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52화>
죽은 별의 성좌 칼레인.
성지한을 자신의 머리로 삼겠다고, 매번 그를 ‘머리’라고 부르던 그는.
적색의 관리자 앞에서 태도가 180도 달라진 채로, 주인님 소리를 하고 있었다.
‘얘는 왜 너한테 주인님 소리를 하냐?’
[그의 금제를, 내가 그냥 지워 줬겠느냐.]
‘아.’
태양왕이 칼레인에게 새겼던 노예 인장.
이것은, 적색의 관리자가 무신에게 낙인을 없애는 걸 보여 주는 과정에서.
-아까의 방법대로 하면, 이 자의 낙인이 지워진다. 보아라.
실제 예시로 쓰였었다.
‘그때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건가.’
[은신처의 확보는 언제나 중요한 일. 내게는 백색의 관리자도 모르는 탈출구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때는 낙인 해제 방법을 괜히 먼저 가르쳐 줬다가, 무신이 동방삭에게 적색의 관리자를 제압하라고 명령하는 바람에.
저놈도 된통 당하는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라 다 계획이 있었군.
무신뿐만이 아니라 칼레인에게도.
‘네 용의주도함을 보니, 청홍 안에 가만히 있는 게 더 미심쩍어지는군.’
[후후……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이 안이 마음에 드니까. 저번에 진작 빠져나갈 수 있음에도 안 나가지 않았나?]
적이 700을 넘었을 때도, 성지한을 장악하긴커녕 오히려 정신 차리라고 주의를 주었던 적색의 관리자.
그에 대해서는 주의를 게을리해선 안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은 협력자라고 봐도 되었다.
‘적색 권능도 지금은 없어선 안 되고.’
세계수 연합이 만들어 주는 청검을 흡수하기 전까지는.
역시 이 공생 관계는 지속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성지한이 생각을 정리할 즈음.
쿵! 쿵!
조금 전 떠올랐던 검은 두개골은, 바닥에 이마뼈를 연신 박고 있었다.
[주인님! 주인님이 오시는 날만 기다리며, 붉은 군대를 양성해 두었습니다! 세계수 연합의 행성이 불타오를 때 얼마나 감격했는지……! 매일, 이 영상을 10번, 20번씩 돌려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배틀튜브 화면을 띄우는 칼레인.
거기엔, 적색의 관리자가 세계수 연합을 제압하는 광경이 생생하게 나오고 있었다.
“그 영상, 어떻게 입수했지?”
성지한은 영상 녹화를 하지 않았고.
세계수 연합은 자기들이 당하는 걸 저렇게 생생하게 외부에 공개할 것 같진 않은데 말이야.
그가 그렇게 묻자, 칼레인이 머리를 들어 답했다.
[배틀튜브의 제보자 W 채널에 공개되어 있습니다!]
“제보자 W?”
[네!]
성지한의 물음에, 칼레인은 제보자 W 채널을 띄웠다.
화제의 영상이 수두룩한, 제보자 W 채널.
근래 가장 인기 있는 건, 역시 적색의 관리자가 세계수 연합과 맞붙는 영상이었다.
‘흠. 이 영상, 모두 수비 측 엘프들 시점으로 찍은 거네.’
이거 세계수 연합 쪽에서 흘린 건가.
한데 베스트 댓글에서는.
-영상을 찍은 당사자입니다. 이거 세계수 연합에서만 공유하고 있는 영상인데, 어떻게 이걸 입수한 겁니까? 당장 내려 주십시오.
세계수 연합 엘프들이 모두 영상 어떻게 입수했냐며, 당장 내리라고 항의를 하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이 영상을 구한 거지?”
[제보자 W. 주인님이 봉인된 후, 일 년이 지난 후부터 배틀튜브에서 화제가 된 채널입니다. 이번 건처럼, 미공개 영상을 입수해서 터트리는 걸로 유명합니다.]
“흠.”
봉인된 후, 1년 뒤 나타난 채널이라.
그러고 보면, 배틀튜브는 원래 백색의 관리자 관할이었지.
그리고 이 채널은, 미공개 영상만 쏙쏙 입수해서 터뜨리고.
‘W…… 설마 화이트라서 W인가?’
[그런 거 같군. 다른 곳도 아닌, 세계수 연합의 미공개 영상을 입수할 정도면. 백색의 관리자 정도가 아니면 안 된다.]
‘상시 관리자란 놈이 뭐 저런 짓거리를 하고 있냐.’
[봉인된 상태니 그렇겠지. 거기에 저렇게 뻔히 보이는 이름으로 채널을 운영하는 걸 보면, 나에게 보내는 신호일 수 있다. 채널을 통해 연락을 하라는.]
‘할 생각 있냐?’
[전혀. 상당히 까다로운 클라이언트거든. 백색은.]
제보자 W 채널.
다음에 한 번 면밀히 살펴봐야겠군.
성지한은 그렇게 생각하곤, 손을 내저었다.
“알았다. 꺼라.”
[네!]
지이잉…….
그렇게 배틀튜브 화면을 끈 칼레인은.
바닥에서 성지한을 올려다보았다.
[주인님, 그러면…… 외람되오나 붉은 군대의 열병식을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붉은 군대?”
[예, 제가 주인님이 귀환하시는 날만 기다리며 양성한 군대입니다!]
그러면서 칼레인이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자.
스스스스…….
일어나 있던 언데드 군단들의 뼈 색깔이, 일제히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착. 착.
그러면서 오와 열을 갖추는 언데드들.
각자 크기가 제각각인 걸 감안하면, 꽤 엄정한 군기를 자랑했다.
‘뭐, 꽤 강력하긴 하다만.’
고위 성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군단이라 그런지, 행성 몇 개쯤은 가볍게 쓸어버릴 듯한 언데드 군단.
하지만.
“이거로 세계수 연합이랑 싸울 수 있나?”
[그, 개척 행성 한 개 정도는…….]
“요즘은 5분 안에 포탈 타고 구원군 오던데.”
[그러면 같이 자폭하겠습니다!]
개척 행성이라면, D급 세계수가 있는 곳.
성지한이 그냥 가볍게 들러서 없애는 동네였지만.
칼레인의 군단은 그거 하나 파괴하려면 전멸을 각오해야 했다.
‘연합이 세긴 세단 말이지.’
성지한에게 떼로 쓸려 버린 고엘프만 해도, 칼레인과 비슷한 수준의 성좌들도 적잖았으니까.
칼레인의 군단으로 저길 공격하는 건,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었다.
“싸울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정찰이나 해라.”
[정찰…… 말입니까?]
“그래. 세계수 연합의 행성 위치나 더 파악해 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외람되오나 한 말씀 더 드려도 되겠습니까?]
“해 봐.”
[저희 붉은 군대가 못 미더우신 것…… 당연합니다. 연합과 대적하기엔 너무나도 약하니까요.]
“그렇지.”
[그래서, 제게 다른 방식으로, 세계수 연합에게 피해를 입힐 만한 묘안이 있습니다!]
다른 방식?
“그게 뭐지?”
[그건…… 인류 침공입니다!]
딱. 딱.
칼레인은 그러면서, 이빨을 맞부딪쳤다.
* * *
지이이잉…….
칼레인의 눈에서 빛이 나오더니, 곧 푸른 행성.
지구가 떠올랐다.
[인류는 현재 세계수 연합의 식민지 상태입니다. 세계수 연합이 인류에게서 노리는 건, 주인님에게 대항하기 위한 능력 청…….]
그러면서 지구의 안쪽.
서울 방면에, 세계수가 모습을 비췄다.
[주인님께서 이곳을 노리지 않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대신 저희 붉은 군대가, 지구를 침공하겠습니다. 청의 자원이 될 인류를 없애 저들의 계획을 저지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칼레인은 음산하게 웃었다.
[후후…… 사실 이미 던전 포탈 너머에는 저희 붉은 군대가 일부 잠입한 상태입니다…….]
“뭐? 벌써 잠입했다고?”
[예. 원래는 주인님의 귀환 소식을 듣고, 지구에서 공을 세운 후 뵈려 했습니다만…….]
“하지 마.”
[잘되었습니다. 명령만 내려 주시면…… 네?]
“하지 말라고.”
딱…….
신나서 입을 놀리던 칼레인이 이빨을 부딪치다 말았다.
“저거, 일부러 검이 완성되길 기다리는 거다.”
[그,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까 일 망치지 말고 정찰 업무나 봐.”
[아…… 그,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지구 침공 프로젝트가 좌초되자, 황급히 새로운 계획을 이야기하는 칼레인.
[브론즈 리그의 신참자들을 일제히 침공, 언데드 화하여…….]
계획 설명은 장황했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배틀넷의 신참 행성을 털어서 언데드를 마구잡이로 양성하고 이들을 연합에 들이받겠다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약한 종족들을 언데드로 만들어서, 자폭 부대로 쓰겠다는 플랜.
[그런 걸 하다 보면 성좌 자리 박탈당할 텐데…… 그래도 버리는 패에 쓰기엔 나쁘지 않군.]
적색의 관리자는 그런 칼레인의 계획을 괜찮다고 평가했다.
당사자가 성좌 자리 박탈당해도 상관없다고 나오니까.
하나.
“그냥 정찰만 해라. 허튼짓하지 말고.”
성지한은 이 계획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신참자 종족들 언데드로 만들어서 자폭시켜 봤자, 연합 놈들이 뭐 얼마나 피해를 입겠나.
괜히 애꿎은 이들까지 이 싸움에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다.
[…….]
그리고 그러한 대답에,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칼레인은.
슈우우우…….
머리를 허공에 띄우더니.
빙글빙글 회전했다.
[……너, 머리 아니야?]
“뭐?”
[머리 맞지 너?! 주인님이라면, 얼마든지 날 버리고 신참자들을 학살해서 이 계획을 진행하셨을 거라고!]
확실히, 적색의 관리자도 아까 버리는 패에 쓰기엔 나쁘지 않다고 했지.
적색의 종 된 지 얼마나 됐다고, 주인 마음 확실히 알고 있네.
성지한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시 대답을 하지 않자.
쩌어억!
[머리야! 주인님을 돌려줘!]
칼레인은 입을 쫙 벌리곤, 성지한을 물려고 달려들었다.
하나.
“……미친놈인가 진짜?”
스윽.
성지한이 손가락을 내리자, 그대로 땅에 떨어지는 해골 머리.
공간을 완전히 장악한 그에게, 칼레인이 뭘 하려 한들 통할 리가 없었다.
[꽤 충성스럽군그래.]
“세뇌를 어떻게 한 거냐 너?”
[그에겐 딱히 세뇌를 심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나와 추구하는 목표가 비슷하기에, 같은 길을 가자고 했을 뿐…… 저 충성은, 반절 정도는 진심에서 우러나온 거다.]
“어쨌든 반절은 세뇌네.”
[그렇지.]
성지한이 그렇게 적색의 관리자와 대화하자.
땅바닥에 박혀 있던 칼레인이 급히 말했다.
[머, 머리. 너. 누구랑 대화해. 설마 주인님이랑 하는 거야?]
“그런데?”
[뭐, 뭐야. 청과 적은 원수 아니었어…… 왜 그렇게 친한 건데??]
“친하긴 누가 친하냐.”
성지한이 그리 대꾸하자.
[후후. 우린 한 몸 아닌가.]
적색의 관리자는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잠시 직접 소리를 내도 되겠나? 저 녀석. 제어할 필요가 있겠어.]
“그래.”
성지한의 허가가 떨어지자.
지이이잉…….
청홍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죽은 별의 성좌여.]
[주, 주인님…….]
[그래. 청색의 관리자는 혁명의 기수가 될 몸. 그를 나처럼 생각하고 따르라.]
혁명의 기수?
뭔 소리야 이건.
성지한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아, 그렇군요…… 역시 내가 머리로 삼으려고 했던 몸……! 알겠습니다. 그를 따르겠습니다!]
칼레인은 혼자 감동하면서, 연신 따르겠다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리 소리치자.
척. 척.
주변의 언데드들도 모두 성지한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
[그러면 뒤를 맡기겠다.]
스스스…….
청홍에서 붉은 눈이 사라지자.
[주인님의 음성, 평생 기억하겠습니다……!]
벅찬 음성으로 적색의 관리자를 기리던 칼레인은.
스스스스…….
다시 공중으로 떠올랐다.
[머리야, 머리야. 그럼, 진짜 나 정찰만 해?]
주인님 소리 할 때랑 비교하면, 다시 가벼워진 말투.
성지한은 빙글빙글 도는 해골 머리를 보며 피식 웃었다.
“말이 짧다?”
[우린 친구잖니!]
“친구는 무슨.”
[에이, 그러지 말고. 그래. 나 좋은 정보 알고 있어!]
“좋은 거 뭐?”
성지한은 별 기대 없이 물었지만.
[쟤네, 청색의 대기란 거 만들고 있는데…… 혹시 알아?]
“자세히 말해 봐.”
청색의 대기.
‘길가메시의 파편’과 관련된 정보가 나오자, 눈을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