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42화>
김지훈의 복제 실험.
그것은 매우 손쉽게 진행되었다.
삑. 삑.
버튼을 몇 번 누르자.
스스스…….
김지훈이 갇혀 있던 시험관에서 액체가 찼다 사라지길 반복하더니.
“체성분 복사는 끝났고…….”
주변 시험관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그리고 액체의 가운데에는.
녹색의 빛무리가 미약하게 반짝이기 시작했다.
“정밀 복제도 끝…… 기다리면 되나.”
‘이걸로 끝이라고?’
세계수 연합에서 이런 실험을 한두 번 하는 건 아니겠지만.
뭐 완전 순식간이네.
백여 개가 넘는 시험관에 일제히 빛무리가 반짝이는 걸 잠시 지켜보고 있자니.
드르르륵.
실험실의 자동문이 열리더니, 하이 엘프 한 명이 들어왔다.
“좋은 밤입니다. 어, 어? 뭐야. 부장님! 제 키메라 왜 폐기하셨어요?! 이번엔 성공할 거 같았는데!”
“상부 명령이야. 그것도, 원로원 의장님이 내리신 거야.”
“아…… 의장님이요? 이 반쪽짜리가 뭔데 직접 명령하셨대요?”
자신의 키메라가 폐기된 것에 낙담도 잠시.
새롭게 들어온 연구원은, 눈을 반짝이며 김지훈의 시험관 앞에 가 섰다.
“기존의 반쪽짜리들보다 성지한이랑 가장 많이 닮긴 했는데…….”
“적합도가 성장하는 개체래.”
“오, 정말요? 그런 개체 지금까지 없지 않았어요?”
“그래. 그래서 당장 복제 실험하시란다.”
“그렇구나…… 키메라들을 폐기할 만하네요.”
그렇게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 연구원은, 김지훈을 유심히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얘. 다시 보내기 전에 개인적으로 실험 좀 하면 안 될까요? 저의 ‘하프 엘프 실험실’에서 테스트할 게 많은데.”
“……안 돼. 이 개체 중요 개체라, 본체는 다시 보내기로 했거든. 너한테 주면 얘 죽잖아.”
“아. 조심스럽게 다룰게요! 뇌만 남겨 두면 되는 거 아니에요? 다른 장기야 다 갈아치우면 되니.”
“안 돼. 복제된 애들로 실험해 봐.”
“에이…… 부장님도 아시잖아요. 걔넨 적합도 없을 거라는 거.”
“나도 의장님 명령만 아니면 너한테 대여해 줬을 거다.”
“아쉽네…….”
입맛을 다시며 김지훈을 바라보던 그녀는.
“어쩔 수 없지. 복제되면 한 열 마리 챙겨 주세요. 부장님. 정밀 복제는…… 한 일주일 걸리죠?”
“어, 다음 주에 줄게.”
“음…… 그럼 부장님. 어차피 이놈 복제하느라 기존 실험 다 캔슬됐는데, 저 하프 엘프 실험실 정리 좀 하러 가도 될까요?”
“……그래. 어차피 여기서 할 일도 없으니.”
휙휙.
연구소 부장이 손짓을 하자, 싱긋 웃으며 다시 나가는 연구원.
‘하프 엘프 실험실이라.’
남자 하프 엘프에 대해 다루는 곳인가.
성지한이 따라갈까 고민할 때.
삑. 삑.
연구실 부장이 버튼을 몇 개 눌렀다.
“빨리 보내자…… 내가 해부하고 싶어서 안 되겠어. 눈앞에서 치워야지.”
아까 연구원보고 뭐라고 하더니, 부장 자신도 김지훈을 실험하고 싶었던 건가.
그녀가 버튼을 누르고 나자 시험관 위에는.
십분 뒤 귀환 예정이라는 엘프 문자가 떠올랐다.
‘10분의 여유가 있네.’
그럼 하프 엘프 실험실, 한번 가 볼 만하겠군.
성지한은 김지훈을 놔두고 자리를 떴던 연구원을 따라갔다.
가벼운 걸음걸이로 ‘하프엘프 실험실’로 향하는 그녀는.
뭐가 그렇게 신났는지,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이번 복제품은 괜찮아 보인단 말이야? 성지한이랑 가장 많이 닮았어. 이러다 진짜 ‘성지한’ 만들 수 있을지도?”
진짜 성지한이라니.
이 엘프, 좀 미친 거 같긴 했지만 정상이 아닌데.
‘기존에 봤던 엘프 플레이어들과는 좀 다르군. 좀 더 자아가 강한 느낌인데.’
상명하복이 철저하고 세계수 연합의 부속품 같던 엘프들에 비하면.
보다 자유분방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연구원들.
연구를 하라고 이그드라실이 좀 제약을 풀어 준 건가?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삐빅.
하프 엘프 연구실이 열렸다.
그러자 거기엔.
‘……뭐야 여긴.’
남자 하프 엘프의 머리가 쭉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 벽면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건 성지한의 전신 사진.
‘얘네, 나랑 상당히 닮았네.’
기존의 남자 하프 엘프는 성지한을 애매하게 닮았다면.
여기 진열된 머리는, 그와 상당히 외모가 비슷하게 구현되었다.
얘네 인형은 아닌 거 같은데, 뭐 성형이라도 시킨 건가.
‘……비슷하니까 더 기분이 나쁜데. 이거.’
자기랑 똑같이 생긴, 머리들이.
각양각색의 표정을 지은 채로, 전시품처럼 쭉 나열되어 있는 광경.
성지한도 잔인한 풍경이야 수도 없이 보아 왔지만.
이렇게 ‘자기 머리’만으로 이루어진 진열대는 본능적으로 역겨움을 불러일으켰다.
“더 좋은 샘플이 나왔으니, 아래 애들은 치워야지.”
짝. 짝.
하이 엘프 연구원이 박수를 치자.
퍼퍼펑!
진열대 아래쪽에 있던 머리들이 일제히 폭파했다.
그러자 거기서 터져 나오는 피와 안쪽 내용물들.
“으이그, 지저분해.”
물컹.
연구원은 바닥에 뒹구는 파편을 밟으면서, 입으로 말하는 것과는 달리 미소를 지었다.
그러면서 발걸음을 빠르게 안으로 옮기는 그녀는.
계속해서 진열대 아래에 놓인 것들을 터뜨렸다.
처음에는 머리.
그다음엔 가슴, 팔다리 등.
인체의 조각 조각을 나열한 진열대를, 싹 정리해 나갔다.
“빨리 배양되라…… 내 지한이 완성시켜야 해…….”
할짝.
뺨에 튄 피를 핥으며, 기대에 찬 눈빛으로 실험실 중앙에 다가선 그녀는.
“지한아, 안녕?”
실험실의 가운데.
거대한 시험관 안에, 남자 하프 엘프의 몸을 짜깁기 한 키메라를 보며 손 인사를 했다.
머리 셋에, 팔다리가 6개 달린 그 키메라는.
벽면에 붙었던 성지한 전신 사진의 모습을 억지로 합체해 놓은 것 같았다.
‘여긴 확실히 완전히 소각해야겠군.’
자신을 셋 합친 듯한 키메라라니.
진짜 별 짓거리를 다 하는구나.
성지한은 얼른 적색의 관리자로 변해, 여길 모조리 불태우고 싶은 심정이었다.
‘쟤도 확실히 없애고.’
성지한 키메라를 보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는 연구원.
저 엘프를 살려 두면, 이 연구실에 나가서도 또 이딴 실험을 진행하겠지.
일단 쟤부터 없애고 시작해야겠다.
‘이곳의 행성 좌표는 확인했고.’
성지한은 이 행성에서 연구실의 위치를 확실하게 파악하곤, 김지훈의 몸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느새 거의 다 지나 있는 십분.
시험관 유리의 숫자가 0이 되자.
번쩍……!
김지훈이 들어가 있던 시험관에서 빛이 번쩍이더니.
그의 몸이 다시 지구로 되돌아갔다.
* * *
남산의 총독부.
“으…….”
김지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 난 집에서 자고 있었는데…….”
소드 팰리스의 방과는 전혀 다른 장소.
새하얀 바닥에 뒹굴다 깬 그는 영문을 몰라 했다.
‘이렇게 연기력만 느는군.’
안에 있는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면서, 계속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번쩍……!
허공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부총독 트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은 어떻습니까? 김지훈 플레이어.”
“아…… 괘, 괜찮은 것 같습니다.”
“그래 보이는군요.”
그를 유심히 살피던 그녀는, 입을 천천히 열었다.
“방금 전, 검의 전당에서 당신을 특별 호출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육신이 원래 있던 장소가 아니라 이곳에 있게 된 겁니다.”
“그, 그렇습니까? 전혀, 기억이 안 나서…….”
“이러한 특별 호출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자긍심을 가져도 됩니다.”
속사정은 실험실에 소환돼서 복제된 거에 불과하지만, 포장은 그럴듯하게 하네.
김지훈이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이번 특별 호출에 대한 보상으로, 당신에게 엘프 비서가 주어졌습니다.”
“엘프…… 비서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짝.
트리아가 박수를 치자.
양복을 입은 엘프 한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부터 24시간, 김지훈 플레이어를 보좌하게 될 겁니다. 미아, 인사드리세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지훈 님.”
꾸벅.
김지훈을 향해 고개를 숙이곤, 싱긋 웃는 엘프 비서.
하나 눈은 웃지 않고,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이것 참, 대놓고 감시 붙이겠다는 거네.’
이그드라실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붙이는구나.
성지한은 속으론 귀찮겠다 싶었지만.
겉으로는 기쁜 안색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자, 잘 부탁드립니다! 미아…… 님.”
“어머, 이제부터 지훈님 개인 비서로 일하는 입장이니,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그래도 엘프님한테 어찌…….”
남자 하프 엘프가 아무리 대우받는다고 해도 하프 엘프.
진짜 ‘엘프’에 비하면, 신분에선 확실히 아래 등급이었다.
김지훈이 그렇게 주저하는 태도를 보이자.
“후후, 정말 괜찮습니다. 앞으로 말 편하게 해 주세요. 꼭요.”
미아는 다시 한번 그에게 하대를 권했다.
“아, 알겠어…….”
“그럼 제가 직접,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소드 팰리스에 거주하시는 것, 맞으시죠?”
“응.”
지이이잉…….
그러자, 바로 열리는 포탈.
“포탈을 열었습니다. 가실게요, 지훈 님.”
너무나도 손쉽게 포탈을 여는 엘프 비서.
김지훈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 안에 들어갔지만.
‘……왜 엘프가 아니라 하이 엘프가 붙었지?’
성지한은, 엘프 비서가 힘을 쓸 때.
그녀에게서 생명의 기운이 강렬히 뿜어져 나오는 걸 보곤 의아함을 품었다.
미아의 머리카락 색이야, 엘프의 금발이긴 하지만.
포탈을 열었을 때 보인 기운은 확실히 엘프 수준이 아니었다.
‘어째, 부총독보다도 강한 거 같은데.’
성지한의 눈썰미 정도가 아니고서는, 알아보기 힘든 힘의 차이.
하나 그는 확실히 그 차이를 파악했기에.
갑자기 새로 생긴 비서, ‘미아’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곤 공간을 이동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집.
“집이 참 아담하군요.”
미아는 김지훈의 방을 둘러보곤, 그렇게 감상평을 내렸다.
‘여기 그래도, 강남 한복판에선 꽤 좋은 집인데 말이지.’
애초에 성지아가 가장 좋은 방을 마련해 준다고, 소피아가 쓰던 방 준 거였으니까.
혼자 살기엔 이만한 집도 없었다.
다만 엘프 눈에는 좁아 보일 수도 있겠지.
김지훈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이사…… 가야 할까? 둘이 살기엔 좁겠지?”
“아뇨. 저는 아담해서 너무 좋아요.”
씨익.
미아는 김지훈의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지훈님을 곁에서 계속 보필할 수 있잖아요.”
“저, 근데 말이죠.”
“말 편하게 해 주세요.”
“아. 그래…… 근데. 그. 나한테 딱히 비서가 필요할까? 나 정말 별일 안 하는데…… 집돌이라.”
집에서 김지훈 드라마 보게 눕혀 놓고.
니네 행성 초토화시켜야 한단 말이다.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미아는 웃는 낯으로 대답했다.
“괜찮아요. 사실 비서라고 했지만 제 주요 업무는 김지훈 님의 호위랍니다.”
“호위…….”
“네.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원래 하던 일 계속 하시면 된답니다.”
“아, 알았어.”
호위 명목으로 어떻게든 눌러앉겠다 이거지.
귀찮게 구네 정말.
‘그래도 뭐 빠져나갈 방법이야 많지.’
눈앞의 상대가 이그드라실 정도가 아닌 이상에야.
성지한이 김지훈의 몸에서 빠져나갔다 들어오는 건, 그녀도 전혀 알아챌 수 없겠지.
‘차라리 잘됐군. 그녀가 보는 앞에서 테러하러 가야겠네.’
이러면 오히려, 김지훈은 확실하게 알리바이가 생기겠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명백히 엘프 비서를 어려워하는 태도를 취했다.
“그, 그럼…… 앞으로 호위 잘 부탁해.”
“네. 저만 믿으세요. 김지훈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