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레벨로 회귀한 무신-550화 (550/583)

<2레벨로 회귀한 무신 550화>

그림자여왕이랑 사귀다니.

이게 뭔 생뚱맞은 소리야.

이런 성지한의 반응에, 윤세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역시 안 사귀었구나?”

“당연히 아니지. 그런 이야기가 대체 왜 나온 거냐?”

“그림자여왕이 그렇게 이야기했거든. 삼촌이랑 자기는 한 몸 같은 사이며, 연인이었다고.”

“연인 같은 소리 하네.”

그림자여왕이랑은 그런 건수 자체가 없었는데.

“차라리 한 몸 같은 사이라 말한 건 이해를 하겠다. 그림자여왕이 내 검 역할을 오랫동안 했으니.”

“아…… 그 그림자검? 그래서 한 몸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구나.”

“근데 뭔 연인 소리야?”

“아, 그…… 인류가 세계수 연합 식민지가 되었을 때. 여왕도 도망치려고 하다 잡혔거든.”

지구에서 활동하던 그림자여왕.

그녀가 세계수 연합에게 붙잡히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근데 끌려가기 전에, 자기가 삼촌이랑 그런 관계라고 하면서 엄~청 살려 달라고 어필했어.”

“그래? 그건 좀 추한데.”

“뭐, 이번에 끌려가면 무사하지 못할 테니 그런 거겠지만…… 어쨌든 세계수 연합도 처음엔 믿지 않다가. 그림자여왕이 무슨 증거를 들이미니 믿었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뭐 살기 위해 거짓말했나 보다 싶었던 성지한은.

증거 이야기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증거? 그럴 게 있나?”

“그렇대. 그래서 나 삼촌 찾으러 갈 때만 해도 풀려나서 활동하고 있었어.”

“지구에서 활동하고 있었다고? 근데 왜 쓰레기장에 간 거야?”

세계수 연합이 성지한의 연인인 걸 인정하고, 살려 뒀으면.

계속 여기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성지한의 의문에 대답한 건.

“사업 실패로.”

방에서 나온 성지아였다.

“……사업 실패?”

“어. 여왕 걔 연합한테 대출받아서 방송 사업했잖아. 그거 말아먹었거든.”

성지한은 그 말에 그림자여왕이 예전에 시도했던 방송을 떠올렸다.

뭐 중계권 사고하다가, 파산할 뻔해서 대신 투자해 줬던 거 같은데.

‘역시 오래가지 못했나.’

예전에도 하는 거 보면 말아먹을 줄은 알았는데.

그게 현실로 나타난 셈이군.

“하는 거 보면 망할 것 같더라니…….”

“아, 근데 망한 이유는 운영을 못 해서가 아니야. 세계수 연합 총독부에서 여왕 채널 시청 금지시켰거든.”

“그래?”

“응, 방송국 운영하는데 시청 금지되면 뭐, 사업이 되겠어? 이자도 못 내고 잡혀갔지.”

방송 시청을 총독부에서 금지시키다니.

이러면 그냥 강제로 끌고 가는 거랑 별다를 바가 없는데.

“그다음에 소식이 두절돼서 어디 있나 했는데…… 쓰레기장에서 일하고 있나 보네.”

성지한의 연인이라고 하면서 버틴 게 무색하게, 지금은 키메라 분해하는 신센가.

‘자업자득인 면도 좀 있네.’

연인 핑계 대면서 살아난 것도 그렇고.

끌려간 것도 결국 빚 못 갚아서인 걸 알고 나니, 왠지 그림자여왕을 구하고 싶은 마음이 좀 약해졌다.

그래도.

“일단 거기서 꺼내 오긴 해야겠군.”

“구해 주게?”

“어. 무슨 ‘증거’를 들이밀었기에 연합에서 믿었는지 궁금하거든.”

“아. 그게 나도 궁금하긴 했어. 뭘 보여 줬기에 그 세계수 연합에서 인정을 해 줬을까…….”

“엄마도 몇 번 물어봤는데, 절대 안 알려 주더라.”

저 세계수 연합이 인정한, ‘증거’.

그게 뭔지, 성지한은 그녀를 구출하는 김에 한번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럼 가 볼게.”

“응.”

지이잉…….

성지한은 저번에 입수한 쓰레기장의 좌표를 향해, 포탈을 열었다.

* * *

쓰레기장.

이름과 달리, 흙빛의 황무지만 쭉 펼쳐진 이 땅에서는.

하늘 위에서 키메라가 떨어지면, 그림자기운이 섞인 공허가 독가스처럼 퍼져 나가며 이들을 소거했다.

‘뭐 나야, 기다릴 필요는 없지.’

화르르륵……!

불에 잠긴 채.

적색의 관리자 모드로 들어온 성지한은, 하늘 위에서 대지를 바라보았다.

김지훈의 몸으로는 살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이기 바빴지만.

적색의 관리자로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착.

그가 대지에 발을 디디자.

화르르륵……!

시뻘건 불길이 사방을 향해 뻗어 나갔다.

“으, 으아악…… 뭐야 이거?!”

“이, 이런 맵 아니었는데?”

“키메라 나오기 전이잖아 아직……!”

마침 서바이벌 맵, 쓰레기장을 플레이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이 있는 건지.

갑작스러운 불길에 우왕좌왕하다가 죄다 타 버린 사람들이 적잖았지만.

‘재수도 참 없네 쟤들은.’

뭐 어쩌겠나.

레벨 좀 떨어지고 마는 거지.

성지한은 그렇게 플레이어들을 부수적으로 태워 버리면서, 땅속으로 진입했다.

그러자 한참은 흙만 주야장천 파고들어 갔지만.

어느 정도 들어가자, 대지 아래로 단단한 금속 벽이 눈에 들어왔다.

‘호오, 바로 안 뚫리네.’

처음으로 벽에 의해 전진이 막힌 적색의 관리자.

하나 그 저항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질 못했다.

쿵. 쿵……!

성지한이 그 위에서 발을 몇 번 밟자, 금세 벽은 허물어지고.

그는 쓰레기장의 안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여기도 실험실의 일종인가.’

예전에 길가메시의 파편 회수했던 실험실과, 비슷한 느낌의 공간.

다만 거기와 다른 건, 보랏빛의 공허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온단 점이었다.

그리고.

“적색의 관리자…….”

“어떻게 여기까지!”

예전의 장소는 하이 엘프가 실험을 담당하던 것과는 달리.

여기는 고엘프가 연구진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얘네는 무슨 원로원도 실험을 하고 있네.’

세계수 연합 중, 최고위층들도 쓰레기장 바닥에서 연구나 하는 신세라니.

역시 얘넨, 이그드라실 말고는 가차 없구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그들에게 손가락을 뻗었다.

그러자.

화르르륵……!

대번에 불타오르는 고엘프들.

“으, 으으윽……!”

“재, 재생이…… 따라가질 못한다…….”

하이 엘프처럼 단번에 끝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관리자의 불길에는, 고엘프들도 오래 버티질 못했다.

그렇게 고엘프 둘을 태운 성지한은.

저벅. 저벅.

탐색을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꽤 넓네, 여기.’

저번에 털었던 연구실과는 확실히 급이 다른 크기.

생명체가 담겨 있던 예전 연구실의 시험관과는 달리, 여기에는 공허의 기운이 강하게 응축되어 있었다.

공허 관련 실험실이라 고엘프가 관여하고 있는 건가.

성지한은 잠깐 연구실을 살피다가 생각했다.

‘이거 계속 구경하다간, 시간 지체돼서 쟤들이 그림자여왕 데리고 도망치겠는데.’

어차피 연구실 살펴봤자, 공허 압축한 거 빼곤 볼 거 없으니.

그가 속도를 보다 빠르게 내자.

치이이익……!

연구실 내부는 그의 몸에 붙어 있는 불길로 인해, 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었다.

특히 시험관이 녹아내리면서 공허가 퍼져 나가자.

불과 공허의 기운이 섞이며, 실험실 내부는 생명체가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었다.

한편.

[A-21구역 공허 저장소 파괴. 수복 불가능.]

[A-45구역 공허 저장소 파괴. 수복 불가능.]

연구실의 중심부에선.

고엘프 연구원 10여 명이 모여서, 계속해서 떠오르는 메시지를 지켜보고 있었다.

“공허 저장소…… 딱히 파괴하려고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다 부서지는군.”

“관리자의 힘이 담긴 불길입니다. 아무리 공허를 보관하는 관이 단단하다 한들,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 요청은…….”

“침공 즉시, 해 두었습니다. 한데 청기사의 편성에 시간이 5분 정도 소요한다고 합니다.”

“5분…… 그 시간 안에 방어가 가능할까.”

“…….”

그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킨 채, 화면을 바라보았다.

모든 것을 불태우면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적색의 관리자.

아무리 고엘프라 한들, 청검도 없는 상황에서는.

그냥 잿더미가 될 뿐이었다.

“근데 왜, 적색의 관리자가 세계수도 없는 이곳에 쳐들어온 걸까요?”

“글쎄. 설마 그림자여왕을 노리는 건가?”

“공허 저장소를 그냥 터뜨리는 걸 보면. 여기서 노릴 건 저것밖에 없긴 한데…….”

스으윽.

그러면서 연구실 중심부에 있는 커다란 시험관을 바라보는 고엘프.

시커먼 액체가 가득한 그곳에는, 그림자여왕이 눈을 감은 채로 둥둥 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적색의 관리자가 쓰고 있는 몸은, 청색의 관리자의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청색의 연인을 구하려는 걸까요?”

“글쎄. 적이 청의 몸을 차지했는데, 굳이 구할 필요가 있나?”

“오히려 확실하게 불태우려 하는 것일지도.”

사실, 적색의 관리자가 청색의 연인을 구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고엘프들은 저놈이 갑자기 왜 저러는질,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했다.

대신.

“흠…… 그러고 보니, 청기사들 얼굴 변형을 한다고 하던데.”

“얼굴을 변형한다니요?”

“청색의 관리자가 완전히 제압된 건지. 아니면 틈새가 있는지 알아본다고…… 청기사들을 조카의 얼굴로 모조리 바꾼다더군.”

“그게…… 통할까요?”

“글쎄. 뭐라도 하는 것 아니겠나.”

“음…… 그럼 저희도 해 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러면서 고엘프 연구원 한 명이, 그림자여왕을 가리켰다.

“조카보다는 연인의 얼굴에 더 동요할 거 아니겠습니까?”

“그림자여왕 행세를 하자 이건가?”

“청기사들이 파견되기 전까지, 시간끌기죠. 어차피 이대로 있다간 죽지 않겠습니까?”

“허. 그래도 우리 원로가 쉐도우 엘프 따위로 변형해야 한다니…….”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낫지요.”

스스스스…….

그러면서 처음 말을 꺼낸 연구원이 그림자여왕처럼 모습을 변형하자.

“그래. 적색의 발을 조금이라도 묶어 둘 수 있다면, 무슨 수라도 써야지.”

“모두 그림자여왕의 형태로 모습을 변형하라.”

다른 고엘프들도, 그림자여왕의 모습을 하나둘씩 흉내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총 10여 명이 그림자여왕과 똑같이 변하고.

“하려면 확실히 해야지. 공허처리장도 벗어라.”

“예.”

반가면도 벗어서, 역소환 해 두었다.

그러자 그림자여왕의 모습으로, 쉐도우 엘프 열 명이 나란히 서게 된 연구실 중앙부.

“허. 쉐도우 엘프라니. 참으로 오래 살고 볼 일이군…….”

“근데 겉모습만 따라 한다고, 적색의 관리자가 과연 동요하겠나?”

“뭐…… 잠깐 멈추기만 해도, 청색이 움직일 틈새가 있다고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일단 배틀튜브로 지금 상황, 전송하겠습니다.”

적색의 관리자가 멈칫하기라도 하면.

성지한의 몸뚱어리가 100퍼센트 제어된 게 아니란 근거가 될 수 있으니까.

이들은 그렇게 배틀튜브까지 키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치이이이익……!

금세 중앙 실험실이 녹아내리더니.

적색의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왜 죄다 그림자여왕 행세를 하고 있어?’

성지한은 처음에 황당해했지만.

‘아, 세아 얼굴 따오는 거처럼, 그림자여왕 흉내도 내는 건가.’

금방 저들의 의도를 파악했다.

‘굳이 그림자여왕 모습으로 있는 걸 보면, 걔가 내 연인이라고 확신을 가지고 있나 보네.’

대체 뭘 증거로 내밀었기에, 저놈들이 이렇게 확신을 하는 거야?

성지한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탁.

손가락을 한 번 튕겼다.

그러자.

파아아앗……!

일제히 타오르는, 쉐도우 엘프들.

“큭……!”

“도, 동요…… 한 건가?”

“그, 그랬다기엔 너무 바로 불태우는데…….”

“하지만 적색의 관리자가 그간 보인 속도로 보건대, 잠시 멈춘 건 틀림없습니다……!”

“……맞다. 빨리 이를 보고해라!”

그들은 불타오르는 와중에도.

적색의 관리자가 잠시 공격을 딜레이한 걸 보곤, 이걸 급히 본부에 보고하고 있었다.

자기들 몸 타오르는 거보다, 이 정보를 캐치한 게 중요하다 이건가.

‘거참, 죽는 걸 두려워하는 놈들이 없네.’

하여간 징글징글한 놈들이야.

성지한은 그렇게 고엘프 10명을 일제히 불태워 버린 후.

그림자여왕이 들어가 있는 시험관으로 다가갔다.

‘얘, 처음 구출했을 때보다 어째 대우가 더 좋아 보이는데.’

예전에 그녀를 연합에서 꺼내 왔을 땐 더 상황이 가혹했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냥 시험관 안에 얌전히 보관되어 있는 그림자여왕.

이것도 설마, 그녀가 ‘성지한의 연인’으로 세계수 연합에게 인증을 받아서 그런 건가.

‘대체 뭘 증거로 냈는지, 본인에게 들어 봐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쾅……!

그림자여왕이 보관된 시험관을 터뜨려, 그녀를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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