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41화>
지지직…….
하늘과 땅을 잇는 거대한 나무 기둥에서, 적뢰가 이어서 증식하자.
성지한은 생각했다.
‘녹색의 관리자라면 충분히 적뢰를 끌 수 있었을 텐데, 일부러 남겨 뒀군.’
비록 적뢰무한의 힘이 강하긴 했지만, 이그드라실 정도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을 텐데.
굳이 이걸 내버려 둬서 지구에 던진 이유는.
청검이 적색권능에 확실히 대항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
‘흠…… 이거, 쉽게 안 될 텐데.’
적뢰는 성지한의 무공에서 응용된 힘.
저걸 끄기엔, 아직 청검의 수준이 너무 낮았다.
이거, 꽤 오래 걸리겠는데.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두둥실…….
검이 된 ‘김지훈’을 들고 있던 한 고엘프가 상공으로 떠오르더니.
하이 엘프들에게 지시했다.
“적합도가 낮은 부대부터 시작하라.”
“네.”
나무 기둥을 향해 빙 둘러선 하이 엘프 무리.
그들은 일제히 청검을 뽑아, 이를 기둥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기둥에 휘감겨 있던 적뢰가 청검에 닿았고.
파지지직…….
몇몇은 잘 버텨 냈지만.
대부분의 검이, 적뢰를 이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윽…….”
“검이 역소환되었습니다.”
“그 검, 적합도는 몇이었지?”
“7퍼센트입니다.”
“형편없군. 적뢰조차 이겨 내지 못하는가.”
“10퍼센트 이하의 검은 붉은 전류에 버티지도 못하는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적합도 10퍼센트.
이 기준은 남자 하프 엘프 중에서도 상당히 뛰어난 편에 속했다.
하이 엘프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이 기준치 이상의 청검을 지니고 있고.
대부분은 고엘프가 손에 들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10퍼센트 미만 검이 탈락하면서.
자연스레, 다음 검증은 고엘프 위주로 진행되었다.
“검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붉은 전류를 없애지도 못하는군.”
“너무 쓸모가 없는데요?”
“이 검은 좀 쓸 만합니다. 주변 전류를 밀어내고 있어요.”
10퍼센트대는 적뢰에 버티는 게 고작이고.
20퍼센트쯤 되어야, 전류를 이겨 내기 시작하는 청검.
적합도 20퍼센트 이상은 매우 드문 숫자임을 생각한다면.
청검의 효용성은 낮게 평가될 수밖에 없었다.
“흠…… 이제 남은 건 20퍼센트 위의 검뿐인가.”
“이들은 그래도 쓸 만합니다. 다만, 우주수의 기둥에 가져다 대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아무래도…… 검을 꽂아 봐야 할 것 같은데.”
“하나 이 기둥은 우주수의 일부 아닙니까? 이걸 어찌…….”
우주수의 손에서 뒤바뀐 나무 기둥.
세계수 연합에서 절대신이나 다름없는 이그드라실의 육신에 검을 찔러 넣을 만큼 간 큰 고엘프들은 없었다.
결국.
“우주수께서 친히 검증을 허락하셨다. 망설이지 말고 검을 꽂아라.”
“알겠습니다, 의장님.”
검이 된 김지훈을 손에 들고 있는 고엘프가 명령하자.
그제야 행동을 시작했다.
‘이 고엘프가 원로원 의장이었군.’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있는 고엘프.
그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반가면도 쓰지 않고 있었다.
신분이 높은 순으로 좋은 검을 가져갔기에, 이 엘프도 원로원 중에서 꽤 높은 직책을 지녔으리라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의장이면 거의 최고 위치 아닌가?’
물론 세계수 연합의 원로원 체계가 어떤진 모르겠지만.
의장이 직접 선택할 정도면, 청검 ‘김지훈’을 상당히 높게 평가하나 보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고엘프들이 청검을 꽂아 넣는 걸 지켜보았다.
검이 기둥에 들어가자.
파지지직……!
청검이 일제히 기둥 내 적뢰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확실히 20퍼센트쯤 되니, 쓸 만한 청검.
하나 검은 그 주변의 전류만 막아 낼 뿐, 근원을 없애진 못했다.
[기대 이하로구나.]
이그드라실은 이를 보고 실망한 기색을 드러냈다.
[청은 원래 적에 상극이었던 힘. 한데 적색의 관리자가 성지한을 장악하며, 그러한 상성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 것인가.]
스탯 청은 적의 대항마로써 등장한 능력이었으니.
청의 기운은 적에 대해 불가해한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비록 청검이 효과가 없진 않았지만.
그때만 한 상성 관계를 보여 주진 못했다.
[청색의 관리자…… 죽을 거면 그냥 죽지, 적색의 관리자에게 힘을 보태 버렸어.]
청검이 예전처럼 통하지 않은 걸 보면서, 성지한 탓을 하는 이그드라실.
그는 이를 들으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청검의 쓸모가 너무 없으면, 세계수 연합에서 이 프로젝트를 지속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는 냉정히 현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청검이 얼마나 작용하는지 알기 위해, 진행한 테스트.
여기서 기대 이하의 모습을 계속 보인다면.
이놈들이 뭔 짓을 저지를지 모른단 말이지.
‘일단은 청이 통하는 걸 보여 줘야겠군.’
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나머지도 다 꽂아 보아라.]
“알겠습니다.”
마침, 원로원 의장도 들고 있던 검, ‘김지훈’을 찔러 넣었다.
‘좋아.’
김지훈을 매개로, 힘을 써야겠군.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천천히 작업을 진행했다.
* * *
1시간 후.
[최상위 등급은 그래도 다르구나.]
이그드라실은 아까와는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기둥에 퍼졌던 계속해서 피어오르던 적뢰가.
반절 정도 사라진 채, 다시는 재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합도가 역시 중요하군.”
“10퍼센트짜리 검 수천 개가 있어 봤자 소용이 없어.”
“청 스탯 자체는 후자가 훨씬 많을 텐데 말이지.”
고엘프들이 그렇게 우주수의 적뢰가 줄어든 걸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이 검이 특히 쓸 만하네.]
번쩍……!
나무 기둥에 꽂힌 검들 중 하나가 초록빛으로 빛났다.
“랭킹 1등, 적합도 25퍼센트의 검입니다.”
[적합도 25퍼센트…… 그쯤은 되어야 실전에 쓰겠어.]
이그드라실이 그렇게 남자 하프 엘프 랭킹 1등에 대해 후하게 평가를 내리고 있을 때.
“이 녀석, 성장하는 검이라더니…… 아직 1등에겐 안 되는구나.”
원로원 의장은 자신이 꽂아 넣은 검을 보고는 콧수염을 쓰다듬었다.
랭킹 1등의 검과는 달리, 주변 적뢰를 겨우 밀어내는 데 고작인 청검 ‘김지훈’.
성지한은 의장의 평가를 들으며 내심 웃음을 지었다.
‘의도대로 되었군.’
김지훈을 매개로, 적뢰를 눈에 안 띄게 컨트롤할 수 있었던 성지한은.
그의 청검이 아니라, 랭킹 1등 쪽에 있는 적뢰가 사라지도록 작업을 진행했다.
‘김지훈의 특징은 성장하는 것으로도 족하다.’
청검 김지훈이 성장도 하고, 혼자 적뢰도 없앤다면.
아무래도 이그드라실의 의심을 살 우려가 있었다.
이 어그로는 랭킹 1등이 가져가도록 해야지.
[아직은 실험을 유지해야겠구나. 쓸모가 있어.]
이그드라실은 그렇게 최종 평가를 내리곤.
슈우우욱……!
나무 기둥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러자 다시 땅바닥에 놓인 손.
그 손이 초록빛에 잠시 물들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적뢰가, 단번에 꺼졌다.
‘역시 적뢰 정도론 큰 타격이 안 되는군.’
성지한이 이를 보곤 이그드라실의 힘을 가늠할 때.
[이곳의 연구 보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게 직속으로 올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성장하는 개체가 있다고 했나?]
“예, 이 검입니다.”
원로원 의장이 자신의 청검을 공손하게 이그드라실에게 바쳤다.
[흐음…… 그래.]
이그드라실의 손은 검을 몇 번 매만지더니, 다시 의장에게 이를 넘겼다.
[이 재능, 복제해 봐. 무슨 수를 써서든.]
“예, 실험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리고 최상위 청검에 엘프들을 24시간 붙여.]
“엘프들을 말입니까?”
[그래. 특히 1위는 면밀하게 감시해. 적뢰가 반 사라진 게, 약간 미심쩍거든.]
“네, 알겠습니다.”
‘……어그로를 랭킹 1등이 가져가게 하길 잘했군.’
아까 적뢰를 조심히 없앤다고 없앴는데.
그럼에도 이그드라실의 촉은 살아 있었다.
만약 성장성을 지닌 김지훈이, 적뢰마저 없앴으면.
감시가 이쪽으로 집중됐겠지.
‘그래도 김지훈도 최상위 청검 중 하나니, 엘프가 오긴 하겠네.’
혼자만의 자취 생활도 끝인가.
성지한이 그리 생각하고 있을 때.
[그럼, 의장이 지구에 남아서 매일 내게 보고하도록.]
“성심성의껏 부여하신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우주수시여.”
[그래, 믿겠어.]
이그드라실은 원로원 의장까지 지구에 남기곤.
슈우우우.
땅바닥에 내려놓았던 손을, 다시 하늘 위의 포탈로 회수했다.
“실험이라…… 뭐가 좋겠나. 복제?”
“실험 결과, 남자 하프 엘프를 아무리 복제해도 적합도는 본래 개체만 지니고 있다고 했습니다만…….”
“성장성 있는 남자 하프 엘프는 다를지도 모르지. 복제부터 시작해.”
“알겠습니다.”
툭. 툭.
원로원 의장이 청검을 두드리자.
김지훈의 몸이, 검에서 원래의 하프 엘프 육체로 돌아갔다.
“실험실로 데려가.”
“네.”
그러자 그 몸을 들고, 포탈을 열어 그리로 쑥 들어가는 고엘프.
포탈 너머에는, 시험관이 가득한 실험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가 땅을 밟자.
“아니, 원로께서 직접 이곳에 오시다니……! 여, 영광입니다.”
하이 엘프 하나가 얼른 뛰어와서, 고개를 연신 숙였다.
“인사는 됐고. 다른 업무는 중단하고, 이놈 복제를 최우선으로 하라신다.”
“그. 복제 실험 결과에 대해선 저번에 보고를 드렸습니다만…….”
“의장님 지시 사항이다.”
“아. 네. 진행하겠습니다.”
하프 엘프 복제는 효과 없단 이야기를 꺼내려던 연구소 직원은.
의장 이름이 나오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바로 명을 받아들였다.
툭.
고엘프가 김지훈을 바닥으로 내던지자, 이를 안아 든 하이 엘프는.
“혹시, 이 개체만의 특이성이 있습니까?”
“이 자의 적합도는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성장한다고 한다.”
“오…… 확실히 복제를 진행해 볼 개체군요.”
“그래. 최우선 지시 사항이니 다른 것보다 이것부터 진행하도록.”
“알겠습니다.”
“체성분 복사가 끝나면, 본체를 다시 지구 총독부로 보내라.”
그 말을 끝내고 사라지는 고엘프.
하이 엘프 연구원은 그가 가자 안도의 한숨을 쉬곤, 실험실을 둘러보았다.
“이번 키메라는 쓸 만한 게 나올 줄 알았는데…….”
시험관에 가득 담겨 있는 건, 여러 종족이 뒤섞인 키메라들.
그녀는 그걸 보고 아쉬워하다가,
“……그래도 의장님 명령부터 처리해야지.”
삑.
기계장치로 가서, 버튼 하나를 눌렀다.
“키메라 전부, 방출해. 쓰레기장으로 보낼 거야.”
[좌표를 입력해 주십시오.]
“좌표는…….”
삑. 삑삑.
떠오르는 화면 위로, 행성 좌표를 입력하는 연구원.
입력이 끝나자.
번쩍. 번쩍……!
시험관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키메라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 이번엔 성공할 수 있었는데…….”
그걸 보고 입맛을 다시던 연구원이, 김지훈의 몸뚱어리를 빈 시험관에 넣을 즈음.
김지훈의 몸에서 빠져나와, 실험실을 살펴보던 성지한은.
화면에 입력해 둔 좌표 번호를 보곤 눈을 빛냈다.
‘쓰레기장 좌표가 저거였군.’
그림자여왕이 갇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 쓰레기장.
이런 데서 그 좌표를 알게 될 줄은 몰랐네.
‘나중에 적색의 관리자 형상으로 쳐들어가 봐야겠네.’
그는 그렇게 좌표를 기억해 두곤.
“근데 아무리 성장성 있어도 복제 실험 안 될 거 같은데…… 아. 내 키메라가 아까워…….”
불만에 가득 차 웅얼거리는 연구원의 복제 실험을.
허공에 둥둥 뜬 상태로 지켜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