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51화>
‘이제 얘를 어디로 데리고 가느냐가 문제군.’
지구로 바로 데려가기에는,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큰 그림자 여왕.
D급 세계수 행성이나 하나 더 폭파시키면서 물어봐야 하나.
성지한이 잠시 갈 곳을 고민할 즈음.
[청색의 관리자여.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나의 은신처로 가라.]
‘네 은신처?’
[그래. 내가 지금껏 어떻게 비밀리에 활동해 온 건, 은신처가 큰 역할을 했지.]
관리자 직위를 박탈당한 뒤에도, 활발하게 활동을 해 왔던 적색의 관리자.
그가 그렇게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은신처였던 건가.
‘근데 백색의 관리자가 널 케어해 준 거 아니었어?’
[그것도 맞다. 그래서 내가 있었던 은신처 대부분은, 백색의 입김이 닿아 있지. 다만, 마지막 순간에 마련한 곳은 백색의 관리자도 모르는 곳이다.]
백색의 관리자가 모르는 곳이라니.
그럼 쓸 만하겠는데.
‘어딘데 거기가.’
[잠시, 힘을 좀 쓰겠다.]
지이이잉……
성지한의 눈앞에, 화면 여러 개가 떴다가 사라지고.
[이 좌표로 변경되었군.]
적색의 관리자는 은신처의 위치를 특정한 후, 성지한에게 넘겼다.
‘은신처인데 좌표가 바뀌나?’
[계속 이동하고 있는 곳이라 그렇다. 가 보면, 너도 알겠지.]
‘흐음…….’
움직이는 은신처라.
성지한은 적색이 알려 준 은신처 좌표를 바라보았다.
‘이놈이 이제 와서 함정을 팔 거 같지는 않고.’
애초에 함정 팔 거였으면, 적이 700 초과했을 때 했겠지.
어차피 그림자 여왕을 심문만 할 거.
한 번 믿고 가 봐야겠군.
지이이잉……
성지한은 포탈을 열어, 일단 그가 알려 준 좌표로 이동했다.
‘여기가 적색의 은신처인가.’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검은빛의 황무지가 쭉 펼쳐진 장소.
황량한 대지 위에는, 크기가 각기 다른 뼈가 가득했다.
인간 크기의 생명체에서부터.
드래곤 급의 거대한 개체까지 섞여 있는 뼈들.
‘은신처라기보다는 뼈 무덤 같군. 여기 맞냐?’
[확실하다.]
성지한은 주변을 잠시 살폈다.
과연, 별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은신처.
조용하게 일을 진행하기엔, 적합한 장소였다.
‘일단 그럼 일을 진행해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곤 손에 들고 있는 그림자 여왕을 바라보았다.
시험관에서 꺼냈는데도, 여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인 그녀.
‘몸은 정상인데, 그림자 기운이 부족한 건가.’
스스스……
성지한은 그런 그녀에게 그림자 기운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으…… 으…….”
그림자 여왕의 눈꺼풀이 떨리더니, 그녀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성지한 쪽을 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 힘은…… 그대, 설마 청색의 관리자인가?”
온몸이 불타 있는 상태인데도, 상대가 청색의 관리자라고 생각하는 그림자 여왕.
성지한은 그녀가 어떻게 감지한 건지,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림자 기운으로 알아챘나 보군.”
“……맞다. 이 기운의 성질은, 청색의 관리자만이 내뿜을 수 있는 것. 적색의 관리자라 한들, 똑같이 흉내 내진 못해.”
그래도 그림자 여왕이라고, 기운 판별은 잘하나 보군.
성지한은 팔짱을 끼곤 물었다.
“그건 됐고. 그래. ‘증거’가 뭐지?”
“증거……?”
“네가 내 연인이라는 증거 말이다.”
“아. 아. 그거…….”
그 말에, 그림자 여왕이 시선을 슬쩍 회피하자.
화르르륵……!
그녀의 앞에 불꽃이 치솟았다.
“말로 할 때 자백해라.”
“그, 그게…… 미, 미안하다! 사,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연합에서 완전히 날 갈기갈기 찢어, 해체할 기세여서…….”
“뭐 살기 위한 네 노력은 그렇다 치는데. 내가 궁금한 건 증거야. 세계수 연합 놈들에게 뭘 제공했기에 그들이 연인 이야기를 믿은 거지?”
“그게…….”
말끝을 흐리며, 침묵하는 그림자 여왕.
하지만.
“이렇게 말을 못 하는 걸 보니, 더 들어야겠군.”
치이이익……!
그녀의 살갗이 일제히 타오르자.
“아, 아아악……! 마, 말하겠다!”
언제까지고 입을 다물 순 없었다.
그녀는 성지한의 눈치를 보면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그. 네…… 생체 정보를…… 넘겼다…….”
* * *
생체 정보라니.
성지한은 두 눈을 부릅떴다.
“뭐? 그걸 네가 어떻게 가지고 있어?”
“내가 네, 네 손에 있지 않았나. 그때, 자동으로 입수했던 생체 데이터가 있었다…….”
[자동으로 입수했을 리가 없다. 아마 검으로 있을 때, 자신이 나서서 데이터를 수집했겠지.]
적색의 관리자의 말대로.
성지한의 데이터가 자동으로 흘러 들어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마 인류 플레이어가 이렇게 두각을 나타내니까, 뭐 하는 인간인가 정보를 채취하려 했겠지.
암검 이클립스와 손은 항상 이어져 있었으니까.
성지한 모르게, 은밀히 시행하는 건 일도 아니었을 거다.
특히 그때는 성지한도 관리자가 아니라, 플레이어에 불과했으니까.
“허. 감금된 걸 풀어 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는군. 어쩐지 세계수 연합에서 널 예전보다 좋게 취급해 주더라니. 내 정보를 팔았다 이거지.”
화르르르……
성지한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자.
그림자 여왕이 황급히 말했다.
“그. 그래도 가진 정보, 완전히 다 넘기진 않았다. 그래서…… 쓰레기장에 온 남자 하프 엘프들도 ‘재활용 쓰레기’급이었어!”
성지한은 그 말에, 김지훈으로 쓰레기장에 소환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아직, 재활용 쓰레기.
그림자 여왕이 쓰레기장에 있다는 걸 알게 되었던 목소리.
그때 재활용 쓰레기라고 말했던 건, 남자 하프 엘프의 수준이 그 정도라서 그런 건가.
“정보를 더 넘겼으면, 쓰레기급이 아니었겠네?”
“그래…… 맞다! 남자 하프 엘프. 너랑 어설프게 닮지 않았나……? 내가 다 넘겼으면, 똑같았을 거다.”
“참 잘했군그래.”
성지한은 그리 말하며.
스스스……
오른손에 청홍을 소환했다.
“저기. 혹시 그 검…….”
“내 정보를 넘겼는데, 죽어야지.”
그림자 여왕이 넘긴 성지한의 생체 정보.
그건, 분명 남자 하프 엘프를 만드는 데 쓰였을 것이다.
지구에 귀환하자마자 본, 어설픈 가짜들이, 다 이 그림자 여왕 때문에 생산된 거라 이거지.
이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저,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나, 나도 책임져야 하는 쉐도우 엘프들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풀려났으니, 다. 다시 널 돕겠다! 목숨을 바칠 각오로 도와서, 내 죄를 갚겠어!”
“그럴 각오면, 그냥 지금 죽어라.”
성지한의 신체 데이터를 몰래 빼낸 걸로도 모자라, 그걸 살기 위해 세계수 연합에 건네 버렸으니.
더 이상 그녀를 신뢰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녀는 그림자기운을 건네받아 ‘적색의 관리자’ 행세를 하던 이가 사실은 성지한인 걸 알게 되었으니.
여기서 확실히 정리를 해야 했다.
그가 그렇게 검을 뻗으려 할 때.
[그녀에게 원한이 깊은가?]
적색의 관리자가 성지한에게 의념을 보냈다.
‘그 정돈 아니지. 배신한 상대를 못 믿을 뿐.’
[그럼 네 전속 그림자로 쓰는 게 어떻겠나.]
‘그림자로?’
[그렇다. 네가 만든 새로운 프로필, 김지훈을 컨트롤하는 데 있어 쓸 만할 것이다. 그림자의 운영 여부에 따라, 네 본체와 김지훈을 동시에 움직일 수도 있겠지.]
‘흐음…… 내게 귀속을 시키라는 건가.’
[그렇다. 쉐도우 엘프는 여러 종족 중에서도 영체가 주가 된 특이 개체…… 다른 수단을 사용하는 것보다, 이를 매개로 김지훈을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성지한과 김지훈.
지금은 총독의 의심이 좀 풀렸지만, 나중에 또 동시에 움직일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거기에 김지훈에겐 마침 공허가 있으니. 그림자가 그 안에 깃들어도, 저들에게 들키지 않을 것이다.]
‘그건 좋군. 한데 그림자가 또 배신할 상황은 나타나지 않겠나.’
[후후. 그럴 힘도 남겨 두지 않으면 된다. 여왕의 혼도 없애거나, 봉인해 버리면 될 테지.]
‘흠…….’
그럼 그냥 죽이는 거보다, 그림자로 써먹는 게 낫겠군.
푹!
성지한은 청홍을 들어, 그림자 여왕을 찔렀다.
그러자.
“으. 으으…… 정말…… 찌르다니.”
“네가 먼저 시작한 일이다.”
그림자 여왕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자신을 찌른 검을 보다가.
슈우우우우……
검은 연기로 변해, 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림자 여왕’을 그림자의 일부러 귀속시킵니다…….]
[그림자 여왕의 혼을 봉인하겠습니까?]
“없애는 건 안 되나?”
[그림자 여왕의 혼을 소멸시킬 경우, 귀속된 그림자가 흩어질 확률이 있습니다.]
그럼 일단은 봉인해야겠군.
그랬다가 나중에 그림자가 잘 안착하면, 그때 가서 혼을 없애도 되니까.
“봉인해 그럼.”
그의 허가가 떨어지자.
[스탯 적이 100 소모됩니다…….]
스탯이 상당량 소모되더니.
슈우우우……
성지한의 내부에, 새로이 그림자 기운이 안착했다.
‘이거, 확실히 안정적이군. 관리자의 그림자로 쓸만하겠어.’
성지한과 김지훈의 동시 운용 방안으로, 여러 가지를 고안해 보긴 했지만.
주체가 될 성지한이 애초에 관리자로 격이 너무 드높은 데다가, 우주 전역을 돌아다니는 실정이라 이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성좌 레벨 7인 그림자 여왕을 재료로 써서, 만든 새 그림자는.
확실히 관리자의 그림자가 될 만큼 효율이 좋았다.
‘돌아가서 김지훈에 그림자를 심고, 봉인된 혼은 내가 지니고 있어야겠군.’
성지한은 그림자 여왕의 혼을 인벤토리에 넣어 정리를 끝낸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근데 뭐하는 데냐?’
[백색의 관리자의 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은신처다. 너도 어쩌면 알 수 있겠군.]
‘내가 안다니…… 여길?’
성지한은 그 말에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뼈밖에 없는 대지를, 내가 알 일이 뭐 있다고?
그때.
딸깍. 딸깍……
성지한이 장악해 둔 공간의 너머로.
뼈들이 하나둘씩 꿈틀거리더니, 일어나기 시작했다.
[오오오…….]
[주인…… 님…….]
[드디어…… 오셨습니까!]
적색의 관리자 행세를 하는 성지한을 보고는, 주인님이라고 말하며 환호하는 해골 부대.
크기가 드래곤만 하건 인간만 하건 상관없이.
다들 몸을 들썩이며 신을 내는 게, 언데드가 보이기엔 참 경박한 움직임이었다.
‘지닌 힘은 상당하군.’
겉으로 보면 가볍기 짝이 없는 언데드들이었지만.
이들 하나하나가 지닌 힘은, 예상외로 강력했다.
이 정도 언데드 군단을 만들려면, 상당히 고위급 성좌가 힘을 써야 가능한데…….
‘언데드를 다루는 고위 성좌라.’
그런 존재, 하나 알고 있긴 한데.
성지한의 머릿속에 그 상대가 스쳐 지나갈 때.
스스스스……
성지한의 영역 너머로.
검은 두개골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록 머리밖에 없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어떤 언데드보다도 강한 해골.
[주인님!]
딱. 딱.
그는 이빨을 급히 부딪치더니, 적색의 관리자를 보곤 감격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 머리를 이겨 내시고, 이렇게 성공적으로 강림하셨군요!]
성지한에게 매번 자기 머리를 하라고 부르짖던, 죽은 별의 성좌.
적색의 관리자가 마련했다는 마지막 은신처는, 바로 그의 별.
‘죽은 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