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60화>
적합도 23퍼센트.
현재 김지훈의 청검이 지니고 있는 적합도 수치는 바로 이 정도였다.
‘랭킹 1위가 25퍼센트라고 했지.’
1위와는 2퍼센트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김지훈의 청검.
이제는 슬슬, 그 자리를 빼앗아도 되겠지.
‘일단은 30퍼센트를 목표로, 하루에 1퍼센트씩 올려야겠군.’
인류의 수명도 1년밖에 안 남았으니, 이제는 스퍼트를 내야 할 때.
성지한은 오늘의 성장도 목표치를 1퍼센트를 잡았다.
‘그리고 올리는 거야, 손쉽지.’
적합도 1퍼센트 정도야, 성지한 입장에서는 천천히 올리는 게 더 어려운 일.
그는 힘을 최대한 조절하면서, 김지훈의 검에 스탯 청을 불어넣었다.
지이이잉…….
검에서 푸른빛이 번뜩인다 싶더니, 금방 적합도가 오르는 청검.
‘속도 최대한 조절한다고 했는데, 스탯이 올라서 예상보다 빨리 업그레이드되겠군.’
길가메시의 파편을 통해, 청색의 대기가 발전한 후.
스탯 청을 검에 부여하는 건, 더 손쉬운 일이 되었다.
“아니, 이 청검…… 또 빛이 났습니다!”
“벌써 또, 성장했나?”
“이러다가 금방 ‘성지한’의 이름을 받겠군…….”
청검을 통해 오늘의 작업을 하려던 고엘프들이 이를 보고 화들짝 놀랄 때.
“어. 이 검도…… 조금이지만 빛이 번뜩입니다.”
다른 청검을 들고 있던 고엘프도, 자신의 검을 들어 보였다.
‘정말이네?’
김지훈 말고도, 검이 성장할 수가 있다니.
성지한은 이를 알아보기 위해, 검 안에서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확실히, 김지훈처럼 확 오르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청을 더 품기 시작하는 다른 청검.
그리고 이건, 그 검만 그런 게 아니었다.
“이 청검도, 자극을 받은 것 같은데?”
“이그드라실께서 축복을 내려서 그런가…… 고위 청검은 모두가 다 성장하고 있다.”
“이종친화 기프트가 성장한 게, 연관성이 있는 건가?”
“이거…… 고무적인 결과군요.”
이그드라실의 축복으로 인해, 기존의 남자 하프 엘프가 받은 혜택이라곤 ‘이종친화’ 기프트 등급이 상승한 것뿐.
이는 이미 종족 변환한 이들에겐 별 혜택도 없고, 오히려 남자 하프 엘프 경쟁자만 늘어나는 상황이었는데.
어째, 예상치 못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이종친화의 등급은 하프 엘프가 될 성공률만 높여 줄 뿐. 적합도와는 큰 상관 없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신기하군.’
성지한은 김지훈의 주변에 꽂힌 청검을 모두 살펴보았다.
확실히, 지금까지와는 달리 성장할 여지가 생긴 이들.
다만, 올라간다 해 봤자 대부분이 0.3, 0.4퍼센트 정도에서 제한되고.
1퍼센트까지 성장할 검은 없어 보였다.
‘이거, 조금 도와줘야겠네.’
청검의 성장에 있어선, 이그드라실과 이해관계가 비슷한 성지한.
지금까지는 성장하는 검이 김지훈밖에 없어서 다른 검을 막 성장시키기가 애매했지만.
이런 케이스라면 다르지.
스스스…….
그는 청을 은밀하게 운용하여, 주변 청검들의 성장을 돕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그러자, 주변 청검에서 일제히 푸른빛이 번쩍이면서.
검의 적합도가 일제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역시 우주수의 축복……!”
“이그드라실께서는 역시 위대하십니다.”
“혹시, 김지훈의 청검처럼 이들도 계속 성장하는 걸까요?”
“그럼 좋겠는데 말이죠.”
청검이 성장하는 걸 보면서, 고엘프들은 이그드라실을 찬양하면서 이들이 김지훈처럼 성장하기를 기대했지만.
‘그럴 순 없지.’
정작 검을 성장시킬 수 있는 성지한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무리 지금 스탯 청이 넘쳐 난다 해도, 적처럼 세계수로 충전되는 형식도 아니고.
이 능력은 그렇게 펑펑 퍼 줘선 한계가 금방 나타났다.
이번엔 자극만 줘도 알아서 성장하니, 청을 운용했을 뿐.
아까운 스탯 소모해 가며, 다른 검들 성장시킬 여유는 없었다.
‘어차피 이번에 신입들도 많이 들어올 테니, 인류의 청을 흡수하는 일은 금방 속도가 붙겠지. 이렇게 별 힘 안 들이고 검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니면, 내 청은 아껴야 해.’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청을 다시 갈무리했다.
“성장, 여기까지가 한계인가…….”
“그래도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합니다.”
“청의 흡수가 확실히 빨라지겠군요.”
“이 별로 출장 오는 것도, 1년 안에 종료되겠군그래.”
고엘프들은 청검의 번쩍임이 멎자 아쉬워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고 말하며, 빨리 지구 출장이 끝나기를 고대했다.
‘니들 말대로, 1년 안에 끝내 줘야지.’
그래야 인류도 생명의 기운으로 반환당하지 않을 테니까.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이젠 얌전히 검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
스으으으…….
문양을 통해, 인류의 청을 흡수하는 청검.
검의 성능이 전반적으로 올라서 그런가, 속도가 예전보다 빨라진 것 같았다.
‘이 정도 속도면…… 청검이 추가되면 결과가 생각보다 빨리 나올 수도 있겠어.’
김지훈의 성장, 더 빨리 촉진해야겠네.
그는 그렇게 결심하곤, 청검의 역할을 계속 수행했다.
* * *
[녹색의 관리자, 인류에게 ‘이종친화’를 선물로 주다]
[성좌의 통 큰 결단, 인류도 이에 보답해야]
[기존에 기프트를 가지고 있던 사람은, 다음달 1일까지 양자택일해야]
[국가대표 중 일부, 벌써 이종친화를 선택했다고 밝혀]
[남자 하프 엘프 전성시대, 끝나나? 광고주들, 계약 진행을 꺼려]
전 인류의 후원 성좌가 된 이그드라실.
그녀가 제공한 기프트, 이종친화는 인류의 사회상을 한 차례 바꿔 놓았다.
-크, 나도 이제 남자 하프 엘프 되는 건가?
-하 걔들 꿀빠는 거 부러웠는데 잘됐네.
-남자는 그래도 이종친화 있어도 확률 낮잖아 여자들이야말로 하프 엘프 되는 경우 엄청 많겠는데?
-ㄹㅇ 이러다 거리에 하프 엘프만 보이겠어
-근데 이종친화까지 받았는데 적성시험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냥 인생 여기서 더 망하는 거지 뭐 ㅋㅋㅋ
그동안은 소수만 지니고 있었던 기프트 이종친화.
하나 이게 모두에게 주어진 후, 사람들은 다들 다음달에 있을 적성검사에서 자신들이 하프 엘프가 될 꿈을 꾸고 있었다.
특히 여자는 남자보다 성공 확률이 높아서.
다음달이 지나면, 정말 거리에 여자 하프 엘프만 빼곡히 보일 거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그리고.
-남자 하프 엘프들 갑자기 배틀튜브 키기 시작하더라 ㅋㅋㅋ 어설프게 개인방송 하던데 게임도 하고.
-아니, 맨날 놀고 먹는 애들이 왜 갑자기 그런대?
-다음달 되면 이제 경쟁자 대거 나오잖아 위기의식 느낀거지 뭐.
-김지훈처럼 미리 다져 놓은 애들이 승자인가 그럼 ㅋㅋㅋ
-에이 김지훈이야 하프 엘프 숫자 많아져 봤자, 총독부에서 관리 대상인데…… 급이 다르지 않겠음?
주가가 하늘 높이 치솟던 남자 하프 엘프들도, 이런 사회 분위기 변화에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 달이 되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숫자의 경쟁자들이 쏟아질 테니.
어떻게든 미리 준비를 해야겠다는 이들이, 이제 와서 배틀튜브를 키는 등 대외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그래도 김지훈급 정도 되는 집중 관리 대상은 별 타격 없을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했지만.
그에게도 이 일의 여파는 미치고 있었다.
“아고…… 어쩌죠? 정말 죄송해요. 갑자기 광고주 쪽에서 광고 계약을 전면 보류했어요.”
대기 길드의 길드 마스터실.
이하연은 김지훈을 보면서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따.
“왜죠? 설마 다음 달까지 보겠다는 겁니까?”
“표면상의 이유로는 저번에 광고 찍으려다가 취소된 것도 있고. 대외적인 변수가 너무 많아서 미루겠다는 거지만…… 아무래도 속셈은 그거 같아요. 다음 달에 남자 하프 엘프가 얼마나 나올지 알 수 없으니, 그때 가서 다시 계약 이야기하자는 거죠.”
“대기업이 더하네요.”
“예…… 원래 그렇죠.”
이하연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러고 보니, 이하연은 어떤 선택을 했지?’
성지한은 그녀도 이종친화를 받았음을 떠올리며, 질문했다.
“길드 마스터께선 기프트,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저요? 전 육성 그대로 가지고 있어야죠. 이게 저희 길드의 아이덴티티인데.”
그러면서 이하연은 목소리 톤을 살짝 낮추었다.
“그리고 사실…… 여자 하프 엘프는 돼도 큰 메리트가 없거든요.”
그러면서 김지훈 뒤에 있는 엘프 호위의 눈치를 살짝 보던 이하연은.
그녀가 별 미동 없자, 말을 이어 나갔다.
“물론 초심자 입장에서야 되면 좋지만, 이미 레벨이 어느 정도 높은 플레이어는 굳이 바꿀 필요가 없어요.”
“아하, 그렇습니까.”
“네. 여자 하프 엘프는 국내 로또 1등, 남자는 미국 로또 1등이란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가영이도, 하프 엘프 될 생각은 없지?”
“네. 제가 남자였으면 도전해 봤을 테지만 말이죠.”
남녀 하프 엘프의 가치가 그 정도로 차이가 났나.
‘하긴, 쟤들이 하프 엘프 만드는 이유가 애초에 청검 양산을 위해서였으니까. 총독부에선 나 닮은 남자 하프 엘프만 중요하게 여기겠지.’
뭐 어차피 1년 뒤면 죽을 상황에, 누가 중용받는 게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어쨌든 이미 기반을 잡은 여성 플레이어들은 굳이 하프 엘프가 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럼 문제는.
“남자 플레이어들은 많이 바꾸려고 하겠네요.”
“그게 좀, 문제예요…… 총독부에서도 확실하게 대우해 주는 게 남자 하프 엘프다 보니. 기존의 랭커들도 고민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서 이하연이 한숨을 푹 쉬었다.
“특히…… 검왕님도 좀.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닌 거 같은데.”
“검왕님이요? 그분이 왜…… 이미 미국 로또 이상 아닌가요?”
“그러니까요. 저는 당연히 안 하겠다고 하실 줄 알았는데. 고민 중이라고 말씀하셔서요.”
그 아저씨는 또 왜 그래.
성지한은 자신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SSS급 기프트, 쌍검의 극의를 포기하고 이종친화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야?
“이종친화 택했다가 남자 하프 엘프 안 되면 이도 저도 안 될 텐데요.”
“맞아요. 그래서 그런 쪽으로 설득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예요. 제발 재고해 달라고.”
“현명한 선택, 하셨으면 좋겠네요.”
“에휴…… 대체 무슨 생각이신지.”
“그럼 전 오늘의 게임 하러 가겠습니다.”
“앗. 네네. 저도 광고주한테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볼게요.”
김지훈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길드 마스터실을 나섰다.
그리고 그가 커넥터 룸에 들어가려는 순간.
‘저 아저씨는 왜 또 여기서 분위기 잡고 있어.’
커넥터 룸의 입구 옆에, 팔짱을 끼고 있던 검왕 윤세진이 눈에 들어왔다.
무시하고 그냥 들어가기엔 워낙 존재감이 큰 상대라.
“안녕하세요. 검왕님.”
김지훈은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커넥터룸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김지훈 씨. 당신도…… 제가 멍청하다고 생각합니까?”
윤세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기프트를 고민하는 거 자체가, 멍청한 짓이라는 걸 알긴 아는 모양이네.
그래도 김지훈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이를 되물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길드 마스터실에서 나누신 대화, 다 들었습니다.”
이 양반은 그걸 또 엿듣네.
검왕급이나 된 주제에 진짜 할 짓 없다고 생각하면서, 김지훈은 그에게 말했다.
“아…… 예. 뭐, 굳이 SSS급 기프트 있는데. 적성검사를 다시 보는 걸 고민하는 거 자체가 이해가 되진 않아서요. 이종친화가 있다고 남자 하프 엘프가 다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군요…….”
김지훈의 정론에, 고개를 끄덕이던 검왕은.
“그럼. 한 가지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갑자기 눈빛이 변하며, 김지훈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기 시작했다.
“예. 말씀하세요.”
“혹시, 혹시 말입니다만.”
“……?”
“소드 팰리스의 펜트 하우스에, 가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설마 그때 머리카락 하나 주운 거 때문에 이러는 거야?
‘아 그냥 쥐어 패고 기억 되찾게 할까?’
한때 신세를 졌던 매형이라 웬만하면 험하게 대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왜 이렇게 사소한 걸 집착하고 있어.
성지한이 진심으로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아빠…… 지금 뭐 해?”
“……어? 세, 세아야?”
저벅. 저벅.
길드의 통로 너머에서.
싸늘하게 굳은 표정의 윤세아가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