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레벨로 회귀한 무신 537화>
하늘색 머리카락이라니.
‘김지훈 머리카락이라도 빠졌나.’
성지한은 인형처럼 누워 있는 김지훈의 몸을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윤세아가 신기하다는 듯 마루에서 만졌을 때, 그때 몇 가닥 빠진 건가.
근데 뭔 바닥에 뭐 머리카락 같은 걸 찾고 있어?
‘저 형 좀 이상해졌네.’
성지한이 5년 사이 변한 윤세진을 보면서 의아해할 즈음.
[오긴 누가 왔다 그래? 나랑 엄마밖에 없었는데.]
[……그래?]
[어. 어디서 오다가다 옷에 붙은 게 떨어졌나 보지. 아빠 이상하다? 무슨 집안 바닥을 뒤지고 있어.]
윤세아가 오히려 왜 그러냔 식으로 윤세진에게 대답했다.
[그리고 하늘색 머리카락이면. 뭐 문제라도 있어?]
[아니…… 집에 혹시 남자 하프 엘프라도 왔을까 봐.]
[오면 안 돼? 엄마 남친일 수도 있잖아.]
[뭐…… 뭐?]
[얘. 징그러운 소리 좀 하지 마.]
어째 점점 대화가 막장으로 흘러가는데.
[……그, 남자 하프 엘프들 소문이 안 좋아서. 혹시나 교류하고 있으면 주의하라고 말한 거야. 네 엄마든, 너든.]
[소문이 왜?]
[여성 편력이 좀 심하다고 해.]
남자 하프 엘프가 좀 여자들을 많이 만나기라도 하나?
‘뭐, 벼락출세한 셈이니 상대적으로 그런 케이스가 많을 수 있겠다만.’
세계수 연합에서 집중적으로 케어하는 남자 하프 엘프.
이 종족으로 변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이종친화 기프트와.
‘운’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운 좋게 하프 엘프가 된 후에도.
이들은 이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따로 노력을 할 필요도 없었다.
오히려 잠만 자도 검의 전당에서 레벨 업이 되니까.
길드에서 막대한 월급 타 가면서 놀고먹는 게 일이었다.
그래도.
‘저 형이 말하는 케이스는 너무 극단적인데.’
윤세진이 거론하는 예시는.
네 다리 다섯 다리로도 모자라, 문어발 케이스만 나열하고 있었다.
[아, 알았으니까 그만 해 좀. 딸 오랜만에 만나서 기껏 한다는 이야기가 그런 거야?]
그의 말을 잠깐 듣던 윤세아가 짜증을 낼 정도였으니.
[크, 크흠…… 그게.]
[에휴, 됐어. 아빠, 오늘 말고 다음에 봐. 나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피곤해.]
[……아, 알았다.]
그녀는 열변을 토하던 윤세진의 말을 끊고는, 그를 집 밖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똑똑.
성지한의 방문을 그녀가 노크했다.
“삼촌, 아까 대화 들었지?”
“어.”
“아빠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보고 뭐라고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
윤세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자, 성지한은 그녀 뒤편의 성지아를 바라보았다.
“누나 때문인가.”
“나?”
“귀환하고 보니까, 이혼한 전 남편이 전처에게 관심을 두는 거 같아서 말이야.”
“……아마, 그럴지도.”
돌아오는 당일 날에도 국가대표 회식 자리에서 싸움 났다고 했고.
김지훈이 길드 가입할 때도 성지아 부탁을 듣고 윤세진이 길을 열어 줬었다.
성지한이 귀환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돌아가는 상황만 봐도.
윤세진이 왜 저러는지 대강 짐작이 가능했다.
“아니, 근데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 가지고 저러는 건 좀…… 관심이 아니라 집착 아니야?”
“음, 누나. 내가 세진 형 기억 지워 줄까?”
“어…… 그런 것도 가능해?”
“나는 못하지만. 그런 거 잘 아는 놈을 알고 있거든.”
전투 빼곤 다 잘하는 적색의 관리자에게 물어보면.
이와 관련된 답이 나오겠지.
“뭐, 기억 삭제는 처음 하는 거라 어디까지 지워질지는 모르겠다만.”
“……난 괜찮아. 나랑 저 사람 문제니까, 내가 정리할게.”
성지아의 대답에,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하다면 기억 안 지우고 정리하는 게 제일 낫긴 하지.
“그래도 문제 생기면 바로 말해. 바로 삭제할 테니.”
“알았어.”
그렇게 윤세진 건에 대해서는 성지아가 정리하겠다고 일단락이 난 후.
성지한은 윤세아를 바라보았다.
“청홍의 봉인만 풀지 않는다면, 뭘 하던 공허 측은 상관하지 않는다는 거지?”
“응.”
“그리고 백색은 천 년간 봉인을 당해, 세상일에 개입하지 못하고.”
“맞아.”
“그럼 내가 세계수 연합을 무너뜨려도, 공허는 관심 없겠네?”
“음…… 오히려 좋아하지 않을까? 선을 매번 아슬아슬하게 안 넘는 세계수 연합을 대신 제거해 주는 거니.”
성지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공허 측이, 저쪽 편은 들지 않겠네.
외부의 변수 없이 세계수 연합과 결전을 치른다면, 성지한은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하나 걸리는 건.
‘백색의 관리자가 천 년의 봉인을 당했다고는 했지만…… 정말 그런지는 확인이 필요하단 말이지.’
헤븐넷에 엄청난 집착을 보였던 백색의 관리자.
그가 봉인을 당했다 한들, 과연 얌전히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어디 한번 테스트를 해 봐야겠군.’
봉인 상태로 계속 얌전히 있는지 미끼를 흔들어 볼까.
성지한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김지훈의 몸뚱어리를 둥둥 띄웠다.
“그럼 나 일 좀 하고 올게.”
“일?”
“세계수 연합 좀 털어먹으려고.”
“아하…… 알았어. 그럼 오늘은 끝이네~”
그렇게 파티를 끝낸 성지한은.
김지훈의 몸을 다시 집에 데려다 놓은 후, 저장해 두었던 세계수 연합의 좌표를 열었다.
‘그럼.’
파지지직…….
허공에서 붉은 포탈이 생기자.
성지한은 그 안에 바로 들어섰다.
그러자 공간 너머에 등장한 건, 세계수 연합의 행성.
‘청홍에 땔감 좀 넣어야겠군.’
그렇게 성지한은 세계수가 있는 장소로 착지하여.
‘여기도 수준이 약하네.’
땅을 가볍게 발로 찼다.
그러자 순식간에 터져 나가는 주변 엘프들.
성지한은 땔감으로 쓰일 세계수를 보면서, 적색의 관리자의 말을 떠올렸다.
-혹시라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적을 666까지 올려라. 그럼 다시 눈을 뜰 수 있으니까.
자기 스스로 청홍 안에 있겠다던 적색의 관리자.
그를 깨우기 위해선, 적을 지금보다 더 올려야 했다.
‘700은 안 넘게, 조절 잘해야겠군.’
미세하게 청홍의 봉인을 푼 성지한은.
검을 그대로 세계수에 꽂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거대 나무.
[‘D급 세계수’가 명계에 흡수됩니다.]
[청에 의해, 세계수의 흡수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세계수가 흡수되며, 스탯 적이 690에 도달하자.
번쩍……!
청홍의 안쪽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며.
[나를 깨웠는가. 청색의 관리자여.]
중심점에서, 적안이 떠올랐다.
* * *
[백색의 관리자가 봉인되었다고…….]
“그래.”
성지한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은 붉은 눈은, 빛을 번뜩였다.
[백색이 흑색의 관리자에게 명분을 주었으니, 천 년 봉인은 있을 법한 처벌이다. 하나 봉인당했다고 해서, 세상을 지켜보지 못하는 건 아니지…….]
“그래?”
[배틀튜브, 계속 운영되고 있지 않느냐.]
성지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붉은 눈이 말을 이어 갔다.
[배틀튜브가 작동하는 이상, 그의 눈은 배틀넷 전역에 닿아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개입을 못 할 뿐이지.]
“그거 말인데. 백색이 세상일에 아예 개입 못 하는 거냐?”
[그게 무슨 의미지?]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그의 눈앞에 흔들면. 그놈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서 말이야.”
[미끼라…….]
번쩍.
붉은 눈이 흥미로운 빛을 발했다.
[나를 미끼로 쓸 생각인가.]
“비슷해.”
[같은 상시 관리자임에도, 백색은 흑색에 비해 힘이 부족했지. 그 격차를 좁히기 위한 해결책이 바로 명계였으니…… 현재 흑색에게 밀려 봉인 상태인 그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나와 접촉하고 싶어 할 거다.]
그래.
아무리 백색이 봉인 상태라고 해도, 이걸 보면 눈이 뒤집히겠지.
‘세상일에 개입할 여력이 있다면. 어떻게든 여기에 접촉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접촉’을 증거로 가지고, 흑색의 관리자에게 봉인 더 강화하라고 던져 주면 될 테고.
만약 봉인이 워낙 강해서, 적색을 봤음에도 개입을 못 할 정도면.
백색의 관리자는 앞으로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둘 중 뭐가 되었든.
백색의 관리자에게 미끼를 흔드는 건, 해 볼 법한 시도였다.
[백색이 나와도 좋고, 안 나와도 좋다라…… 괜찮군. 하지만, 나는 미끼가 될 생각은 없다. 여기가 좋으니까.]
청홍 안이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미끼를 하는 대신 틀어박혀 있겠다는 적색의 관리자.
성지한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널 뭘 믿고 미끼로 쓰냐?”
[그럼…….]
“내가 네 행세하면 되지.”
화르르륵……!
성지한의 전신이 불타오른다 싶더니.
그의 몸이 금세 붉은 불꽃으로 뒤덮였다.
“세계수 연합 놈들 보니까, 적색의 관리자가 결국 나에게 승리하고 봉인에서 튀어나올 거라고 예측하던데.”
[합리적인 생각이군.]
“그걸 현실에서 보여 줘야지.”
[청색의 관리자가 내 행세를 한다라…….]
불로 화한 성지한을 보고는, 빛을 반짝이던 붉은 눈은.
[그럼 데뷔전은. 좀 더 강한 곳에서 하는 게 어떻겠나?]
그에게 자신이 나서서 의견을 제안했다.
“강한 곳?”
[그래. 이런 약한 행성에선, 네 정체가 드러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럼…….”
[고엘프 정도는 마주쳐야, 청색을 제압한 적색의 관리자도 모습을 드러낼 만 하지.]
지이이잉…….
그러면서 붉은 눈은.
[권능을 좀 쓰도록 하지.]
성지한이 저장했던 세계수 연합의 좌표 화면을 띄웠다.
[스탯 ‘적’이 10 소모됩니다.]
그러자, 스탯 적이 조금 사라지며.
좌표 숫자만 찍혀 있던 화면에서, 세계수의 등급이 옆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S부터 D까지 새겨진 등급표는, 순서가 뒤죽박죽이었지만.
[하는 김에 정리도 하겠다.]
화면이 잠시 붉어지더니.
슥. 슥.
좌표가 위에서부터 등급 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와, 진짜 편하네. 이놈.’
속내가 흉흉하지만 않으면, 최강의 비서나 다름없는 붉은 눈.
성지한은 편리하긴 진짜 편리하다고 생각하면서, 맨 위의 좌표를 바라보았다.
“여기 좌표 중, 맨 위가 제일 세냐?”
[그렇다.]
“그럼 거기 가야겠네.”
[고엘프는 A등급에도 나올 것이다. 굳이 가장 강한 곳에 갈 필요는…….]
“무슨 소리야.”
성지한은 붉은 눈의 충고에 피식 웃었다.
“네가 날 먹어치웠으면, 가장 강한 곳부터 쳤을걸?”
파지지직……!
붉은 포탈이 열리자.
성지한은 그리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상반응 감지]
[에너지 반응, ‘적’]
[1급경보 발령]
[포탈 억제 기능 가동]
지금까지와는 달리.
우주 공간에서부터, 상대의 경계 반응이 나타나고 있었다.
포탈이 열리는 것 자체를 막으려고, 세계수 연합의 방어 시스템이 가동되고 있었지만.
‘별거 없군.’
스윽.
성지한이 포탈 너머로 손바닥을 한 번 휘두르자.
위축되던 붉은 포탈은 크게 열렸다.
그러자 드러난 건, 거대한 녹색의 배리어.
배리어에 담긴 힘은 꽤 강렬했지만.
‘몸으로 밀어도 되겠네.’
불에 잠식된 성지한은 단번에 이를 뚫고는.
세계수가 자리한 곳으로, 가볍게 착지했다.