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53화>
[예전에, 세계수 연합 쪽에서 나한테 의뢰가 온 적이 있었어.]
“걔네가 언데드인 너한테 의뢰를?”
[길가메시란 놈을 살리려 하는데, 사령술로도 테스트하고 싶다고 했지.]
성지한은 저번에 얻었던 길가메시의 파편을 떠올렸다.
성지한을 닮은 세 머리에 심어져 있던 파편은.
그에게 기프트 청색의 대기를 부여해 주고, 이걸 업그레이드까지 해 주었지.
이로 인해 늘어난 스탯 청의 상한선은 +30.
현재 능력의 향상을 위해선, 기프트 ‘청색의 대기’의 등급을 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근데 살리는 건 녹색의 관리자 전문 아니냐? 잘도 너에게 의뢰를 했군.”
[그쪽은 나와 루트가 완전히 반대잖아? 길가메시의 몸 일부만 주고, 내 능력을 테스트해 보더라고. 사실 의뢰 받을 때만 해도 길가메신지도 몰랐어. 살점 하나만 보냈으니까.]
“살점만?”
[어. 그걸 다 내가 분석해서 알아낸 거지.]
그거 가지고 알아낸 것도 대단하군.
성지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칼레인이 머리를 갸웃했다.
[근데 너, 어째 좀 아는 눈치다? 그다지 안 놀라는데.]
“연합의 연구실 털다가 길가메시의 파편 하나 얻긴 했어.”
[아, 그래? 그럼 혹시 그 연구실 위치가, ‘우주수의 뿌리’ 계열 행성이었어?]
“아니. 그 정돈 아니었지.”
우주수의 뿌리.
이그드라실이 관리자가 되기 전, 성좌 시절부터 복속해 두었던 행성으로.
최소 S급 세계수가 위치한 장소였다.
‘저번에 한 번 쳐들어갔다가, 꽤 거센 저항에 직면했지.’
물론, 거기서 가장 큰 문제는.
S급 세계수를 흡수하다가 적을 초과 흡수한 거였지만.
그래서 그 후로 우주수의 뿌리 행성보다는, 그 아랫급 행성을 털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네가 아는 연구실은, 우주수의 뿌리에 있냐?”
[어. 의뢰 해결하고 살점 다시 세계수 연합에게 반납할 때, 위치가 거기였어.]
“흠. 거긴 준비 좀 하고 쳐들어가야겠는데.”
저번에 털었던 우주수의 뿌리는, 애초 타깃이 세계수였으니 목표를 달성하는 게 쉬웠지만.
이번에는 길가메시의 파편을 찾아야 하는 만큼, 거기서 시간을 더 끌릴 터였다.
그럼 치고 빠지기가 쉽지 않아, 이그드라실이 직접 강림할지도 모르니.
지금처럼 옆 동네 가듯 포탈 타는 게 아니라, 면밀한 준비가 필요했다.
[바로 우주수의 뿌리로 쳐들어가는 것보다는, 다른 연구소에서 파편을 더 찾아보는 걸 추천하지. 이그드라실의 방어 태세, 분명히 저번보다 강력해졌을 것이다.]
“그러는 게 좋겠군. 칼레인, 아까 알아낸 연구실 위치나 알려 줘.”
성지한의 말에.
칼레인의 눈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행성 좌표가 떠올랐다.
[여기가 내가 다시 살점 돌려준 좌표야.]
“그래. 여기 외에도…….”
그러면서 성지한은 예전에 게시판에서 캡처했던 세계수 연합의 좌표 모음집을 보여 주었다.
“이 행성들 말고, 세계수 연합 소속 행성 위치 아는 거 있으면 알려 주고.”
[아. 알았어. 내가 수소문해서 알아볼게. 그럼…… 머리 너 배틀넷 통신 되나?]
“기능 일부는 복구했는데, 통신은 안 돼. 종종 들릴 테니 그때 넘겨줘.”
[그래, 머리야. 준비하고 있을게.]
그렇게 칼레인에게 조사를 부탁한 성지한은.
‘이제 김지훈에게 그림자를 심어야겠군.’
여기서의 일을 일단락하고는, 지구로 다시 돌아갔다.
* * *
펜트 하우스의 거실.
“와, 그러니까 그림자여왕이 저 남자 하프 엘프를 만든 장본인이네?”
“……어쩐지. 그 이후로 나도 피하더니. 그런 일을 했었구나.”
성지한이 가족들에게 그림자여왕 사태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들은 어이없단 표정을 지었다.
“여왕 실망이다, 진짜…….”
“그래서, 그림자여왕은 어떻게 했니?”
“여왕의 혼은 봉인했고, 그림자만 내가 쓸 거야.”
“그림자만?”
“응. 김지훈의 몸에 심으려고.”
그러면서 성지한이 손바닥을 펴자.
스스스…….
검은 연기가 그 위로 살살 피어올랐다.
“그거 심으면 어떻게 되는데?”
“내가 원정 나간 사이에도, 김지훈의 몸을 컨트롤할 수 있겠지.”
“아하. 근데 그 그림자기운, 그 몸에선 들키지 않을까?”
“네가 넣은 공허에 심을 거야.”
마침 윤세아가 김지훈의 청검에 불어넣었던 공허.
그 안에 그림자기운을 불어넣으면, 김지훈의 몸을 아무리 뒤져도 이게 있는지 알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럼 작업 좀 하러 갈게.”
“응. 다음에 봐, 삼촌.”
그렇게 성지한은 아래 방으로 되돌아가서, 엘프 호위부터 살폈다.
김지훈 쪽을 계속 바라보곤 있지만, 동공이 살짝 풀린 그녀.
‘환염 효과는 잘 적용되고 있군.’
이제 쟤는 신경 안 써도 되겠어.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김지훈의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스스스스…….
그러자, 손을 통해 전해지는 검은 연기가 그에게로 스며들고.
‘바로 되네.’
그림자를 통한 김지훈의 감각 공유가, 확실하게 진행되었다.
지금까지는 그의 몸에 들어가서 그를 조종해야 했지만.
이제는 심어 둔 그림자를 통해, 멀리서도 간접적으로 할 수 있게 된 성지한.
‘멀티태스킹을 하는 게 좀 어색하긴 하군.’
컨트롤 자체는 할 만했지만.
나 이외에 사람을 조종한다는 감각 자체가, 그는 영 익숙하지가 않았다.
그래도, 이중생활을 위해선 이거 적응해 나가야겠지.
그렇게 1시간 정도, 감각 공유를 통해 두 몸을 움직여보던 그는.
‘이제 조종 자체는 감이 잡혔고.’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보기로 했다.
‘세계수 행성 털면서, 동시에 움직일 수 있어야 의미가 있지.’
지금은 바로 곁에서 조종했지만, 과연 실전에서도 잘 조종이 될까.
성지한은 그걸 테스트하기 위해, 이제는 스탯 적 충전소나 다름없는 D급 세계수를 털러 가보았다.
‘이거…… 쉽지 않네.’
확실히 거리가 어마어마하게 떨어져 있어서 그런가.
그림자를 통해 감각을 공유받는 건, 바로 옆에서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성지한이 의도한 건 김지훈이 침대에서 일어나, 걸어 보는 것이었지만.
쿵……!
그는 몸을 일으키다 말고, 침대에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리고 바닥에서 떨어진 후에도, 제대로 서려 할 때도.
콰당……!
발로 일어나는 게 아니라, 두 손바닥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하려다 다시 뒹구는 김지훈.
‘너무 멀어서 그런가. 신호가 제대로 안 가는 느낌이네, 이거.’
이거, 서서히 거리를 늘렸어야 했나.
성지한은 그렇게 대기권에서 가만히 둥둥 떠 있는 채로.
김지훈의 조종에만 열중했다.
그렇게 하길 30여 분 지났을까.
‘……엘프한테 환염 걸길 잘했네.’
김지훈은 아직도, 바닥에서 똑바로 서질 못하고 있었다.
방바닥을 하도 뒹군 덕에 난장판이 된 주변.
회복력 좋은 하프 엘프의 몸뚱어리에도 어느새 시퍼런 멍이 여럿 보이고 있었다.
이 짓거리를 엘프 호위가 똑바로 쳐다봤으면, 진작 개입했겠지.
‘이러면 그림자 괜히 심은 건데.’
지구에서 조종 잘되어 봤자, 솔직히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원정 나갔을 때도 감각 공유가 제대로 잘되어야, 그림자 심은 보람이 있지.
성지한이 그렇게 테스트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
[……도와줄까?]
성지한 본체가 지닌 그림자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 * *
“그림자여왕? 넌 봉인되었을 텐데.”
성지한은 인벤토리를 열어 보았다.
그러자 거기엔, 봉인된 여왕의 혼이 확실하게 제자리에 있었다.
‘혼이 봉인되었어도 잔재가 남아 있는 건가.’
끈질긴 녀석이군.
이럼 그냥, 그림자 포기하고 다 없애 버릴까.
성지한이 그리 생각할 때.
[주인, 난 아리엘이다. 기억, 안 나는가?]
그림자는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네가 아리엘이라고?”
그림자여왕의 분신으로, 성지한의 검 역할을 하던 아리엘.
하나 예전에 그림자여왕을 구출한 후, 그녀는 여왕과 융합하며 소멸했었다.
한때 그녀의 빈자리가 아쉽긴 했지만.
애초에 태생이 여왕의 분신이기에, 그녀가 구출된 이상 이게 정해진 수순이라 생각했는데…….
[여왕님에게 융합된 후, 사라진 나의 의식이 이번에 되돌아왔다…….]
“여왕의 혼이 봉인되어서 그런 건가. 그래도 분신인 네가 이렇게 독립적으로 남아 있을 줄은 몰랐군.”
[……나도 의아하다. 기억도 여왕님과 공유했지만, 온전치는 않고.]
그러면서 아리엘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역시 배신자의 분신은 신뢰가 안 가나?]
“흠…… 어떻게 도우려고 했는데?”
여왕의 충실한 분신이었던 아리엘.
그녀를 온전히 믿는 건 무리였지만, 방법 정도는 들을 수 있었다.
[내가 저 분신에 깃드는 방법이 확실하지만…….]
“그건 안 돼. 아직 그렇게 믿을 순 없거든.”
[……그렇겠지. 대신 그림자에 보내는 신호를 증폭하겠다. 주인도 요령만 알면 금방 터득할 것이다.]
“그래? 한번 해 봐.”
스스스…….
성지한의 허락이 떨어지자,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자기운.
아리엘이 중간에서 매개체가 돼서, 신호가 증폭되자.
‘오, 일어났네.’
땅바닥에서 계속 뒹굴던 김지훈은, 가뿐하게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내가 중간에서 매개가 되면, 멀리서도 감각을 전달받을 수 있다.]
“이거 나랑 방법은 크게 차이가 안 나는 거 같은데…….”
[음…… 아마, 쉐도우 엘프인 내가 매개체가 된 게 신호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 같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원정 나왔을 때 김지훈을 컨트롤하기 위해선, 아리엘이 필수불가결하단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지금 당장은 매개체로 써야겠어.’
성지한은 지구의 분신이 잘 조종되는 걸 보곤, 그리 생각했다.
격렬한 움직임은 힘들지만, 걷고 앉는 등 기본적인 움직임은 가능한 김지훈.
이 원격 조종 시스템이 제대로 안착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아리엘을 써야 했다.
“당분간은 같이 가야겠네.”
[당분간…… 인가.]
“어쩔 수 없어. 여왕과의 일이 있어서, 100퍼센트 신뢰는 불가능하거든.”
[……그 결정, 이해한다. 여왕께서 행한 일은, 그만큼 신뢰를 저버린 일이었으니.]
“기억이 아직 온전치 않다더니, 그 건은 잘 알고 있나보네?”
성지한의 물음에, 아리엘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 날은, 여왕께서…… 주인을 배신함과 동시에, 쉐도우 엘프의 구원도 포기하신 날이었으니까.]
“구원마저 포기했다고?”
[그래…… 세계수 연합에게 다시 붙잡힐 위기에 처했을 때. 여왕께서는 자신의 속마음을 직시하셨다. 복수도, 종족의 구원도 사실은 다 허울 좋은 명분일 뿐…… 한 번 연합에게 호되게 고문을 당했던 여왕께서는,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으셨다.]
예전에는 그림자여왕이 고문을 심하게 당하긴 했지.
그 일을 겪고 난 후, 쉐도우 엘프를 구원한다는 대의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도 뭐 있을법한 일이긴 했다.
그래도.
“그럴 거면 진작 도망가지 왜 지구에 있었냐? 내 생체 정보는 팔지 말았어야지.”
[……그러게 말이다.]
아리엘은 한숨을 푹 쉰 후, 성지한에게 이야기했다.
[어쩼든 나는 그 배신자의 분신이니. 주인이 적당히 매개체로 사용하다가, 알아서 처분하라. 언제든 죽음을 받아들이지.]
죽음에 초연한 게, 본체보단 낫군 그래.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이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온 김에 털고 가야겠네.’
D급 세계수.
뭐 얻을 건 적 좀 충전하는 거 밖에는 없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돌아가긴 아쉽지.
적색의 관리자 상태의 성지한은.
슈우우우……!
그대로 세계수 근처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거기엔.
“드디어 왔군요.”
“적색의 관리자……!”
하이 엘프 100명이 청검을 들고, 방어진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것도.
‘……벌써 저 얼굴로, 다 뒤바꾼 거야?’
100명 모두가.
윤세아의 얼굴을 한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