇을 부수어 나갔다.
그리고 곧.
청색의 대기 안쪽, 세계수 문양이 그려진 파편을 제외하고는.
그릇이 전부 파괴되었다.
‘역시 SSS급은 무리네.’
만약 저 시뮬레이션을 계속 내버려 뒀으면, SSS급까지 오를 수 있을지도 몰랐지만.
그걸 성취하겠다고, 길가메시의 재구성 시뮬레이션을 계속 돌리게 내버려 두는 건.
세계수 연합 놈들이랑 똑같아지는 꼴이겠지.
“내부, 아직도 보이나?”
성지한은 그릇이 부서지고 난 후, 따로 떨어진 길가메시의 머리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연결이 되어 있다. 내부엔, 이제 세계수만 남았다…….”
“이제 부숴야지. 저놈. 죽겠단 생각은 아직도 확고한가?”
“……그래. 전혀 흔들림이 없다.”
“알았다.”
지이이잉…….
성지한의 등 뒤로, 청홍이 떠오르고.
그는 검으로 남은 그릇의 파편을 깔끔하게 꿰뚫었다.
그러자.
[‘B급 세계수’가 명계에 흡수됩니다.]
[청에 의해, 세계수의 흡수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스탯 적이 200 오릅니다.]
세계수가 흡수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스탯 적이 차올랐다.
그와 동시에, 길가메시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고.
화면이 완전히 꺼졌다.
“…….”
넋이 나간 표정을 한, 길가메시의 머리.
성지한은 그에게 물었다.
“상황은.”
“……고맙다. 아들아. 라고 유언을 남기고 소멸했다.”
“하. 죽을 때도 그 소리군.”
아들 소리는 진짜 평생 하네.
성지한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곤, 머리에게 물었다.
“그래서 넌. 어쩔 거냐?”
“나? 왜…… 서, 설마 안 죽일 건가?”
성지한은 그 말에, 길가메시의 머리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길가메시의 파편에서 튀어나온 복제품.
깔끔하게 길가메시를 정리하려면, 이 머리도 여기서 없애버리는 게 낫겠지만.
“평생 지구에 안 온다고 맹세하면 살려는 주지.”
그는 단서 조항을 단 채, 머리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지구에 오지 말란 말인가……?”
“아. 그래. 죽은 별에서 100년 정도 머무는 것도 포함해야겠다.”
“거기에 그 언데드만 득실득실한 별에 있으라고?”
“그래. 너한테도 나쁜 제안은 아닐 거다. 몸을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그건 그렇다만.”
“그 이후엔 자유롭게 풀어주지. 배틀넷 세계는 넓으니, 지구 말고도 정착할 수 있는 곳은 많을 거다.”
성지한의 약속에, 길가메시의 머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난 안 죽이지?”
“글쎄…….”
본체는 예전에 죽었고.
해저에 떨어진 살점으로 복구시킨, 그릇이 될 길가메시도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건, 거기서 또 떨어져 나간 파편뿐.
길가메시가 죽여 달라는 걸 보고 나니, 성지한은 굳이 그의 파편까지 잡고 싶지는 않았다.
“단순한 변덕이다. 그래서. 살겠나?”
“……당연하지.”
성지한의 제안에, 길가메시의 머리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단순한 변덕이든,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든.
그의 입장에선,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었다.
‘살아만 있다면…… 기회는 온다.’
예전 본체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파편.
그래도 다른 점이라면.
‘지구고 인류고, 풀려나면 그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말아야지…….’
예전의 길가메시와는 달리, 그에겐 지구나 인류에 대한 통치욕이 전혀 존재하질 않았다.
거긴 이미, 청색과 녹색의 관리자가 다투려는 지옥의 땅.
그 마굴로 굳이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1도 없었다.
‘새 땅에서, 새로 시작해야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자.”
지이이잉…….
성지한이 연 포탈에, 같이 딸려 들어갔다.
* * *
세계수 연합의 원로원회.
“…….”
“…….”
1천에 달하는 고엘프가 착석한, 거대한 원로원 회장 안에는.
싸늘한 적막이 감돌고 있었다.
고엘프들은 모두들 눈동자를 굴리며, 회장의 상석 자리를 살폈다.
긴급 회의를 소집한, 당사자 이그드라실이.
원로들을 불러모으고는, 정작 본인은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다.
[오늘 소집된 거…….]
[아무래도, 적색의 관리가 올린 영상 때문이겠지요?]
[원로께서도 보셨습니까?]
[예…… 충격적이더군요.]
하나 고엘프들은 겉으로는 조용히 있어도.
이면에서는, 배틀넷의 시스템을 활용해서 서로 소통을 하고 있었다.
[그분은 대체 누굽니까?]
[글쎄요. 저도 선조의 기록을 뒤져 보았는데 그분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양산형 엘프들의 원형인 것 같은데. 허 참. 그렇게 중요한 분이면, 왜 그런 분을 본 따서 양산을 한 건지 모르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그분을 무척 소중히 여기시는 것 같은데, 잡일이나 하며 소모되는 양산형 엘프에게 그 모습을 물려주시다니…….]
고엘프와 다른 엘프의 차별점이라면 역시 생김새.
고엘프들은 귀 큰 것을 제외하면, 각기 다른 얼굴을 지녔으나.
하위 엘프들은 모두 하나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로들은 그 통일성 있는 외모를 보고 ‘진짜 엘프’와는 다르다며.
저들은 그저 연합의 부속품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있었다.
물론 이그드라실도 이 ‘엘프’와 비슷하게 생기긴 했지만.
그녀는 생명의 기운이 충만한 녹색 머리칼로, 차별이 되어 있었으니까.
그렇게 겉으로는 말없이, 고엘프들이 서로 메시지만 보내고 있을 때.
툭.
“늦었네.”
원로원의 상석에, 이그드라실이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그녀는 좌중을 쓱 훑어보았다.
“너희, 봤니?”
“…….”
“영상 봤냐고. 적색의 관리자 채널에서, 나 나오는 거.”
그러면서 이그드라실이 서늘한 눈으로 좌중을 훑어보자.
고엘프들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흐음. 그래서? 그거 보고, 궁금한 점은 없고?”
의문이 있다면 알려 줄 뉘앙스로 말하는 이그드라실.
하나, 원로들은 그녀가 내뿜는 생명의 기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하게 치솟는 걸 알아챘다.
여기서 대답을 잘못했다간, 어떻게 될지 뻔히 보이는 노릇.
상석의 근처에 있던, 원로 엘프 중 하나가 벌떡 일어나 말했다.
“저희는 그저, 우주수께서 하시는 일에 복종할 뿐입니다. 의문 따위는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그래? 너희 부의장 잘 뽑았네.”
이그드라실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덕에 본보기 삼을 원로가 없겠어.”
본보기라니.
아까 궁금한 점 없다고 했을 때, 그 분 혹시 누구시냐고 물었으면.
죽을 수도 있었던 건가.
고엘프들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부의장에게 감사의 눈빛을 보내고 있을 즈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적색의 관리자, 생포할 거야.”
“생포…… 입니까?”
“어. 원래는 시체 한 조각 안 남기려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이그드라실은 그러며 방금전의 일을 떠올렸다.
적색의 관리자에게 인질이 되어서, 목이 그을리는 등 험한 꼴을 당했던 ‘원형의 엘프’.
그녀가 처한 상황 상, 그런 상처를 입었다면 재생은 불가능했다.
헌데.
‘……오히려, 예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졌지.’
대체 적색의 관리자가 뭘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오히려 상태가 예전보다 나아 있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를 유지하려면, 막대한 생명의 기운을 부여하고 공허를 빼내야 하는 건 똑같았지만.
이에 드는 비용이, 예전에 비해 5% 정도 덜해졌다.
사실 밖에 끌려 나와 상태가 안 좋아진 걸 감안한 상태에서, 예전보다 비용이 줄어든 거면.
실상은 5%보다 훨씬 더 효과가 있다고 봐야 했다.
‘적색의 관리자……. 아니면 그가 쓰고 있는 육체, 성지한에게 뭔가가 있는 거다.’
대체 뭐 때문에, 저런 반응이 나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그드라실은 ‘원형의 엘프’의 호전을 보고는, 적색의 관리자를 꼭 붙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생포하는 일은, 죽이는 것보다 훨씬 힘들 겁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야.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아니, 지금 적색의 관리자 쳐들어 오는 거 막는 거도 힘든데 어떻게 잡으라고.
고엘프들은 이그드라실의 요구에 눈앞이 깜깜해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하라면 해야지 별 수 없었다.
“그러려면 일단 청검의 전력을 완성해야 하니까. 오늘부터 내가 지구에 직접 내려가 감독을 하지.”
“오, 오늘부터 말씀이십니까……?”
“그래. 이제 모든 프로젝트를 멈추고, 여기에만 매진한다.”
청검 백만 자루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충분히 매진하고 있는 편인데.
여기서 더 나아간다니.
‘연합이 운영하는 기존 사업은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여기서 자원을 더 투자한다고, 효율이 막 나아질 거 같지도 않은데…….’
원로들이 극단적으로 나아가는 이그드라실을 보며,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때.
“그리고.”
지이이잉…….
이그드라실이 손가락을 펼치자.
그녀의 손 위로, 청검이 두 자루 나타났다.
원래는 빛이 잘 뭉쳐 있어야 할 청색의 광검은.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었다.
‘저. 저 검…….’
‘적색의 관리자를 베려다가, 스스로 멈췄던 검인가.’
영상의 마지막 순간.
거의 통할 뻔했던 이그드라실의 기습 공격을, 스스로 멈춰서 망친 쌍검.
원로들은 구멍이 숭숭 나 있는 청검을 보며, 등에 식은땀을 흘렸다.
여기서 이검을 꺼낸다는 건…….
“이거 추천한 원로. 누구지?”
“저, 저입니다…….”
“아. 부의장. 너였구나.”
아까 이그드라실에게 칭찬을 들었던 부의장이, 공교롭게 또 일어나자.
그녀는 입꼬리를 올렸다.
“아쉽네. 너, 유능한 아이였는데.”
“그…….”
“그래도 이런 검을 추천한, 책임은 져야지.”
스스스…….
부의장의 얼굴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는 꽃봉오리.
거기서, 무지개빛이 일렁이자.
“으…… 아…….!”
부의장의 몸이 순식간에 그 안으로 빨려들어가더니.
툭…….
얼굴에 쓰던 반가면 하나만 남긴 채로, 완전히 소멸되었다.
이그드라실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휙!
쌍검을 원로원 회장 중앙에 내던졌다.
“그럼, 다음 부의장.”
“네. 네!”
“이 검. 대체 왜 그랬는지 알아 와.”
“아. 알겠습니다……!”
졸지에 부의장이 된 고엘프가 황급히 검을 회수하자.
이그드라실은 쌍검 쪽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리고 네가 책임지고, 다른 쓸 만한 검, 찾아오고.”
“예. 예…….!”
스스스…….
그 말을 끝으로, 이그드라실이 사라지자.
고엘프들은 말 없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원로원 부의장.
우주수께 직접 유능하다는 평을 들으며, 역대 부의장 중 최장기간을 지내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줄이야.
‘이번 일…….’
‘무조건, 성공해야 한다.’
부의장도 손쉽게 갈아치울 정도면, 여기 있는 원로들은 더 파리 목숨.
원로들의 두 눈엔 강렬한 위기의식이 맴돌았다.
* * *
한편.
‘길가메시의 파편을 찾으러 갔다가, 일이 엄청 커졌군 그래.’
지구의 김지훈 몸으로 돌아온 성지한은, 이번의 원정에 대해 생각했다.
원래의 목적은 인질극으로 초과 달성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보았던 ‘인질’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
백색의 관리자도 알 정도면, 뭔가 심상치 않은 인물인 건 확실한데 말이지.
‘야. 뭐 나온 거 없냐?’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시간 좀 걸릴 거 같나 보지?’
[아마도. 나온 게 있으면 바로 알려 줄 테니 기다려라.]
‘알겠어.’
아무리 적색이라도 조사가 쉽진 않나 보네.
성지한은 그의 대답을 듣곤, 일단은 지구의 상황을 살피기로 마음먹었다.
일단은.
‘가볍게 뉴스부터 볼까.’
그는 스마트폰을 들어, 뉴스를 검색했다.
그러자.
[검왕 윤세진. 신기록 달성!]
[적합도 35% 돌파!]
윤세진이 신기록을 달성했다는 뉴스가 각종 언론사의 헤드라인에 자리하고 있었다.
‘역시 검왕의 것이었나. 그거.’
쌍검.
꽤나 위협적이긴 했지.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면서, 자세한 내용을 보기 위해 헤드라인을 눌러보자.
[삭제된 기사입니다.]
갑자기 기사가 삭제되었다는 내용이 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모든 언론사에서.
헤드라인을 달성했던 검왕의 기사가, 실시간으로 다 삭제되고 있었다.
‘음……?’
갑자기 왜 이런대?
성지한이 그렇게 의아해할 때.
[총독부의 긴급 속보입니다.]
뉴스 페이지가, 일제히 총독부 발 속보를 다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