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54화>
착.
성지한은 땅에 착지한 후, 100의 하이엘프를 바라보았다.
윤세아의 얼굴을 똑같이 따라 한 그들은, 머리 색도 기존의 금발에서 흑발로 바뀌어 있었다.
그나마 차이점이라곤, 긴 귀와 흑발 속에 섞여 있는 초록색 머리카락뿐.
‘대기권에서 그림자를 컨트롤하는 동안 날 감지하고 부대를 파견한 거군.’
지구에 있는 김지훈의 원격 조종이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아리엘이 나오기 전까진 지체되었던 그림자 컨트롤.
시간상으로 보면 총 과정이 1시간도 채 되지 않았지만.
그 정도면 세계수 연합이 군단을 파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데 시간적 여유가 많이 주어진 거치곤, 방어 병력이 이거밖에 없네.’
고엘프도 적색의 관리자한테 금방 쓸리는 마당에.
아무리 청검을 들었다 한들, 하이 엘프 100명만 파견하는 건 그냥 이들을 버리는 패로 쓰겠다는 것 밖에는 안 되었다.
D급 세계수가 있는 곳이라 그런가?
전심전력을 다해 막기보다는, 오히려.
‘이번 기회에 청검과 윤세아 얼굴로 날 테스트하겠다는 느낌이 더 드는군.’
성지한의 몸을 사용하고 있는 적색의 관리자.
그가 성지한을 완전히 제압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뒤흔들 여지가 있는 건지.
세계수 연합 측은 그걸 알아보기 위해, 저 하이 엘프에 청검을 조합하여 파견한 것 같았다.
어차피 여긴 D급 세계수가 있는 곳이라,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킬 필요 없다 이거지.
‘흠, 그럼 어떻게 대응을 해 줄까…….’
스으윽.
성지한은 하이 엘프들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저들이 윤세아의 얼굴을 똑같이 닮았다 한들, 어차피 본인이랑 잘만 소통하고 있는 상황에서.
저걸 없애는 건 그에게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하지만.
‘청색의 관리자가 깨어날 수도 있다는, 희망 고문을 주는 게 더 나은 거 같단 말이지.’
여기서 쟤들을 죽여 봤자 얻는 건.
적 100 정도 올려 줄 D급 세계수가 전부였다.
그 대신, 성지한 대신 청을 올려 줘야 할 청검만 100개 파괴되겠지.
거기에 윤세아 형상이 쓸모없는 게 입증되면, 윤세아가 저쪽에서 가질 영향력도 확실히 퇴색될 수밖에 없다.
‘여기선 여지를 주는 편이 나중을 위해 낫겠어.’
성지한은 그리 결심하곤, 저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파지지직……!
그러자 일제히 뻗어 나가는 적뢰.
하나, 그 기세는 예전에 비해 확연히 약해져 있었다.
“실드를!”
“검을 통해서 사용하라!”
지이잉……!
그리고, 이를 막기 위해 일제히 떠오르는 보호막에선.
청의 기운이 살짝 맴돌았다.
지지지직…….
하이 엘프 100이 사용한 실드를 뚫지 못하고, 보호막 위에서 맴도는 붉은 전류.
‘확실히 청이 적에게 좋긴 하네.’
견제구로 약하게 공격하긴 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쉽게 막힐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원래 생각한 거보다 힘 조절을 더 해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적뢰에 힘을 더했다.
그러자.
쩌적. 쩌적…….
적뢰를 방어하던 실드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역시…….”
“최하위 청검으로는, 힘든가.”
테스트용으로 파견된 거라 그런지, 검의 성능도 저열한 하이 엘프 군단.
이들은 실드가 부서지는 걸 보고는, 눈을 부릅뜨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아앗!
적뢰가 실드 한 군데를 정면으로 뚫고, 하이 엘프를 향해 날아갔다.
닿기만 하면, 새까맣게 타다 가루가 될 붉은 전류.
전방에 있는 하이 엘프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죽음을 각오했지만…….
“……어?”
적뢰는 그녀의 얼굴 앞에 멈춰 선 채, 붉은빛을 발하다가.
파스스…….
연기만 남긴 채 사라졌다.
“…….”
그리고, 적뢰를 뻗었던 적색의 관리자는.
말없이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휙!
모습을 감추었다.
“어디 갔지…….”
“세, 세계수다!”
그의 모습을 찾던 엘프 중 하나가 뒤를 가리키자.
거기엔, 하이 엘프와의 정면충돌을 피한 적색의 관리자가 검을 세계수에 꽂고 있었다.
힘을 조금만 더 쓰면, 100 하이 엘프 따위 대번에 태워 버릴 수 있음에도.
굳이 그러지 않고, 세계수를 흡수하러 간 적색의 관리자.
슈우우우…….
그리고 그의 검에, 세계수가 빨려 들어가 사라지자.
“…….”
그는 다시 한번 하이 엘프 쪽을 바라보더니.
스스스…….
곧,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분명히, 아까 우리를 죽일 수 있었는데.”
“안 죽였어.”
그런 적색의 관리자를 보면서, 하이 엘프들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분명히 하이 엘프의 얼굴에 닿기 전, 사라졌던 적뢰.
“정말 이 얼굴…… 때문인가?”
그리고.
이날의 결과는 곧, 연합의 본부로 바로 보고되었다.
* * *
세계수 연합의 원로원 본부.
상석에 앉아 있는 이그드라실은, 흥미로운 눈으로 영상을 바라보았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는데…… 적색의 관리자, 정말로 주저하네?”
“그렇습니다.”
“청색이 아직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았나 봐?”
이그드라실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빙글빙글 돌리며 생각에 잠겼다.
적색의 관리자 정도면, 청색을 완전히 장악할 줄 알았는데.
그가 성지한의 몸을 쓰는 게 이상하다 싶더니, 아직 완벽하게 융합이 되지 않은 건가.
“하지만 저 행동도, 적색의 관리자가 흉계를 꾸미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생각해야지. 그래도 확실한 건.”
탁. 탁.
이그드라실은 화면 속, 청검을 가리켰다.
“스탯 청은 확실히 쓸모가 있어. 관리자의 공격을 한 번이나마 막았으니까.”
“그렇습니다. 확실히 청은 적에 상극인 능력…… 이번 하이 엘프가 펼친 배리어는 조악한 수준이었는데도, 저런 결과를 도출해 냈습니다.”
“그리고 윤세아 얼굴이, 일단 상대를 주저하게 만든 건 맞아.”
“그럼 모든 하이 엘프의 얼굴을 그녀처럼 바꿀까요?”
“아니, 너무 남발하면 효과가 반감돼. 확실할 때만 써야지. 그래…… 그러고 보니, 적색의 관리자가 연구실을 탐색한 흔적이 있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연구실을 포함하여, 쓰레기장까지 침공하여 그림자여왕을 빼냈다고 합니다.”
“흠…….”
다른 행성에서는 세계수만 흡수하고 사라지더니.
연구실이 있는 곳에선, 꼭 여길 들리는 적색의 관리자.
이그드라실은 잠시 생각하다가, 지시를 내렸다.
“그럼, 일단 연구원들부터 얼굴을 바꿔봐.”
“연구원들만…… 입니까?”
“그래. 연구원들한테도 그렇게 주저하는지 알아 봐야지. 그래야 적색의 저 행위가 단순히 연기인지 아닌지, 판명이 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서 이그드라실이 손가락을 벌리자.
지이이잉…….
회의실의 허공에, 커다란 화면이 떠올랐다.
“개척 행성의 철수 준비는 어떻게 됐지?”
“게시판에 좌표가 드러났던 곳부터 진행 중입니다. 일단은 C급 세계수까지 거둬들일 계획입니다만…….”
“그래…… 그럼 기존에 비해 얼마나 축소되는 거지?”
“모두 철수하면, 지배 행성이 대략적으로 반 가까이 줄어들 것 같습니다.”
“반?”
이그드라실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적색의 관리자라는 희대의 테러범 때문에, 순식간에 지배해 둔 행성 반을 잃게 되다니.
물론, 이건 행성 숫자가 줄어드는 거지 연합의 힘이 반 줄어드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계속해서 팽창하던 세계수 연합의 영역이, 적색의 관리자 하나 때문에 심대한 타격을 입게 생겼다.
“아무래도 지구에 권능을 더 집중시켜서,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청검을 완성시켜야겠네.”
“권능의 집중이라 하심은…….”
“일단, 인류에 청검 숫자를 더 나오게 해야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러면서 이그드라실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의 침묵에, 원로들은 잠시 눈치를 보다가.
다음 보고를 올렸다.
“우주수시여. 그…… 배틀튜브의 제보자 W 채널에, 이번 작전 영상도 모두 올라왔습니다. 내부적으로 확인해 본 결과, 하이 엘프에게서도 유출된 정황은 전혀 없었습니다만…….”
“그래?”
“예. 저번 영상 유출 때도 그렇고, 하이 엘프들이 비공개로 녹화만 해 둔 영상이 모두 그리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음…….”
이그드라실은 그 말에 제보자 W 채널을 열어 보더니.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쪽은 건드리지 마.”
“……네?”
“항의한 것도 취소하고, 그냥 내버려 둬. 이거 배틀튜브 주인이 손 쓰는 거 같으니까.”
“배틀튜브 주인이라 하시면…….”
“설마, 백색의 관리자께서…….”
“그래.”
이그드라실의 확답에, 원로 일부가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백색의 관리자는 예전에 적색의 관리자와 협력 관계 아니었습니까…….”
“둘이 다시 손잡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럴 거면, 진작 손을 잡았겠지…….”
그녀는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래도 시간을 주면 안 되겠어. 지구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켜야지.”
“모든 자원이라 하심은…….”
“아무래도, 내가 직접 지구로 가야겠어.”
혹시나 있을 적과 백의 협력에 대비하기 위해.
청검의 완성을 서두르기로 했다.
* * *
이틀 후.
-깔끔한 승리 축하드립니다!!
-와 김지훈 드디어 승이 패랑 똑같아졌네 ㅋㅋㅋ
-솔직히 앞에 두 패배는 불가항력 아니었음?
-첫 게임에 쓰레기장, 두 번째 게임엔 메테오 엔딩…… 내가 김지훈이었으면 다신 배틀넷 안 했음.
-ㄹㅇㅋㅋ
“역시 이게 정상적인 게임이죠. 저번 두 게임은 왜 그랬는지…….”
김지훈의 몸으로 배틀넷 일반 게임을 두 번 진행한 성지한은.
배틀튜브에서 떠오르는 채팅창 메시지에 가볍게 답하고는, 레벨을 확인했다.
‘27…… 실버 승급전은 따로 안 하고 오르네.’
원래는 레벨 25때 더 성장하려면 승급전을 거쳐야 했지만.
남자 하프 엘프는 그런 거 없는지, 레벨이 25 되자마자 소속 리그가 실버로 뒤바뀌며 레벨이 그냥 상승하고 있었다.
‘다른 남자 하프 엘프들음 잠만 자고 리그 승급하던데…… 얘네는 그냥 레벨만 충족하면 올려 주나 보군.’
하긴.
이 종족을 인간 플레이어들이랑 같은 리그에 묶어 두기에는, 워낙 성능 차이가 심하긴 했다.
이번에도 맵이 디펜스였는데, 그냥 혼자서 청검 휙휙 휘두르니 좀비 목이 우수수 떨어져 나갔으니까.
‘성능으로만 따지면, 골드에서 플레티넘까지 가도 될 거 같은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커넥터에서 나오자.
“실버 승급, 축하드려요!”
이하연이 웃으면서 그를 반겼다.
길드 마스터인데도, 매번 김지훈이 게임 할 때마다 와서 인사하는 그녀.
“길드 마스터. 일도 바쁘실 텐데, 이런 일반 매칭 게임 한 판 끝났다고 직접 오실 필욘 없습니다만…….”
성지한은 김지훈의 입을 빌어 그리 말했지만.
“그럴 순 없죠! 거기에 오늘은, 좋은 소식이 있어서 들렀어요!”
“좋은 소식이요?”
“네. 혹시, 그 이명훈 님…… 아시나요?”
“아. 압니다. 그…… 인간으로 되돌아왔다던 분 맞죠?”
“네네. 그분이 원래는 남자 하프 엘프 중에선 선발주자라 광고 시장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번에 인간화되면서, 기존 광고 계약이 모두 백지화되었다고 해요.”
성지한은 그녀의 말을 듣곤, 왠지 이야기의 흐름이 어디로 흐를지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백지화된 계약, 저한테로 제안이 들어온 겁니까?”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다들 저희에게 놀랄만한 제안을 해 주고 계세요.”
최하위 청검 인간 만든 나비효과가, 이런 데서 불어오네.
성지한은 내심 한숨을 쉬었다.
‘귀찮게 무슨 광고냐.’
성지한 시절에도, 초반에 돈 필요할 때 제외하곤 하지 않았는데.
지금 김지훈은 광고를 찍어야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신참 남자 하프 엘프가 거절하긴 이상해 보일 테니…… 하긴 해도 최대한 줄여야겠군.’
그는 그리 생각하고는, 김지훈의 몸에서 일단 빠져나왔다.
그러자, 잠깐 버벅이던 그 몸은.
다시 원활하게 입을 움직였다.
“광고…… 이왕 하는 거. 최고급 대우를. 원합니다.”
“아, 아. 그렇죠? 역시. 지금 총독부 공인 특별 관리 대상이신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죠!”
“협상 조건. 더 끌어올려. 주세요.”
“네, 제가 확실히 최고급 대우 받아 올게요!”
‘이제 일상 대화까지는 원격 조종이 가능하군.’
말이 살짝 끊기긴 하지만, 그래도 대화가 되는 원격 조종.
성지한이 그렇게 일부러 김지훈의 밖에서 그를 컨트롤하고 있을 때.
[청색의 관리자여. 임시 배틀튜브 계정, 만들었다.]
그에게, 적색의 관리자가 말을 걸어왔다.
[이제 제보자 W 채널로 접속이 가능하다. 이 계정으로 접속하겠는가?]
‘그래야지.’
백색의 관리자의 향기가 진하게 나는 제보자 W 채널.
여길 들어가려면, 배틀튜브 계정이 필요했다.
그것도, 일반적으로 만든 계정이 아니라.
성좌 급만이 지닐 수 있는, 높은 등급 계정이.
청색의 관리자 성지한은, 배틀넷 시스템에서 밴 당한지라 계정이 박탈된 상황.
적색의 관리자는 아이디가 필요하다고 하니, 이를 금방 만들어왔다.
‘진짜 전투 빼곤 다 해 준다니까.’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적색이 만들어 준 계정으로 배틀튜브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