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40화>
집으로 돌아온 성지한은 몸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좀 여파가 있군.’
적이 치솟으면서, 끓어올랐던 충동.
이건 아이러니하게 적색의 관리자가 막아 주었지만.
그때의 고양감은 아직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성지한은 청홍을 꺼내 보았다.
적색의 것으로 위장했을 때와는 달리, 고고하게 빛나는 푸른 검.
안쪽의 붉은빛은 여전히 청에 막혀 힘을 쓰지 못했지만.
‘내가 봉인을 해제하면, 금방이고 번지겠지…….’
지구에서 이걸 터뜨릴 순 없고.
세계수 연합의 행성 하나에 또 쳐들어가서 봉인을 풀면.
금방 세계수를 집어삼키곤, 명계의 힘을 순식간에 수복할 것이다.
그럼 아까보다 훨씬 강렬한 감각이 몰아치겠지.
‘하지만 그럼 성지한으로서의 삶은 끝날 거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럴 수야 없지.
그는 검 안의 붉은빛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청홍을 다시 목으로 가져갔다.
목 뒤로 스며들어, 문신의 형태가 된 검.
‘그 감각은 잊자.’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며 애초의 목적을 떠올렸다.
세계수 연합이랑 예상한 것보다 크게 부딪치긴 했지만.
어쨌든 처음 거기 간 목적은, 봉인 상태인 백색의 관리자에게 미끼 역할을 하기 위한 것.
이렇게 난리를 벌였으니, 그쪽에서도 알아채긴 했겠지.
‘어디, 과연 백색이 떡밥을 물까.’
아무래도 흑색의 관리자에게 당한 봉인이다 보니까.
곧바로 반응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 계속 미끼를 흔들어 보고, 그럼에도 봉인에서 안 나오면.
‘그럼 그냥 그대로 세계수 연합을 박살을 내면 되겠지.’
S급은 아까 같은 감각을 느낄 수 있어 무리더라도.
A급 세계수가 있는 행성 정도는, 계속 공격해도 될 터.
‘물론 이그드라실과는 지금 맞붙을 수 없겠지만.’
아까 적뢰무한으로 부순 것도 결국 이그드라실의 포탈과 흔적 정도지.
그녀의 본체와 제대로 맞붙기엔, 아직 힘이 모자랐다.
‘청까지 다 쓰면서 붙으면 싸움 자체는 될 거 같지만. 장기전으로 가면 결국 이쪽이 불리해.’
무한한 서포트를 받는 저쪽에 비해, 성지한의 청홍은.
적 700이라는 제한선이 꽤 제약을 주고 있었다.
아까처럼 힘을 회복하다가 충동에 사로잡히면.
전투에선 승리할지 몰라도 성지한은 적색의 관리자로 변모하겠지.
거기에.
‘그럼 흑색의 관리자가 개입할 거다. 청홍의 봉인을 푸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배틀넷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 흑색의 관리자.
그가 개입하기 시작하면, 아무리 명계의 봉인을 풀었다고 해도 쉽지 않겠지.
뭐 사실 그때가 되면, 봉인을 푼 성지한은 성지한이 아니라 적색의 관리자와 합일한 존재가 되어 버릴 테니.
그가 죽어도 남의 일이 되는 거긴 하지만.
어쨌든 녹색의 관리자와 지금의 힘으로 맞붙는 건, 승산이 희박했다.
‘역시 연합이 만드는 청검을 탈취하는 게 좋겠군.’
청을 SSS급으로 발전시키면.
현재의 무위도 늘어남은 물론, 스탯 적의 한계량도 같이 늘어나니까.
역시 가장 쉬운 길은, 완성된 청검을 탈취하는 것이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침대에 앉아 멍하니 TV를 보고 있는 김지훈을 주시했다.
‘확실히 환염, 효과가 좋네.’
잠들게 놔두면, 검의 전당으로 소환될 수 있으니까.
일부러 TV를 보고 있게 설정해 둔 김지훈의 육신.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몰라서, 드라마를 연속 재생해 놓고 나갔는데.
막상 보고 있는 건 2화 중간 정도였다.
‘이 몸, 지금보다 더 주목을 받게 해야겠어.’
안 그래도 성장하는 남자 하프 엘프라고, 세계수 연합에서 관리를 받고 있는 김지훈.
여기서 더 나아가서.
확실하게 남자 하프 엘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해야, 청검의 완성에 있어서 중요한 재료로 쓰이겠지.
그때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검을 가져간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그의 몸에 다시 들어갔다.
그러자.
스으으으…….
김지훈에 맞춰져서, 급격하게 약해지는 육신.
‘이제 자면, 검의 전당으로 소환되겠네.’
과연 거기서 출장 오던 고엘프 중, 아까 죽은 이가 있을지 궁금하네.
성지한은 TV를 끄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뭐야, 소환 안 해?’
다음 날 아침까지.
더할 나위 없이, 숙면을 취했다.
* * *
‘어제 일 때문인가.’
하긴, 워낙 엘프 군단을 많이 없애 버리긴 했지.
포탈 하나당 고엘프 1명에 하이 엘프 정예가 끼어 있었으니.
거기서 꽤 심대한 타격을 입은 모양이다.
‘길드 가서 얘 레벨 업이나 해야겠다.’
남자 하이 엘프 중 최고가 되기 위해선, 평소에도 정진을 해야지.
그리 생각한 그가 김지훈의 몸으로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할 무렵.
스스스스…….
천장이 보랏빛으로 물들더니.
휙!
“삼촌! 삼촌! 무슨 사고를 친 거야?!”
윤세아가 머리를 거꾸로 내밀었다.
“야, 옷 갈아입는데 귀신처럼 튀어나올래?”
“헤에. 엘프 몸도 안은 인간이랑 별다를 바 없네? 근데 가슴에 세계수 마크 있네.”
집 바닥에 착지하더니, 세계수 문양을 유심히 바라보던 그녀는.
금방 고개를 끄덕거렸다.
“위치 추적, 생태 파악과 같은 기능이 탑재되어 있네. 실시간 감시 기능 같은 건 없으니, 나 얼마든지 여기와도 되겠다.”
“오. 좀 알아본다?”
“이래 봬도 나름 공허의 상위 서열이랍니다.”
“아이고, 잘나셨네요.”
“제가 아무리 용을 쓴다 해도, 관리자님만 하실까요. 어제 대형 사고를 친.”
윤세아는 웃으며 대답하다가, 사고를 거론하곤 갑자기 표정을 싹 바꾸었다.
“아, 그래. 사고! 삼촌, 삼촌이지 그거?”
“뭐.”
“우주수의 뿌리 행성 초토화시킨 거!”
“우주수의 뿌리는 또 뭐냐? 뭐, S급 세계수 하나 없애긴 했어.”
“와……!”
성지한이 그냥 간단히 외근 다녀온 양 이야기하자.
윤세아가 어이 없단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우주수의 뿌리는 이그드라실이 관리자가 되기 전부터 지배하던 장소야. 세계수 연합의 역사를 시작부터 함께 한 곳인데, 그런 델 없애 버렸다고?”
“내 알 바냐. 그런 게. 너야말로 뭐 그렇게 잘 알고 있냐?”
“지구 식민지 만든다고 했을 때, 내 나름대로 연합에 대해 조사했지.”
“그래? 그럼 연합 행성 좌표 아는 거 있으면 넘겨줘.”
“아, 잠깐만.”
윤세아는 그 말에, 배틀넷 커뮤니티를 열었다.
그러면서 익숙한 손놀림으로 들어가는 곳은, 정식회원 게시판.
‘……거긴 이미 캡처했는데.’
성지한은 그리 말하려다, 그냥 내버려 두었다.
조카가 나름 용을 쓰는데, 봐주는 미덕도 필요하겠지.
그런데.
“여기 공지 사항 보면…… 엥? 없네? 어, 뭐야. 이 공지.”
[세계수 연합 측의 요청으로 인해, ‘세계수 연합 영역 업데이트’ 글을 내립니다.]
윤세아는 새 공지 사항을 보여 주며, 얼굴을 찌푸렸다.
“이거 삼촌 때문에 내렸나 봐? 어쩌지?”
“괜찮아. 거기 좌표는 이미 캡처했어.”
“헐, 진짜? 그럼 아까 나 할 때 이야기해 주지.”
“뭐 나름 열심히 하길래. 그냥 지켜봤지.”
“에이…… 뭐야. 나 이번엔 도움 될 줄 알았는데.”
그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며 게시판 글을 바라보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근데 삼촌…… 이거 무슨 하루 만에 너무 소문 다 났는데? 성좌들 만만치 않구나.”
“그러는 넌 어디서 알았냐, 이 정보? 게시판은 아닌 거 같고.”
“나? 난 메신저가 알려 줬어. ‘우주수의 뿌리 폭파. 적색의 관리자로 추정되는 존재, 모습을 드러내.’라고 와있더라.”
윤세아는 그러며 보랏빛의 메시지 창을 띄워 성지한에게 보여 주었다.
이건 공허의 시스템 창인가.
무슨 뉴스 헤드라인처럼 메시지가 와 있네.
“이 외엔 별 메시지 없고?”
“응? 어.”
“그럼 그 정도 힘을 쓰는 건 역시 흑색도 신경 안 쓰나 보군.”
“그 봉인이 완전 개방되는 정도가 아니면, 전혀 상관 안 하실 거야. 오히려 세계수 연합을 제압해 주면, 이쪽 일 대신 해 주는 거니 좋지.”
세계수 연합을 제압하는 게, 공허의 일을 대신하는 건가.
그러고 보면.
“왜 공허는 세계수 연합 내버려 두고 있냐? 애매한 종족보다, 저놈들부터 청소해야 하는 거 아니야?”
“글쎄요. 나도 모르지…… 나도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고.”
“흐음…… 공허의 기준은 잘 모르겠군.”
영생을 사는 게 문제고 제거해야 한다면, 세계수 연합만한 암 덩어리가 없지 않나?
성지한은 매번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이는 흑색의 관리자를 생각하며 미간을 좁혔지만.
‘세아가 저리 말할 정도면, 일단은 개입하지 않겠네.’
명계의 힘을 좀 가져다 써도.
공허 쪽에선 이 일에 끼어들 생각이 없음을 알게 되었으니 나름 소득은 있었다.
그럼, 백색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이그드라실 쪽만 상대하면 되겠군.
성지한이 그렇게 상황을 정리할 때.
번쩍. 번쩍……!
김지훈의 가슴팍에 있던 세계수 문양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러자.
[청기사를 검의 전당으로 긴급 소집합니다.]
[안전한 장소에 누워, 곧 있을 소환을 준비하십시오.]
[다시 한번, 청기사에게 모두 고합니다.]
[1시간 후, 소환이 시작됩니다.]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일제히 떠올랐다.
특히 다른 메시지와는 달리, 맨 마지막.
‘1시간 후 소환이 시작됩니다’는.
메시지 창을 끄는 버튼도 사라진 상태였다.
“긴급 소집이라니…… 적색의 관리자가 등장해서 그런 건가?”
“그러게. 얘네 반응 좀 빠르더라.”
“삼촌, 갈 거지?”
“어. 뭐 하나 구경해야지.”
“제대로 내부의 첩자로 들어갔네.”
스스스…….
윤세아는 천장에 손을 뻗었다.
“그럼 삼촌도 준비해야 하니, 가 볼게. 나중에 무슨 일 있었나 이야기해 줘~”
“그래. 쉬어라.”
슉!
그렇게 윤세아가 사라지자.
성지한은 다시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었다.
‘이거, 속보로 떴네.’
남자 하프 엘프 긴급 소집.
이건, 이들에게만 메시지로 뜬 게 아니라.
모든 뉴스 매체에서 긴급 속보로 떠 있었다.
총독부에서 따로 지령이라도 내린 건가.
-대체 무슨 일인데 이래?
-남자 하프 엘프 긴급 소집이라니…… 큰일이라도 나려나 ㄷㄷ
-이런 건 총독부 들어서고 처음이네; 별일 아니었으면…….
사람들은 긴급 속보를 보면서, 대체로 불안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근데 1시간 내에 누워 있으면 된다니, 잠자는 게 일임? 하프 엘프는.
-검의 전당으로 소환된다고 나왔잖아 ㅡㅡ 거기서 할 일 하겠지.
-ㄹㅇ 겉으로 보기엔 한량처럼 보여도, 다 검의 전당에서 본업 하는 거임.
-거기서 피나는 수련이라도 하지 않을까? 자고 일어나면 레벨 업 되잖아.
‘한량 맞는데.’
성지한은 남자 하프 엘프를 자기 일마냥 실드 쳐 주는 사람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실제론 엘프들의 검이 돼서, 인류의 청을 착취하는 데 쓰이고 있구만.
총독부에서 최고급 대우를 해 주니까, 사람들도 이에 따라 남자 하프 엘프를 추종하고 있었다.
‘긴급 소집이라고 해도, 또 검이 되려나.’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또다시 잠을 청했다.
스스스스…….
그러자, 이번엔 어젯밤과는 달리 소환되는 검의 전당.
처음 진입 때와는 달리.
이번엔 관객석에 앉지도 않고, 그는 다짜고짜 검으로 변해 바닥에 꽂혀 있었다.
‘인트로는 끝났다 이거군.’
성지한이 검 형태로 가만히 기다리고 있자니.
슉. 슉.
허공에서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는 고엘프들.
반가면을 쓴 이들은, 하나같이 침통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원로원에 빈자리가 많아졌군.”
“선배님도, 안 오시는 겁니까…….”
“적색의 관리자 놈…… 반드시, 복수를 해야 합니다.”
“적의 일족이 남아 있었다면, 그들을 멸족시켰을 텐데. 복수할 대상이 하나밖에 없다니 아쉽구나.”
지난밤에 크게 피해를 입은 원로원과 엘프 군단.
그들은 동료들을 추모하며, 적색의 관리자에 대한 복수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하이 엘프의 희생에 대해선, 별로 의미를 두지 않아도.
고엘프들끼리는 각별한지,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았지만.
‘애초에 너희가 시작을 하지 말았어야지.’
이를 본 성지한은 별 감흥이 없었다.
당한 건, 반드시 복수한다.
그게 그의 기본적인 마인드였으니까.
그렇게 원로원이 모여 각자 동료들을 추모하는 게 끝나자.
“……이제 내려오신답니다.”
“이 검, 의미가 있어야 할 텐데.”
“쓸모없으면 인류나 멸족시키죠. 이들도 적색의 관리자가 만들어 낸 종족 아닙니까?”
“어차피 쓸모가 있어도 청을 다 흡수하면, 폐기할 종족이었다.”
“좀 더…… 빨리 하고 싶습니다.”
“참아라. 그때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원로원과.
뒤이어 도착한 하이엘프들이 청검을 하나씩 뽑아 들며 밖으로 나갔다.
“준비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청검을 든 고엘프들이 하늘을 바라보자.
파아아앗……!
거기서 초록색 포탈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위에 무지개 빛의 세게수 문양이 비친다 싶더니.
[나의 아이들아.]
슈우우우…….
포탈에서, 곧 하나의 물체가 떨어져 땅바닥에 굴렀다.
‘……저건 손이잖아?’
붉은 전류에 휘감긴, 새하얀 손.
설마 저거, 적뢰무한에 타격을 입은 이그드라실의 육체인가?
성지한이 이를 가만히 바라볼 때.
[이제부터.]
손바닥이 갈라지더니.
쿠르르르……!
땅이 뒤흔들리며, 거대한 나무 기둥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적뢰에 휘감긴 기둥은.
끝도 없이 뻗어 나가더니, 하늘 위.
포탈까지 닿았다.
[청검을 검증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