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58화>
임시 거점, 죽은 별에 도착한 성지한은.
[왔어?]
오자마자 검은 해골, 칼레인의 환대를 받았다.
[뭐야, 저 입은. 저것도 파편의 일종이야?]
“그래. 자기 입으로 키워서 잡아먹으라기에 데려왔지.”
[그런 말도 할 줄 알아?]
딱. 딱.
해골은 이빨을 부딪치며, 커다란 입술을 바라보았다.
[내가 저번에 세계수 연합에게 의뢰받았던 살점보단, 훨씬 키울 만하겠네.]
“저, 잠깐…….”
[후후후. 어떻게 키워 볼까?]
검은 해골이 두 눈을 불길하게 빛내면서 다가오자.
입술이 열심히 움직였다.
“나, 난 인도적인 육성을 요구한다……!”
[인도적인?]
“날 해체해서 키우려 들지 말고, 이 형태 자체를 육성해 달라!”
[그럼 너무 느린데. 우리가 왜 그래야 하지?]
“그게…… 그. 그래. 지금 이 형태로는 기억이 다 나지 않지만, 여기서 더 정상화되면 잊었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을 거다. 그럼 그 정보, 너희에게도 도움이 될 거다!”
무슨 이야기를 꺼내나 했더니, 기억인가.
‘길가메시 기억이라고 해 봤자 엘프에게 실험당하는 게 전부일 텐데.’
그 전에 기억을 더 거슬러 올라가도.
성지한이랑 적색의 관리자한테 한 번씩 죽은 게 끝이니.
그다지 도움이 될 거 같진 않은데.
그렇게 둘이 심드렁하게 반응하자, 입술은 연신 움직였다.
“거기에…… 그래! 나처럼 똑바로 말하는 그릇을 해체했다간, 나 같은 존재가 다신 안 나올 수도 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분명, 그 망할 엘프들이 그랬다. 이렇게 똑바로 의사표시를 하는 ‘실험체’는 처음이었다고…… 그래서 본부에 급히 보내야겠다고 했다.”
[흐음. 그래? 실험체 중에선 희귀한 종이라…… 어쩌지?]
칼레인은 성지한에게 어찌할 건지 물었다.
“네가 육성한다면, 어떤 방법을 쓰려 했는데?”
[나? 나는 뭐. 연합이랑 비슷한 방법이지. 다 쪼개서 조직 단위로 배양하고, 그중 잘 큰 놈부터 챙기는? 걔네랑 다른 점은 사령술을 써서 뒈진 조직도 비틀어 발전시킬 수 있다는 거 정도네.]
연합의 방식에서, 사령술을 섞겠다는 건가.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은데.’
기프트 청색의 대기를 업그레이드하는 건 물론 중요했지만.
세게수 연합의 비인도적인 실험을 그대로 카피해서 이쪽도 하는 건 영 끌리지 않았다.
저 괴물들이랑 같이 진흙탕에 빠지는 기분이었으니까.
“그 방법은 됐고. 다르게 가자.”
[그래. 근데 이 죽은 땅에서 저놈, 어떻게 키우게?]
“급속 성장시킬 방법이 있긴 하지.”
스스스…….
그러며, 성지한의 등 뒤로 붉은 사슬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무극멸신武極滅神
멸신결滅神訣
천수강신天樹降神
길가메시의 권능이었던, 천수강신.
생명력을 빨아들이는 이 사슬은, 역으로 이를 불어넣는 역할도 할 수 있었다.
파아앗……!
사슬이 거대 입술에 닿자.
“으, 으읏. 이건……! 이 힘은……!”
스스스…….
거대 입술을 중심으로, 서서히 형상이 복원되는 상대.
[스탯 ‘영원’이 1 소모됩니다.]
생명력을 불어넣던 성지한은, 메시지가 떠오르는 걸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아니. 뭐 이리 생명력을 많이 먹어?’
이럴 줄 알았으면 세계수 연합의 방식, 따라 할 걸 그랬나.
그가 잠깐 후회하는 사이.
파아아앗……!
생명력을 확실하게 흡수한 거대 입술에서, 길가메시의 머리가 나타났다.
인류였을때보다는, 세 배 큰 머리통.
“아아. 나는…… 나는……! 그래. 기억났다…… 난 인류의 왕, 길가메시……!”
머리가 생기니 잊었던 기억도 되찾은 건지, 그는 혼자 눈을 부릅뜨며 인류의 왕을 부르짖고 있었다.
“야. 그런 거 말고 쓸모있는 기억을 되찾지 그래?”
“이, 이것보다 중요한 기억이 어디 있겠느냐! 아. 근데, 네놈. 내 아들…… 성지한 아니냐!”
휙.
이쪽을 향해 머리를 돌리며, 길가메시가 침 튀기며 말하자.
성지한은 반사적으로 손을 들었다.
“하. 이놈은 또 아들 소리를 하네.”
빡!
그대로 성지한이 길가메시의 뒤통수를 후려치자.
슈우우우……!
길가메시의 머리에서 푸른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게 성지한의 손으로 일제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기프트 - 청색의 대기’가 A급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스탯 청의 상한선이 70 오릅니다.]
기프트의 등급이 오르며.
머리통이 복원되었던 길가메시가, 다시 입술 형상으로 돌아갔다.
[어…… 좀 약하게 치지 그랬어? 기껏 복원된 놈이 다시 돌아갔는데?]
옆에서 이런 사정을 모르던 칼레인은, 그리 말했지만.
“……아니.”
성지한은 두 눈을 번뜩였다.
“아까처럼, 계속해야지.”
* * *
빡! 빡!
길가메시의 머리를 복원하고, 이걸 뒤통수쳐서 청색의 대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식.
이건, 스탯 ‘영원’이 소모된다는 걸 제외하면.
매우 효율적인 발전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 그만 때려라……! 왜 살렸다 죽이는 건가! 아들이라고 안 부를 테니까……!”
빡!
길가메시가 뭐라 말하든 말든, 성지한이 뒤통수를 다시 한번 가격하자.
[‘기프트 - 청색의 대기’가 S급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스탯 청의 상한선이 150 오릅니다.]
청색의 대기가 한 번 더 업그레이드되었다.
‘이러면 총합 250인가.’
청의 성장 한계선이 999에서, 1249까지 껑충 뛰어 버린 청색의 대기.
이렇게 청이 성장하자, 적도 따라서 한계가 올라왔다,
‘스탯 적도 이제 900까진 운용할 수 있겠군.’
물론, 청색의 대기가 S급까지 오르는 데 있어서, 소모한 비용도 만만치는 않았다.
길가메시의 머리를 살리는 데 드는 비용.
스탯 영원이 20 소모된 것이다.
A급이 될 땐 한 번 만에 됐는데, S급은 19번을 살린 끝에 가능했으니까.
그래도.
‘영원 지금 당장은 쓸데없으니까. 한계를 늘리는 게 더 중요하지.’
생사를 다투는 전투 때, 목숨줄이 되어 줄 영원.
하나 지금 당장은 그런 상황이 나오질 않았으니, 청의 한계를 늘리는 게 더 중요했다.
거기에 영원은, 세계수를 통해 언제든지 수급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SS까지 또 때려 볼까.’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길가메시의 머리를 재생시켰지만.
“으아악. 제발 그만……!”
빡!
이번엔 뒤통수를 때려도, 길가메시의 머리가 멀쩡했다.
“음…….”
뭐지.
익숙해진 건가 이놈.
성지한은 고개를 갸웃하며, 머리를 몇 대 더 때렸지만.
“어…… 뭐, 뭐냐. 나 왜 안 죽지? 거기에, 아까보다 안 아파…….”
길가메시의 머리는 멀쩡한 채로, 뒤통수의 성지한의 손자국만 찍히고 있었다.
‘흠, 이놈한테서 뽑아낼 수 있는 청색의 대기는 이게 끝인 건가.’
원래는 청색의 대기에서, 자동으로 빨아들였던 길가메시의 파편.
하나 입술에게서 나올 수 있는 재료는 이게 끝인지.
청색의 대기는 S급에서 성장이 멈추었다.
“흡수가 안 되다니…… 괜히 살렸네 이러면.”
성지한이 멀쩡한 길가메시의 머리를 보고 입맛을 다시자.
그가 눈동자를 굴렸다.
“그, 그럼 이제 끝인가? 머리통 터지는 건?”
“아마도. 근데 이렇게 되면 너 쓸모가 없는데…… 그냥, 지금 정리할까?”
“쓸모가 없다니…… 그, 그렇지 않다! 잘 찾아봐라. 뭐라도 쓸모가 있을 것이다!”
성지한의 눈빛이 변하자.
길가메시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자신의 쓸모를 어필하려 들었다.
“흠. 그럼 기억 중에 쓸모 있는 거라도 있냐?”
“쓸모 있는 거라니…… 왕 시절 백성들을 통치했을 때를 이야기하는 건가?”
“그딴 거 말고. 나랑 적색의 관리자한테 죽은 이후 기억 같은 거.”
“그건…… 사실 별로 없다. 시험관 속에 계속 있었던 기억뿐이라서.”
쓸데없는 때의 기억만 자세하고.
정작 세계수 연합에게 부활당해, 실험당했던 때의 기억은 별로 없네.
‘영원 1은 그냥 날린 셈 쳐야겠군.’
그래.
청색의 대기 등급 S까지 올려 줬으니, 1은 그냥 더 쓴 셈 치자.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면서, 길가메시의 처분에 대해 고민할 즈음.
[내가 이놈 쓸모를 좀 찾아볼까?]
“네가?”
[어. 네 말 들어 보니, 배양은 이제 할 필요 없는 거 같은데…….]
“어. 여기서 뽑아낼 건 다 뽑아냈어.”
[그럼, 연합의 연구소 탐색할 때 이놈을 좀 써 볼게.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어서.]
성지한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이놈 잠시 맡기지.”
[어. ‘인도적’으로 테스트를 할 게.]
딱. 딱.
칼레인은 인도적인 방식을 강조하며, 음산하게 웃었다.
“그, 성지한. 그냥 나도 지구로 데려가 주면 안 되겠나…… 이 별, 생명이 살기엔 적합하지 않은 거 같은데…….”
이를 보곤 길가메시의 머리가 성지한에게 호소했지만.
“여기서라도 살래. 아니면 그냥 죽을래?”
“……여기 있겠다.”
그가 두 선택지를 제시하자, 어쩔 수 없이 전자를 골랐다.
“그럼, 다음에 또 올게.”
[언제든지 환영이야. 주인님에게도 안부 전해 줘.]
그렇게 칼레인의 배웅을 받으며, 지구로 귀환한 성지한은.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윤세아와 아리엘을 발견했다.
“아…… 삼촌, 왔어?”
“어. 표정이 이상하다? 왜 그래? 광고 찍고 있어?”
“아니. 찍으려고 준비 다 했었는데.”
스윽.
윤세아는 손가락으로 TV 화면을 가리켰다.
“총독부 긴급 뉴스가 떠서, 모든 업무가 중지되었어.”
성지한은 그 말에 TV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선, 모든 업무를 중지하고, 깨어 있으라는 지시가 나오고 있었다.
“깨어 있으라니. 또 뭔 짓을 하려고 그러지?”
“우리나라야 지금 낮이니 괜찮지만. 시차 정반대인 쪽은 난리도 아니야. 사이렌 울리면서 주민들 깨우고 있다는데?”
거참, 이게 총독부가 설치된 순기능인가.
성지한은 피식 웃곤, 감각을 확장했다.
“김지훈은 집에 들어와 있네.”
“응. 한 시간 전부터 귀가하라고 했거든. 그러면서 절대 잠자지 말라고 하더라.”
“흠…… 그래? 쟤들 뭐 하는지 체험하러 가 봐야겠다. 가자. 아리엘.”
“알겠다.”
슈우우우…….
성지한의 손에 다시 아리엘이 빨려 들어가자.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가만히 앉아 있는 김지훈의 몸에 들어섰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이렇게 깨어 있으라는 거지?
-뭐 아시는 분 없나요?
-총독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여기서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음;
- 덕분에 조기 퇴근 개꿀 ㅋㅋㅋ
-우리나란 그래도 나은 편이던데. 미국 보니까 경찰차 소방차 다 사이렌 울리며 주민 깨우고 있음.
-총독부 왜 한국에 있냐며 쟤들 또 열폭하겠네 ㅋㅋㅋㅋ
긴급 뉴스란에 달리는 리플들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지이이잉…….
갑자기, 그의 눈앞에 메시지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녹색의 관리자, ‘이그드라실’이 당신을 후원하려 합니다.]
[이를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이건…… 성좌 후원인가.’
성좌는 예전에 졸업한 이그드라실.
하나, 성좌 후원 칸은 이렇게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여기서 김지훈이 아니오를 누르면 안 되겠지.’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면서 예를 누르자.
지이이잉.
[녹색의 관리자 ‘이그드라실’이 플레이어 ‘김지훈’의 후원 성좌가 됩니다.]
[하늘을 바라봐, 성좌의 후원을 받으십시오.]
하늘을 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늘?’
일단은 시키는 대로 해 볼까.
성지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머리를 빼꼼 내밀어, 하늘을 바라보자.
태양이 있는 자리에는.
무지개빛으로 빛나는, 세계수의 형상이 미약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무지개빛이면…… 우주수의 형상인가.’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며, 하늘을 바라볼 즈음.
차라락.
사방에서, 창문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했다.
이그드라실의 후원 메시지, 김지훈에게만 도착한 게 아니라.
깨어 있는 전 인류에게 주어진 건가?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만 바라보고 있을 때.
[녹색의 관리자, ‘이그드라실’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 인류에게로, 이그드라실이 힘을 행사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