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38화>
화르르륵……!
성지한이 행성에 착지하자마자, 순식간에 타오르는 대지.
[진화 작업 개시]
그의 주변으로,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며.
허공에서 물방울이 생성되기 시작했지만.
‘그 정도론 안 되지.’
성지한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방화범이 되기로 마음먹었다.
적색권능赤色權能
적멸赤滅
스스스스…….
불에 잠식된 성지한의 몸 위로, 하나둘씩 떠오르는 적안.
거기서 붉은빛이 반짝인다 싶더니.
곧, 사방으로 적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콰콰쾅……!
진화를 위해 소환된 물은 물론이거니와 행성의 방어 체계가 대번에 초토화되었다.
[확실히 네가 나보다, 효율적으로 힘을 쓰는군.]
“네 방식은 너무 낭비가 심해.”
뚜벅. 뚜벅.
성지한은 적색의 관리자에게 그리 대답하며, 저 멀리 있는 세계수를 향해 다가갔다.
남산에 있는 것과, 비슷한 크기의 세계수.
그 안에 내포되어 있는 생명력도 엇비슷해 보였다.
‘남산도 S급인 건가. 그럼 잘됐네.’
남산의 세계수를 부수기 전에, 예행 연습으로 쓸 만하겠어.
성지한이 발자국을 옮기자, 사방으로 타오르는 불길.
녹음이 우거지던 숲속은, 순식간에 불지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허나.
‘세계수 자체의 힘이 만만치 않군.’
방어 시스템이 적멸에 의해 붕괴된 와중에도.
스스로가 내포한 생명력만으로, 적의 힘을 버텨 내는 세계수.
이 정도는 되어야, 높은 등급을 주는 거군.
‘어디, 화력을 집중시켜 볼까.’
전신에 떠올랐던 적안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그 힘이 한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세계수 앞으로 수십 겹의 배리어가 발동하더니.
[에너지 반응, ‘최고위 성좌’이상]
[경보 등급, ‘특급’ 상향]
[원로원 긴급소환]
[연합 방위군단 긴급소환]
그 위로, 수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세계수 근처에서 하나둘씩 떠오르는 녹색 포탈.
원로원과 방위군단, 벌써 소환되는 건가.
‘S급 세계수쯤 되니까, 확실히 방어 태세가 다르네.’
착지하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상대방의 반응이 엄청나게 재빨랐다.
그래도, 방위군단이고 원로원이고 바로 출동할 수는 없는 건지.
포탈만 열린 채, 아직 도착하지 않는 구원군.
“늦는군.”
성지한은 그걸 보면서, 여유롭게 팔짱을 끼었다.
그의 앞쪽에는.
어느새 생성된 거대한 적안이, 붉은빛을 쏘아내려 하는 상태였다.
힘을 한데로 집중시킨 적멸.
그리고 그 안에서는 강렬한 기운이 회오리치고 있었다.
[발사하지 않는 건가? 이 정도면 세계수도 단번에 부서질 것이다.]
“구원군 기다려야지.”
이왕 이렇게 된 거, 원로원과 연합 방위군단의 전력도 파악해 봐야지.
성지한이 그렇게 대기한 지, 5분 정도가 지났을까.
지이이잉……!
열려 있던 포탈에서, 엘프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에너지 반응, 적이라니…….”
“설마, 적색의 관리자인가?”
“아직 속단하지 마라. 그의 잔당일 수도 있으니.”
“저걸 봐라. 저게 잔당이라고?”
포탈 하나에서 고엘프 한 명과.
수십의 하이엘프가 완전무장 상태로 나타났다.
세계수의 앞에 소환된 포탈의 숫자는 일백여 개였으니, 총합 수천의 엘프들이 일제히 소환된 셈.
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훤히 보였던 세계수가, 저들에 의해 가려질 지경이었다.
‘여차하면 몸으로 막아도 되겠네.’
성지한은 그리 생각하면서.
아까부터 적색의 관리자에 맞게 변조해 둔 목소리를 내었다.
“준비, 다 되었나?”
그러자.
지이이잉……!
그 즉시 발동되는 녹색의 배리어.
이것은, 조금 전 행성을 방어하던 체계보다 몇 단계는 더 뛰어났다.
거기에.
“이그드라실이여, 저희에게 가호를 내려 주소서.”
100의 고엘프가 일제히 소리치자.
번쩍……!
배리어 위로, 무지개 빛의 우주수 문양이 그려졌다.
그러자 한층 더 보호막이 두터워지면서.
[깨어났습니까. 적색의 관리자.]
거기서, 이그드라실의 음성이 들려왔다.
* * *
[결국 청색의 관리자는, 당신에게 패배한 모양이군요.]
“…….”
마치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듯 이야기하는 녹색의 관리자.
성지한은 굳이 그녀의 착각을 수정해 주진 않았다.
[하지만, 당신이 그 상황에서 이겼으면 상시 관리자에 필적할 힘을 손에 넣었을 텐데…….]
지이이잉…….
배리어에서 무지개빛이 번뜩이더니.
성지한의 몸을 한 차례 스치고 지나갔다.
[힘이 그 정도로 보이진 않는군요. 명계는, 사실 완성하지 못한 겁니까.]
배리어에서 의지를 드러내더니, 순식간에 상대방의 전력까지 파악한 녹색의 관리자.
확실히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여기서 입을 잘못 열었다간, 정체가 들킬 수도 있겠는데.’
[그래. 내가 나다운 대답을 추천해 주겠다.]
‘알았어. 뭐라고 하는 게 좋냐?’
[후후…… 라고 말하는 걸 추천하지.]
‘……진심이냐?’
[그래. 목소리 톤도 똑같이 해야 한다.]
흑막 같은 웃음소리를 내라 이거지.
성지한은 속으로 한숨을 쉬고는, 적색의 관리자의 코칭을 따라 했다.
“후후…….”
[속내를 밝히지 않는 그 웃음, 여전하군요. 적색의 관리자.]
오래 부딪쳤던 사이라 그런가.
웃음소리만으로, 알아서 해석 다 해 주는 이그드라실.
그녀는 ‘후후’를 듣는 것만으로, 상대가 적색의 관리자가 맞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여기까진 괜찮군.’
성지한이 그렇게 생각할 때.
[공격하는 게 좋겠다. 이그드라실이 모습을 드러낸 이상, 세계수 연합의 주력이 모두 모일 수 있으니까.]
‘그래. 더 말 섞는 것도 위험하니까.’
[근데…… 뚫을 수 있겠나?]
우주수 문양까지 떠오른 배리어를 보며, 적색의 관리자가 그리 말했다.
상대의 방어 태세가 워낙 두터워서.
적멸만으로는, 부수기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충분한데?’
정작 성지한은 아무렇지도 않게 손을 뻗으며.
‘저거 부쉈을 때, 네 멘트나 생각해 봐.’
적멸을 쏘아냈다.
번쩍……!
붉은빛이 전방을 잠식하고.
우주수 문양이 떠오른 배리어가, 금방 겉면부터 타오르기 시작했다.
하나.
지이이잉…….
무지개 빛으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보호막은.
적멸을 어렵지 않게 막아 내고 있었다.
[‘적멸’에 관련된 데이터는 이미 수집, 분석했습니다. 적색의 관리자. 이 배리어는 당신의 권능에 맞춰 제작된 것. 그 정도 공격으로는 흠집도 내지 못할 겁니다.]
적멸을 막아 내면서, 적색의 관리자가 ‘상시 관리자’급이 아님을 확실히 파악한 이그드라실은.
[오늘, 역으로 당신을 붙잡아도 되겠네요.]
더 나아가, 그를 잡으려 들었다.
번쩍. 번쩍.
성지한의 주변에, 마구 생성되는 포탈.
이번엔 수비가 아니라.
공격을 위해, 세계수 연합의 주력 부대가 소환되려 하고 있었다.
[안 되겠군. 청색의 관리자여, 도주하자. 내 힘만으론 안 된다.]
이 상황을 본 적색의 관리자는 다급히 말했지만.
‘너 진짜 전투 못 하는구나.’
성지한은 여유롭게, 적멸에 뻗은 손을 비틀었다.
그러자.
화르르륵……!
순식간에 불이 번지며, 허물어지는 배리어.
‘이거 네 힘으로도 충분해.’
그러면서 붉은빛은, 순식간에 보호막 안쪽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아니. 어떻게…….]
‘무작정 힘만 쏟아 내지 말고 컨트롤을 해야지.’
[그게…… 그런다고 되는 거였나?]
자기보다 훨씬 적멸을 잘 다루는 성지한을 보면서, 적색의 관리자가 현 상황을 이해하질 못할 때.
[……말도 안 돼. 당신이, 이렇게 정교하게 힘을 쓸 리가 없을 텐데?]
무너진 배리어에서, 이그드라실의 목소리가 갈라지며 들려왔다.
‘다음 멘트.’
[‘겨우 이 정도인가.’]
적색의 관리자의 코칭에 따라, 성지한이 멘트를 읊자.
무너진 배리어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이 정도로 기고만장하다니. 기다리세요.]
그 말을 끝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우주수 문양.
그러자 배리어는 완전히 박살이 나고.
“아…… 가호가…….”
“이거, 정면으로 대항해선 안 된다…… 흩어져!”
“다들 세계수 근처로 가, 불길이 번지지만 않게 하라! 완전히 타오르지만 않으면 된다!”
뒤에 있던 엘프 부대는, 어떻게든 세계수 쪽으로 도망치려 들었다.
그리고.
화르르륵……!
적멸에 닿은 세계수가 불타오르자.
“몸을 던져라!”
“……네!”
고엘프의 명에 따라, 하이 엘프들이 일제히 불을 끄려고 몸을 내던졌다.
‘……세계수가 최우선이군. 연합의 최정예 군단보다.’
하여간 징글징글한 놈들.
이번 기회에 정리해야지.
성지한이 적멸을 쏘아내며, S급 세계수에 청홍을 꽂아 넣기 위해 다가갈 때.
번쩍! 번쩍!
세계수 주변으로 포탈이 수도 없이 열리더니.
거기서 엘프 군단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그드라실이 기다리라는 게, 이런 의미였나?’
S급 세계수를 지키려고 했던 인원보다, 열 배는 더 많은 엘프들.
[세계수 연합…… 역시 우주의 공해군.]
인해전술로 밀어붙이는 상대를 보며, 적색의 관리자가 그리 평가했다.
그래도 지금이야 만 명 단위 수준이었지만.
[오늘, 반드시 포박하겠습니다.]
번쩍! 번쩍!
또다시 사방에 포탈이 무수히 열리며.
엘프 군단이 여기서 더 들이닥치려고 했다.
‘안 되겠군.’
가만히 놔뒀다가는 이거 진짜 끝이 없겠는데.
[그만 후퇴하자. 이 정도면 성공적인 데뷔다. 백색의 관리자를 매혹시킬 미끼 역할도 충분히 되었을 거다.]
적색의 관리자는 하늘을 완전히 뒤덮은 녹색 포탈을 보면서, 이제 슬슬 도망치자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저 숫자, 부담이 되긴 하지.
여기에 시간 더 끌면 이그드라실이 직접 올지도 모르니까.
지금은 후퇴하는 게, 합리적인 방안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모였는데, 한 방은 먹이고 가야지.’
스스스스…….
성지한은 청홍을 꺼내 들었다.
적색의 관리자 행세를 해서 그런지.
겉으로는 스탯 청의 기운이 아예 느껴지지 않고, 그저 불의 검처럼 보이는 청홍.
그는 검을 꺼낸 후, 적색의 관리자에게 의념을 보냈다.
‘스탯 적, 일단 다 쓴다.’
[뭐? 뭐 하려고 그러나? 적을 다 쓰면 내가 어드바이스를 못 한다.]
‘어드바이스? 괜찮아.’
솔직히 전투에선, 이 녀석 도움 안 되니까.
성지한은 그렇게 대답하곤.
본격적으로 적을 사용했다.
[스탯 ‘적’이 500 소모됩니다.]
지이이잉……!
그러자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적멸.
그건, 세계수뿐만 아니라.
소환된 엘프 군단까지 일제히 집어삼켰다.
[반항이 심하군요. 하지만, 연합의 군단은 무한합니다. 당신과는 달리.]
엘프들이 일제히 소멸하자.
번쩍. 번쩍……!
그에 발맞추어 더 생겨나는 포탈.
이그드라실은 군단을 더 희생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적색의 관리자를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무한하다라…….”
푹!
적색의 관리자가 든 검이, 세계수에 꽂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세계수가 통째로 사라지면서, 상대가 순식간에 힘을 회복하자.
[아니…….]
녹색의 관리자는,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